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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는 지금 경제적 불평등, 기술적 실업, 고령화, 자원 부족, 기후변화 등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기술, 재생에너지, 소행성 채굴, 유전자 편집, 인공육 같은 기술을 활용하면 인류는 단순히 생존을 넘어 사회정의와 무한한 풍요가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갈림길에 선 지금, 우리는 현재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 능력이 없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는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다. 이 책은 3부로 이뤄졌다. 1부에서는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2부는 완전한 자동화, 무한한 동력(에너지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우주에서 채굴하기, 운명을 편집하다(수명과 건강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동물 없는 음식 : 음식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마치, 영화 "데몰리션맨"을 보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진다. 3부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는가? 공산주의, 지금 우리가 말한 공산주의와는 사뭇다른 미래세계를 말한다. 미래의 사회의 모습이 바로 공산주의가 대안이라 말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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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는 공산주의의 개념은 1) 생계를 위한 직업이 사라지고(영국 미래학자 아서 클라크는 미래의 목표는 완전한 실직이다. 그래야 놀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2) 풍요가 희소성을 대신하고, 3) 노동과 여가가 하나로 합쳐진 사회이며, 이를 FALC(Fully Automted Luxury Commu nism-완전히 자동화 된 화려한 공산주의)라 부른다(77쪽 이하). FALC는 3차 대변혁의 경향이 도달할 결론이라 주장한다. 3차 대변혁은 농업(1차), 공업(2차)을 거쳐 이르게 된 정보의 해방을 말한다. 3차 대변혁도 2차 대변혁과 마찬가지로 그 토대는 다목적 과학기술이다. 2차 대변혁의 특징이 동력의 희소성에서 벗어나 상대적인 자유-바퀴, 도르래, 배, 사람, 화물을 움직이는 석탄과 기름-를 얻는 것이라면, 3차 대변혁의 특징은 정보의 풍요다. 탈 희소성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만드는 현상 즉 무한공급이다.(55쪽 이하) 공산주의는 칼 마르크스의 생각이 아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 존 메이너드 게인스, 피터 드러커가 있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이후에 올 수 있는 체제에 대한 그들의 생각의 유사성-이 세사람은 희소성과 자본주의, 희소성과 유토피아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보면 마르크스 주장의 공산주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이다(79쪽).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단면[(동전의 양면 중 어느한쪽)만 편의에 따라, 이미 이데올로기 덫에 씌여진(프레임)적인 것만 알수 밖에 없는 상황, 환경에 놓여있었던 탓에, 그의 주장이 보편성을 가진 주장이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과 또 다른 면을 아울러 설명하고 있다. 제4차 혁명의 도래도 많은 일자리를 로봇(AI 등을 포함)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미래 사회를 이해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특히, 제이슨 생커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변화된 모습을 전망하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미디업 숲, 2020)는 코로나 19와 같은 글로벌 규모의 재난 상황에서 상상가능한 현상을 서술하고 있을 뿐, 특별한것은 없다- 그가 평소 주장한 미래의 모습에서 코로나재난 정국이라는 독립변수로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논의와 현상 등에 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완전히 자동화 된 럭셔리한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뭘 어떻게 얼마만큼 깊이 생각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꽤 흥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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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2008년 이래로 이어져온 경제적 침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를 1929년 대공황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ChatGPT로부터 시작된 AI의 발전은 분명 괄목할 만한 기술적 가속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아니다. 2025년, AI가 경제발전을 가속하지 못했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통일된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기술에 대해 여느 좌익 담론과 완전히 다른 입장을 내놓는다. 그는 근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으나 다소 낙관적인 사회를 그림으로써 이 책을 시작하는데, 기존 좌익 담론이 전반적으로 탈성장적인 것과는 대조된다. 그는 또한 2부에서 마르크스의 《기계에 대한 단상》을 인용하는데, 기술이 가진 잠재력이야말로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위한 열쇠라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의 기술적 풍토로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설득력을 가진다. 그것은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 현대인들이 가지는 본능적 거부감을 다소 경감시킨다. 닉 스르니체크의 도서 《Inventing the Future》과의 관련성도 주목할 부분이다. 닉 스르니체크의 좌익 가속주의 담론과 FALC 담론은 서로 방법론과 지향점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제로《Inventing the Future》를 언급하기도 한다. 실제로 둘은 가속주의 철학에 대해 공통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명백하다. 현재의 기술적 진보가 말해주듯 유토피아는 꿈이 아니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실패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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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를 도입하지 않으면 왜 안되는지 무엇이 우리를 공산주의를 선택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어렵게 만드는지를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산주의를 도입해야 하는가? 공산주의는 왜 화려해야만 하며 공산주의는 왜 실패해왔었고 공산주의를 어떻게 하면 다시 도입할 수 있을지를 이 책은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FALC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이 책이 가진 한계도 명확하다. 