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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대안의 사회1권과 2권을 읽은 느낌은 지금 현재 사화의 전반적인 내용을 시험치기 전에 한번 총 정리하여 보는 그런 느낌이다. 저자는 아마도 서양 문학가 이야기하는 4차 산업혁명은 미국식 자본주의와 그와 결탁한 저자들에게 쌓인 것이 많은 것 같다.동양은 서양에 비해 "도" "명상"등의 정신 세계에 대한 우위는 있어도 기계화 사회는 서양 사회가 우월하다는 생각에 자신만의 사상과 생각으로 그러한 우월감은 동양사상과 접목시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책의 지필 의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지금의 사회가 빈틈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빈틈이 사라진 시대...인간에게는 더 이상 자연의 파괴와 불평등과 폭력을 완충시킬 빈틈이 없다. ★여러가지 위기가 중첩되어 위급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생명과 기후 불평등과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4차산업의 발전에 따른 인공지능의 위기가 중심적으로 인류를 압박한다 10년만에 인간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한 기회를 놓칠수도 있다. 우리는 지구를 소유한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자체를 부정하고 생명에 대한 윤리적 지각없이 이루어진 근대문명,근대국가,과학기술 체계를 모든 체계와 제도를 해체해야 한다.라고 노트에 적는다. ●신처럼 오만하여 질병의 극복을 하겠지만 오만은 또 다른 제2의 바벨탑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재현의 위기를 겪고 정체성의 혼란에 놓일 것이다. 현대의 힘,지능,정서에서 월등한 포스트 휴면으로 거듭날 것이다.이 상황에서 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양산하지 않으려면 과학과 인간 중심을 벗어나서 「생명과 인간성,영성을 결합한 과학을 지향해야 한다... 즉,패러다임의 전환의 시기가 도래하였다고 보인다. 국가나 자본 기득권이 정녕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개혁을 수용했어야 했다.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다가오는 시대는 GDP보다 그 나라의 강,숲에 생명들이 살고 있는지 국력보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미소 짓고 사는지 노동자들이 행복하게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하는지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것보다 여러 종교,인종,이념을 가진 사람과 인공지능이 신나게 놀 수 있는지에 경영과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하는 책 읽기였다. ■인간의 대안은 계속 전진하는 것일까?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에 대한 향수, 즉 과거를 낙원으로 여기는 레트로피아의 원천이다.” 라고 이야기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글이 떠오르는 밤에. . 서평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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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동안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가둬두었던 코비드19 팬데믹은 여전히 그 기세를 꺽지 않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바이러스를 종식시키는 것을 새해 소망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망을 그리 밝지 않아 보인다. 왜냐면 바이러스는 종식(終熄)이란 단어처럼 없애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보름동안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사회 2권과 함께 여가를 보냈다. 저자 이도흠 교수는 1권에 이어 제2권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담아내야 할 인간에 대한 고찰-철학과 종교, 인문학 등-의 내공을 보여 준다. 아울러 동시대를 강타하고 있는 코비드19 팬데믹이 일시적 또는 일회적 사건이 아님을 경고한다. 저자는 간헐적 팬데믹 시대의 대안을 마지막 파트에서 제안한다. 제2권 제2부를 위해 인류사와 과학기술, 철학과 종교, 인간의 자유의지와 인공지능 등을 먼저 설명해 두었다. 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곧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어렵다. 방대한 분량의 저작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저자는 과학자 또는 엔지니어가 아닌 현직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다. 저자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바이러스로 촉발되는 간헐적 팬데믹의 시대를 인류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제안한다. 이것은 과학과 기술적 사고만으로는 담아내기 힘든 화두이다. 때문에 저자는 인류 역사를 꿰뚫는 사상과 철학,종교를 분석한다. 인간과 권력, 인간과 자연의 융합과 대립의 역사를 풀어낸다. 인류는 단지 수백년 동안 엄청난 문명의 성과를 이뤄냈다. 그 그 결과 어느 세대도 누리지 못한 편리와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역기능 또한 녹록치 않다. 80억에 육박하는 인류 중 여전히 1/4은 굶주리고 있고, 자연은 황폐해지고 기온 상승으로 인한 온난화는 기후까지 바꾸고 있다. 거대한 공장식 축산업은 산림과 강을 훼손했다. 가축의 배출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도 가시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적시한다. 돈이 되는 사업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부친 것의 결과를 보여 준다. 