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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돌아가고 싶은 시절들의 기억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돌아가고 싶은 시절들의 기억" 내용보기
내가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는 건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 창호지를 바른 문, 그 문을 열고 증조할머니와 함께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다. 또한 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기억. 시간이 흘러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88세이던 증조할머니가 곰방대를 들고 잘게 썬 담배를 피우던 모습과 치매에 걸려 엄마에게 밥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돌아가고 싶은 시절들의 기억" 내용보기

내가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는 건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을 떠올린다. 창호지를 바른 문, 그 문을 열고 증조할머니와 함께 밖을 내다보는 풍경이다. 또한 동생이 태어나던 날의 기억. 시간이 흘러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88세이던 증조할머니가 곰방대를 들고 잘게 썬 담배를 피우던 모습과 치매에 걸려 엄마에게 밥을 달래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엄마는 그 시절 얼마나 힘 드셨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나이가 들어 한 생각이다. 지금의 나 같으면 도망가 버리고 말았을 그런 일들을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감내하셨다.

 

 

 

대구의 북성로 적산가옥촌에서 저자가 살기 시작한 건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유일한 며느리였던 엄마가 병수발을 들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모님과 저자와 여동생이 살던 집에서 엄마의 공간은 없었다. 엄마의 나이 고작 서른 살이었다.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마다 지금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아내인 할머니가 계신데 왜 할머니가 병수발을 하지 않고 엄마에게 하도록 했을까, 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집으로 이사했을 때도 할머니가 안방을 차지했다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시절에는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는 게 문제다.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중략) ‘집처럼 편하다는 관용구대로 일과가 끝난 뒤 돌아가는 휴식의 공간을 집이라 한다면 엄마에게 집은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가족에게 집이 집이기 위해 엄마는 집을 비워선 안 되었다. (26페이지)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집에 대한 시절을 추억하는 동시에 페미니즘적인 에세이로 읽었다. 여성의 입장, 여성의 지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인데, 모두에게 있었던 자기만의 공간이 엄마에게만 없었다. 집에서 머물 시간이 많지 않은 아빠에게 서재라는 공간이 있었지만 엄마에게 허락된 공간은 겨우 부엌이었다는 게 몹시 안타까웠다. 작가가 느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집은 한 가족이 머무는 장소임과 동시에 그 가족의 경제적 지표도 나타내는 법이다. 대구의 강남이라고 할 수 있는 수성구의 고급 빌라로 이사했을 때 집이 가진 계급과 재산적 가치, 즉 자본의 속성을 알아버린 유년시절. 성년이 되어 대구를 떠나 서울로 와 머물렀던 집은 집이라 할 수 없었고 방에 살았다고 표현했다. 동생과 함께 살다가 따로 살기로 하면서, 자기만의 집에서 비로소 안온함을 느꼈다.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135페이지)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바람이 커졌다. 물론 거실의 한 벽과 부엌의 한 벽을 책으로 쌓아두고 나의 공간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퇴근 후 TV를 보는 남편을 피해 안방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빈 방을 나만의 방으로 꾸미고 싶어졌다. 그 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게으름에 아직까지 손대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생각이 굳어졌다.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198페이지)

 

집을 추억한다는 것은 그리움의 시절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작가가 기억하는 최초의 집을 생각하며 꾸민 사진이 실려 있다. 안방에는 꽃무늬로 된 짙은 색의 벽지, 남편의 방과 주로 집에서 작업하는 작가에 맞게 거실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꾸몄다. 거실 창문에 책상을 배치하여 햇볕과 바깥의 풍경을 음미하며 작업에 임할 수 있게 했던 게 특별했다.

 

하재영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비록 한 편의 에세이를 읽었을 뿐이지만 그 담담한 문체의 글에서 작가가 못다 한 말들이 많을 거로 생각되었다. 앞으로도 많은 글들이 작가만의 언어로 탄생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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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1.04.12. 신고 공감 15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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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하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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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갓집그 집은 길가에 있었다. 대문이 없는 집이었다. 주인은 골목 안 조그만 슈퍼를 했다. 빨래를 널려면 슈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니까 남의 집 마당에 내 빨래를 널어놔야 했다. 부끄러워져서 속옷은 꼭 짜서 방 이곳저곳에 걸어놨다. 비가 오면 내 몸에서 쉰내가 나는 건 착각이었을까. 부모는 헤어졌고 나는 방치되었다. 한 달 월세가 7만 원인 그 집에서 혼자 2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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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갓집


