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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탑의 시간』은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는 여행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미얀마의 바간을 여행하는 네 사람의 여행객이 등장한다.
그 네 사람은 ‘명’과 ‘연’, 그리고 커플인 ‘최’와 ‘희’다.
‘명’은 나이는 35세이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문화센터에서는 제법 알려진 글쓰기 강사로 일하고 있다. ‘명’은 오래 사귄 약혼녀가 있었는데, 약혼녀는 늘 업무로 바빴다. ‘명’은 약혼녀 몰래 ‘약혼녀의 친구(그녀)’와 1년 반 이상 밀애하다가 그녀의 요구에 따라 약혼녀와 파혼한다. 이번 여행은 ‘그녀’의 제안으로 계획된 것으로 ‘명’은 ‘그녀’와의 삐걱거림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의외로 ‘그녀’가 만나기로 한 ‘양곤 공항’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예정에 없던 혼자 여행을 하게 된다.
‘연’은 ‘명’의 이모뻘 되는 나이의 중년 여성으로 평생을 대학도서관 사서로 일해왔다. ‘연’은 과거에 좋아했던 남자(유부남) ‘그(62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조문 장소로 장례식장이 아니라 바간을 찾아왔다. 바간은 20년 전 ‘그’가 ‘연’을 기다리던 장소이고, ‘그’가 사흘 동안 ‘연’을 기다리다가 생일 선물로 준비한 루비 목걸이를 소민지 수도원 불상 아래 숨긴 곳이기도 하다. ‘연’은 소민지 수도원을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 딱 좋은 장소”로, 동시에 “딱 혼자 울기 좋은 곳이자 전부를 내려놓고 싶은 곳”으로 인식한다.
‘최’와 ‘희’는 사귄 지 200일 된 커플이다. 생색도 잘 내고 실속 챙기는 일에도 능숙한 성격의 ‘최’는 여행사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33세의 남성이다. 자신이 성공시켜야 할 프로젝트를 위한 현장 답사 겸 만난 지 200일 기념 여행으로 여친 ‘희’와 바간에 왔다. ‘희’는 중학교 영어 선생으로 마침 여름방학이었다. 업무를 우선하는 ‘최’와 달리 ‘희’는 사랑을 최우선시한다.
* 소설 『탑의 시간』은 이 네 사람의 스침, 혹은 만남을 통해 각 인물의 사연과 생각을 드러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스침, 혹은 만남을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관계’를 다루고 있다. ‘관계’를 ‘사랑’이라고 해도 좋다. 네 사람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사랑에 서툴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명’과 ‘연’은 과거의 사랑(가버린 사람)으로 인해, ‘최’와 ‘희’는 현재의 사랑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다는 것을 빼면 그들은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행지에서 만나기 전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던 네 사람의 만남은 전적으로 우연히 이루어진다. 여행 첫날 밤 게스트하우스 옥상 레스토랑에서 함께 맥주를 마시게 되는 것도 우연이지만, 그 자리에서 기분이 고조된 ‘최’가 즉흥적으로 네 사람의 보트 여행을 제안하는 것도 그러하다. 네 사람의 여행 과정을 다루고 있는 2부에서 서서히 인물들의 사연이 드러난다. 그 사연은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다.
2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삽입된 ‘악어 이야기’(59~61쪽)이다. 악어 이야기를 통해 ‘최’와 ‘희’ 커플의 불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악어 이야기는 3부에 이르면 ‘명’을 상징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3부에도 복선은 있다. ‘아난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난다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인물들의 이야기인 이 소설의 3부에는 사랑에 대한 ‘연’의 깨달음도 보인다.
3부에는 ‘명’이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도 곱씹어볼 만하다.
이쯤에서 이 소설의 제목 『탑의 시간』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탑의 시간은 일차적으로,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일 것이다. 더 나아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3부가 ‘연’과 ‘명’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면, 4부에서는 ‘희’의 사랑, 곧 연인 ‘최’에 대한 반감과 아무 사이 아닌 남자 ‘명’을 향한 사랑이 전개된다. 앞에서 어느 정도 암시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놀랍다. 하룻밤의 일탈로만 볼 수 없는 ‘희’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설 어디에도 ‘희’가 어떻게 해서 ‘최’와 만났고 200일 동안 서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연인 ‘최’가 업무를 보러 간 틈에 다른 남자(‘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육체관계까지 가진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희’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환상’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환상에서 놓여날 때 ‘희’가 ‘최’를 (심정적으로) 떠난 것처럼 ‘명’과의 관계도 파멸로 치달을 것은 뻔하지 않을까? 물론 둘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는 소설 어디에도 없지만.
