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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틴이 크루즈 여행을 포기하고 화자와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함께 하는 가운데 사랑의 기쁨도 누리지만 왠지 권태를 느끼고 사랑이 식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틴이 옆에 없을 때 오히려 기쁨을 맛보았다는데... 특히 아침 날씨가 좋을 때는 날씨를 알려 주던 카푸친 수도사를 떠올리며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등 사색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둘 사이의 관점이 달랐던 때문일까. 화자는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 것 같았다. 하지만 알베르틴은 앙드레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거나 자유분방해서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한쪽에서 붙잡으려고 하면 한쪽에서는 도망치려는 법인가. 이 9권에서 주된 이야기는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질투에 대한 성찰적인 문장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전부터 ‘갇힌 여인’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었는데 이 권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화자의 집에서 살게 된 알베르틴을 ‘갇힌 여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가장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도 질투를 느끼는 화자의 마음이라니. 완벽한 소유란 있을 수 없으니까. 가까이 있어도 한 길 사람 속, 마음은 모른다고 하지 않은가.
질투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몇 개 음미하는 것으로 이 권을 기억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모두 말해준다면, 우리는 어쩌면 쉽게 사랑에서 치유되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가 제아무리 질투의 감정을 교묘하게 감추려 해도, 그 사실은 질투를 불러일으킨 여인에 의해 재빨리 발각되기 마련이며, 이번에는 여인이 교묘한 술책을 쓴다. 여인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자 속임수를 쓰고 또 성공한다.(P100)
마치 연인들의 심리전을 꿰뚫고 있는 듯한 장면이다. 어떻게든 알베르틴을 완벽하게 소유하려 했던 화자의 고뇌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자주 묘사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도시와 길을 우리는 질투 때문에 알고 싶어 하는가! 질투는 앎에 대한 갈증이며, 그런 갈증 덕분에 우리는 일련의 고립된 요소들에 대해서는 온갖 지식을 차례로 취득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언제 의혹이 나타날지도 결코 알지 못한다.(P139)
‘앎에 대한 갈증’이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는 것이 질투라니. 사랑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것도 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런 질투에 대한 성찰이 엄청나다.
‘사랑하는 사람의 실제 삶과 관련해서 우리가 모르는 온갖 것에 대해 우리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런저런 일이나 사람들에 대해 그녀가 했던 말도 모두 망각한다. (중략) 우리의 질투심은 과거를 뒤지면서 어떤 사실을 유추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언제나 회고적인 질투는 자료 하나 없이 역사책을 쓰는 사학자와도 같다. 언제나 뒤늦게야 나타나는 질투는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지만, 거기에는 주삿바늘로 질투를 자극하고, 잔인한 군중이 화려함과 간계를 찬미하는 그런 거만하고도 찬란한 존재는 더 이상 없다. 불확실한 질투는 허공 속에서 몸부림친다.’(P241)
질투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무척 공감할 만하지 않은가.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가련한 몸부림.