그 집은 길가에 있었다. 대문이 없는 집이었다. 주인은 골목 안 조그만 슈퍼를 했다. 빨래를 널려면 슈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니까 남의 집 마당에 내 빨래를 널어놔야 했다. 부끄러워져서 속옷은 꼭 짜서 방 이곳저곳에 걸어놨다. 비가 오면 내 몸에서 쉰내가 나는 건 착각이었을까. 부모는 헤어졌고 나는 방치되었다. 한 달 월세가 7만 원인 그 집에서 혼자 2년을 살았다. 엄마랑 살던 동생이 잠깐 같이 살기도 했지만 철저히 혼자였다. 아이들은 꼭 내 방 앞에서 공차기를 했다. 골목은 비좁았고 하필이면 내 방 앞이 넓었다. 참다가 어느 날은 나가서 그만 가라고 소리를 치곤했다. 그들보다 몇 살 많은 나라서 말은 듣지 않았다. 잰 뭐야. 시큰둥한 얼굴로 다시 벽으로 공을 찼다.


여름방학 내내 갈 데가 없었다. 문을 열어 놓고 목욕탕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유일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읽어도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소록도 사람들의 비애가 내게까지 전해져서 마음이 뜨거웠다. 그 여름 날. 반장이랑 반장 엄마가 찾아왔다. 내가 혼자 지낸다는 이야기를 반장이 엄마한테 했다. 반장 엄마는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기도를 해줬다. 눈을 감았지만 눈 안쪽이 간지러워 뜨고 싶었다.


반지하


길갓집에 살다가 반지하로 이사 왔다. 주인은 할머니였다. 혼자 사셨는데 가끔 나를 자신의 1층 집으로 불러 음식을 먹이곤 했다. 사양하지 않고 식구 같은 얼굴로 상 위에 음식을 전부 먹었다. 수제비를 자주 해주셨다. 그 집은 월세가 10만 원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그 집에서 살았다. 장마철이 최악이었다. 습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문학소녀답게 책을 사서 모았는데 아침에 펼쳐 두고 간 책이 학교 갔다 오면 퉁퉁 불어 있었다. 거짓말 아니다. 물기 머금은 책장은 쉽게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많은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헌책방에서 사서. 가난한데 꿈은 많아 결코 좌절을 모르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에 심취했다. 나를 대입해 놓고는 무수한 상상을 부풀렸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상상과 추상이 섞여 몽상이 되었다.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이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할 때 나는 하루 종일 어두운 방에서 책을 읽었다.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 레마르크의 『개선문』. 박완서. 조세희. 조정래. 한 번은 국어 선생님이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라고 했다. 읽었다. 도서실로 오라고 했다. 원고지를 주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은상을 받았다. 글쓰기로 받은 최초의 상. 문학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문학이 나를 구원해 줄 거야.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든 일이었다.


한옥집


하재영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어갈수록 나는 어느 한 시절과 세월을 다시 마주 봐야 했다. 잊었다는 감각도 없이 잊고 지내왔던 시절이었다. 가스가 떨어져 난방이 안 된 방에서 이불 몇 채를 뒤집어쓰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던 길갓집. 문을 열어 놓으면 잠시 햇빛이 떨어지던 시간에 연습장을 펼쳐 놓고 소설을 썼던 반지하. 겨우 마련한 등록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집을 구해야 해서 전봇대만 쳐다보고 다녔다. 다리가 아파 포기할 때쯤 '방 있음'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방을 안내했다. 거대한 한옥집이었는데 대문에서 입구까지 다닥다닥 방이 붙어 있었다. 그 방이라면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행히 보여준 방은 두 분이 기거하는 바로 옆이었다. 도둑이 들 일은 없겠구나. 한 달에 14만 원. 10년을 살았다. 그 집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고 많이 사 모았던 집이었다. 사면을 책장으로 채웠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했다. 집을 가꾼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문학이 나를 구원했을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하재영 소설가의 집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책의 띠지에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의 소개를 이렇게 남겼다. '나는 오랜 시간 울었다. 이 책이 내가 살아왔던 집들을 모두 불러냈기에.'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리움과 비애 때문에 울컥했다. 정희진은 정확한 사람이구나. 또한 모두에게 공통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집에 대한 기록을 낱낱이 써낸 하재영은 정확하고 야무진 사람이구나를 실감한다. 자신이 살았던 최초의 집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꿈의 좌절을 겪었지만 끝내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버텨낸 한 인간의 서사가 담담한 언어로 펼쳐진다.