영국이 평원의 공짜 목초와 중서부 곡창 지대의 잉여 옥수수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1억 600만 에이커에 달하는 미국 농경 지대에서는 2억 2,000만 톤의 곡식이 소를 비롯한 다른 가축들을 위해 재배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축들, 그것도 주로 소가 소비하는 곡물은 전 국민이 소비하는 곡식의 두 배에 육박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6억 톤의 곡식이 가축들, 그 대부분은 소의 먹이로 사용되고 있다. 315p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사상을 융합적으로 분석하여 이후에 펼쳐질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어떤 기준틀로 구축해야할 것인지 제안한다. 분열이 아닌 상생해야 한다. 파괴가 아닌 보존과 보호를 시작해야 함을 느낀다. 작금에 논란이 되고 있는 탈원자력과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이슈가 바로미터가 아닌가 싶다.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회(總相)는 각 주체(別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며, 각 주체들과 무수한 타자들, 사회 전체는 서로 연기의 관계에 있다. 각 주체들은 각자의 삶(異相)을 행하지만 모든 인간과 사회의 공통적인 원리(同相)를 공유한다. 각 주체들이 모여 사회(成相)을 형성하고 있지만, 각 주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형상을 갖고 각자 행동(壞相)을 한다. 이 여섯 가지 상이 상즉상입한다. 연기의 관계 속에서 모든 인간들이 출생-성장-죽음, 타인이나 집단, 권력, 세계와 갈등과 화해, 대립과 타협, 전쟁과 평화를 반복하며 역사와 자유, 의미의 차이를 만들어내며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381p 결론 부분에 저자는 코비드19로 촉발된 팬데믹 시대의 암울한 현실의 원인과 해법을 보여 준다. 인간의 탐욕은 성경에서 우상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로 제어하기 어렵다.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대립과 격차는 심화될 것이며, 이로 인한 사회 구성원간의 비인간화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런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작은 실천을 시작하고자 한다. 육식을 줄이고 전기, 석유 등 에너지를 덜 쓰는 새해 첫 달을 작심해 본다. 반면에, 시민사회에는 공포의 유령이 드리우고 있다. 전체주의는 두려움을 먹고 산다. 두려움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이를 극복할 능력이나 힘이 없다고 느낄 때 중폭되기 마련이다. 코로나 퇴치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과 전망이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이유다. 지식인과 시민들은 공론장을 회복하고 과학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온갖 주술적 담론과 가짜뉴스를 비판하고, 80세 이상의 노인을 죽도록 내버려 두자는 주장과 같은 야만과 코로나를 빌미로 행해지는 다양한 방식의 전체주의적 통제와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 52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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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관점의 연속선상에서 2편에서는 일상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많이 접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점 그리고 자연, 환경, 로봇, 생명공학에 대한 윤리까지 폭 넓게 다루고 있다. 산업혁명의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집안일에서의 해방 그래서 좀 더 나를 위한 시간에 투자 할 수 있다는 점. 로봇청소기를 쓰기 전에는 왜 굳이 청소기가 있는데 또 구입을 해야 하냐고 반대를 했었는데 구입해서 사용해보니 왜 진작 사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폰에 앱을 깔고 청소할 구역을 세팅한 다음 물통에 물을 채우고 걸레를 끼우면 자동으로 정~말 알아서 청소를 잘한다. 이것도 인공지능의 한 분야이고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을까,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은 정말 똑똑하구나란 생각과 함께 올해 80이 된 이모가 했던 말씀이 생각났다. 요즘은 너무 세상이 좋다고 집안에 세탁기가 다 있고 냉자고도 이리 크고 좋다고 하시던 말씀, 이모 어릴적에는 밥을 하기 위해 나무를 주워와야 했고 추운 겨울에 손이 시려워 빨래, 설거지 하기도 힘들었다고 하시던 말씀. 그리고 노동자들이 중금속 가득한 작업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위험한 곳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곳은 반드시 기계가 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을 한다면 인명사고는 완전하게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럼 산업혁명의 역기능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쉽게 이용하는 인터넷에서 이루어 지는 모든일들이 빅데이터로 요약되어 무보수로 정보를 생산하고 스스로 상품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의 정보가 계속 공개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구조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몰랐다. p 43 자동화가 지금의 추세로 진행될 경우 20%만이 노동을 하고 80%가 실업의 소외와 좌절감에서 나날을 연명할 '2대 8의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할 경우 '0.1 대 99.9의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무서운 이야기고 만약 현실이 된다면 큰 재앙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맞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또 고민하게 된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무조건적인 한 쪽의 희생만을 강조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파트 관리비 감소를 위해 경비아저씨들의 인원을 감축한다는 기사를 볼 때면 과연 기계로 대체 했을 때 완벽하게 다 해낼 수 있을까? 