5부에는 극적 반전이 있다. ‘명’이 기다렸던 ‘그녀’가 ‘랑곤 공항’까지는 왔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명’이 ‘약혼녀’를 버리고 ‘그녀’를 택한 후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언젠가 자신도 ‘약혼녀’처럼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생각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명은 함께 있을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곁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불행한 예감에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무엇보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지 않는 그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오늘까지 그녀에게 명은 화가 나면서도 늘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명은 기다려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자신은 그저 그에게 영원히 두 번째 사람으로 남을 뿐이라는 것.” ‘그녀’가 이런 결론을 내리는 과정을 보면, 그간의 ‘명’의 태도도, ‘희’에게 취한 ‘최’의 태도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명’이 ‘그녀’의 요구에 따라 파혼을 한 후에 취한 태도는 파혼하기 전에 정리해야 했을 것들이었다. ‘그녀’도 ‘명’과의 약속을 어긴 후 혼자 탑을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녀’에게 탑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 ‘탑의 시간’은 ‘명’을 향한 ‘미움도 원망도 아닌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는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 소설 『탑의 시간』은 저마다 다른(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 네 사람의 사랑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작품 끝부분의 ‘명의 그녀’를 포함한다면 다섯 사람이고, 환상 형태로 나타난 ‘연의 그’를 포함한다면 여섯 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마 인류가 가장 많이 쓴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문학 작품의 상당수가 ‘사랑’을 다루고 있다. 사랑이라는 소재는 그래서 진부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소설가들은 사랑에 대해 계속 묻는다. 우리는 참된 의미의 사랑을 하고 있는가? 어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가, 라고. 그 까닭은 (진정한) 사랑이라는 명제는 영원한 미완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가 숨긴 ‘루비 목걸이’를 ‘최’가 찾고 그걸 ‘희’가 목에 거는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혹은 ‘희’가 ‘최’가 준 루비 목걸이를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고 ‘명’이 ‘그녀’를 위해 준비한 루비 목걸이를 가지며 행복해하는 것, ‘연’이 바간을 떠나기 전 잠깐 소민지 수도원에 들르려다가 들르지 않는 것, 이렇게 곧잘 어긋나는 게 어쩌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루비 목걸이’는 진정한 사랑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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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시간> 해이수 저 자음과 모음
1. 들어가며 『탑의 시간』 은 천 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탑과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저마다의 사연과 기억들의 이야기이다.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탑을 순례를 하고, 탑을 돌며 기도와 염원을 했을까? 그 탑 속에는 얼마나 많은 비밀과 기억들이 담겨 있을까? 처음에 이 책을 보았을 때 제목에 끌렸었다. '탑의 시간' 이라고? 그게 뭐지?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이 일었다. 탑에 얽힌 주인공들의 사연과 비밀들도 궁금했다. 그래서 재미로 읽을 생각에 서평단에 신청을 했고 다행히 선정이 되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난 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완전히 잘못 생각했음을..이 책은 그냥 재미로 읽을 책이 아니고, 하나 하나의 문장들이 나에게 자꾸만 질문을 하게 했고, 생각하게 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 책은 다소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 자아 발견, 성장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이수'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해 본 나로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단순한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와는 다른 심오하고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의 매력과 흡입력 있는 내용 구성에 빠져버렸다.
2. 책 속으로 『탑의 시간』 은 명과 연, 최와 희의 비밀과 사연이 담겨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들로 여기 미얀마의 바간으로 오게 된다. 이십 년 전 세상을 떠난 연인이 바간의 탑에 숨겨놓은 루비 목걸이를 찾으러 바간으로 오게 된 '연'과 약혼녀와 파혼하면서까지 선택한 사랑이지만 결국엔 그 사람과도 헤어지게 된 '명' 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굳건히 하려고 떠난 여행이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최와 희' 이 네 명의 주인공은 바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며 사흘 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서로의 사연들을 털어놓기도 새로운 비밀들도 만들어간다. 이십 년 전의 사랑하는 연인으로부터 온 편지와 뒤따른 그의 죽음, 부치지 못한 편지로 인해 지난 세월 동안 아파하며 힘들어하던 연, 그녀는 이십 년 전 사랑하는 그가 바간의 탑 속에 숨겨놓았다던 루비 목걸이를 찾으러 이십 년이 지난 후 바간으로 오게 된다. 왜 그녀는 이십 년이 지난 후에 여기로 왔을까? 단순히 그 루비 목걸이를 찾으러 온 것일까? 20년이란 세월도 사랑의 힘앞에선 무의미한 숫자에 불과한가보다. 그녀는 잊으려고 했지만, 잊을 수 없었고, 20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이 그녀를 여기로 오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 사랑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일까?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다고, 그는 가족과 아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서 잘 살거라고 생각했었고, 애써 마음을 접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20년 후 그의 사망소식과 사랑의 상실감은 그녀를 사랑의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오게 만들었다. 이십 년 전 지키지 못한 약속, 바간에서 기다리겠다는 그의 약속을 무시하고, 바간행 티켓을 찢어서 이별을 선택한 그녀였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가 바간에 남겨둔 선물인 루비 목걸이를 찾으러 갔지만, 그 루비 목걸이는 끝내 찾지 못한다. 여기에는 인생의 우연성이지만 참 슬픈 진실이 담겨 있다. 결국 루비 목걸이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었을까? 여전히 그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그 루비 목걸이는 우연히도 네 명의 주인공 중 '희'의 목에 걸리게 된다. '연의 것'이어야 할 목걸이가 아무 상관도 없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는 장면에 참 가슴이 아프고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민지 수도원의 황금탑 앞에 무릎을 꿇고 삼배를 하며 그녀는 그를 추억하고 그를 그리워한다. 처음에는 그의 죽음으로 인한 부재와 상실에 힘들어하고 괴로워했지만, 바간 여행에서 '명'을 만나게 되고, 비로소 사랑했던 그 사람의 마음을, 진심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떠난 연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명'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20년 동안 기다려왔던 그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음을 가슴 속으로 깊이 깨달게 된다.