총 열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마지막 문장마다 서글프고 힘겨웠던 과거를 소환 한다. 소설을 쓰겠다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던 시간. 집 밖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아프간으로 떠난 젊은이는 죽음을 맞이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한 사람을 울게 한다. 가방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생이 할부로 산 명품 가방을 메고 나간 언니는 백화점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자신의 싸구려 지갑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에곤 실레의 그림으로 감추려 했던 초라한 현실을 목도한다.


시를 읽고 소설을 써도, 그림과 사진으로 싸구려 벽지를 감춰도, 나는 나의 현실을 잊은 적 없었다.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를 오르락 내리며, 창문 밖에서 오가는 거친 말소리를 들어야 하는 진짜 현실을. 나는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많은 것을 버리고 싶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시가 적힌 종이, 쓰이지 않은 소설,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中에서)


한옥집에 사는 10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학과 사무실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구직 정보도 챙기지 않았으며 교직 이수조차 하지 않았다. 재학 원생이라면 할인을 받아 싸게 들을 수 있는 영어 강좌도 등록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도서관에 갔고 학교를 나오면 시립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달랐기에. 진은영이 시 '대학시절'의 한 구절처럼 '시시한 시들만 토해'내다가 졸업했다. 이력서에는 학교를 다닌 기록 외에는 적을 게 없었다. 단단한 마음도 없었기에 집에서 글만 쓰겠다는 각오도 없었다.


하재영은 집을 떠나올 때마다 무언갈 버린다. 텔레비전을 그림과 종이를 소설을. 그리고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집다운 집'에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가려면 소설을 버려야 했다. 꿈 하나를 포기하고 현실의 안온을 얻었다. 닥치는 대로 글을 쓰자 겨우 살만한 곳에서 살아간다. 그게 좋았다. 안 되는 걸 아는데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위치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 남의 집이지만 사는 동안에는 '온전한 내 집'이라는 마음으로 집을 꾸미자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겼다.


햇살 맛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개인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알게 된다. 모든 집의 기록은 보편의 서사로서 개개인에게 작동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을 그 꿈. '내 집 갖기'는 공간을 점유한다는 탐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곰팡이가 피어오르지 않고 책이 물에 젖지 않는 집. 낮인데도 불을 켜 놓는 대신 햇살이 들어와 사방을 밝혀 주는 집. 각자의 방이 아니라도 넓은 책상 하나를 들여놓고 그 앞에 앉아 무얼 적을까 고민하게 하는 집.


누군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면,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집의 한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상이 차지하는 면적만큼 내밀한 공간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中에서)


다양한 집에 살아왔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고 나서 이렇게 쓸 수 있겠다. 나는 다양한 시절을 거쳐왔다고.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서글픔과 분노가 나의 한 시절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 시간을 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시한 사람이 되어 피곤한 일들을 하며 현재를 보내고 있을 거라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척박하고 삭막한 집에서의 시간이었다. 밤새 부부 싸움을 하며 텔레비전 선을 잘라가 자신의 집에 연결하는 사람이 있었고 문을 열어 놓고 음악을 크게 듣는 이웃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미래의 집을 희구했다. 커다란 창이 있고 거실에는 책상을 놓아둔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들어와 곰팡이가 올라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닐 일 없이 원하면 평생 살아도 되는 집으로 나를 밀어 넣어 준다. 팬데믹 시절, 나는 직장을 잃고 이력서에 쓸 한 줄을 위해 하루 4시간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다. 엑셀과 수식 함수, 차트 그리기, 셀 합치기, 처리 용량 속도, 에드삭, 에드박 같은 용어를 외우며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기록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리숙하고 아팠던 거구나 이런 마음으로 현재의 나에게 용기를 준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좋은 책이다. 결코 용서할 수 없게만 느꼈던 과거의 나와 화해를 시켜주기 때문이다. 집에서의 기억을 꺼내보니 희미한 사랑이 있었다. 버림받았다고 울고 있을 때도 나는 혼자이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반장이 주인집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곰인형을 사 왔던 엄마가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아빠가 찾아와 얼른 가라고 화를 내었다. 곰인형을 주지도 못한 채 엄마는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단발 파마머리를 한 늙은 여인만 보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그때 왜 우리는 같이 살지 못했나.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좋은 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로 하면 신파가 되어 버리는 나의 서사를 길고도 자세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겨울밤은 서글프지 않았다. 내일의 햇살을 기대해야 하기에.


