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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육병 환자로 살아가는 홍수영 씨가 쓴 에세이다. 저자는 15년 전 ‘디스토니아’라는 근육병이 찾아온 뒤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목이 툭툭 하고 틱처럼 돌아가는 정도였으나 하루가 다르게 증상은 심각해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목 때문에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 집어넣고 고개를 고정시켜서야 겨우 잠들 수 있을 정도라고 햇다. 당연히 움직이는 것도 말하는 것도 모두 어려워졌다. 사람 사이 관계의 불균형과 소통의 단절이 시작됐다.
홍 작가는 ‘디스토니아(Dystonia)’라는 질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내가 앓고 있는 디스토니아는 불수의적 동작과 경련(지속적인 근육 수축), 떨림, 비정상적인 자세를 일으키는 운동 장애이다. 북아메리카에서만 50만 명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다소 여러 형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안검경련Blepharospasm이라고 해서 빈번하고 극적이고 치명적인 걷잡을 수 없는 눈 깜빡거림과 찡그림을 보인다. 목에 나타나는 후방사경retrocollis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머리가 위험할 정도로 뒤로 젖혀진다. 근긴장 이상이 후두에 타격을 주면 말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총체적인 근긴장 이상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팔, 다리, 복부, 후두 눈꺼풀 같은 모든 부위에 근긴장 이상 증상을 겪는다.” - 35쪽
초스피드의 시대, 누가 ‘느린 말’을 애정 어린 눈길로 기다려주겠는가. 저자는 ‘말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이 책은 그녀가 15년 남짓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 속에서 ‘침묵’하며 살아오면서 빚어낸 고통의 서사다.
“말을 잇고 싶어 근육을 뒤틀면서 어찌어찌 이야기를 이어가면 커다란 제스처와 제어될 수 없는 표정 때문에 감정적이라는 오해를 사곤 했다. 관심 받고 싶어 안달이 난,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비춰졌다. 섞일 수 없는 말을 끌어안고 울었다. 나는 오랜 시간 그런 사람으로 지냈다. 평정심을 모르고, 과장이 많고, 자격지심에 찌든 사람으로. 그래서 더욱 처절하게,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 12쪽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 ‘몸의 고백’과 2부 ‘몸의 침묵’은 저자가 소통을 꿈꿨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던 아픈 몸의 기록이다. 3부는 지난 10년 동안 쓴 기도문의 일부다.
“나는 이번 책을 통해서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낸 장애의 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섣부른 오해에서 비롯된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 306쪽
홍수영 작가는 “모든 것은 다 내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라거나 “병의 증세가 아닌 태도의 문제가 아닌지 검열해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토로한다.
최근 한겨레21 박다해 기자는 ‘아픔 몸’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기사(한겨레21 제1344호)를 선보였다. 박 기자는 질병의 원인이 오롯이 개인에게 귀결되는 현상은 한국 사회가 ‘비장애인’을 기본값으로 둔 건강 중심 사회인 탓이 크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에선 건강이 개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쟁취할 수 있는 일종의 ‘스펙’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조한진희 작가가 쓴 에세이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따온 것이다. 조 작가는 한때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할 만큼 건강했으나, 어느 날 암 진단을 받은 뒤 ‘아픈 몸’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치열하게 탐색하고 있다.
“질병은 죄가 없었다. 몇 년간 응시한 끝에 비로소 얻게 된 결론이다. 내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다. 아픈 몸이 되고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 중심 사회임을 알게 되었다. (중략)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자앵인들을 배제하듯이, 건강 중심 사회는 아픈 몸들을 배제하고 있다.”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프롤로그에서
조한진희 작가는 작년 자신이 쓴 책을 토대로 동명의 연극을 기획·제작했다. 이때 자료 사진은 김덕중 사진작가가 찍었는데, 《몸과 말》에 나와 있는 홍수영 작가의 사진 역시 그의 작품이다. 이런 맥락에서 《몸과 말》은 ‘아픈 몸’에 대한 철학적 연대가 아닐 수 없다.