루비 목걸이는 없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테고 전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살았을 게 분명했다. 목걸이를 찾으러 와서 겪은 일들이 연에게는 보석보다 귀했다. 지난 사흘간 연은 명을 보며 전혀 알지 못한 장면을 알게 되었는데, 이십 년 전 그가 어떤 고민 속에서 자신을 기다렸는지를 보게 된 일이었다. 이것이 그가 그녀에게 남긴 선물이었다. (p.137)
'명'은 약혼녀와 파혼하면서까지 선택한 사랑이었지만 결국 그 사랑은 실패로 끝이 났다.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그녀와의 평생을 약속하기 위해 파혼까지 했는데, 그는 자신을 떠나버린 그녀가 너무 야속했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간 여행을 먼저 제안한 그녀가 그를 혼자 바간으로 보내버렸다. 이별의 문자 하나로 모든 관계를 끊고 말이다. 명의 바간 여행은 어쩌면 이별 여행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부재와 상실감에 명은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탑을 순례하고 기도하면서 그는 아직도 그녀와의 재회와 만남을 바라고 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은 그녀를 사랑했는데, 그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그녀한테 왔는데 왜 그녀가 떠난 것일까 이해할 수도 없었고 어쩌면 그녀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린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 마음이 같은 선택을 한 '연'을 만나면서 비로소 이해가 된다. 왜 그녀가 떠났는지, 아니, 왜 그가 그녀를 떠나게 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자 루비 목걸이를 산다. 언젠가 그녀가 여기에 오면 그 루비 목걸이를 찾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어찌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연의 루비 목걸이도, 명의 그녀를 위한 루비 목걸이도 정작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하고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 가버리고 만다. '희'는 '최'와 커플이지만, 그들의 사랑은결코 안전하거나 굳건하지 않다. 200일 남짓한 사랑이며 그들의 관계에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희'는 이번 바간 여행으로 자신에 대한 '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굳건히 하고자 한다. 그러나 '최'는 그런 '희'의 마음도 모른 채 자신이 공들여 온 미얀마-바간 여행 프로젝트 사업을 성사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사랑을 상실한 '명'과 '연'의 눈에는 그저 사랑스러운 젊은 커픓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마음을 '최'도 느꼈는지 '최'는 우연히 소민지 수도원에서 발견한 루비 목걸이를 '희'에게 선물한다. 그 루비 목걸이는 연의 그 사람이 이십 년 전에 불상 틈 사이에 숨겨둔 바로 그 루비 목걸이였던 것이다. 그 루비 목걸이를 보며 '연'과 '명'은 각자의 생각에 잠긴다.
결국 그 루비 목걸이는 '희'의 목에서 원래 있던 자리인 불상 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대신 '희'는 '명'의 루비 목걸이를 목애 건다. '희'는 명이 사랑하는 그녀가 부럽고 질투가 났고, 자신이 찾던 사랑은 '명'과 같은 사랑을 지키는 사람이었던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희는 테이블에 놓인 루비 목걸이를 손으로 주워 들었다. 이 목걸이의 주인은 자신이어야 했다.(p.132) 희는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불상 뒤의 좁은 틈에 손을 넣어 처음의 자리에 그것을 되돌려놓았다. (p.134) 그리고 '연'이 이십 년 전에 그에게 받은 편지와 그의 편지에 대한 답신은 '명'에게 가게 된다. 그녀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부치지 못한 편지였던 것이다. 그가 죽는 날까지 이 답신을 보관한 이유는 이것만이 내가 그를 마지막까지 사랑했다는 유일한 알리바이이기 때문일 거예요.(p.139) 이십 년 전 연이 연인에게 전하지 못한 답신이 명의 손에 들려 있었다. 퇴약볕 아래에서 탑과 탑 사이를 돌고 수없이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그녀를 기다렸던 원망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p.152) 이렇듯 명과 연은 바간 여행에서 서로를 통해 각자의 연인들에게 듣지 못했던 말, 그들의 진심에 대해 알게 된다. 비로소 그들은 연인에 대한 그리움, 원망, 미움, 후회 등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의 감정만 안은 채 귀국 길에 오른다. 모든 욕망과 감정을 다 비워내고 남는 한 가지 감정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각자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만나게 된다. 명은 바간에서 양곤으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현실인 듯 꿈인 듯 어떤 중년의 사내와 만나게 되는데 마치 그는 연이 말했던 그 사람 같이 느껴진다.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외로움에 늙어간 자와 사람을 사랑해서 겪는 서글픔으로 늙어간 자는 얼굴의 주름과 표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p.170) "나는 이렇게 알고 있소.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슴속에 비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이 탑에 숨겨둘 아무런 비밀이 없는 사람들 말이오." (p.170) 그 사내의 말에 세월을 따라 늙어간 자와 사랑의 통증으로 늙어간 자의 얼굴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나이테가 새겨진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세월이 지나서 늙어가게 되면 그 중년의 사내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한편 연 또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를 보게 되는데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그녀의 행동을 통해 그녀 또한 사랑의 상실에 아파하며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녀가 명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명의 연인이었고, 작품 말미에 그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왜 그녀가 명을 떠나게 되었는지, 그녀의 명을 향한 마음은 어땠는지, 그녀 또한 이별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바로 여기 바간에서, 명과 같은 공간 안에서 말이다. 솔직히 결말 부분에서 갑자기 '그녀'의 이야기가 튀어나올줄은 몰랐다. 그냥 결말이 명과 연이 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안고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깜짝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고 신선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그녀가 왜 떠났는지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참으로 가장 아픈 현실이자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탑'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간에는 그들이 갔던 쉐고다 파고다 외에 이름 없는 수많은 2500여 개의 탑들이 있다고 한다. 그 탑들 속에 저마다 숨겨진 사연과 간직된 비밀들은 무엇일까? '탑'이 있고 '시간'이 있고 천년이라는 '탑의 시간'이 있다. 그 천 년의 시간 동안 그 탑은 세월의 모진 풍파와 시련에도 굳건히 건재해왔고 그 탑은 우리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책 속의 명과 연이 그랬듯 탑의 시간에는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고 비밀을 숨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 탑 속에는 천년 동안 간직된 비밀, 사연들이 담겨 있다. 마치 그 탐 속에 비밀을 숨겼다가 세월이 지난 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 속의 연의 연인이 루비 목걸이를 숨겨두고 20년이 지난 후 연이 그 목걸이를 찾으러 온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마치 타임캠슐 같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소중한 비밀을 숨겨 두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열어볼 수 있는 타임캡슐 말이다.