s*****m 2020.12.1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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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역사가 된 시간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나의 역사가 된 시간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내용보기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요?""잘 팔리는 집이요."일 년 전,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 주변에서도 부동산에서도 똑같이 말했다. 잘 팔리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집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에게 집을 팔고 나갈 때를 먼저 생각하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진지하게 새겨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손으로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닌 때였다. 아는 것도 없었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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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요?"

"잘 팔리는 집이요."

일 년 전,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때 주변에서도 부동산에서도 똑같이 말했다. 잘 팔리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집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에게 집을 팔고 나갈 때를 먼저 생각하고 하는 말이 우습기도 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진지하게 새겨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 손으로 처음 집을 구하러 다닌 때였다. 아는 것도 없었고, 안다고 해도 눈 뜨고 코 베이는 시대이니 무섭기만 했다. 한참을 더 보러 다니면서는 귀찮고 힘들기까지 했다. 집값을 예상했음에도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가격에 심란하던 때였다. 이사할 때 필요한 이런저런 비용까지 생각하면 집값을 매매 가격 그대로만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었다. 큰돈이 오고가야 했으니, 결정도 신중해야 했다. 먼저 예산을 정하고 가고 싶은 동네를 몇 군데 추렸다. 그 동네의 거의 모든 집(아파트)을 보러 다닌 것 같다. 석 달의 주말을 집을 보러 다니면서 보냈다. 집을 보러 다닌 지 석 달 만에 겨우 집을 계약하고, 계약 후 거의 넉 달 만에 이사를 했다. 나에게는 첫 이사였다.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페이지)


사실 집에 관해서라면, 나는 거의 할 말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사하기 전 엄마와 살던 집이 내가 살던 집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이사를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그 집에서, 나는 나왔고 엄마는 아직 살고 계신다. 작고 오래된 집이다. 여기를 고치고 저기를 조금씩 넓히면서 여덟 식구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었던 엄마의 공간이자 지금 엄마에게 남은 전부다. 집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으니, 이제 더는 손댈 수 없는 낡은 집이 되었다. 길게는 1년이라는 시간을 잡고 이제는 엄마가 이사할 집을 생각하는 중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였다. 울컥해지는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듣기만 했던 엄마의 시간을 상상했다. 나는 기억도 못 하던 시절, 엄마는 일 년에도 몇 번씩 이사 다녔다고 했다. 어떤 날을 한밤중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옮긴 적도 있단다. 내 기억에 없는 엄마의 그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전히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가끔 생기는 큰일에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해야 하는 생활이지만, 지금은 쫓기듯 이사하는 상황을 모면했으니 다행인 건가. 아니면, 저자의 말처럼 부자인 걸까.


대구 북성로의 첫 집은 저자의 가족이 모두 모여 살던 곳이다. 조부모와 부모, 부모의 형제들, 저자의 자매까지. 지금은 드문 구성의 가족이 그 집에 살았다. 오래전 우리가 익숙하게 생활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남편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이었고, 아내는 아이와 시부모를 돌보는 게 역할이라고 여겼던 시절. 시어머니는 아들 가진 존재로, 여자가 아닌 '시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집안의 가장 큰 방을 차지하고, 자매는 한 방을 나누어 썼으며, 삼촌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게 저자의 부모였다. 아버지에게는 서재가 있었지만, 엄마에게는 집안의 어느 곳도 엄마의 공간이 되지 못했다. 엄마의 방을 묻던 딸에게 집안 모든 곳이 엄마의 방이라고 말하는 표정이 저절로 읽혔다고 말하면 내가 오버일까. 유난히 책을 좋아했던, 틈틈이 책을 읽던 저자 엄마의 시간 어디에도 엄마의 방은 없었다. 역할을 구분하고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읽히는 문장 앞에서 수시로 울컥했다. 엄마, 아내라는 이름으로 감당했을 상처의 무게가 보여서다. 어쩌면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 공간이 바로 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역할의 구분은 물론이고 방공호도 있던 집이라고, 중국 요릿집 회전판이 놓인 식탁이 있는 북성로의 집은 그들이 곧 이사하게 되는 수성구의 명문 빌라와 대조적이었다.