안희제 작가는 <난치의 상상력>에서 ‘찡찡(징징)의 공동체’란 개념을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밥 먹자”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아픔을 자꾸 말해보자는 것이다. 조언이나 쾌유를 빈다는 위로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말하지 않으면 자신이 겪는 고통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를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는 고통의 발화를 통해 아픈 사람들이 서로 돕고, 더 나아가 아프지 않은 사람과도 연결될 수 있을 때 “더욱 안전하게 함께”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홍수영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아픈 몸에 대한 증언과 이로 인한 삶의 질곡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이 책은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좀 더 이해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아픈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함께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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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에 아픔과 아프지 않음의 경계에 있다는 또 다른 사람, 안희제가 생각났다. 자신의 서사에서 고통을 시시각각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 어쩌면 장애인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나 같은 사람보다 더 외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 사람이 그였다.
자신을 바디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하는 그가 흥미로워 호기심이 일었다. '아픈' 몸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안희제가 했던 "이젠 아프다고 말해야 한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에게는 어떤 서사가 있을까? 나는 또 주야장천 아픈 몸을 어떻게 아프다고 말해야 할까? 가슴과 머리가 쉬지 않고 두근댄다.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을 설명해야 했던 눈물겨운 고백들에서 한참을 아팠다. 어쩜 우린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나 모진 말을 들어야 했을까. 나 역시 나중에 두고 보자며 오기처럼 눈물과 억울함을 삼켜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흐려지는 눈을 감추느라 목을 한참 뒤로 젖혀야 했다.
어릴 때부터 세뇌 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강박은 나와 다른 타인에게도 안부나 위로를 스스럼없이 건네야 한다는 태도를 만드는 것 같아. 무심코 건네는 위로가 상대방에는 무례일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는 건 그런 행위 뒤에 스스로 착한 일을 했다는 자기만족이 있을 것이다. 친해서 혹은 가족이라서 또는 이해한다 여기면서 무심코 만드는 '관계의 차별'을 묵묵히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그 선한 의도를 알기에 더 아프다.
나는 감히 아팠다고 해도 될까? "안 되는 걸 자꾸 되게 하려다 오는 처연함 속에 갇힌다"라는 말에 목울대가 욱신거렸다. 나는 몸이 기억하는 어떤 행동에도 긴장과 조급함이 스미면 여지없이 강직은 심해진다. 극도로 뻣뻣해진 손가락은 더 이상의 움직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몸이 기억하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렇게 일상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일은 서럽다. 아니 처연하다. 그럴 때 욕설과 괴성으로도 덮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많이 아팠다. 읽는 동안 자꾸 그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가 겹쳐졌다. 신기하다기보다 상처가 덧나는 것처럼 따끔거리며 긁혔다.
왜 우리는 남들 다 하는 사랑도 욕심을 내야만 하는지. 욕심을 낸다 한들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네가?" 혹은 "네까짓 게?" 따위의 업신여기는 조롱을 당해 가면서도 사랑 따위를 해야 하는지. 누군가를 향한 널뛰는 가슴과 붉은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건 우리도 사람이라 서겠지.
그랬던 기억이 선명하다. 십 년을 옆에 있던 이도, 그렇게 욕심이라 생각해 밀쳐냈던 이도, 순식간에 스몄던 이도 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만 있다가 떠났다. 난 또 그만큼 비워져야 했다. 사랑은 더 이상 믿지 못했다.
그의 삶을 정의할 수 없겠지만 '보태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싶다. 삶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보태거나 혹은 드러낼 수 없는 결핍을 보태려 애쓰는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러면서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 온전히 보여주는 삶. 그래서 이 책은 그의 삶의 기록이자 그의 기도집이다.
