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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가 스쳐지날 때 닿는 희미한 눈빛, 더듬어보지만 멈칫하는 사이 이내 사라지는 마음이란 것도 부질 없는 것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친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낱낱이 드러나는 민낯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 날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아 지날 수 있었다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이 붙들고 더욱 부질없어질 뻔 하였다 흩날리는 부질없음을 두고 누구는 첫눈이라 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더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을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어제를 먼 곳이라 할 수 없어 더구나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 첫눈이었고
햇살을 우울이라 할 때도 구름을 오해라 해야 할 때도 그리고 어둠을 어둡지 않다 말할 때도 첫눈이었다
그걸 뭉쳐 고이 방안에 두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허공이라는 걸 가지고 싶었으니까 유일하게 허락된 의미였으니까
저기 풀풀 날리는 공중은 형식을 갖지 않았으니
당신은 첫눈입니까
[ 그런 12월 ]
남은 이야기들은 지워지거나 모르거나
겨울이었지
무슨 말을 덧댈 수 있을까 우리 늘 모호했는데 유독
당신의 정맥,
유난히 추웠던 겨울 집에서 우리 무언가를 보았는데
어떤 이야기들은 선반 위에 둔 흐린 바깥이고 휘파람 같은 거라고 안경알을 닦을 때도
그런 슬픈 그물에 걸려 다시 넘어지더라도 조금 근사하고 싶어
붉은 이상한 저녁에 우리 서로 미래를 돌려주었는데
사랑은 뒤를 봉합하지도 않고 사라지곤 했지
참 추운 날이야 새들의 부리가 작아졌어
이 딱한 부재를 이월하는 상자 밖으로 버리고
이것은 혼자라는 힘
없음에 대한 일
[ 바다 ]
새벽빛을 오래 바라보다가 볶은 콩 네 알을 씹으며 속쓰림을 달랬다
우리는 아침을 함께 본 적이 없다
데려오지 못하는 아침에게 질문하는 대신 나는 답을 줄여나간다
내가 원하는 날짜가 이 생엔 없을 것
새벽빛은 보라와 실어와 분홍의 순서였고 마음은 적요와 파랑과 고립의 순이었다
배들이 떠 있을 뿐 나아가지 않는 평면을
종일 바라보았다 그런 것 적막이야 나의 말도 두 개의 흔들림과 두 번의 수평
마음은 무엇입니까 어린 사람이 큰 사람에게 물었다는데
갈때는 보이는 쪽, 올 때는 어두운 쪽 모르긴 해도 누구나 흔들리고 있었을 것
잘하려던 아침은 울곤 하여 잘하지 않는 편을 택하는 마음이 나을 것이다
내가 점점 사소한 일이 되었다는 걸 잊었다 해도
[ 차다 ]
한 이야기가 떠날 때 찬물 냄새가 났다
냄새는 라일락, 장미, 이기, 땀, 비, 모순 이런 순서였다 순서는 정직했다
누가 거울을 여기다 쏟았니
무엇이 증식했니
슬퍼할 겨를 없이 쓰고 기뻐할 겨를 없이 지운다
이 마음이 저 마음을 벗겨 놓았으니
쪽잠을 자고 나면
물은 어제보다
차가워져 있으리
[ 그러므로 그래서 ]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노을을 낭비하였는데
이어지는 저녁의 이야기는 흐린 은유는
아무때나 친절하면 안 된다는 듯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여행은 골목을 바꾸는 일인데, 먼 골목 끝까지 가보았을때 언젠가 내가 살었던 집인 것처럼 문을 밀자 뭉게뭉게 희부연 구름덩이가 쏟아져나왔다 손을 휘저어 보았지만 손은 잡히지 않았다 이 흐릿한 덩어리들은 다른 곳으로 던진 상한 마음인 것만 같고 덮은 증거도 같고 여행은 슬픔을 바꾸는 일인데, 나는 내안의 말을 바꾸지 못하여 태도가 태도를 나무라고 있으니 그 골목 허전한 어디쯤 생의 청명이 있기나 하는지 펴보는 빈 손바닥은 머뭇거림과 갈등과 고립과 나는, 안돼는 구나 길었구나 저 끝돌아오라 누가 손짓을 해도 발바닥이 들러붙어 움짝할 수 없는 구름 골목에서
[ 겨울꿈 ]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불가능 언제 어디서나 불가능한 가능 갈 수 없어요 가고 싶어요 안녕 용기를 내어 죽자사자 뛰어왔는데 여보 이건 꽃이 아니잖아 그토록 아무것도 아니었던 의문들 이 간결한 근심들 눈알을 버린다면 그때 꽃을 볼 수 있을거라는데 미안해 당신을 버릴래 부질없음을 부질없어 하는 회오리 꽃은 처음부터 있지 않았어 그리고 쏜살같이 먼 풍경이 되고 마는 북서풍
[종]
그 슬픔은 팔다리가 없을 테니 온몸으로 말을 했을 것이다
머리를 깨뜨려도 당시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
삼나무 길 지날 때 종소리 들렸다 종소리에는 왜 죄의 냄새가 묻어 있을까
몸을 움츠리고
나는 누구를 버린 사람이 되어 숨는 마음이 되어
누추한 마음도 가려주어야 하므로 저녁 여섯시는 필요하였다
팔을 길게 벌린 나무들이 사람처럼 무서워 잰걸음을 할 때 저녁 새가 소매를 물었다
아무리 해도 다치게 한 것 어두웠던 것 아직 더 가야 한다면 나를 나 없는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남은 소리가 종을 다 떠나면
이제 울음도 아껴 사용해야 한다고 다가오는 날들이 말을 한다.