수성구의 명문 빌라는 갑자기 시대가 확 바뀐 느낌이었다. 대구의 강남이라 불리는 곳, 학군 따지면서 "어디에 살아?" 하는 물음에 우쭐하며 대답할 수 있던 시절의 저자가 본의 아니게 세상을 한번 배운 때였다. 그전까지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족들 모여 살면서 부대끼고 같이 먹고 잠자는 곳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다면, 명문빌라에서의 시간은 집의 개념을 새로 배운 곳이 아니었을까. 집의 브랜드로 경제력을 따져가면서 사람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게 슬픈 건지 현명한 건지 모르겠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흔하게 보던 내용인 것도 같다. 민간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사이에 둔 학교의 아이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차단벽, 옆 아파트의 놀이터 출입금지를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다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또다시 여러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 보냈던 20대의 저자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던 여러 방과 원룸, 다세대주택을 거친다. 그때 봤던 가난의 흔적들, 상대적 시선의 부와 가난 그 경계를 서성이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을 쓰고 14인치 TV로 세상을 읽으며 자발적 감금 상태였던 시간은 불안의 나날이었고, 누군가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내가 그 피해자가 되지 않은 순간에 안도하는 나날이었다. 어쩌면 가난은 불안과 동의어로 다가왔던 시절인지도, 저자가 바랐던 품위 있는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던 거다.


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 현재든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58~59페이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이 집이 온전한 나의 집이 되리라 믿었다. 내가 바꾼 공간이 이곳에서 보낼 나의 시간을 바꾸리라 기대했다. 그렇게 일상의 모든 것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아등바등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집을 고치며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104페이지)


여러 방을 거치며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을 뒤로 하고, 다시 혼자임을 맞이하며 구했던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집에서의 시간은 가장 의미 있어 보였다. 읽는 나에게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독립적인 존재로 바로 서는 어느 공간의 입구에 있는 기분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셀프 인테리어를 하며 '아등바등' 몸부림치던 순간이 만든 건, 우리가 온전히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거다.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집을 고치는 일이 왜 필요했을까. 다시 혼자인 공간을 만들면서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러니 무엇이든 해도 괜찮은 삶을 시도했는지도 모르지. 그전까지의 시간이, 몇 년 동안 여러 방(집)을 거치면서 보여주고 싶은 시절이었다면, 행신동의 집은 부끄러운 기억을 묻어두고 성장하듯 발을 디딘 곳이라고 보인다. 요가와 수영을 배우고, 유럽을 여행하고 유기견을 임시 보호했다. 그전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일상을 이곳에서 채웠다. 보호하던 유기견은 반려견이 되었고,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인연은 애인이, 남편이 되었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짝사랑의 고백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저자는 자기만의 삶을 완성해나가고 있었다.


듣다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사실은 꽤 어려운 시도였다는 것을 안다. 혼자서 해외여행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는 현실을 마주친 적이 여러 번이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쉽지도 않은 일이 되고야 마는 걸까. 몸의 불편함을 느껴서 요가나 수영을 생각한 적도 있지만, 선뜻 등록하지 못하고 학원 앞에서까지 망설이게 되는 서성임.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일이 이렇게 가벼운 발걸음일 수 있을까? 무심코 드는 의문에 답을 주는 건 저자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자산이라고 여기는 집의 의미를 다르게 겪어온 저자의 경험이 삶의 다른 방향을 열어준 거라고 말이다. 내가 집을 구하면서 들은 조언처럼 잘 팔리기 위한 집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채워가는 시간이 준 것은 거대했다. 수많은 이사로 만들어진 집에 대한 생각이 현재 저자가 머무는 집을 채우고 있다.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조금만 걸으면 숲길이 보이는(이른바 숲세권? ^^) 곳에 터를 잡고, 일상을 보낸다. 저자가 경험한 집들이 곧 저자의 역사가 된다. 그 집들을 거치며 성장한 한 사람의 내면에 무언가 차곡차곡 쌓여있을 것을 생각하니, 당시에는 힘들다고 여겼을 순간들이 다르게 보인다.