그의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앞에서 "대신 떠나줄게"라는 말과 "내가 다 해줄게"라는 말 사이에서 어떤 말이 상처가 덜 할까라는 생각이 훅하고 비집고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 딸싹하지 못하던 내가 세 번의 수술과 치아가 다 뭉그러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버틴 재활의 결실은 위태로운 걸음이긴 해도 직립보행이었다. 1년여 동안 병원 천장만 보던 전신마비 환자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세상은 다름 아닌 푸른 바다였다. 지나가는 말이었다. 내가 이 위태로운 걸음으로 바다를 보러 가는 것보다 내 앞에 바다를 끌어다 놓는 게 쉬운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무엇을 다해줄 거라 생각했을까? 나는 친구 둘과 5시간이 넘는 기차의 덜컹 거림과 매캐한 버스의 흔들거림 또 위태롭고 더딘 걸음으로 주야장천 걸어야 했던 길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전신의 통증에 서너 걸음을 걷고 기댈 곳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기대거나 주저앉아야 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바다는 웃음보다 눈물을 쏟아내게 했었다. 결국 고통은 누가 대신 다해주거나 대신해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하고 싶으면 자신이 해야 했다. 보고 싶으면 자신이 봐야 했다. 그래서 겪어야 할 통증이라면 기꺼이 버텨내야 했다. '대신'은 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같이'여야 한다.
에필로그에서 단호하게 꾹꾹 눌러 힘 있게 적었을 그의 이 말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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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디스토니아’라는 근육병이 찾아온 뒤 이 책 『몸과 말』의 저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사전에 따르면 디스토니아(dystonia)란 근육 긴장 이상 증세를 보이는 병으로서 몸의 한쪽 또는 그 이상에서 발생하는 불수의적이고 지속적인 근육 수축이 특징이다. 빈번하게 꼬이며 반복적인 운동 또는 비정상적인 자세를 발생시킨다. 이 때문에 근육 긴장 이상을 가진 환자들은 영향을 받은 신체 부위에서 팽팽함, 경련, 비틀림 같은 비정상적인 자세를 가진다. 영향을 받은 몸의 부위에 장애 또는 기능의 손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근육 긴장 이상의 운동 범위는 무정위 운동에서부터 빠르고, 순간적인 근간대성 경련까지 다양하며, 때로는 율동적이고 떨림을 동반한다. 근육 긴장 이상 운동은 동작에 의해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목의 운동 이상은 가장 흔한 형태 중 하나로, 머리의 비틀림 또는 경련, 머리 떨림, 경부 통증 등이 포함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책에 따르면 제어할 수 없는 근육의 경련과 발성 장애는 말하는 일을 힘겹게 만들었다. 말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관계의 불균형과 소통의 단절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저자의 ‘느린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 책은 ‘말하는 일’이 어려워진 저자가 장애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 속에서 ‘침묵’하며 조용히 빚어낸 고통의 기록이다. 저자 자신의 몸에 대한 정직한 증언과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사례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이 기록되어 있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을 것 같고,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지면 결국 침묵 속에서 살아야 할 터 그 고통의 시간이 일반인이 당하는 고통의 수십, 수백 배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이 희귀병인 데다 병의 원인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듯하다. 특효약이 없다는 뜻이다. 통증이 찾아오면 진통제나 주사 등 일시적 고통 완화 외에 방법이 없다면 치료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 침묵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저자의 기도문을 보면 고통과 치유의 희망이 엇갈리며 독자의 눈시울마저 붉게 물들인다.