꼭 감원이 아니더라도 같이 공존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는 것 또한 기사를 통해 많이 보았다. 4차 산업혁명 정말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까? 책을 읽을 수록 생각이 긍정과 부정을 왔다갔다 한다. 다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문제들 p 432 내가 소유한 인공지능이 사람을 죽인다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내가 탄 자율주행자동차가 교통사고를 냈다면 책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겠는가? 또, 인공지능이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 고통에 윤리적 응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는 근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기에, 근대에서 합의하거나 규정한 윤리와 법을 초월한다.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세계관에 따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세울 뿐만 아니라 예측되는 사건에까지 번민의 촉수를 뻗어 그에 부합하는 윤리를 정립해야 한다. 하지만, 윤리로 그칠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에서도 많은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셍하는데 고도의 기술까지 갖춘 인공지능들과의 싸움까지 함께 한다면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그래서 2017년 2월 16일에 '유럽 의회의 로보틱스 민법 규정에 관한 집행위원회의 권고를 포함한 결의안'이 있다. 세계적 철학자, 윤리학자, 법학자, 공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논의 했다고 하니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가장 부정적인 것은 핵무기에 이용 되는 것이고, 가장 긍정적인 것은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는 도덕성을 겸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은 모든 출발은 인간이며 첫 번째 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심각하게 받아들여 할 것이 생명공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모든 법규와 원칙이 존재하더라도 다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의료윤리의 4원칙'을 자율성 존중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선행의 원칙, 정의의 원칙을.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와도 변하지 않을 분야로 간호가 있었다. 사람의 생병을 다루고 섬세한 감정이 포함된 간호는 기계인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도덕과 윤리 과목을 더 많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논의 한다면 4차 산업혁명도 두렵지 않게 잘 이겨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가 왜 이토록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되는 점이다. |
디지털 시대의 하이테크놀로지가 어디까지 왔는지 그 기술의 수준을 살펴보며 빅데이터와 초연결사회인 디지털 사회의 특성 및 노동경제, 정치, 사회문화에서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면들을 모두 다루면서 학문적 범주를 넘나들며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각 장을 독립하여 한권으로 출판해도 충분할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책이며 빅데이타 기반의 초연결망세계, 생명공학, 로봇공학기술처럼 미래 산업과 시장을 지배할 현재 기술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호모데우스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나올 만큼 바이오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빅데이터기술의 발전속도와 발전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생명공학기술은 신체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생명정치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AI 생명에 대한 거시권력과 담론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도식화하여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욕망이 과학적 혁신을 끌어들이고 과학적 혁신이 자본주의적 욕망을 끌어들여 자본 국가 과학기술의 유착은 강화되고 영리적으로 생명을 이용하게 된다. 견제세력이 없으면 가까운 미래에 호모데우스가 호모사피엔스를 지배하는 억압적 사회가 될 수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와 한국의 사례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시대 생명정치의 양상 등을 철학적 관점, 정치,경제적 관점 등 다양한 관점을 깊게 살피면서 과학기술의 도구화나 자본과 기득권정치에 포섭되지 않도록 날카로운 비판뿐 아니라 거시적인 대안 및 미시적으로 개인 단위까지 대안을 제시한다. 한국의 정치뿐 아리나 전 세계적인 증오와 폭력의 증가를 대대의 원리로 인류는 여러 위기가 중첩된 아주 위급한 상황에 있다 524쪽
기술의 발전이 인간 역사상 가장 많은 부를 만들어 내는 시대에 상위 10프로의 사람들이 40프로의 부를 독점하고 미국의 한 기업에서 최 상위자와 최 하위자의 임금이 297배의 격차가 발생한다. 많은 연구를 보면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경쟁과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따라서 폭력도 증가한다.사회적 모순이 심화하면 이타적인 해법보다는 이기적인 유전자로 인한 폭력을 증가시킨다. 인간의 상식과 교양이 가장 증가된 시대에 대량살상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히만의 유대인 대량학살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원인으로, 밀그램의 전기실험과 짐바도르의 감옥실험은 권위의 복종으로 폭력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밀그램과 전기실험과 짐바도르의 감옥실험들은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참여한 시민들이 서로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선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량학살의 원인은 동일성의 배제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혐오언어가 먼저 발생하고 대량학살이 시작한다. 