드레스를 사주고 요트며 포르투니의 실내복을 사주고 알베르틴의 순종하는 모습에서 어떤 특권을 느끼며 사랑을 소유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이제 나는 나만의 여자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내가 느닷없이 보낸 첫 번째 쪽지에 자신의 귀가를, 데리러 온 사람의 인도 아래 돌아온다는 말을 공손히 전화로 알렸던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주인이었다. 더 주인이라고, 다시 말해 더 노예였다. 이제 내게는 알베르틴을 만나고 싶은 초조한 마음이 사라졌다.’(P258)
화자 마르셀이 요즘의 사랑법을 좀 알고 있었다면 알베르틴과의 사랑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 밀고 당기는 밀당 말이다. 알베르틴에게 별 관심 없는 척 멀리하기도 했더라면 그쪽에서 몸이 달아 더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나머지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소유(?)하려고 애쓰다 보니 눈치빠른 알베르틴이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화자가 헤어질 결심을 했다고는 했지만, 왠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지쳐서 그런 결심을 한 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갈매기 같은 소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채 느린 걸음으로 방파제를 걷던 새가, 일단 내 집에 갇힌 몸이 되자, 알베르틴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온갖 기회와 더불어 그녀의 빛깔도 다 잃어버렸다. 그녀는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어 가고 있었다. 비록 질투는 내 상상적인 기쁨의 감소와는 다른 차원에 속했지만, 해변의 찬란한 빛 속에 감싸인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그녀가 나 없이 혼자 외출해서 이러저러한 여인이나 젊은 남자와 동반했으리라 상상되는, 오늘과 같은 산책이 필요했다.’(P285)
어머니도 프랑수아도 알베르틴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 말고도 화자는 다른 걸 생각했을까. 이를테면, 자신이 보통 사람들처럼 건강한 청년은 아니었다는 점을, 아니면 아주 가까이서 본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관찰로 자신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까. 질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알베르틴을 가엾게 여기는 배려심도 느껴졌다. 원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벗어나 ‘잠시 내 소유물이 되면서 별 가치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자신의 탓인 것처럼 생각한다. 알베르틴의 여자친구 앞에서 모욕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도 소중했던 존재가 내게 모욕을 준’것이었다. 그런 수치심과 질투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아름다운 알베르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떠올리며 스스로 치유하기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문학적으로 이루어야 할 꿈을 더욱 크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침대에 누웠던 것이 경이로웠고 그렇게도 좋아하는 볼로뉴 숲의 호숫가에서 태양 아래 드리워진 그녀의 그림자, 단지 목소리만으로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상상만으로도 충분하게 그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사랑했는데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참 힘들었겠지. 아,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10권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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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권 -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역 하여간 예쁜 벽지를 모두 모아가는 재미... 전공자 빼고는 완독한 사람이 없을 거라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런 예븐 벽지 시리즈가 집에 몇 개 있는데요 그냥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뽕이 차도록 예뿐 표지 디자인 해 놓은 민음사 애썼다... 인셍 무엇인가... 사랑과 집착 무엇인가... 걍 적당히 살자 되는 범인의 사고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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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신간 9권 10권이 같이 발행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하였습니다. 이 책은 읽는 기쁨보다는 소장에 대한 기쁨이 더 커서 아직 진도는 나가지 못하더라도 발행되는 즉시 바로바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비록 읽은 속도는 느리고 힘들지만 재미만큼은 커서 쉽게 놓아버리기는 어려운 책입니다. 본 9권은 마르셀의 사각에서 보는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이야기입니다. 벌써부터 10권이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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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갇힌 여인 1