[ 그리고 겨울, ]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끝을 모른다는것 길 저쪽 눈부심이 있어도 가지 않으리라는 것 가지 못하라리라는 것 그저 살아라, 살아남아라 그뿐 겨울은 잘못이 없으니 당신 통점은 당신이 찾아라 나는 원인도 모르는 슬픔으로 격리되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옹호하겠습니다 이후 저는 제가 없어진 줄 모르겠습니다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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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안개 ]
원했던 건 그렇게 먼 곳으로 흘러가요 다 흘러가요
안 보이는 것이 이토록 다정한 거요
복면한 사람 중에 당신이 있었어요
서로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기쁨이 자욱했던 것
다가갈수록 흐릇해지는 이것을 누군가 진실이라 말하기도 했어요
암전
세계는 던져둔 위반에 시달렸으니
우리가 도모할 일은 이제 사라졌어요
그러니 안개가 숨겨줄 거라고 한번 믿어봐요
어리석은 인과 우리는 우리를 벗어날 수 없지만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 다행이었어요
다시 암전
그럴 수록 아무도 모르는 먼 곳으로
하
당신 그립지 않아요
[ 이후 ]
봄은 오는 게 아니라 가고 있는 거야 그러니 손목은 너무 세게 잡지 말고 갈때 놓아주도록 살며시
살며시, 라는 말 울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당신은 거기서 나는 여기서
빽빽한 숲에서도 한눈에 드는 나무가 있지 놓아준 나무 놓아준 손목 시끄러운 곳에서도 뒤돌아보게 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놓아준 것이야
그 소리 목소리도 가고 있는 거 원했던 건 가고 있는 거
가고 있는 건 고요가 되겠지 비유 너머에 있는 그것 너머라는 말도 울고 싶은 말이었는데 거기 알 수 없는 그늘이 있지 느릅나무 분재는 겨울에도 가득 초록 잎을 달고 놓아줄 때를 잊고서 오래 머무는 건 정말 무서웠는데
쓸쓸하게도 머무는 사이 우는 법을 알아갔을 것이다
나무가 풍경에서 나갈 수 있도록 손목이 약속에서 나갈 수 있도록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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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나를 모르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다른 이를 파악하는 데에는 늘 한계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자신의 속마음을 온전한 글로 혹은 작품으로 내놓았다고 해도 사람과 글은 일치할 수도 없고 일치하지도 않을 것이고 읽는 쪽에서는 또 읽는 이의 형편에 맞춰 읽을 수밖에 없으므로. 그래서 시집을 읽는 일은 대체로 외롭다. 시인은커녕 읽는 나 자신을 만나는 길도 멀기만 하다.
시집의 제목은 쉽게 읽혔으나 속의 시들은 그렇지 않았다. 읽었어도 못 읽어냈다. 내 쪽의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인지 작가의 독백이 강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완전한 한 편은 얻지 못하고 점점이 몇 줄만 모아 왔다. 닿을 듯 싶은데 눈을 옮기고 나면 앞에 읽은 글귀들이 흩어져 버렸다. 이다음에 다시 읽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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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문 이라는 시가 가장 좋았고-
* 내 슬픔의 경로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일인데
살아 자주 역류했다 당신이 관념이 아름다움이
세상모르고 거기 있을 때 서러운 풍경은 모이거나 흩어졌고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문과 문 사이에서 앞날을 흔들어 보기도 했으나
* 비밀은 거짓보다 위험해 다 말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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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잘 모르지만 시에서 나타나는 따뜻함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써 주셨지만 시 자체가 따뜻함 보다는 차분함이 더 도드라지는 시집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차가움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구절도 있기는 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힐 때 좋은 시집인 것 같습니다. 지금 같은 따뜻한 봄보다는 겨울에도 잘 어울리는 시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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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 시인의 신작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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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위에 흰, 위에 흰, 위에 흰, 위에 떠올려지는 것들을 모조리 덮는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 되돌아선 것은 언제였지? 그렇게 멈춘 내밀한 추적의 시간은 어디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지? 내가 잠그고 버린 열쇠와 내가 잊어 쇠락해가는 자물쇠 사이에는 아직 어떤 연대의 감정이 남아 있나? 오로지 허락된 것은 유한일 뿐인데, 우리는 왜 거역하여 무한히 허망한 존재로 거듭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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