저기 지하철 노약자석에 멀쩡해 보이는 20대 여자가 앉아 있다. 고개를 한쪽에 기댄 채, 해사한 얼굴을 하고... 이 책의 저자 바디에세이스트 홍수영이다. 14살 가을, 저자에게 근육병이 찾아왔다.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목이 자꾸 곱아져 앞을 응시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저자의 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상태가 달라진다. 어떤 시간에 저자의 병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법 다부지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러다가도 곧 몸의 리듬이 사라진다. 근육병은 근육의 불수의적 경련과 기억력 저하 그리고 발성 장애를 가져왔다. 생각을 뚜렷하게 말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과 대화 나누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에게 대화는 높이뛰기보다 어렵다. 저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판단과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 속에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의 시간 동안 저자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말하기였다. 이는 목의 떨림과 안면 근육을 사용해서 ‘몸으로’ 하는 말하기와는 다르다. 저자는 ‘기도'로 말을 한다. 서로가 애써 무관해지려는 세상에서, 너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지 않는 이곳에서 저자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에게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다. 저자는 하나님과 자신의 아픈 몸을 두고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겪는’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사회의 지배적 이미지와 장애의 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찰의 노력이 없는 한 아픈 몸을 향한 섣부른 판단과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픈 몸들이 우리의 도처에서 억압을 견디며 연대의 마음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글로써 외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아픔들 앞에서도 익명이 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호소의 책이자,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깨닫게 해주는 성찰의 책이다.
몸통이 앞으로 수그러지고 복부에 심한 통증이 온다. 똑바로 섰을 때 무게 중심이 발 안쪽과 발가락에만 실린다. 그러나 걷고 난 뒤는 다르다. 발바닥 전면이 고르게 땅을 딛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목과 어깨가 가벼워진다.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 이상을 걷고부터 균형감각이 확연히 좋아졌다. 비록 앞서 말한 조용한 소란과 일체 무관한 일상을 누리는 건 아니지만 컨디션을 그나마 좋게 하게 위한 방법이랄까. 건강한 한나절을 능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링거액 같은 역할. 많이 걸은 날은 작은 동작에도 역동성이 생긴다. 나는 환자마다 치료에 있어 다른 접근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p. 46)
얼굴 하나, 표정 하나를 갖고 싶어서 헤맸던 시간들. 경련이 웃음으로 변하고, 그 어떤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다. 나를 스치듯이 보고 스치듯이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 그런 내게도 정말 뛸 듯이 기쁜 순간이 찾아오는데, 누군가가 헤어짐의 인사 뒤에 어색한 악수 대신 이 말을 건네줄 때다. “수영 씨, 우리 내일 만날래요?”, “다음 주에 또 볼까요?”(p.126)
질병이 나를 찾아온 뒤로 작디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삶을 살아왔다. 한순간이 얼마나 낭비될 수 없이 무거운지, 내가 건네는 한마디가 다른 이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닫는 삶의 연속이었다는 거다.(p.182)
나는 이번 책을 통해서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낸 장애의 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섣부른 오해에서 비롯된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p.322)
저자 : 홍수영
바디 에세이스트. 기다리고, 듣고, 느리게 대답하는 사람. 약을 복용하면 근육의 수축과 떨림이 경감되는 ‘경증’의 근육병 환자로 살고 있다. 근육을 쥐어짜는 통증과 휴지기가 반복적으로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급작스럽게 바뀌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몸과 만난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은 ‘사랑해요’와 ‘감사해요’라는 두 마디 안에서 소통을 완성한다. 그 두 마디는 건네지 못한 모든 말들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오해와 편견을 글로 풀어내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을 주장하는 곳에 있는 배제, 다양성을 외치는 곳에 있는 선긋기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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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말 아픈 몸과 말의 기록 홍수영 에세이이다.마음이 몸을 지배하지만 때론 몸이 마음을 지배하기도 한다.저자는 몸의 고백을 글로 승화시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 경증 근육병을 앓으면서도 그녀는 늘 사랑과 감사로 살아간다.언제나 약을 먹어야 하는 삶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디스토니아는 불수의적 동작과 경련,지속적인 근육수축과 떨림,비정상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운동장애를 앓는 이 병은 근긴장 이상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처방약이 없다고 미국 국립 신경질환 뇌졸증 연구소 웹사이트는 설명하고 있다.