*사진: 바간의 쉐다곤 파야(파고다) 출처: 구글 이미지
3. 나오며 사랑의 시간을 중심으로 펼쳐진 서로 다른 사랑들의 모습들을 보았다. 사랑하는 연인의 부재와 사랑의 상실로 마음 아파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랑, 사랑하지만 곁에 있을 때는 사랑의 소중함을 몰랐다가 뒤늦게 떠난 뒤에야 그 소중함과 진심을 깨닫게 되는 사랑,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 진정한 마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사랑들을 보았다. 이 책은 단순한 각기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알려주고자 쓴 사랑학 개론, 연새소설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나아가 사랑 또한 시간 속에서 흘러갈 수 있지만 그 시간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그 기억은 간직된다는 것이다. 그 탑이 천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비밀과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나에게 많이 했다. 나 또한 이별의 아픔에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했다. 정말 사랑이란 극적인 이별을 통해서만 그 관계를 끝낼 수 있는 것일까? 그의 모진 말과 행동들, 이별 후의 연락 단절 등 나 또한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이 사라지는 고통이었고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이별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고통스럽고 힘든 가보다. 하지만 이별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도약들을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 이별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말이다. 『탑의 시간』을 통해 사랑과 이별, 시간의 흐름과 간직된 기억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 탑을 도는 행위는 정신 수양과 마음의 정화와도 같이 느껴진다. 명의 연인이 90번 탑의 바퀴를 돌며 그 번민과 욕심을 내려놓았듯 나도 언젠가 미얀마 바간의 탑을 돌면서, 나의 욕심과 번민과 고뇌를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기도 하다. "탑을 도는 것은 뜻을 세우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이었다. 염원을 기도하는 게 아니라 염원마저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것이 저 탑의 안을 꽉 채우지 않고 비워놓는 이유였다." (p.178) 만약 나만의 비밀이나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소설 속 주인공등처럼 바간의 탑 속에 그 비밀과 기억을 간직해두는 것은 어떨까?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탑속에 시간이 멈춘 듯 그 비밀과 기억들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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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엔드 바 텐드>를 읽었다. 그곳에도 연이 있었던가? 왠지 익숙한 이름이다. 그의 작품엔 독특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말로 하기엔 표현력이 부족하지만, 짙은 우울이거나 진한 회색처럼 더 이상 침잠할 바닥이 없는 곳까지 내리 꽂힐 느낌. 어쩌면 아릿함.
인물의 이름도 외자로 낯선 이를 무심히 부르듯 툭툭 던지듯 불려진다. 아무튼 묘한 매력이 넘치는 그만의 작품 세계가 있다. 빠지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연과 그의 관계가 궁금증을 더한다. 소민지의 온도와 햇빛, 바람 그리고 감정은 너무 아쉬움을 동반한다.
아, 연의 것이어야 할 목걸이가 특별함으로 포장되어 희의 목에 걸리다니. 흥분돼서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소설은 끝나도 사랑에 대한 질문이 끊이질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바간의 후텁지근한 열기가 밀려드는 것처럼 연과 명의 '상실'에 대한 어지러움과 최와 희의 외줄처럼 양 끝에 서서 서로에게 원하기만 하는 사랑의 간극은 그것대로 흔들린다. 안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하는 연의 그가 했던 말이 떠나질 않는다.
숨이 막혔다. 사랑은, 사랑은 이렇게 심장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는데... 연의 사랑이 명의 사랑이 또 희의 사랑이 내게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의 한 구절을 읊조리게 된다. 움직이지 않는 심장은 그렇게 사랑을 떠났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인정하는 일은 희에게는 사랑이지만 명의 그녀는 관계라는 묘한 어긋남과 열망 사이에서 경계가 있다면 분명 그곳에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바간의 바람처럼 스산하면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평소 독서할 때 작가의 말은 웬만해선 궁금해도 잘 읽지 않는다. 온전히 소설 속에 부유하는 이들의 감정에 흔들리며 내 멋대로 상상하는 재미가 반감될까 해선데 이 책은 그냥 다 읽었다. 사랑이 공간과 시간 그리고 탑 안에 갇힌 게 분명 아닐 것이다.
https://www.podty.me/episode/15367273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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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수의 소설 <탑의 시간>을 탑돌이하며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력으로 지구별을 집어삼켰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 같은 인류학자들이 바라보는 역사적 상상력은 ‘인류의 상상력’을 조명하는 심안 그 자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해 납득시킬 때 ‘상상력’만큼 합리적인 변명이 있기나 할까.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상상력이 근거 없거나 요망하거나 이롭지 못한 쪽으로 흐르기 쉽다는 데 있다. 그러니 종교든 철학이든 상상력을 제한하고 구조화시키고 인간에게 이로운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규칙을 만든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호모 사피엔스는 ‘상상력’을 통해 규칙을 만드는 요상한 존재라고.
