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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수필을 평하다 】 _오덕렬 / 풍백미디어
평(評), 평론가(評論家)의 역할은 무엇일까? 예술작품의 주제, 표현, 기술 등의 요인을 분석한 다음 개인적 지식과 판단, 경험 등을 근거로 작품에 대한 평론을 남긴다. 같은 작품이라도 평론가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문학의 영역에서 시, 소설, 희곡 등 창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은 많이 있으나, 수필 분야의 평론가들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앞서 리뷰 올린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의 저자 오덕렬 수필가의 「창작수필 평론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1편의 수필을 소개하며, 각 수필마다 평(評)을 붙였다. 피천득, 정채봉 등 작고 문인들 외에도 현재 활동 중인 문인들의 작품이 실렸다. 특이한 점은 21편의 작품들이 각기 빛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그리 선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평론글이라고 하면 딱딱하게 느껴진다. 저자의 평은 나중에 들여다보고, 소개된 명품수필들만 골라서 읽어보는 방법도 좋겠다. 모두 좋은 작품이지만, 목성균의 「소년병」 ,선정은의 「용(龍)은 산을 넘고」, 정채봉의 「스무 살 어머니」 가 특히 좋았다.
「소년병」은 필자의 아내가 열심히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산가족 상봉자 명단에 인민군으로 끌려간 자기 오라버니 이름이 들어있나 싶어서 그런다. 아내는 자기 오라버니가 이북에 살아 있으려니 하는 일루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용(龍)은 산을 넘고」는 독특한 형식의 수필이다. 마침표가 없다. 한 문장 수필이다. “여러 해 이미 되었지만 그 기억 생생한 것은 땅에 닿을 듯 가라앉은 날씨 때문인 듯도 하고”로 시작되는 5.18 당시 한 장면이 스케치되어있다. 쉼표, 마침표도 없는 글이지만 숨은 막히지 않는다.
정채봉 작가의 「스무 살 어머니」를 읽고 나니 가슴이 아려온다. 회사에 스무 살 신입사원이 들어온 것을 계기로 작가는 그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17에 시집와서 18에 작가를 낳고 20살에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는 어머니. 그러나 바닷바람에 묻어오는 해송 타는 내음이 코에 들어오면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때론 해송 타는 연기와 함께 어머니의 모습이 살아났다. 정채봉 작가가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남긴 시 한편을 옮겨본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P.S ; 작가가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 “네 에미는 너한테서 엄마라는 말도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죽었다.” “세 살이었다면서 내가 그렇게 말이 늦었던가요?” “아니지, 너의 삼촌들이 형수라고 부르니까 너도 덩달아서 형수라고 했어. 형수 젖, 형수 물 하고....”
#창작수필을평하다 #오덕렬 #풍백미디어
#쎄인트의책이야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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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평론집은 처음이지 싶다. 그것도 수필 평론집이라니. 내게 있어 수필은 딱히 장르 구분이 되지 않는다. 에세이와 어떻게 다른지 구분도 못한달까. 아주 오래전 읽었던 피천득의 인연을 수필로 기억하지만 이후 수필을 읽은 기억이 없다. 왠지 수필은 수국처럼 화려하지만 물기 머금고 티 내지 않는 수줍음같이 느껴진달까. 어쨌거나 설렘 하다.
궁금한 김에 검색을 통해 찾아 본 내용을 보면, 수필과 에세이는 같은 의미다. 하지만 저자는 수필은 창작문예수필과 창작에세이로 구분되는 다르다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 장르 이름만 구분한다고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은 창작·창작적 수필 21작품과 그에 관한 저자의 평을 담았다. 단순하게 작품에 대한 평론을 하고 있다기 보다 수필에 대한 개념을 나처럼 어정쩡하게 헛갈려 하는 독자에게 올바로 전달하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신선하다고 해야 할지 난해하다 해야 할지 더 솔직히 역시 문학을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참으로 생경하게 느낀다. 문학적 장르, 창작문예수필은 처음인데다 짧은 원문 속에 살아 숨 쉬는 듯 화려한 표현에 놀라기도 급급한데 평론이 더해지니 이해력을 급가동 시켜야 하는 부담감도 살짝 들기도 한다.