![]() ![]() ![]() 익숙함이 주는 몸의 변화가 아닌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몸의 변화를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남들과 똑같은 시간 속에 흘러가고 싶다.연습이 가능하고 익숙함을 아는 몸으로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고 고백한다.근육병 환자들의 몸의 발란스는 정말 유지하기가 어렵다.행여 일상생활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삶이 그렇게 부러울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꿈이고 희망이다.디스토니아를 앓고 있는 이들에겐 상실감과 혼란만 주어진다.
![]() ![]() ![]()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장애인,배려가 없는 일반인들의 편견을 이겨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그녀가 말하는 인생은 남들의 의식보다 나자신이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는가!라는 것이다.홍수영 에세이는 우리들의 편견과 상관없이 모두를 포용하는 그녀의 사랑이다.구도자의 기도처럼 그녀의 특별한 선물은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 ![]()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 그릇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다.숨쉬기도 버거운 날들의 연속이 되고 누구 하나 내가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굴 의지 하나요? 절대자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가의 몸부림을 통해 우리는 공간이 주는 미학을 볼 수 있다.스스로가 돌봄이라는 굴레 속에서 소리의 발견은 이방인의 삶을 조명한다.
![]() ![]() ![]() "제가 아파요" 라는 말도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과 오래 앉아 있으면 목의 중심이 이리 저리 기운다는 것,자나 깨나 버거운 통증과 부대끼는 근육병을 앓고 살아간다는 것을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무심코 지나가는 말이라도 던지지 말기를 그들에겐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다만 표현을 하지 않을 뿐 그녀의 매일의 기도는 통증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된다.부디 평안이 그녀와 함께 하시길 바라며 몸과 말 홍수영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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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니아'라는 병을 아시나요? 디스토니아는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병으로 저도 처음 들어본 병명입니다. 이 책 《몸과 말》의 저자가 앓고 있는 병이 디스토니아로 불수의적 동작과 경련, 떨림, 비정상적인 자세를 일으키는 운동 장애라고 합니다. 증상은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르기도 한데 어떤 사람은 안검경련이라고 해서 빈번하고 극적이고 치명적인 눈 깜빡거림과 찡그림을 보이기도 하고, 목에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머리가 위험할 정도로 뒤로 젖히기도 한답니다. 총체적인 근긴장 이상 증상을 겪는 환자들은 팔, 다리, 복부, 후두, 눈꺼풀 부위에 근긴장 이상 증상을 겪는다고 합니다. 작가는 14살 가을에 디스토니아 진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목이 돌아갔고 결국 서울로 올라가 대학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게 됩니다. 이미 당시엔 수업 시간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있었습니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효과가 전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러 호통을 치는데 반 아이들을 보고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입꼬리가 만든 오해였지만 해명을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급우들이 얼굴의 경련을 볼까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그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자꾸 마스크를 벗기려고 했습니다. 진단서까지 떼서 보여주었지만 병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더 많은 의심을 했습니다. 10년 전부터 온라인 소통망을 통해 디스토니아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의학정도의 교환뿐만 아니라 미용실에 다녀온 이야기나 서로 격려하기도 합니다. 《몸과 말》은 아픈 몸으로 겪은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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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이 책은 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경증 근육병 환자로 살아가는 바디 에세이스트 홍수영의 질병 서사이다. 디스토니아(dystonia)는 경부, 체간(體幹)에 눈에 띄게 골격근의 이상한 지속성 수축에 의해서 생기는 기묘한 자세를 말한다. 북아메리카에서만 50만 명이 디스토니아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 병을 예방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처방약은 현재 없다. 징후에 따라 약을 처방하지만 대개 치료는 극단적이고 침습적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14살 가을 디스토니아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목이 툭툭 하고 틱처럼 돌아가는 정도였으나 하루가 다르게 증상은 심각해졌다.