지금까지 거쳐 온 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집에서 보낸 시간의 힘을 말하고 있다는 게 저절로 느껴진다. 세월의 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상의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 공간들을 거치지 않았다면 다 알지 못할 지금의 다짐이나 생각 같은 거.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집 자체보다는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할 때면,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오랜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아이, 아빠, 엄마, 모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주방이나 거실처럼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오롯이 자기 혼자 존재하고 싶을 때 거침없이 문을 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곳, 쏟아지는 눈물을 펑펑 쏟아낼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을 가진 집을 생각하면 또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좋은, 좀 더 넓은 집을 꿈꾸며 그 집에 존재할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어지니까. 그런데도 저자의 이야기에 소박한 공간을 더 떠올리게 되는 건, 물리적인 부유함이 아니라 비좁은 곳에서 부대끼며 걸어온 시간이 만들어준 '나'라는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형제자매가 많아서 단 한 번도 나만의 방을 가져보지 못한 나였는데,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꿈꾸던 그 오랜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비로소 나만의 공간이 생겼는데도 그리워지는 어떤 것들 때문에. 그러니 '나만의 방'의 문제는 물리적인 '방' 자체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두 가지 감정에 힘들었다. 그 오래되고 낡은 집에 엄마를 버려두고 온 것 같은 죄책감과 오랫동안 벗어나고 싶은 그 집에서 나온 홀가분함 때문에.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먼저 생각나는 집이었다. 나의 몇십 년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사는 내내 힘들다는 생각에 우울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어쩌면 저자의 명문빌라 시절의 대조적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지방 소도시의 작은 마을, 오밀조밀 모여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정겹게 느낄 수만은 없었던 시선을 먼저 배웠다. 그 집에서 우리 형제자매는 울고 웃으며, 부대끼고 싸우면서 자랐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 각자의 자리를 찾아 하나둘 집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떠났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엄마만이 그 공간에 남았다. 자랄 때는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 커서는 잠시 머물고자 했던 선택으로 물리적인 공간이었던 집은 이제 우리에게 무엇일까.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페이지)


저자의 문장 곳곳에서 마주했던 가족, 여자, 엄마의 공간을 생각한다. 이제 나에게 집은, 내가 새로 꾸린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내일을 고민하는 곳이고, 엄마에게 새로 만들어줄 공간을 그리고 상상하는 곳이다. 이 집에서 당연하게 나에게 내어준 방 한 칸을 채우는 시간을 그리고 있다. 아직은 달랑 책상 하나만 놓여 있는, 방 구석구석에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할지, 나에게 또 무엇을 채워줄지 궁금하다. 여전히 게으르고 미흡한 것투성이지만, 어제와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볼 나를 그리는 일은 즐겁다. 동시에 단 한 번도 자기만의 방을 가진 적 없던 엄마의 공간을 같이 만들어가고 싶은 욕심을 맘껏 부린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은 기다림과 간절함, 설렘으로 채워지겠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간을 상상하는 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그렇게 만들어갈 엄마와 나의 또 다른 역사를 기대한다. 엄마와 나 각자의, 엄마와 나 우리 모녀의 삶을 만들어줄 집, 방, 공간, 자리를. 너무 늦게 독립한 나의 미안함을 고백하면서, 나의 성장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엄마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한 기다림이다.


n******i 2020.12.1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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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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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해 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마운 책이다.   집이라고 하면 부의 상징처럼 부동산이나 아님 인테리어가 잘 된 예쁜집 이런 것만 생각했지 정작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존재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하고 살아온게 사실이다.   늘 나와 함께 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본래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우친 내 스스로에게 반성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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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해 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마운 책이다.

 

집이라고 하면 부의 상징처럼 부동산이나

아님 인테리어가 잘 된 예쁜집 이런 것만 생각했지

정작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존재라고는

거의 생각지 못하고 살아온게 사실이다.

 

늘 나와 함께 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본래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우친

내 스스로에게 반성하는 시간도 만들어줘서 한편으론 고맙다.

 

어찌보면 그 누구보다 나에 대해 뼛속깊이까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집이고 방인데

왜 그걸 이제야 알았을까?