촉촉이 젖는 수필을 기대했건만 그보다 훨씬 건조하고 딱딱한 해설집을 읽는 느낌이라서 살짝 김샌다. 하지만 문학적 이론 토대로 풀어주는 평은 수준 높은 문학의 세계로 인도받는 기분이다. 한데 이 책이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여기 있는 수필들을 읽은 건 고사하고 아는 수필이 단 한편도 없다는거다. 그럼에도 너무 좋기도 하다.
밖의 세상에서 실내로 날아든 벌이 열린 문을 찾지 못해 버둥대는 모습을 보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부럽기만 하다. 여기에 평론을 읽으면 더 깊은 심오함은 덤으로 온다. 이 책이 독특하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필을 문학적 장르나 이론으로서의 수필로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수필을 하나의 장르로 묶이지 않는, 시이기도 하고 산문이기도 한 그러면서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다는 설명은 그저 수필이 수필로 이해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꼭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미해도 좋을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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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앞서 창작수필이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은가? 수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수필이란 무엇일까? 글의 한 종류로서 형식을 따르지 않고 가볍게는 일상적인 일이나 무겁게는 사회적인 일에 대한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산문형식의 글을 말한다. 주제에 따라서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누기도 한다. 창작은(production) 예술가가 미적 체험을 통해 예술작품을 구상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말한다. 창작은 독창성과 개성을 중요시하므로 대량생산되는 과정과 구별된다. 또한, 원작이 있는 모작이나 번안이나 개작 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미적 대상으로부터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내적 이미지를 객관적인 형식으로 정착시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이제 이 두 글자를 합쳐보자. 수필 자체에 자유로운 생각을 쓴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유로운 생각에는 상상도 포함된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창작수필은 무엇일까? 본인은 창작의 어학적 뜻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본다. 원작이 없고 비슷한 생각을 서술한 적이 없는 정말 독창적인 수필이라고 말이다.
창작 작품을 읽는 사람은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창작대로 분명한 창작의 모양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일반 산문문학은 그것대로 분명하게 생각을 짓는 문학의 논리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소설이 현대문학의 길을 택하여 지금의 위치를 차지하였듯이, 수필이 ‘창작적 수필’ 시대를 맞아 산문의 꽃인 <산문의詩>까지 진화하여 제3의 창작문학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산문의 장점에 시의 예술성을 접목한 품종을 현대문학의 반열처럼 올려놓고 싶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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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9 창작수필을 평(評)하다. 오덕렬 평론집
참으로 행운이다. 수필의 다양한 세계를 여행한 느낌이다. 특히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로 교육 받은 세대로써 우리에게 어떻게 각인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필]과 [인연]이라는 작품이 교과서에 실린 경위 또한 알고 나니 신선했다. 그것이 시(詩)이거나 수필이거나 소설이라도 이런 계기를 통해 소상히 알고 어떤 면에선 그를 만난 것이 우리에겐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필 한 편에 각각의 평을 하며 21편의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도서 정보] 창작수필을 평하다. 오덕렬 평론집, 풍백미디어 출판사, 291 페이지, 총 21편의 수필과 평론 구성
[도서 소개] 도서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비평/창작/이론 > 평론 일반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030498
P26. 목성균 <소년병>. 허구적 사실의 소재형식 기존 수필은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는 것이라 했다.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란 과거의 일이다. 과거의 일에 관한 글은 회상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글이다. 문학적 기억이란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이미 사실과 다른 창조적으로 구성된 이미지의 기억이 된다.