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돌아가는 목 때문에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에 집어넣고 고개를 고정시켜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바쁘셔서 친할머니 손에서 자란 저자는 갓난아이였을 때 등에 업고 종일 밭일을 하셨는데 당시 위험할 만큼 목이 벌렁 꺽인 채 있는 모습에 친척들이 보고 놀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컨디션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잘 먹고도 아프고 잘 자고도 아프고 아프지 않다가도 아프기 때문이다. 몸의 변덕에 치인 일상은 몸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하지만 어림도 없다. 몸은 일상을 놔주지 않는다. 일상은 반복되는 산란한 몸에 묶여 몸이 가는 곳으로 쓸려 다닌다. <가볍지 않는 경증> 이 장에는 저자가 지하철에서 노약자 석에 앉았다가 당한 봉변이 상세히 적혀 있다. 맞은편 노약자석에 앉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겉으로 보기에 건강한 여인이 앉아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을 듯 하다. '아가씨 지금 어른이 서 있는데 안 보여?' '여기 노약자석이라고 써진 거 안 보여?‘ ’요새 학교에서는 노약자석이 뭔지 안 가르치나?‘ ’노약자석 의미를 몰라?‘ 등 거친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저자는 복지카드를 보이고 아프다고 항변하지만 결코 사과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누구나 실수 한다. 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 부분을 읽다가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할아버지에게 지팡이를 맞았던 기억이 났다. 시골을 가는 버스 안에서 졸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어린 초등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모습에 화가 나셨는지 지팡이로 나를 쳐서 깨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어린 나이였지만 맞아서 아프기 보다는 사람들의 쳐다보는 눈빛에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이런 할아버지가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저자의 경험담을 보니 아직도 겉모습만 보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상태에 따라 한마디 말을 내뱉기도 힘든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 교감할 수 있는 어떤 장기적인 관계도 결여된 사람에게 언어는 가장 생경한 비언어가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묵속에서 보내는 편이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라기보다 입 몽우리에 말을 틔울 수 없어서였다.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무리 길어져도 처음 말을 건네는 것처럼 불편해했고 어딘가를 반복적으로 방문해도 한 번도 그 공간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가 읽어도 좋고 그렇지 않은 이가 읽어도 무방할 듯 하다. 저자가 짧게나마 유치부 사역자로 일하면서 겪었던 교회의 일들, 상처들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되돌아 보면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낮은 자, 가난한 자, 고아와 함께 하셨던 모습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또한, 저자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문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간 느꼈던 저자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있을 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들>
남들과 똑같은 시간 속에 흘러가고 싶다. 연습이 가능하고 익숙함을 아는 몸으로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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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몸과 말 / 홍수영 에세이 / 허클베리북스
#몸과 말은 아픈 몸과 말의 기록 #에세이 도서이다.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이다. 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경증 근육병 환자로 살아가는 바디 에세이스트 홍수영의 질병 서사.
#에세이 #몸과 말의 저자 홍수영은 바디 에세이스트. 기다리고, 듣고, 느리게 대답하는 사람. 약을 복용하면 근육의 수축과 떨림이 경감되는 ‘경증’의 근육병 환자로 살고 있다. 근육을 쥐어짜는 통증과 휴지기가 반복적으로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급작스럽게 바뀌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몸과 만난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은 ‘사랑해요’와 ‘감사해요’라는 두 마디 안에서 소통을 완성한다. 그 두 마디는 건네지 못한 모든 말들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오 해와 편견을 글로 풀어내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을 주장하는 곳에 있는 배제, 다양성을 외치는 곳에 있는 선긋기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쓴다.