나의 모든 인격과 겉모습 하나하나가

결국은 집을 통해서 방을 통해서 만들어진건데

 

그걸 애써 부정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내 과거를 돌이켜보게 된다.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이 존재하고 있는 집에게

짥게나마 고맙고 미안하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고 싶다.

소중한 나의 공간 내 집..

h*******1 2022.08.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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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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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오랜 시간 울었다는 정희진작가님의 추천평에 이끌려 구매했다. 어떤 글이길래 그 다부지고 냉철한 사상가이자 지식인을 무장해제 시켰을까 궁금했다.단숨에 5챕터까지 읽다가 이럴 책이 아니다 싶어 남은 다섯챕터는 하루 하나씩만 아껴읽는 중이다. 살갗으로 체득하여 심연에서 끄집어낸 <품위>와 <아둥바둥 사는 생활>에 대한 작가의 문장들이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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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오랜 시간 울었다는 정희진작가님의 추천평에 이끌려 구매했다. 어떤 글이길래 그 다부지고 냉철한 사상가이자 지식인을 무장해제 시켰을까 궁금했다.
단숨에 5챕터까지 읽다가 이럴 책이 아니다 싶어 남은 다섯챕터는 하루 하나씩만 아껴읽는 중이다.
살갗으로 체득하여 심연에서 끄집어낸 <품위>와 <아둥바둥 사는 생활>에 대한 작가의 문장들이 너무 아름답다.



f******n 2022.02.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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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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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많이 받은 책이다. 독자들 중 울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작가는 대구에서 어릴적 살던 집에 대한 기억부터 서울로 독립하여 살게 된 집들과 함께 본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힘이 있고 잔잔히 흐르는 뭉클함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은 결혼을 해도 성이 바뀌지 않는다.''이것는 한국사회가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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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많이 받은 책이다. 독자들 중 울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작가는 대구에서 어릴적 살던 집에 대한 기억부터 서울로 독립하여 살게 된 집들과 함께 본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힘이 있고 잔잔히 흐르는 뭉클함이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은 결혼을 해도 성이 바뀌지 않는다.
''이것는 한국사회가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피가 안섞인 여성을 가족안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부계 혈통주의에서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따르지 '못한다'.''

''집은 우리에게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누구에게 집이 쉼터이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집은 일터가 되었다. 보수도, 출퇴근도, 휴일도 없이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

젊은 사람들은 '난 그렇게 살지 않을거야' 라는 말을 하면 그만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래도록 살고 있는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장이었다. 몸이 아파 앓고 있어도 밥상을 차리고 아이를 씻겨야 한다. 엄마는 아파도 안된다. 엄마는 '극한직업'이라고 말하는 울딸은 결혼하기 싫단다. 자연스레 비혼주의자가 되어 간다.

작가는 주체적인 객체로 스스로를 인지하자 결혼을 한다. 그리고 부부는 각자의 공간을 가진다. 집안 모든 곳에 엄마가 있어야 하지만 어느 곳도 엄마만의 공간은 없던 엄마 세대와 달리 작가는 남편의 공간과 본인의 공간을 가지고 둘이 함께 또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정갈하고 품위있게 인테리어한 집은 안정되고 휴식이 되는 집이었다.
만약 내게 내 방이 주어진다면... 민아방, 민수방, 엄마방?

작가의 집과 작가의 삶을 보며 내가 살았던 집과 삶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작가와 함께 그 시절을 떠올리고 회한에 잠기기도 하면서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을 두껍게 읽었다.
좋은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u*****a 2021.10.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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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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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다크 헤리티지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왜 내가 태어나기 이전인 20세기 중반의 풍경에 향수를 느낄까? 왜 오래된 동네의 철물점에 들어서면 각별한 애정과 그리움에 휩싸일까? 1979년생인 내가 일제 강점기의 건축물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그것이 내가 살았던 동네, 대구시 중구 북성로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안것은 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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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다크 헤리티지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왜 내가 태어나기 이전인 20세기 중반의 풍경에 향수를 느낄까? 왜 오래된 동네의 철물점에 들어서면 각별한 애정과 그리움에 휩싸일까? 1979년생인 내가 일제 강점기의 건축물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그것이 내가 살았던 동네, 대구시 중구 북성로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안것은 얼다 되지 않았다.