김희영 님이 옮긴 민음사에서 출판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현재 8권까지 나온 상태여서 8권까지 읽고 나머지 번역이 완역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번역되어 나올 책은 <갇힌 여인>, <사라진 알베르틴>, <되찾은 시간>이 남았는데 한 편에 2권씩 번역이 되기에 6권으로 예상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번역본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기에 갇힌 여인 편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바로 주문을 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특유한 의식의 흐름 기법은 역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표현력은 푸른 바다와 싱그러운 숲이 함께 담겨 있으며 깊은 바다와 공활한 우주를 왔다 갔다 한다. 그가 표현하는 심리적인 현상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졌던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던 감정들일지도 모르는 아주 사소한 감수성들을 나타내는데 그 표현력은 분명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편에 실린 내용은 많지 않다. 알베르틴과 함께 하는 파리에서의 생활과 모렐의 약혼녀인 쥐피앵의 조카딸과의 파혼을 이야기할 뿐이다. 펼쳐지는 내용은 많지 않지만 프루스트는 그만의 의식의 흐름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글을 남겼다. 발베크에서 만난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인 성향(동성애)을 그치게 하고 싶어 파리로 돌아오면서 알베르틴을 데리고 온다. 마르셀은 그녀를 파리의 집에 가두고 있지만 그녀가 외출을 할 때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앙드레와 운전기사와 프랑수아즈(가정부)에게 감시를 하게 하면서 그녀의 모든 생활을 파악하게 한다. 그래야 마르셀의 마음이 놓인다. 마르셀은 알베르틴에게 파리의 집에다 '갇힌 여인'을 만들어 버리지만 그녀를 향한 의심, 질투심, 불안함으로 자신의 질투와 의혹에 갇힌 사람은 오히려 마르셀인듯하다. 마르셀이 어린 시절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받았을 때의 포근함과 형식적인 키스를 받았을 때의 차가움, 받지 못했을 때의 불안함이 성인이 된 마르셀에게 사랑하는 여인 알베르틴이 주는 키스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녀의 모든 말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마르셀은 그녀가 품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말과 행동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바쁘게 생각한다. 마르셀이 안식을 얻는 순간은 알베르틴이 잠든 모습을 관조할 때뿐이다. 알베르틴이 베르뒤랭 부인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 마르셀은 그 방문에는 어떤 만남을 위한 뭔가 쾌락을 준비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베르뒤랭 부인의 방문을 취소하고 트로카데로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고를 한다. 마르셀의 권고를 받아들인 알베르틴은 다음날 트로카데로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가지만 마르셀은 그 공연에는 절대로 알베르틴이 만나서는 안되는 레아(고모라적 성향을 가진 배우)가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공연을 보러 간 알베르틴을 집으로 불러들인다. 어제는 베르뒤랭 부인의 집에 갈까 봐 두려웠는데 오늘은 레아를 만나게 될까 봐 두려운 마르셀.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사랑할지도 모르는 모든 여성들을 질투한다. 혼자 나쁜 생각으로 상상의 날개를 펴고 질투와 의혹이 마르셀의 사랑을 존재하게 할 뿐이다. 질투와 의심만이 가득한 사랑.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연인 알베르틴이었기에 마르셀의 사랑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마르셀에게 알베르틴의 완전한 소유가 있을 수 있을까. 알베르틴을 소유하려고 하는 고통스러운 미친 욕망만 있을 뿐이다. 알베르틴을 향한 의심과 질투는 그에게 괴로움만 더해갔고 그의 불안감과 두려움이야말로 그가 가진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되었다. 처음에는 욕망으로 시작된 사랑이 나중에는 고통스러운 불안에 의해서만 유지되었기에 그 고뇌를 멈추든가 사랑을 멈추든가 선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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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판이 다른 곳보다 더 마음에 들어 1권부터 모으기 시작한 것이 벌써 9권째가 되었다. 사실 몇 번이나 완독을 꿈꾸며 읽기를 시도했지만 매번 1권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제는 미션이 되어버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완독하기! 내년에는 반드시 10권까지 다 읽는 것이 목표다. 할 수 있을까... 독서모임단이라도 만들어서 함께 읽어야 하나 고민 중.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좀 나으려나, 글쎄. 아무튼 열심히 읽어보기로 한다. 몇 번이나 멈췄던 1권을 다시 펼쳐 든다.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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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으로 넘어 오고 나서야 알았다. 다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을 읽어 볼 선택을 한 것이 잘한 선택이란 것을 ^^ 앞서 읽었을 때 리뷰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제법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슷하게 느낄 때가 많았지만.그런데,9권은 처음 읽을 때와 매우 다른,아니 어쩌면 분명한 화두 하나를 제대로 붙들고 읽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리뷰를 남길수 있다는 건 두 번 읽어야 누릴수 있는 기쁨이 맞는것 같다.^^