내가 앓고 있는 디스토니아는 불수의적 동작과 경련, 떨림, 비정상적인 자세를 일으키는 운동 장애이다. 북아메리카에서만 50만 명이 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다소 여러 형태로 증상이 나타난다. 저자의 경우 대체로 목의 근긴장 이상이 도드라진다. 근육의 수축이 계속 일어나 과도하게 일을 하게 되면 거의 항상 피로감에 시달리고 몸의 움직임이 뻣뻣해진다. 가끔씩 친척들을 만나면 한심하다는 듯이 "앞으로 어떻게 살래?너만 보면 답답하다" 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손끝을 응시하며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마다 다른 몸이 된다. 어제 능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도 거뜬히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남들과 똑같은 시간 속에 흘러가고 싶다. 연습이 가능하고 익숙함을 아는 몸으로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배려라고 "믿는", 너그러우면서 지극히 편협한 표현들을 참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고 반박하는 우리에게 무안을 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 내가 편의를 봐줬는데" 로 시작되는 말들... 그들은 장애인인 우리보다 더욱 상처받기라도 할 것처럼 부드러운 응수에 길들여져 있다. 자신이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내듯 큰소리치며, 단정하고 말쑥해진다. 뿌리째 휘두르고도 우리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대화의 순간은 더없이 소중해진다. 어디에서건, 누구와 있건 나는 그 순간에 충실하려 애쓴다. 아는가, 말에는 질감이 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말도 지나고 나면 더 다정해지고, 노랗게 떠돌던 부표 같은 말들은 맹렬한 허기가 되어 새벽을 흔든다. 세세한 기억은 잃고 있으면서도 침 얼룩처럼 입가에 말라붙어 있는 말들, 한 여드레 머문 말도 있고 몇 년씩 살았던 말도 있었다고. 있잖아, 말해주고 싶었다. 말과 말 사이, 난 여기서 살아가고 있어. #에세이 #몸과 말의 저자는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사회의 지배적 이미지와 장애의 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찰의 노력이 없는 한 아픈 몸을 향한 섣부른 판단과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픈 몸들이 우리의 도처에서 억압을 견디며 연대의 마음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묘파한다. 몸과 말 책은 우리가 어떤 아픔들 앞에서도 익명이 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호소의 책이자,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깨닫게 해주는 성찰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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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이다. 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에서 경증 근육병 환자로 살아가는 바디 에세이스트 홍수영의 질병 서사이다. 15년 전 ‘디스토니아’라는 근육병이 찾아온 뒤 저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어할 수 없는 근육의 경련과 발성 장애는 말하는 일을 힘겹게 만들었다. 말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관계의 불균형과 소통의 단절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저자의 ‘느린 말’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마음은 내가 하는 말로 드러난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말하는 방식을 바꾸면 마음도 태도도 달라진다. 또한 말투가 달라지면 경직되었던 인간관계도 훨씬 유연해지고 안정된다. 위로나 조언을 건넬 때 간결하면서 품격 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꺼내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있다. 모임에서 부드럽게 분위기를 리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 뒤돌아서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일과 관계가 술술 풀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쉽게 미움을 받게 되고 오해를 사게 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차이는 바로 말습관 때문이다. 말의 내용만큼 중요한 것이 말습관이다. 특히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투는 말하는 이의 품격을 드러내고 관계 내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척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말 한마디 한마디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말은 말하는 이의 인품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기에 나이가 들수록 격을 높이는 말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말하는 일’이 어려워진 저자가 장애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 속에서 ‘침묵’하며 조용히 빚어낸 고통의 기록이다. 저자 자신의 몸에 대한 정직한 증언과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사례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아픔들 앞에서도 익명이 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호소의 책이자,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깨닫게 해주는 성찰의 책이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때 마다 작가의 마음이 크나크게 전해진 책이였다.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심코 지나가는 말이라도 던지지 말기를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남을 수 있을테니까.... ?? 책속으로: 서로에게 무관해지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상대방의 아픔을 다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그 아픔에 무심해지지 않겠다는 다짐. 그보다 더 이 사회에 절실한 게 있을까. 지금도 여러 공공시설에서 매서운 편견과 만나면서도 부당하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수많은 희귀질환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과 씨름하는. 