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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자신의 존재의미에 대한 생각을 해보곤 한다. 그래서 ‘삶이란 무엇인가’ 혹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대하면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기도 하지만, 모든 존재론적 질문이 그러하듯 답이 쉽게 구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런 질문과 마주하는 이유는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를 알고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 삶인지를 찾아가다 보면 대부분 커다란 벽에 가로막힌 듯 막막하기만 하다. 그럴 때 삶에 대한 화두를 마주하고, 그 화두를 토대로 자신을 단련하다 보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 [무엇이 좋은 삶인가]는 제목 그대로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열두 가지의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해 서양고전학자와 중문학자가 주고받은 생각들을 엮은 책이다. 열두 가지의 화두는 명예, 운명, 행복, 부, 정의, 분노, 죽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화두들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들로, 저자들은 그 답을 동서양 고전에서 찾고 있다. 서양고전학자 김헌 교수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권력자든 부자든, 가난하든 평범하든, 그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든, 누구나 부딪히게 되는 삶의 문제들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떻게 살 때 기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았다’(7쪽)고 말한다. 또 중문학자 김월회 교수는 ‘살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화두를 누구는 외면한 채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기꺼이 그것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때론 부딪치고 때론 품어내며 그렇게 화두로 자기 삶을 풍요롭게 일궈냅니다’(9쪽)라고 말한다. 즉 저자들이 말하는 핵심은 그런 화두들과 마주했을 때 회피하지 않고 곱씹어 보며 그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을 구축하는 것이 좋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은 우리에게 그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는 말 일게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책에서 소개하는 화두들 말고도 많은 화두를 만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마주하는 화두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으며, 어느 것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삶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어떤 화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어떤 화두는 오롯이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또 어떤 화두는 세상을 직시하게 만들지만, 다른 화두는 나의 욕망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따라서 내가 어떤 화두를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나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으며 고전이 알려주는 이정표도 때론 그리 믿음직해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정한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거기에 사회적 명예까지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삶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살아왔어도 나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음을 느끼며 좌절하기도 한다. 즉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도 돌아오는 것은 가난과 패배뿐이며, 법을 지키며 사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의 삶으로 조롱받기 일쑤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치열한 경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정의나 성실, 공존과 같은 말은 한낱 이상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상이 아니라 그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김헌은 성실과 정직이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단어들이라며 ‘가난해도 정직과 성실의 원리를 지키라고 하기보다는, 부와 재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정직과 성실 그 자체라는 믿음을 갖자고 외치는 것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풍요를 자유롭게 누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더 먼저다’(105쪽)라며,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고 그로 인해 누구도 아파하지 않고 고통당하지 않는 삶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공허하게 들리기만 한다. 김월회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의로움이 있지만 ‘사회적 강자들은 여러 의로움 가운데 자기에게 유리한 의로움만을 유일하게 올바른 의로움, 곧 유일한 정의라고 강조하면서 다른 의로움을 올바르지 않은 의로움으로 몰아갔고, 더 나아가 그것의 이름으로 법을 만들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힘을 더욱 키웠다’(143쪽)며, 공존과 공생이 가능한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의로움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대놓고 정의나 의로움을 우롱하고 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자신만의 욕망을 무한정 추구하며, 그것이 좋은 삶이라고 믿는 자들의 세상이기에 그리스의 철학자 트라쉬마코스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중에 했다는 ‘정의라는 것은 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 이외 다른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더 가슴에 와 닿기도 한다.
그럼에도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욕망을 비워내고 나만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일까? 혹 그 말은 자신의 두려움과 무능을 감추고자 하는 말, 패자의 변명은 아닐까? 저자들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고결하게 판단하며 단단하게 살아간다면 두렵지 않다고 말하며,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 텍스트가 고전이라고 강조한다. 고전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살아남아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끝은 좋은 삶, 곧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 닿는다. 남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는 위선에서 벗어나 단단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역시도 많은 화두와 마주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는 죽음이다. 누군가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삶의 의지가 그만큼 강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어느 순간에 삶이 끝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월회 교수는 ‘살아간다는 말에는 생명을 유지해 간다는 본 뜻 외에도 죽어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단지 우리는 보고 싶은 쪽에만 눈길을 두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즉 삶이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살아간다는 말의 의미 중에서 죽음 쪽에 더 눈길을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언제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단단하게 살았음을, 나름대로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동서양의 고전을 소개하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고전은 화두를 위해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인용하는데 그친다. 다시 말해 어떤 고전을 읽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으며,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고전을 읽음으로써 자신만의 생각으로 고민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는 느낌이 든다. 삶이란 무엇인지,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이 그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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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한 존재인 나는 그저 책을 사랑하지만 인생을 조금 제대로 살고 싶어서 책을 더 읽게 되는 그런 나에게 나름의 좋은 책의 기준은 1) 미리보기에서 보여준 2-30페이지를 읽을 때 술술 읽게 된다. 2) 책을 읽어나가면서 거기에서 소개된 인용구나, 책들을 읽고 싶게끔 만들어 카트에 저장한다. 정도인데, 이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게 한 책이다. 서양고전문학의 전문가와 동양고전문학의 전문가가 12가지를 주제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한다. 놀랍게도, 전문가들이 이렇게 일반 독자들이 읽기 쉽게 글을 펼쳐나갈때 나는 경이로움을 느낀다.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를 반추하고 내 경험과 생각이 떠올라 메모를 하게 만든 책이다.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다른 독서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것. 이것이 야말로 이 책이 제대로 독자의 삶을 제대로 ‘올바로’ 살고 싶게끔 꿈틀대게 하는 것이야말로, 책이 그 기능을 제대로 한 것 아닐까. “인간은 현재을 살면서 미래를 품어가며 산다.” “참다운 어른으로서 살아내고 버텨내는데 필요한 자양분이 인문이다.” 작가의 말을 인용한 이 두 어구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실 것을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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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심란했다. 예기치 않은 변화를 앞두고 있어서다. 살면서 내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수시로 출렁이는 파도에 모래가 깎이어 나가듯 내 마음 또한 심히 울렁이곤 했다. 그 때마다 주변을 둘러봤다. 속내야 알 수 없으나 다들 무던한 표정이다. 나로서는 그저 부러웠다. 그들의 담대함이, 비록 겉으로만 보이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왜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단단하게 살아간다면 두렵지 않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뒤표지를 덮자 나타난 문장이다. 이따금 듣곤 했던 “마음의 근육을 키우라”는 주문과 닮아 있었다. 단단하게 산다는 건 대체 무얼 의미할까. 지혜라 하는 게 책 한 권을 읽었다 하여 내 것이 될 리 없다. 여전히 난 무른 마음, 바스러진 마음을 부여잡은 채 산다. 약간의 위로를 얻긴 했다. 이토록 많은 고전이 삶을 논한 건 그만큼 삶이 어려워서가 아니겠느냐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은 오래도록 동떨어진 세상으로 존재해왔는데, 서로간에 교류가 없었음에도 같은 주제로 머리를 싸맨 모습이 오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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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문헌학자 김헌, 중국문학자 김월희 두 학자가 명예, 운명, 행복, 부, 정의, 아름다움, 분노, 공동체, 역사, 짓기, 영웅 그라고 죽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각기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찾은 길을 글로 다듬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가치에 맞는 자신만의 명답을 찾는 계기를 고전에서 마런하기를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