P36. 피귀자 <조각보>. 조각보 구성법에 의한 창작 창작문예수필은 문학의 왕자인 시의 장점과 산문문학의 선두 주자인 소설의 형상화 수법을 채용하고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소설이 산문문학의 선두 주자라는 말은 그 문장 형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P65. 은옥진 <내 마음 깊은 곳에>. 여심(女心)수필의 한 전형 창조 문학 작품에서는 제목을 정하는 일부터 창작 활동이 시작 된다. 창작문예수필에서 제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조관념 소재를 그대로 쓰는 것도 무방하다. 여기서도 <반지>라고 붙이면 훨씬 내용이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P87. 선정은 <용(龍)은 산을 넘고>. 한 문장 수필 형식의 실험 모방론은 모방 대상과의 관계에서, 표현론은 표현 주체와의 관계에서, 효용론은 독자와의 관계에서 문학을 보는 것이라면 존재론은 그러한 관계를 짓지 않은 채, 그 자체로 어떠한 독자적 성질과 법칙을 구현하는 독립적 존재인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상섭 : 문학이론의 역사적 전개
P102. 김광 <동굴(洞窟)에게>. 대화적인 독백체 문장 세계 수필의 기본적인 문학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 원칙적으로 산문문학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형식이 비교적 짧아야 한다. 셋째, 기본적으로 대우성 문학이다. -백철 교수 : 문학개론 (중략) 여기에서 보면 의인화된 동굴과 주고받는 대화체 문장 형식을 취하지만 따져놓고 보면 화자의 독백이다. 의인화 대상인 동굴은 ‘화자 마음속의 동굴’이 되므로 결국은 화자가 화자에게 주고받는(대화적인)독백이 되고 만다. (중략) 이 작품은 대화 같은 독백의 ‘히게체’ 문장으로 수필이 대우성의 문학임을 보여주는 창작수필이다.
P191. 변해명 <섬인 채 섬으로 서서>.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창작적인 산문 창작문예수필은 이것〉이라는 사실적 소재로 저것〉이라는 상상적 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현실의 바다를 보고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여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아름다움의 세계는 상상 세계의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P241. 유주현 <탈고(脫稿) 안 될 전설(傳說)>. 수필서사의 창조적 구성법에 의한 (창작적인 산문수필) 소설서사와 수필서사는 당연히 다른 서사 세계다. 소설서사는 허구의 인물에 의한 허구적 서사이다. 그러나 수필서사는 사실의 소재 서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설서사와 수필서사는 본질적인 다른 서사 세계인 것이다. (중략) 246쪽. 서사구성법의 창작이란 서사 구성법에 의해서 사실의 소재가 문학화 되고 있는 작품을 말한다. 서사 구성법에는 수필체 서사, 소설체 서사, 동화체 서사, 의인화 서사법 등이 대표적 양식으로 실제 작품으로 발견된다. 수필체 서사란 소설적 사건 서사 성격보다 대상 사물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사다. 그러므로 수필체 서사의 작품에서는 어느 장르보다도 작가의 내면(때로는 외면까지도)이 섬세하게 표현된다. (중략) 창작문예수필은 (사물의 마음)을 창작하는 것이다. (사물의 마음)이란 대상사물과의 교감세계를 의미한다. 소설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사건을 창작한다. 그러나 창작문예수필은 만물의 마음의 이야기를 창작한다. 이것이 본질적 서사창작이다.
P266. 피천득 <수필>.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고 (산문의 詩)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오,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것이다. -피천득 (수필) 전면부 중에서. (중략) 271쪽. 바지런한 피천득의 제일 빠른 원고 도착이 그는 수필가로서의 위상과는 무관하게 일등의 자리에 섰다. 오양호 <PEN문학>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내 꿈이 <수필가>이다. 사진과 이름에 석자가 뚜렷이 인쇄되어 있다. 삶의 무게가 나를 다른 직업으로 인도했지만 결국 나는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내 생애의 글감들을 갈무리하다가 만난 [창작수필을 평하다]는 나를 색다른 수필의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수필에 관심이 있거나 삶의 지루함에 있는 사람들이 읽고 수필의 세계에 매료되길 기원한다.