인간이 한집단에 동일성을 형성하면 타자를 구성한다. 이교도, 유색인, 빨갱이를 구성하면 죽여도 좋은 존재가 된다. 백인 어린이는 때리지도 못하는 신부가 마야족이나 잉카족의 어린이는 별 죄책감없이 죽였다. 사는 곳을 기준으로 정치이념으로 동일성을 형성하여 타자를 차별한다. 피부색, 종교, 이념으로 타자화를 하면 타자들을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다. 대안은 무엇인가? 폭력의 대안은 대대의 논리다. 대대란 한국인의 고유의 사상이자 논리체계이자 삶의 방식이다. A OR NOT이 아니라 A AND NOT A라는 대대의 원리가 한국의 전통 문학과 예술 심층에 스며 갈등을 극복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서양에선 A이면서 A가 아닌 것은 모순이다.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에선 진리인 동시에 허위는 모순이다. 서양의 교육으로 세상을 양자택일로 바라본다. 대대는 A와 NOT A로 상을 그 자체로 직사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을 때 운동하지 않고 역지사지할 때 운동하며 변화한다. 음과양은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필수로하여 상호의존적 관계이다. 이것이 바로 대대이며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고 나아가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이 사라진다. 내안의 불성과 타인 안의 불성이 서로 드러나는 경계이다. 동일성에 포획되거나 환원되지 않는 차이 그 자체다. 두자아가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 눈부처이다. 서로 소통, 교감하여 공감을 매개로 대대를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동일성을 버리고 타자를 수용하며 변화할 수 있다. 불교의 교리인 화쟁사상, 승가의 전통을 마르크스와 결합하고 현 상황에 맞게 적용해 대안의 공동체로 제시하는 것이 눈부처 공동체다 494쪽 21세기 새로운 기술의 시대와 코로나 19라는 위기의 시대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환경파괴의 문제, 전지구적인 생명의 문제까지 아우르며 기존의 경제시스템의 틀을 벗어나 불교의 사상과 마르크스적 관점을 녹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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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인간이 기술을 기반으로 생명의 조작과 창조가 가능한 신의 지위를 얻게 되며,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한 매트릭스적 실존으로 탈바꿈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이 핵심에 디지털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1권에서 역사의 발전 단계에서 발견되고 정교해지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점점 진화하는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이것이 인공지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고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해 자본주의와 연결하며 문제제기와 대안을 논하고 있었다면, 2권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포착하면서 그 의미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2권에서는 먼저 구술시대와 문자시대를 지나 영상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 우리의 모습이 진정 우리의 의지와 주관에 의해 생각되고 행해지고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어떤 맥락 위에서 우리의 삶이 규정되고 조종되고 있는지 통찰한다. 여기에서 핵심은 아날로그 사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는 디지털 사회의 민낯이다. 특히 디지털로 모든 가치교환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수단의 정점에 있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 뿐,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 주체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다양한 활동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광맥 같은 역할을 한다. 온라인으로 기록되는 모든 행위가 모여 빅데이터를 이루는데, 이것이 거대 기업과 정부에 의해서 역으로 사용자들, 즉 국민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데이터의 문제와 관련하여 생명 자체가 데이터의 처리 과정이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인데, 이들은 모든 것이 데이터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간이 데이터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에, 알고리즘으로 계산되고 산출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임을 피력한다. 디지털 시대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에, 결국 아날로그 시대의 지사적 인간과 디지털 시대의 노마드적 삶을 종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여기서 이어령 선생님의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저자는 장자의 호접몽과 영화 매트릭스의 이야기를 하면서 가상과 실제의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고 있음을 말한다. 과학이 점점 발달하고 있음에도 인간이 순수하게 객관적인 세계에서 살 수 없다고 한다. 인간은 가상과 실상,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고뇌하고 방황하게 될 것이지만, 결국 이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존을 모색해가는 인간 본연의 능력이 회복되어야 함을 말한다.