"우리는 어쩌면 쉽게 사랑에서 치유되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질투에 사로잡힌 남자가 제아무리 질투의 감정을 교묘하게 감추려 해도그 사실을 질투를 불러일으킨 여인에 의해 재발리 발각되기 마련이며 이번에는 여인이 교묘한 술책을 쓴다"/100쪽
사랑하는 사이에서 질투의 감정은 종종 일어날수도 있겠지..라고 처음엔 생각했다. 그런데 9권에서 언급된 '질투'는 단순히 사랑에서 비롯된..사랑을 갈구하고 싶은 연인의 사사로운 감정으로 머물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소설은 재미없거나..막장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알베르틴을 믿을수 없다면 헤어지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고, 알베르틴이...정말 우리의 연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한 화를 참을수 없어..질투의 감정을 발산하게 된걸까... 그런데 소설은 '질투'를 단순히 연인 사이의 감정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질투에 대한 수많은 매커니즘을 풀어 놓기 시작한다. 관계에서 오는 질투, 욕망으로 부터 오는 질투,두려움에서 비롯된 질투...그러니까 총체적으로는 질투..라는 감정을 병리학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던 건 아닐까."질투란 그 원인이 변화무쌍하고 절대적이며 동일 환자에게서는 언제나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지만 이따금 다른 환자에게서는 완전히 다른 증상으로 나타나는 그런 간헐적인 질병이다"/46쪽 자신의 애인 알베르틴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연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아주 위태로운 관계라고 생각된다. 화자의 목소리처럼,알베르틴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전제해도 그렇고,오로지 남자의 입장에서 알베르틴을 의심했다고 해도...질투 라는 화두를 떼어 놓고 보면 커플의 모습은 위험 그자체였다. 그럼에도 질투..라는 주제를 따라 읽는 재미가 솔솔했다.그래서 마침내 어떤 결말(?)로 소설을 갈무리 하게 될까도 궁금했다."별의 세계보다 더 알기 힘든 것이 인간의 실제 행동으로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을 보호할 목적에서 지어낸 이야기들을 가지고 우리 의혹에 더욱 굳세게 맞서기 때문이다"/315쪽 작가는 별루지만..작품은 훌륭하다는 언급이 있었을 때,피식 웃음이 났더랬다. 순간순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서...프루스트의 소설 9권도 그런 느낌이 있다. 질투..를 정의하고,질투를 할 수 밖에 없는 다양한 카테고리를 열거하더니...사람의 행동은 정말 알 수 없다고 결론..내는 반전!! 그런데 이런 결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알베르틴이..희생양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왜일까.정말 그녀가 마르셀을 힘들게 하고,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인데..그녀의 목소리가 능동적으로 언급되어진 느낌을 받지 못했고..남자의 시점으로 써내려갔다는 느낌을 지을수 없기 때문일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롯이 '질투'를 따라 가면 읽는 재미가..있는 반면,질투 세계 속에 알베르틴과 마르셀이 등장하게 되면....사이다를 외치고 싶을 때가 종종...그럼에도 읽게 된 이유는,알베르틴,모렐 샤를뤼스에서 드러난 모습이 나에게도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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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5부(9,10권)가 출간되었다. 총 7부작 중 이제 2부만 남았다. 번역가님이 2022년까지 완간 하시길 응원하며 반갑게 9권을 읽었다. '갇힌여인'이란 제목의 이 책은 '나(마르셀)'의 연인 '알베르틴'의 이야기다. 해변에서 보고 사랑에 빠진 '나'는 알베르틴을 파리로 데려와 함께 산다. 그리고 끊이없이 질투하고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과연 누가 갇힌건지... 이번책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살짝 미친놈 같을 정도의 집착과 의처증에 가까운 또라이 같은 '나'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의 한심함을 더해 온갖 미사여구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생각이 많고 깊이 생각한다고 다 멋지고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사랑을 하면 누구나 열정적이고 유치해지고 찌질하게 되지만 너무 장황한 말들 때문인지 사랑의 진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오로지 의심이나 질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고민하는 찌질남만 보였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잘하는 그 아름다운 묘사와 깊은 통찰력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술 작품이나 자연을 묘사할 때는 그렇게 깊이 있고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사랑에 대해선 바보같기 이를데 없다. ''처음에는 욕망으로 형성된 사랑이, 나중에는 고통스러운 불안에 의해서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정복할 부분이 남아 있을 때라야 사랑은 태어나며 존속한다.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소유하지 못한 것만을 사랑한다.'' ''잔인함이나 교활함에 대한 유일한 핑계가 사랑인 탓에, ... 사랑하는 사람에게 잔인하고 교활하게 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사랑에 이런 면이 당연히 있지만 오로지 이런 것만 있지는 않지 않는가. ''우주는 우리 모두에게 진실이지만, 각각의 사람에게는 다르다.'' 프루스트의 명언이면서도 오히려 프루스트에게 해주고픈 말이다. 프루스트의 생각을 쫓아가다가 사랑에서 콱 브레이크 밟은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