눈 내리는 창가에서 운담(芸談)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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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수필이 아닌데. 그래 수필이 아니었다. 단편 소설이었다. 그런데 왜 ‘수필’이라고 부르지 몇 편을 더 읽고 나서 지금껏 알고 있는 수필이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음을 알았다. ‘붓가는 대로’라는 구석기 시대의 수필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작품으로 끌고 들어와서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24쪽)는 저자의 주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난 아직도 피천득의 ‘인연’에 명수필로 오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먼저 창작수필이 뭔가를 알아내기 위해 정신력을 모았다. 이관희는 '창작문예수필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창작문예수필은 에세이에서 진화되어 나온 새로운 양식의 창작문학으로 에세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물론 창작수필의 성향이 무엇인지 이해할 듯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의다. 더 읽어 내려가니 명료하게 드러난 구절이 보인다. 바로 이 부분이다. (비창작)일반산문문학은 이미 있는 것에 관하여 토의하는 형식의 문학이고, 창작문학은 현실에 없는 상상력의 세계를 창작하는 문학이다. 산문문학의 가치는 창작문학으로 대신 할 수 없는 사실성의 세계에 있고, 창작문학의 가치는 산문문학으로 대신 할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에 있다. 내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창작수필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상상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바로 그 ‘상상력’과 맞물린다. 수필의 역사를 배운 적이 없기에 기존의 수필 정의에서 갑자기 창작수필을 이해하는 것은 고생대에서 21세기로 건너뛴 것과 같다. 2편을 읽고 곧바로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피천득의 <수필> 평론을 읽기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고 우여곡절 끝에 피천득의 <수필>이 책의 가장 앞부분에 실리고, 그 후로 제대로 된 ‘수필론’이 없었던 탓에 많은 사람들은 세뇌 아닌 세뇌를 당한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이 수필의 모든 것인 것처럼. 이유야 어떻든 아래의 구절로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닌 시(詩)로 정의한다. “이상 논의 된 내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필」은 <수필>이 아니고 시(詩)라 하겠다. 어찌도니 일인가? 자, 그러면 문학의 진화 현상에 귀를 기우려서 문학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산문의 시(詩)>라는 새로운 장르를 이해하도록 하자. 그러면 「수필」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287쪽) 창작수필에 대한 분석적 논의는 유주현의 <탈고 안 될 전선>을 분석하면서 심도 있게 다룬다. 필자가 보기에 단편소설로 읽힌다. 저자는 먼저 단편소설과 수필의 차이는 구분한다. “소설의 문학성은 허구적 서사 창작과 소설적 구성 작업을 통해서 획득된다. 그러나 창작문예수필의 문학성은 사실의 소재(서사)에 대한 문학화 작업, 즉 창조적 구성법과 소재에 대한 은유적 창작을 통해서 획득 된다.(이관희)”(241쪽) 저자는 소설과 창작수필의 근본적 차이를 ‘사실과 허구’로 구분한다.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실화소설도 있지 않는가. 하여튼 저자는 허구와 사실로 소설과 수필을 구분한다. 다시 일반산문인지 창작수필인지를 구분한다. 둘 사의 구분의 시금석은 ‘구성법’에 있다. “구성법을 문예 창작의 기본방법으로 <이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저것}이라는 새로운 창조적 세계를 만드는 일이다. 위에서 말한 창작문예수필이 에세이로부터 진화·분화하여 나온 새로운 양식의 창작 문학이라는 뜻은 창작문예수필의 기본 창작법은 구성 작업에 있다는 것이다.”(245쪽) 그렇다면 수필은 무엇을 창작하는가? 저자는 ‘사물의 마음’으로 정의한다.(247쪽) ‘<사물의 마음>이란 대상 사물과의 교감 세계’이다. 즉 의인화 또는 사물화를 말한다. 이 부분을 잘 드러낸 수필은 권현옥의 <나는 손톱입니다>이다. 손톱이라는 사실 소재에 기반 해 의물화를 통해 서술한다. “창작의 세계는 상상력의 세계요, 허구의 세계이다. 창자수필(창작에세이)은 <교감하는 사물·존재 세계>를 창조한다. 창작수필은 시어도, 허구적 이야기도 아닌, ‘사물의 마음 이야기’, 즉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력>를 창작하는 문학이다.”(127쪽) 김영곤의 아까시나무를 소재로한 <내가 사랑 받는 이유> 또한 의물화 시킨 작품이다. 의물화는 의인화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나 중요한 것은 화자 주인공의 시점이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력’을 충분히 이루어야 한다. 주인공인 아까시나무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수필은 ‘토의하는 문학’이며, 창작문예수필은 ‘사물의 마음’을 창작하는 문학이다.(175쪽) 그제야 처음 수필을 읽고 내가 ‘단편소설’로 오해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창작문예의 핵심은 상상력을 발취한 ‘창작’에 있었던 것이다. “의인화는 상상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의인화 세계는 본질상 허구적 세계이다. 