지금보다 더욱 초연결사회로 진화할 것을 예측하면서, 저자는 사물인터넷을 매개로 한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공유경제의 영역이 활성화될 것을 전망한다. 어쩌면 이윤 추구와 상품의 교환의 무의미해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 불능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본주의가 공유경제마저 삼켜 더욱 고도화된 자본주의로의 진화도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이와 같이 고도로 네트워크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실존이 한낱 부품보다 못한 처지로 내몰릴 수 있음을, 그 부조리함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유한성이 도전받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생명의 순환, 한 생명의 죽음이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지는 전이의 의미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수십 억 년 동안 이어져온 순환의 고리를 단기간에 해치우려 하는 과학적 시도의 반자연적, 반생명적 행위의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과 공진화를 인간이 과학이라는 도구로 개입하며 초래한 위험의 원인이 자본주의와 권력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이 권력과 자본의 카르텔에 시민들이 생명정치의 구현을 통해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함을 피력한다.
* 네이버 북뉴스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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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2』은 코로나 팬데믹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당긴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저자 이도흠은 전작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를 통해 "슈밥이든, 제러미 리프킨이든, 이들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이에 대해 말하는 무수한 석학과 학자들은 아직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통찰하지 못한 채 껍데기만 핥고 있다. (중략) 이렇게 간주하는 이유는 크게 열 가지다. 첫째, 인류는 생명을 조작하고 창조하는 호모 데우스의 지위에 올랐다. 둘째,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는 초지능을 달성해 인간과 유사하게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공지능 로봇, 곧 안드로이드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뒤흔들 것이다. 셋째, 인간과 기계의 이분법이 무너지고, 인간이 석기를 제작한 이래 처음으로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는 역전이 일어날 것이다. 넷째,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물과 인간이 초연결되어 하나의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사물이 스스로 말하게 된다. 다섯째, 인류는 삼중의 현실, 곧 실제 현실, 증강현실, 가상현실에서 삶을 영위하는 ‘매트릭스적 실존’을 하게 될 것이며,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거나 전도하는 ‘재현의 위기(the crisis of representation)’는 일상이 될 것이다. 여섯째, 인간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포스트휴먼으로 거듭날 것이다. 일곱째, 뇌의 디지털 복제가 가능하여 디지털 상에서는 자신과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무한하게 복제하거나 영생을 누리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p.22)"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어 이 책 2권의 부제로 「4차 산업혁명과 간헐적 팬데믹 시대」를 붙이고 머리글을 통해 "집필 중에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 19는 세계에 혁신적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제 1권에서 설정한 의미로 읽는 인류사에 코로나에 대한 상황인식을 곁들여 '디지털 사회와 빅데이터', '가상/증강현실과 재현의 위기', '초연결사회와 공유경제', '생명공학과 호모데우스 : 연기적 생명과 죽음의 의미', '인류세/자본에서 생명위기와 생명정치'로 나누어 4차 산업혁명을 자연과학과 인문학, 동양과 서양을 융합해 분석하고,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 교육적 대안과 대안의 패러다임과 사회를 모색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어 자신의 전작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와 주제가 유사한 부분에서는 겹치는 부분도 꽤 있다"며 시인하고 "한계에도 이 책이 4차 산업혁명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전망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이 조금 더 잘사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털끝만치라도 기여하기를 소망한다"고 바람을 썼다.
우리는 이제 ‘간헐적 팬데믹 시대(The Age of Intermittent Pandemics)’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농장, 목장, 광산, 공장, 주거지 개발을 하고자 생태계의 순환을 담보해 줄 ‘빈틈’의 숲마저 파괴한 탓이다. IPCC는 2050년까지 탄소제로에 도달하지 않으면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팬데믹만이 아니다. 지금 38%의 동물이 멸종위기 상태다. 상위 10%가 절반 이상의 부를 점유하고 한 기업의 임금 격차가 300배에 이를 정도로 불평등은 극대화하였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 더해지면, 자동화/로봇화 한 가지만으로도 일자리 감축은 오히려 작은 문제이고 노동자들이 인공지능이 남긴 부스러기 일이나 하는 고스트 워커(ghost worker)로 전락하여 노동운동 자체가 무력화할 것이다. 우리는 인류사 700만 년 사상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대안은 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패러다임과 체제에서 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지평에서 미시적인 맥락에 이르기까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1, 2권 모두 인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대전제 아래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의 가장 야만적인 형태인 신자유주의 체제와 극단의 불평등, 간헐적 팬데믹, 기후위기, 인류세(ANTHROPOCENE)/자본세(CAPITALOCENE)의 조건에서 수행되고 있다. 인류가 이에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혁명’이 아닌 ‘개벽’에 가까운 이 흐름 앞에 과학기술을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패러다임과 사회체제의 대전환이 없으면, 4차 산업혁명의 끝은 디스토피아나 인류문명의 멸망이 될 것이다. 