그들 앞에서 익명이 되지 말아야 할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P.S: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몸과말 #홍수영에세이 #아픈몸과말의기록 #에세이 #책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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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말] 홍수영 글 2021.1.8.~ 1.13 '얼굴 하나, 표정 하나를 갖고 싶어서 헤맸던 시간들'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사고로 깁스를 한 후에 잘 쓰던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던 때 느꼈던 그 답답함은 상상이상이었다. 몸을 잘 쓰던 홍수영님은 14살 가을에 디스토니아(근육긴장이상증) 진단을 받았고, 내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며, 얼핏 보면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하셨다. 그럼으로 오는 오해와 눈빛들로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었는지를 적어 놓으셨다. ‘ 대관절 하루하루가 전쟁이었고, 죽지 못해 살았을’(p 30)그녀의 일상이,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 아팠다. 하루에 많이 읽을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파서, 그 상황이 떠올라서. 언어의 결여는 나 이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단절시켰다. 어디에 있어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p 11) 하고 싶어서 하는 침묵이 아닌, 주어지지 않아 할 수 밖에 없는 침묵의 무게를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있으랴. 이것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하는 나로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 못된 마음일까? 다른 이의 고통에서 나의 온전함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내가 싫다. 괜찮다가 장애가 오면 내게 주어졌다가 빼앗겼다는 억울함이 정말 많이 들 것 같았다. 성대결절이 왔을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적어가며 수업을 했다. 지금이야 컴퓨터와 대형화면을 통해 워드로 쓰면서 말하지 않아도 가능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컴퓨터 없이 칠판에 글로 적을 때였으니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른다. 글이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절이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시의 힘듦이 되살아났다. 난 이틀이었지만 수영님은 ..... 그저 덜 아프고 싶다고 했다. 이름 불러주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도 했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한마디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벗과 함께, 같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싶다. (p 13) 수영님 옆에 있을 게요. 아무 말하지 않고도 같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어요 우리.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도 그 작은 일상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다. 스트레칭을 하고, 한강을 바르게 걷고, 체득한 나만의 방식으로 몸을 잘 달래어 조율한 뒤 다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선다. 몸을 압박하는 증상들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서라면, 통증들이 뭐 대수겠는가 (p 39) 허리가 잠시 아파도 정말 지치도록 힘든데 수영님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하루마다 다른 몸이 된다. 어제 능히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도 거뜬히 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p 43) 내 몸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현실. 상상만으로도 힘들다. 사람들의 눈초리, 알지 못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영혼 없는 위로에 상처받은 수영님이 이기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들이 누르고 있었을 거다. 차라리 몸이 한결같았으면 덜 힘들었을까? 컨디션이 좋아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있는 게 덜 힘들었을까? 나눌 수 있을 만큼의 불안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우울을 가름 짓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부르는 순간 창살을 쏜살같이 뚫고 나갈 것만 같은 격심한 감정들이 있는데 (p 94) 대화를 갈망했어요. 사람들 틈에 끼어 애타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했어요. 제가 들리세요? 정말 들리세요? (p 99) 느린 받아쓰기를 주님께서 안아주신다. 짧고 초라한 말들을 소중히 다루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p 168) 수영님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대화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살고 있다. ‘주께서 나를 꼭 안아 주신다.’ (p 192) 기도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일을 하면서,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장애가 불러일으키는 일상적 오해를’(p 305) 담담히 기록으로 남겨서 나의 말 못할 상처가 기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공감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새 수영님 같은 사람을 혹여 눈빛으로 오해하지는 않았을지 반성도 하면서 읽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나도 장애인 줄 모르고 가지고 있는 장애도 있을 것이다. 홍수영 님의 책 [몸과 말]은 뒷표지의 박희규교수님 말씀처럼 나의 어두운 길에 한 발짝 앞으로 디딜 수 있는 공간을 비춰 주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