창장문예수필은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 양식의 문학이다. 즉 시문학과 서사문학의 두 장르의 진액을 추출하여 탄생시킨 제3의 새로운 창작 양식이 창작문예수필인 것이다.”(148쪽) 이렇게 본다면 창작 수필은 이전의 수필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전혀 다른 장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다르다기보다는 그동안 수필에 대해 오해한 것이 더 옳다.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잡문이 아니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창작물이다. 필자는 창작수필을 ‘종래의 붓가는 대로라는 잡문(메모)론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문학적 자존심’(94쪽)을 가져도 되는 것이라 말하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수필을 좋아해 많이 읽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아본 수필과 이번에 접한 창작수필은 격이 다르다. 며칠 동안 이 책을 손에 쥐고 고민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 치며 진정한 수필이 뭔지 하나하나 다시 배웠다. 이 책에서 최고의 수필을 꼽으라면 단연코 정태헌의 <동백꽃>이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수필과는 너무도 달랐던 탓이기도 하거니와 역사적 기억과 삶의 생체기를 창의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나머지 수필들도 기꺼이 추천한다. 창작수필을 쓰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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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문학성 회복에 앞장서는 오덕렬 수필가의 책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을 읽으며 수필의 문학적 감성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 정말 좋았었는데요. 그 책에서 수필의 역사도 알려주셨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에세이와 창작수필은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는 우리나라 수필의 진화 현상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창작수필을 평하다>는 창작·창작적 수필 21작품과 그에 관한 평을 모은 책입니다. 한국 수필계 최초의 평론집이면서 독자들이 잘못 알고 있던 수필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고쳐 알리고 있으니 의미가 큰 책입니다. 전작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에서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라 시이고, 「인연」은 소설이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그 근거를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반산문이었던 수필이 산문의 창작적 변화를 거듭하여 온 과정을 내포한 용어가 바로 창작문예수필, 창작에세이입니다. 통칭하여 창작수필로 부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요. '붓 가는 대로'(1934년 김광섭의 「수필문학소고」에 등장), '신변잡기'가 수필의 대표 이미지일 겁니다. 지극히 개인적 일상 이야기,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는 수필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합니다. '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작품의 제재로 삼는다고 합니다.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소재입니다. 사실적 경험에 근거한 작가의 화상 기억에 의존하는 겁니다. "문학적 기억이란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이미 사실과 다른 창조적으로 구성된 이미지의 기억이 된다." - 책 속에서 화상 기억으로 쓴 수필, 사실적 소재가 창작의 세계로 들어서는 작품들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으니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습니다. 저는 반숙자 저자의 「백일몽」 작품이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실제로 잠자면서 꾼 꿈을 선보이는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입니다. 시, 소설, 희곡과는 다른 새로운 창작문학으로서의 창작수필이란게 이런 거구나 깨닫게 됩니다. 원래는 비창작 일반 산문문학이었던 에세이가 3인칭 시점의 창작·창작적인 작품으로 진화한 겁니다. <창작수필을 평하다>에 소개된 수필들만 읽어봐도 구성이 소설 못지않게 정말 다양하고 뜻밖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어요. 한 문장만으로 수필 한 편을 써 내려간 선정은 작가의 「용은 산을 넘고」는 25개 정도의 상황이 전개되면서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한 실험적 작품입니다. 놀랍도록 마음에 들더라고요. 창작수필과 일반 산문문학인 에세이의 구분을 좀 더 설명하자면 창작수필 작가는 상상하고, 에세이 작가는 생각을 파고든다는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시는 창조적 언어의 상상 세계를 만들어 내고, 소설은 허구적 이야기의 상상적 세계를 만들어 내고, 창작수필은 사물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즉,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적 세계를 창작하는 문학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시적 교감을 할 수도 있고, 사물에서 느끼는 작가의 상상을 의물화나 의인화해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필 문학은 일반 산문문학에서 시작해 진화 발전하여 창작수필에 이르렀습니다. 