상상력의 규칙이라는 것은 실상 거창한 것이 아니다. 천년을 버티는 탑을 쌓을 때의 규칙은 단순명료하다. 비와 바람과 시간과 인간의 염원을 버티는 기단을 견고히 쌓을 것!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종교와 학문과 지혜는 이런 것일 게다. 가령 상상력의 규칙에 의해 무너지지 않을 철학의 기단을 만들자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이데아고 이와 기의 섭리이다. 이데아가 상상력의 규칙으로 정해지고 나면, 그 이후에는 첨탑이 올려지기까지 어떤 식으로든 논리적 길이 열린다.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현실과 맞닿는 상상이 체계가 잡히면 소설의 이야기는 저절로 끝을 향해 나아간다. 그 상상력의 규칙이 소설의 장르를 만들 것이고 결말을 맹아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해이수의 <탑의 시간>도 상상력의 규칙에 철저히 충실한 작품이다. 소설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탑’이 소설 전체의 주제와 구조의 상상적 기단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그래서 <탑의 시간>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제목을 보면, 거대한 스포일러가 책 표지에서 자행되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더불어, 누구나 그렇겠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절대 눈치챌 수 없는 제목 스포일러라는 측면에서 저자의 치밀한 계산과 자신감에 슬쩍 도발당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쌓은 탑이 천년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천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속성 때문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시간이라는 규칙성과 만나면 윤회가 납득될 것이고 또한 다중세계와 같은 겹침의 순간이 용인될 것이다. <탑의 시간>의 인물들은 사랑을 찾거나 잃어버리기 위해(탑의 입장에서는 결국 같은 의미이다) 바간으로 모여든다. 이러한 우연의 만남이 누군가는 겪었던, 누군가는 겪을, 누군가는 겪고 있는 시간의 중첩을 구성한다. 개개인이 개개의 우주라고 했을 때 <탑의 시간>은 다중세계 간의 만남이고, 개개인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보편적 속성의 존재라 했을 때 <탑의 시간>은 인류 자체의 윤회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상력의 규칙을 해이수는 현학적으로 풀어내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속성 앞에서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식의 단순화된 상상력의 규칙을 비근하게 그려낸다. 비근하다는 뜻은 ‘2500개의 탑이 있는 바간에서도 사랑이 아프냐, 25시간이 모자란 한국에서도 사랑은 아프다’ 식의 함의가 숨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해이수의 전매특허인 여행 소설이 꾸준히 읽힐 수 있는 것도 ‘거기나 여기나’ 식의 삶의 속성과 연관되어 있을 터이다. 덧붙여서, ‘상상력’이라는 화두로 돌아와 <탑의 시간>을 말하자면,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향수로 일갈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이 주는 묘미는 낯선 시간과 낯선 공간이 주는 낯익은 감정에 있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식의 인류 보편성은 낯익은 시간과 낯익은 공간에서는 얻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 <탑의 시간>의 ‘여행’은 가보지 못한 곳에서 느낀 낯익은 사랑의 속성일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선(禪)적인 모순성이 상상력으로 체험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해이수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설사 그곳에 가보지 못했더라도 그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해이수의 저력일 터인데, 독자 개개인이 겪었던 여행 경험이 작가가 제시한 어떤 공간에 고스란히 펼쳐지게 되기 때문이다.(이것은 이 글을 쓰는 사람의 강력한 가설인데, <탑의 시간>을 읽는 독자 중에서 미얀마 바간에 가본 사람보다 미얀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몽골 여행자가 이 소설을 더 잘 느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왜냐면, 해이수 소설의 장점은 ‘특정한 장소에서의 여행’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여행’ 그 자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의도하는 ‘탑’의 규칙을 따라가면서 독자는 각자 저마다의 여행을 복기하는 셈이다.