이론적 정합성이 미흡하다. 실현 방법 또한 심히 우경화되어있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기본적인 정세 판단 기준을 의심해봐야 할 정도다. 그러나 나는 결코 FALC를 '이상적'이라거나 '유토피아지향적'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FALC는 실현 가능한 미래이고, 그 실현 방법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 의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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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폐해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지만 공산주의를 언급하는 건 왠지 조심스럽다. 소련이 패망했을 때 많은 이들은 공산주의 또한 현존할 수 없는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무언가를 발굴하기보다는 단점을 개선할 수 있는 보완책의 마련에 모두가 매달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경기 침체가 몰려왔을 때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일자리를 생성하고 기준 선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보듬기도 했고, 반대로 경쟁력 없는 이들을 퇴출함으로써 시장의 건강함을 되찾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상황이 다른 만큼 어떤 사회에서는 유효한 정책이 다른 사회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과거처럼 다양한 방법이 용인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문제에 봉착한 사회가 구조를 요청하면 국제사회의 거대한 손길이 이들을 구하러 달려간다. 막대한 원조를 제공하는 대신 특정 방식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데, 그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가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수치상으로는 분명 나아졌음에도 과거보다 훨씬 삶이 퍽퍽하다고 호소하는 이들 또한 증가하는 까닭은 왜일까. 공산주의라는 단어로부터 다시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 정확히는 역사가 기억하고 있는 공산주의와는 다소 다른 형태의 사회를 저자는 언급하고 있었다. 그가 그린 사회에서는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었고, 이들 중 대다수가 오늘날 인류가 봉착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과거처럼 화석 연료에 의존해서는 머지 않아 자원 고갈을 겪게 될 것이다. 환경을 파괴하는 오늘날과 같은 정책을 지속한다면 미래세대는커녕 우리 자신의 삶조차도 보장받기 힘들어질 것이다. 나날이 늘어만 가는 빈부격차는 또 어떠한지. 누군가는 최첨단 문명의 수혜를 누리는데 다른 누군가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이 버거워 허덕대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오늘날까지 인류는 이를 외면하려 들었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을 택해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켜 왔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것에 집중하기 바빴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론은 넘쳤으나 실천은 없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는 스스로를 변혁시키는 일에 실패했다. 저자는 역사로부터 정답을 발견하려 들었다. 지난날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어마어마한 변화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실질적 변화로까지 나아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해 주목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저자는 이 시차를 언급했다. 역사가 기억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이룩한 성과를 얕잡아 보아서는 곤란할 테지만, 그들이 사회에 낳은 파급효과는 그들보다 앞서 기술을 발달시킨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주장했다. 이를테면, 종교개혁의 선봉으로 언급되곤 하는 마르틴 루터의 경우, 그는 자신이 쓴 95개 논제가 유럽 사회를 뒤흔들 문제작이 되리라고 결코 예상 못했을 것이다. 때마침 인쇄술이 무르익었던 게 주효했다. 저자가 보인 건 낙관론 일색이 아니었다. 그는 오늘날 행해지는 많은 시도들이 여전히 개개인의 이윤 추구 차원임을 알고 있었다. 지구 단위를 뛰어넘어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 이면에 숨은 뜻도 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야기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힘 역시 자본주의가 가능케 한 기술이었다는 것 역시 간과하지 않았다. 초창기 기술은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끝에 탄생한다. 그러나 전 세계에 그와 같은 기술이 보급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의 몇몇 국가는 앞서 발달을 이룬 국가들의 단계를 고스란히 답습하지 않고 있다. 특정 단계는 뛰어넘고, 양적으로는 이미 유럽의 다수 국가를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의 성취를 이룩하기도 했다. 기술이 고루 전파될 수 있도록 하고, 사회가 지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용될 수 있게끔 함으로써 모든 이의 삶의 향상을 이룬다면, 형태는 다소 다를 테지만 지난날 우리가 꿈꿨던 공산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읽혔다. 공산주의는 이상향의 성취이기보다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다. 현재 우리가 택한 제도에서도 공산주의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바로잡기 위한 많은 시도들은 분명 자유에만 기대어 생성된 게 아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 제도 등이 지닌 훌륭함은 이미 입증됐다. 꼭 과격하게 봉기하고 현 질서의 붕괴를 도모하지 않더라도 변화를 일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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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차산업혁명에 관한 무수히 많은 담론들과 자동화와 노동 소멸에 관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들의 상당수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검증되지 않은 근거들에 기반해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아론 바스타니의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는 자동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노동의 문제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질문하면서 이를 공산주의라는 문제와 접합하고 있다 .즉 만약 자동화가 이루져서 임금노동이 대폭 감축된다면 자본주의는 여전히 자본주의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자동화는 자본주의에 내재하는 공산주의라는 경향성을 건드릴 수도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