각자 독자적인 장르가 된 셈이죠. 이어서 피천득의 「수필」을 분석하며 '산문의 시'라는 현대 문학의 새로운 장르도 발견하게 됩니다. 수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피천득 작가의 「수필」. 국정 교과서에 실려 경수필이라고 배웠고, 시험 문제로도 자주 등장했던 그 작품은 수필을 곡해하고 오해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수필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수필로 쓴 수필론'이라고 배워온 「수필」. 당시에는 창작수필이라는 용어가 없었긴 했지만, 이제는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해야 합니다. 피천득의 「수필」은 '산문의 시'라고 합니다. 산문시와는 다릅니다. 산문시는 운문에서 산문 쪽으로 변형된 거지만, '산문의 시'는 완전한 산문 문장법을 따르는 시문학입니다. 새로운 형식인 거죠. '산문의 시'는 2007년 이관희 작가에 의해 생긴 용어입니다. 꽤 늦은 셈인데 그만큼 수필 장르에서 이론 부재 현상이 심각했던 겁니다. 수필산문의 창작적 변화를 연구해온 이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렇게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와 수필 평론가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비창작이었던 수필이 창작문학으로 진화하는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창작수필을 평하다>. 더불어 21편의 멋진 창작·창작적 수필의 재미를 알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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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이란 독창적으로 지어낸 것을 말한다. 또한 '수필'이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다. 그렇다면 또 '산문'이란 무엇인가? '산문'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글이다. 오덕렬 평론가의 [창작 수필을 평하다]는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산문 형식의 글을 평한 것이다. 특별히 정해진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글을 평한다는 것은 쉽지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터이다. 그래서 일까? 우리 수필계에는 <창작수필> 평론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고, 저자는 그것을 우리 수필 문단의 불행이라고 평하며(p.008) , 자신이 직접 창작수필에 대한 평론집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선두에서 무언가를 향해 행동하는 사람은 용감하다. 따라서 저자 오덕렬의 <창작 수필 평론집>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창작 수필을 평하다]에는 총 21개의 창작수필과 그 수필에 대한 저자의 평이 실려있다. 다양한 '소재'를 '개성적 자기만의 빛깔'을 넣어 쓴 개인적이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 21개'가 가볍지만 깊이가 있다. 이 책을 접하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제시하는 수필과 그 수필에 따라오는 평론 한 편씩을 따라가며, 나도 한 편씩 나의 글을 써보면 멋진 글들이 탄생될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다양한 은유, 복선, 문장을 활용한 여러 표현방식 등을 짧은 글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자유로운 글쓰기에 대해 타인의 글을 보며 가볍게 배우고, 저자의 칭찬 일색이 아닌 따금한 지적의 말들을 통해 더 깊게 배울 수 있었다. 스물한 번째에 제시된 마지막 작품 피천득의 <수필>을 통해 저자는 수필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는 듯하다. 피천득 선생님은 수필에 대해 청춘의 글은 아니며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들의 글이라고 하셨다.(p.266) 그만큼 가벼운 일상이며 화려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세월을 산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깊이가 새겨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수필은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p267)라고 하시며 무늬는 읽는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고도 하셨다. 무늬를 보되 그 무늬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글이 수필이라는 것이 아닐까싶다. 저자는 피천득 선생님의 글에 대해 세간에 존재하는 여러 평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독자들이 스스로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수필'에 대해 수필가들이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들의 고민은 수필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수필이란 장르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물론 방법론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음과 서정적인 글로만 방향을 잡고 써지는 것에 대한 저자의 아쉬움을 알 수 있었다. 