작가의 의도도 ‘탑의 시간’이라는 상상력의 규칙에 철처하다. 탑을 돌면서 절을 하는 까닭은 탑을 돌게 하는 어떤 염원까지도 비워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탑의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잃어버린 사랑에서 생긴 상처를 비워버리고자 탑돌이를 한다. 그리고 그 비워버리고자 하는 어떤 홀가분한 마음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의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소설의 결말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깨달음은 해탈의 것이다. ‘탑’은 해탈하지 못한 평범한 이들을 위해 세워진 등대일 따름이다. 그렇게 ‘탑’의 시간은 거기에서 천년을 흘러온 것이다. 그래야 천년이 더 흘러 우리와 같은 범상한 인간이 사랑의 아픔 때문에 탑돌이를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마치 미얀마의 둥근 말과 같은 이미지랄까). 여하튼 이러고저러고한 모든 길들은 작가가 깔아놓은 <탑의 시간>이라는 하나의 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딴에는, 잃어버림과 버림과 찾음과 되돌아옴이라는 인간사의 보편적 동사들이 되돌릴 수 없음의 형용사적 상태로 형상화된 것이 ‘탑’일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의 삶이 결국 탑처럼 쌓이고 탑처럼 시간을 견뎌 탑처럼 무수한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숨길 테니까. 그리고 그 탑을 우리의 삶은 윤회하듯 탑돌이할 테니까. 어쩌면 <탑의 시간>이 집어삼켜버린 독자의 시간도 유일무이한 보편성으로 책장에 탑처럼 꽂혀있을 테니까. 그러니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탑의 시간>은 가보지도 않았는데 삶을 그립게 만드는 요상한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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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탑의 문을 열었습니다. 우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 그리고 절하는 중년 여성, 그 네 명의 사랑이 간절한 기도 안에 담겨 있었지요. 관계 없는 척 시치미 떼는 상징적 장치들 또한 그들의 사랑과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책을 들면 순식간에 읽어버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게 평상시 나의 독서 습성입니다. 그런데 <탑의 시간>은 탑 하나를 공들여 쌓듯, 문장을 곱씹으며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게 되더라고요. 앙금처럼 가라앉혔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기 때문이었어요. 현재의 사랑일 수도 있고, 숨막힌 그리움일 수도 있었던 그것들을 심장이 아프도록 움켜쥐면서도 흘러넘치지 않게 하더라고요. 이게 바로 '해이수다움'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에 딱 좋은 장소, 무엇이라도 한껏 받아들이거나 꼭 쥐던 것도 놓아버릴 수 있는 곳. 작품에서는 그곳이 여기 미얀마 바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탑의 시간>은 제게 그러한 시간과 장소를 선물한 책입니다.
혼자 울고 싶을 때, 숨을 쉬듯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을 때,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 너무나 간절하여 아픔으로 뒤척일 때, 헤어질 준비를 하거나 한 사람을 잃어 견디기 힘들 때, 기다림이 고통인 줄 알면서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데 모든 것들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싶을 때, 다시 보자, 인사하며 새로운 길을 이어나갈 때,
그렇게 매순간 규정하기 힘든 감정들을 <탑의 시간>이 대신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제 저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그리움들을 시간의 강물 위에 조용히 흘려보냅니다.
천 년 동안 숨겨운 비밀들이 이천 개도 훨씬 넘는 탑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바간의 소민지 수도원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그 안에 담긴 비밀을 얻고 제 비밀을 하나 숨겨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에 빠진 수도승이 분신공양하여 남긴 핏빛 루비처럼 영원한 사랑의 비밀은 끊임없이 숨겨지고 반복되겠지요.
어쩌면 또 하나의 전설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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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소설이 있다. 시간을 두고 다시 읽을 때 인물에의 공감과 이해의 깊이가 달라지는. [탑의 시간]이 그랬다. 미얀마 바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공간의 접점으로 겹쳐 ‘명’과 ‘연’과 ‘희’와 ‘최’를 불러들인다. 그들의 여행은 제각기 내밀한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소설은 비밀에 대한 이야기다. 비밀이어야 하는 사랑의 끝자락이 어떤 형태의 매듭을 향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천 년 전에 지어진 탑 안”처럼 “자연광이 닿는 부분에만 그 형체가 겨우 보”였으나 “빛이 전혀 미치지 않는 바닥과 천장 부근까지 빼곡”한 숨겨진 사연을 그리는 화공 즉, 주체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을 견디는 그리움은 탑 안에 "봉인한 타임캡슐"을 여는 것처럼 기억을 고스란히 말갛게 꺼내놓는다.
이 소설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때 불어올지 모르는 바람결처럼 펼쳐졌다 접히고 겹쳤다 다시 펼쳐진다.
이 소설은 온전히 자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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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시간 속 사랑의 형태는 “천 년 전에 지어진 침침하고 퀴퀴한 탑 안”을 연상시킨다. 그 사랑은 빛이 닿지 않는 구석까지 그려진 세밀화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작가는 인물 각자가 깊이 침잠하여 어떠한 대답에 닿기까지 나아가는 간절한 순간들을 독자가 지켜보게 한다. 소설 막바지에 인물들은 빛을 향한 통로로 향하는 듯 하다가 이내 방향을 꺾는다. 그것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여자가 “연의 어깨를 가볍게 밀치며 금방 빠져나온 통로로 도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과 “이 통로를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빈 가방이 너무 가벼웠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으나 다시 찾아온 통증에 연은 망연해하며 저편으로 달려가는 그녀를 바라봤다.”에서 알아채게 하는데 이제껏 미로를 통과하듯 어렵게 찾았던 대답을 원상태로 복귀시킨다. 이 소설은 각자가 쌓아온 경험치만큼 사랑의 본질은 내면화될 수 있다고 또는, 사랑의 답 같은 건 영원한 물음으로의 회귀(回歸)일 뿐이라고 넌지시 말하는지도 모른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탑의 시간>을 읽는다면 그때 나는 또 다른 답을 발견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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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 난다 사원에서 명을 처음 맞이한 건 에야와디강이었다. 폭이 상당히 넓은 진홍빛 강에서 여자들은 빨래를 하고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남자들은 낚시를 했다. 히말라야산맥 남단에서 발원하여 미얀마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고 안다만해로 흘러든다는 안내문이 보였다.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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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a book 213 탑의 시간 해이수 지음 자음과 모음 출판
탑의 시간은 미얀마 바간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지금처럼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여행하는 것 같다. 바간은 탑의 도시인 것 같다. 바간의 탑은 2,200개가 있다고 한다. 각각 탑이 만들어진 의미가 가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 바간은 자전거, 전자바이크, 마차를, 보트를 택시 등 여행 이동 수단이를 갖고 있는 나라인가 보다. 그 이동 수단으로 그 많은 탑들을 하나하나 만나보는 게 바간의 여행 특징으로 생각된다.