l******a 2021.0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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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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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동산 급등과 관련해 집과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집에 관련된 에세이를 추천 받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작가가 살아온 많은 집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요는 어디에 살던 내가 마음을 붙이고 사는 이곳이 나의 집이다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메세지가 담겨 있어 좋았습니다. 전세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열심히 꾸미던 작가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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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동산 급등과 관련해 집과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집에 관련된 에세이를 추천 받게 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그동안 작가가 살아온 많은 집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요는 어디에 살던 내가 마음을 붙이고 사는 이곳이 나의 집이다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메세지가 담겨 있어 좋았습니다. 전세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열심히 꾸미던 작가님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l*****2 2021.02.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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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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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이 책은 집이 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보려는 어설픈 시도이기도 했다. 이 시도를 통해 나의 이야기가 타자의 이야기가 되고, 타자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연결성을 소망했다./작가의 바람대로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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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집이 한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본 한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 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를 가늠해보려는 어설픈 시도이기도 했다. 이 시도를 통해 나의 이야기가 타자의 이야기가 되고, 타자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연결성을 소망했다./

작가의 바람대로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가며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고, 내가 살아왔던 집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작가처럼 나 또한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곳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작가가 말한대로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 본문 중에서/

나의 집은 어땠을까. 이 책 덕분에 내가 살아왔던 집들을 모두 불러내버렸다.

사실 초등학교 이전에는 여러곳을 옮겨 다녔던 것 같고, 외할머니집에서도 지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긴 한데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등학교때부터는 광장동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중에 한 곳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13년을 한곳에서 살았던, 대학교 졸업 직전까지 내 학창시절을 모두 그곳에서 보냈다.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그 시절. 나는 무척 행복했던 것 같다. 크게 어려웠던 기억이 없으니 행복했겠지. 우리 아파트에선 한강이 보이진 않았지만, 우리집보다 몇년 뒤에 지어진 앞 단지 아파트에서는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가 몇 있었다. 그 중에 중학교 동창친구네가 그랬고, 그 친구네 놀러갔다가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 배우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한 적도 있었다. 소득격차가 극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어느정도는 존재했지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파트단지로 쌓인 그 동네에서는 크게 자극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상처같은 것을 받았던 기억보다는 테크노마트 영화관에서 연예인들을 봤던 신나던 기억이 더 많았으니깐 말이다.

지역적인 것보다, 내 기억이 그곳에서 다시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졌다.
h*****a 2020.12.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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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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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이었다. 내가 알고 있거나 혹은 잊고 있었거나 아예 몰랐던 시간들로의 여행. 작가는 그녀의 공간과 그 시간 속 삶을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건 결국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젠가의 자신을 불러와 현재의 자신과 대면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편으론 나의 이야기였고 우리의 삶이기도했다.나는 공간이 주는 힘을 믿는다. 어떠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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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이었다. 내가 알고 있거나 혹은 잊고 있었거나 아예 몰랐던 시간들로의 여행. 작가는 그녀의 공간과 그 시간 속 삶을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건 결국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젠가의 자신을 불러와 현재의 자신과 대면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편으론 나의 이야기였고 우리의 삶이기도했다.

나는 공간이 주는 힘을 믿는다. 어떠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힘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품어주고 치유하는 공간으로서의 힘. 지치고 힘든 마음을 충분히 쉬게 할 수 있는 그리하여 다시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 그리고 그것이 결국 누군가의 인생으로 오롯이 새겨지는 순간들이, 작가의 '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라는 문장과 일맥상통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이 나의 '집' 또 우리의 '집'이길 희망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즐거운 여행에 동참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야기를 빌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운이 좋다면(아니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지금 보다 더 나은 모습의 미래의 '나'까지도 만날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공간에서 어떤 시간을 쌓고 있는가'라고. 그리고 그건 결국 나의 '삶'을 반추하는 소중한 순간이 되어 줄 것이다.

서평단에 당첨 되어 받은 #친애하는나의집에게 가제본을 다 읽고 옆에 있던 다섯살 딸아이에게 물었다. '희원아, 희원이는 집이 좋아?' 그랬더니 '어 좋아!' 잠시의 고민도 없이 답이 돌아왔다. '그래? 왜 좋아?' 하고 다시 물었다. 그 물음에 딸아이가 한 대답. 그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지만 명쾌했다.

'엄마가 있으니까!'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m*******5 2020.11.2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