저자 오덕렬은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속 한 문장 '수필은 플롯이나 클래이맥스를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에서 부사 '꼭'이 교과서 개편 때 수정되어 빠지기도 하고, 다시 넣기를 요청하기도 했는데 넣어지지 않았음에 대해 중요하게 이야기 한다. 이는 저자가 수필이 좀더 젊어지고, 정열과 심오함으로 읽는 이를 흥분시켜 글쓰기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길 바라는 마음의 투영으로 보여진다. 저자의 바람처럼 수필이 잔잔한 일기 같은 글이 아닌 '창작'의 중심에 서는 글이 되길 바란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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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수필을 평하다>를 통해서 우리는 한 편의 수필에 대해 자신의 느낌과 함께 저자의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1편의 수필을 통해서 우리는 짧지만 아주 진한 여운을 느끼는 동시에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도 생기게 된다.
창작 수필에 쓰이는 은유와 구성들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상상을 할 수도 있다.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꿈속에서 우리는 현실에서 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룰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실제가 되려면 아주 그런 듯한 생각이 여야겠지만, 우리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뽑아 놓은 여러 편의 수필들을 통해 '창작 수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하나씩 배워간다. 만약 수필들만 읽었다 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여러 가지 형식들과 의미를 하나하나 다시 되새겨본다. 문학이란 그것을 읽는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의 느낌은 어떠한 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전문적인 지식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교과서에 실렸던 피천득의 <수필>을 만났다. 앞서 보았던 20편의 수필들에 대한 평들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그리고 '수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수필의 소재는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왜 우리는 그것들을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창작 수필 속에는 우리네 일상이 보인다. 일상을 소재로 하는 수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과 비교할 수 있게 한다. 비교를 통해서 우리는 수필이라는 문학에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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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수필을 평하다. 오덕렬 | 풍백미디어 앗!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다. 수필에 대해서... 왜 예전에 학교 다닐때 수필이 어떤 장르인가? 이런 물음들이 있었는데, 붓가는 대로 자유롭게 쓴 문학이 아니었나? 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그건 그냥 일기, 아니면 에세이일 뿐이다. 저자는 에세이와 수필을 구별 해서 설명한다. 창작 수필이라함은 작가의 상상력을 파고들어가는 것이고, 에세이란 작가의 생각을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그거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고찰이다. 지금껏 수필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그냥 에세이, 그냥 일기 였던 것이 얼마나 많았던 것인지.... 진정한 창작 수필은 참 드물고 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창작 수필이 모두 스물 한편이 들어있다. 저자는 수필을 평론한다. 순간 수필을 평론한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필의 계보는 몽테뉴부터 베이컨, 최남선, 피천득 까지 이어진다. 난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라는 수필의 한 단락을 아직도 사모한다. 바로.... 차라리... 만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았을 걸.... 살다보면 이런 느낌이 있으니까... 그리고 저자가 피천득 선생님의 작품을 시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공감한다. 아마 그래서 내 기억에 이 한 문장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뭉뚱그린 시적 표현 말이다. 수필은 더군다나 창작 수필은 함부로 쓰여져서는 안된다. 수필을 사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재를 내 안으로 가져와서 말그대로 상상력을 가미하여 창작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이다. 더 이상 일기와 에세이같은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좋은 수필 한 편을 만나는 일이 바로 여름날 시원한 지하수를 마시는 일과 같다는 것 말이다. 스스로를 정화하는 의식... 수필은 바로 사람을 깨운다. 아...읽고 싶다. 이 여름날 정갈한 수필 한 상을 차림받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을 대접하고 싶다. 그러면 너와 나...모두가 한바탕 정신의 샤워를 한 느낌이리라...... .