그 많은 탑들을 찾아가 어떤 이는 종교적 신념으로 기도하고 어떤 이는 탑들의 풍경을 감탄한다. 그 그 탑을 보고 서로 약속하고 비밀을 간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탑의 시간이라는 이 책은 사랑에 관련된 책인 것 같다. 4명의 사랑 이야기 이야기 전개하다 보면 2명이 더 추가되지만 어찌 보면 복잡한 사랑 관계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사랑에 대한 해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나.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그 속에서 나라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리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헤어짐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랑은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그것이 하룻밤의 사랑일 수도 있지만 당사자와 상대방의 서로 느끼는 감정을 틀릴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잠깐 ‘비포 선라이즈’라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그 사랑 속에 얽히고 얽혀있지만 그 속에 조화롭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 속에서 우리의 일상 속의 젊은 사랑, 중년 사랑, 시작되는 사랑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알리고 싶은 사랑, 그리고 때로는 감추고 싶은 사랑…..
연은 석가모니 앞니 불치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이 탑을 지었다는 사원 입구의 안내문을 기억했다. 그러니까 탑은 성물을 봉안한 일종의 타임캡슐이었다. 그녀는 탑을 돌며 천천히 발을 떼었다. 한낮의 열기로 달궈진 바닥은 뜨거워서 연은 덜 달궈진 곳을 골라 디뎠다. 이 거대한 황금 캡슐의 어디쯤에 석가의 앞니가 놓여 있을까. 그것은 보석처럼 빛이 날까…. 이제는 그가 남긴 타임캡슐의 봉인을 풀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늘 헤어질 준비를 해야 했어요. 사소한 인사도 그만 만나자는 말로 들렸어요. 알고 보면 아무 뜻도 아닌데, 가벼운 표현에도 비참하고 서운해서 울었어요. 깊이 사랑하는데도 늘 불행했어요.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소…”
연은 지난밤 명에게 이야기했듯, 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고 버린 게 아니었다. 가질 수 있음에도 갖지 않는다는 건 연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소유할 수 없기에 연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탑 위에서 명은 에야와디강을 건너다보면 생각했다. 사랑은 쌓이는 것이라고, 기쁨과 미움, 슬픔과 환희를 층층이 쌓으면서 견고한 구조물로 남는 것이라고, 무엇보다 함께 쌓는 것이라고, 우리 가 여태 쌓아온 것은 무엇일까? 그런데 그녀는 왜 함께 쌓기를 포기한 것일까?
인생에는 다만 한 사람이 있을 뿐이죠. 나를 버릴 수 있는 한 사람. 나머지 관계는 그저 장식품이거나 전리품일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머리에서 잊겠죠. 그러나 심장은 잊지 못해요. 그쪽에 두고 왔거든요. 여전히 식지 않았어요 일정한 간격으로 뛸 때마다 생각나는 한 사람.
사랑이 시작되는 여인들, 헤어진 여인들, 헤어짐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픈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랑을 얘기하는 모습 어찌 보면 사랑에 교훈을 주는 것 같은 탑의 시간이었다.
이 글은 “서평단활동”으로 도서를 “지원” 받아서 작성한 글입니다. [탑의 시간 /해이수 지음/ 자음과모음]
https://blog.naver.com/qqwpp655/222202876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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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는 다만 한 사람이 있을 뿐이죠. 나를 버릴 수 있는 한 사람 ]
그런 책들이 있다. 얇지만 읽고 나면 그 전보다 꽤 무게가 무거워졌다고 느껴지는 책들이. 해이수 작가의 탑의 시간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다. 무겁다못해 나를 우울감으로 한동안 짓눌렀던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굳이 표현하자면. 마지막에 주인공들은 탁 털어버리는 기쁨을 표현하는데 비해서 나는 왜 소설이 다 끝난 마당에 이렇게 비틀거리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니 과거의 털어내지 못한 인연들이 하나둘 스멀스멀 마음 속에서 올라와서였던 것 같다. 나의 20대와 30대는 유치찬란하고 어설픈 사랑의 기억들로 그야말로 초토화되어있다.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서로에게 잔인했고 서툴렀던 사랑의 표현들은 내 몸과 마음에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다는 생각이 문득 이 책을 읽고 나니 들었다. 주인공 연과 명처럼 어딘가로 떠나서 버리고 와야하는 걸까?
20년전 연인의 죽음 소식을 듣고 그와 가기로 했던 미얀마의 바간 지역으로 떠나는 연. 지키지 못한 약속과 부치지 못한 편지 속에서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떠난 그녀. 20년전 사랑했던 연인이 바간 지역의 한 절에 있는 불상에 감추어 두었다는 목걸이를 찾으러 왔지만 그 목걸이는 온데간데 없다. 그녀를 버리지 못해 가족을 버릴 결심까지 했던 그와 결국 함께 떠나지 못한 여행을 이렇게 혼자 오게 된 연.