리딩투데이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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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작이 발표되면 그 작품을 평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 수필계(창작수필)에는 평론 활동을 하는 사람이 드문 가운데 오덕렬 평론가의 작품 <고전 수필의 맥을 잇는 현대수필 작법>과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 읽고 오덕렬 평론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춘희 엄마의 동백꽃에는 동백꽃 시정으로 춘희 엄마의 서사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동백꽃과 춘의 엄마 두 개 이상의 소재가 등장할 때는 꾸밈을 받고 싶어하는 원관념과 꾸며주고 싶어하는 보조관념 소재로 나눠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작수필은 시적발상을 산문적 으로 형상화한 양식의 문학입니다, 21편의 작품을 통해 수필을 어떻게 평하는지 독자로서 알아보는 좋은 기회입니다.
p.90 창작 문학이란 상상적 세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시는 창조적 언어의 상상 세계를 만들어 내고, 소설은 허구적 이야기의 상상적 세계를 만들어 낸다. 창작문예수필은 시어도, 허구적 이야기도 아닌 사물의 마음의 이야기, 즉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적 세계를 창작하는 문학이다.
작가는 창작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창작 작품을 읽는 사람은 작가가 창작한 상상력[허구]의 세계를 감상하려는 것이고, 에세이를 읽는 사람은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 에세이를 읽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은 창작대로 분명한 창작의 모양을 보여주어야 하고 일반 산문문학은 그것대로 분명하게 생각을 짓는 문학의 논리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뜻을 함축하여 한문장으로 표현해 내는 작가의 작업이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충분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p151 셰익스피어가 있어 영어가 문학어가 되었듯이, 괴테가 있어 독일어가 문학어가 되었듯이, 영랑이 ‘오매 단풍들것네’에서 ‘오매’를 시어로 만들었듯이, 전라 방언을 우리나라 문학어로 만드는 운동을 펼치자는 것이다.
전미란 작가의 <하루살이>에 대해 작가는 앞으로 개척해 나가야 할 문학의 지평을 이야기 합니다. 전라 방언의 특징들을 작품에서 잘 살려 내어 시어로 승화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향토작가들의 몫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전라방언으로 작품화에 성공한 조정재 작가의 <태백산맥> 그리고 방언 문장의 작품으로 뛰어난 작가 정경희님도 해당됩니다. 창작문예수필은 <운문의 시>가 아닌 <산문의 시> 문학이라는 사실을 작품으로 보여준 좋은 작품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하루살이>작품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p.247 수필은 어떤 서사를 창작한단 말인가? 창작문예수필은 <사물의 마음>을 창작하는 것이다. <사물의 마음>이란 대상 사물과의 교감 세계를 의미한다. 소설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사건을 창작한다. 그러나 창작문예수필은 만물의 마음의 이야기를 창작한다. 이것이 창작문예수필의 본질적 서사창작이다.
수필의 서사란 소설적 사건 서사 성격보다 대상 사물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서사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필체 서사의 작품에서는 어느 장르보다도 작가의 내면까지도 섬세하게 표현해내야 수필의 운명은 에세이 시절이나 창작문예수필 시절이나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은 데 있다고 합니다. 태생적 본질을 버린다면 더 이상 수필이라는 이름은 가질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사물의 만물, 마음까지 읽어야 한다니 수필이라는 장르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이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존재론적 형상을 만들어내고 형상화하는 일입니다. 동굴에게는 어떤 실제의 동굴이 아닌 의인화된 동굴로서 ‘내 마음 속의 동굴’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창작문예수필이 되고 문학 작품은 살아 있는 존재로 작품의 문학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방법은 문장 형식의 선택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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