5년간 사귄 약혼녀와 파혼을 하게 만든 그녀. 1년이 넘게 사귀었지만 아직도 버겁게 다가오는 그녀. 지적이고 냉철했던 약혼녀와는 결이 다른 그녀를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화해의 제스츄어로 떠나기로 한 바간 여행에ㅠ 그녀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자신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그녀를 위해 약혼녀와의 파혼까지도 감행했던 명은 허탈감과 우울감을 접기 위해서 탑돌이와 절로 마음을 다스리지만 좀체 오지 않는 잠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낸다.
이 소설은 미얀마의 바간 지역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20년전 사귀었던 연인의 죽음을 계기로 그와 헤어지게 된 장소인 바간을 찾아오는 한 50대의 여인 연과 화해하기로 한 장소에서 이별을 맞게 된 한 30대 남자 명의 이야기. 불교에서 탑의 의미가 도대체 뭘까? 탑돌이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나 인연법이 떠올랐다.
삶은 비슷한 모습을 띈 채 다른 사람들이라는 연극 무대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아이를 버리지 못해 힘들어하던 그를 도무지 볼 수 없어서 헤어짐을 고한 연이나 약혼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연인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명의 이야기가 마치 평행이론처럼 그려진다면 좀 억지스러운가?
이 책에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 2가지.
명과 연 그리고 최와 희 커플이 함께 동반여행을 하는 장면에서 악어와 원숭이 이야기를 꺼내는 마부. 일종의 설화인데 원숭이하고 친하게 지냈던 남자 악어에게 원숭이를 죽이고 심장을 꺼내오라고 다그치는 여자 악어. 하지만 친구의 심장을 훔치려다 남자 악어는 우정을 잃게된다. 지독하게 연인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여자들의 모습.... 연인을 외롭게 했던 명의 얼굴과 남자 악어가 겹쳐보였다.
두번째는 미얀마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녀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명. 비행기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그의 주름살은 굵고 깊었는데 삶에 찌들어가면서 생긴 보통 사람들의 주름과는 달랐다는 것이 명의 표현이다. 환상처럼 그에게 다가온 그 중년 남자와의 일종의 현시와도 같은 경험은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필사하고 싶은,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구들로 가득한 이별 이야기 [ 탑의 시간 ] 타로카드에는 [ 죽음 ] 카드가 있는데 시작은 반드시 끝이 나야 된다고 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연과 명의 여행은 일종의 [ 죽음 ] 카드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지... 탁탁 털어버린 마음 속에서 또다시 사랑의 새싹이 피어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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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유적지라고 하면 캄보디아를 여행간적이 있다 그런곳은 뭔가 생각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하거나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왠지 여행이라고 하면 흔히들 가는 유럽이나 휴양지를 많이들 갈거 같지만 불교유적지를 선택한 이유는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아닌 사랑을 정리하거나 남아 있는 마음을 정리하는 목적일거라는 생각이 많이든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옛 종교적인 사적이 있는 이곳에서 안정을 취하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그리고 생각을 정리하기 때문일거 같다 여기 미얀마의 바간이라는 곳에서 4명의 남녀가 만났다 최,희,명,연 최와 희는 커플이다 최는 자신이 여행상품 개발하는 하는 업종에 일을 하다보니 마침 가게 된 여행지가 바간이되었다 최는 희와 여행 겸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 정해져 있었고 그는 약간의 가벼운듯한 성격으로 연인보단 일이 우선적인사람이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선 약간 우습게 보는 스타일이었다. 일과 연애는 다르다는걸 전혀 모른다 00겸 00한다는 스타일이다 희는 최와의 사이에 같이 여행을 온전히 즐기고 싶고 그와의 사이를 좀더 돈독히 하고 싶은 여자이지만 바간의 여행에서 최와의 사이가 어떤지 자신이 그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걸 원하는지 다시 깨닫게 되면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여행이된다 명 그는 5년간 사귀고 약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지만 약혼녀의 제일 친한 친구와 2년간 불륜관계를 맺으며 만나고 있다 그리고 약혼을 파혼하고 그에게 바간여행을 주도했던 그녀를 양곤공항에서 도킹하기로 했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연 10살 넘게 차이나던 가족이 있던 남자를 사랑하고 이 또한 불륜이라 온전히 그를 가질수 없기에 헤어지고 그가 바간 어딘가에 숨겨두었다던 비밀을 찾으러왔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바간에서 만나 짧은 일정을 같이 보낸 사이지만 그들에겐 각자의 사랑의 아픔이 있는 이들이었다 왜 하필 그들은 바간에서 만났을까? 오랜세월 2500개가 넘는 세월들이 쌓아올린 탑들이 있는 바간에서 그들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받았을까? 헤어질 마음은 없었지만 한발짝 뒤에서 바라본 연인의 모습에서 무언가 다른 대답을 바랬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빠른 단념뿐인 사랑, 한발짝 늦게 사랑을 확인한 사람 그들의 사랑은 돌고돌아 나만이 느낀 아픔들 또한 각자 돌고돌아 내 아픔이 되고 내 아픔이 되었던건 다른이의 아픔으로 건너다녔다. 그래서 실연과 시련의 발음은 같고 깊은 슬픔은 기쁜 슬픔이기도 하고 사라지다가 살아진다와 같은 느낌 아닐까 싶다 언젠가 가게 된다면 나도 바간에서 탑의 의미를 한번 깨달아보고 싶기도 하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