슈밥 등이 말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3차 디지털 혁명의 연장이다. 4차 산업혁명은 1, 2, 3차 산업혁명을 뛰어넘어 인류사 700만 년 이래 전혀 다른 세상을 열게 될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자의 좁은 지식의 인식으로는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방향이 기술의 차원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이고 기술혁명의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먼저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천국'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지옥'으로 향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책은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인문학, 사회과학, 경제학, 기술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한 내용을 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을 이루는 구체적인 기술로는 빅데이터, 가상현실, 증강현실, 초연결, 유전자조작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보편화된 기술로는 빅데이터를 들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빅데이터 형성에 필요한 자료의 수집 및 저장에 드는 비용이 크게 감소한 덕분에 빅데이터 기술은 손쉽게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빅데이터로 인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가 빈번해지고 정부나 기업이 어렵지 않게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폐해 또한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장 걱정하는 분야는 생명공학이다.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신과 다름없이 유전자를 조작, 변형할 수 있게 되고, 손수 생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되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의 공동 유산인 생명과 유전자를 특정 정부나 기업의 독점적인 상품으로 인정해 판매하게 될 경우 그로 인해 빚어질 혼란은 예측하기 어렵다. 도시화에 따른 자연 파괴와 육식 증가에 따른 동물권 침해 등의 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 생태계의 존속 자체가 위험해지고, 인간의 생존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현재 전 지구를 뒤덮은 팬데믹 현상은 언제쯤 해소될까. 현재의 팬데믹 현상은 백신 개발에 힘입어 조만간 해소되겠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앞으로 4~5년에 한 번꼴로 '간헐적 팬데믹'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인류의 자연 파괴에 따른 기후 위기에 의한 것으로, 어떤 학자들은 인류가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이 이제 겨우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은 기쁜 일이지만, 그 방향이 지구 생태계의 존속과 환경 위기의 해결, 인류의 생존 같은 거시적인 목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독자는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저자의 주장 이전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한 온전한 개념도 확립되지 않은 얄팍한 지식 상태다. 저자의 논리, 주장, 이론 등에 반론을 제기할 입장이 못 된다. 그러나 저자가 한 가지 인류 생존과 가장 직접적이고 단시간에 직결될 생명공학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또 디지털 혁명의 기술 집중으로 이뤄지는 시대적 변화를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인문학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크게 공감한다. 인류 생존,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1, 2, 3차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에 대단한 편익을 주고 풍요롭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늘 소외계층을 확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1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놀라울 정도의 기계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크게 줄여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단시간에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고 그들은 경제적 부를 쌓을 틈도 없이 사회 소외계층으로 밀려났다. 3차 디지털 혁명도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방식보다 월등하게 빠르고 양적으로도 엄청난 확장을 가져온 정보가 넘쳐나는데 정작 디지털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날로그 세대는 급격히 사회 중심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형국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제 4차 산업혁명은 이같은 비자발적 소외 계층이 밀려나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인식을 같이한다.
이 책의 특징은 기존 학설이나 이론과는 다른 점을 많이 기술했다. ①인류는 사바나 이전에 숲생활기부터 직립을 하였다 ②농경혁명은 신석기가 아니라 구석기에 시작되었다 ③농경보다 종교가 먼저 시작했다 ④농경사회부터 신분이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8,000년 동안 평등한 공동체였다 ⑤인류는 은유와 환유를 매개로 자연지능, 과학기술지능, 사회지능을 결합하여 인지혁명을 이룩하였다 ⑥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와 자원 경쟁에서 지거나 기후변동, 화산폭발 등의 외부요인 때문이 아니라 인구통계학적 요인 때문에 멸종했다는 것이다 ⑦자유의지는 허구도 실체도 아닌, 몸 전체의 네트워크가 뇌신경세포와 상호작용하며 이루어지는 것이다 ⑧딥러닝으로는 강인공지능을 제작할 수 없고 뉴로모픽 칩 기술로는 가능하다 ⑨자본주의 체제는 50년 안에 붕괴하거나 주변화할 것이다 등을 적시함으로써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의 부상에 따른 각종 이론에 비판적으로 분석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컴퓨터공학, 생명공학, 뇌과학, 로봇공학 등을 융합하여 분석하되, 인문학적이고 진보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200여 편에 달하는 최근의 국제 학계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여 융합했다. 이에 따라 아전인수식 연구를 지양하고, 대립되는 주장들을 치밀한 논증과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서 결론을 추출했다는 점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특히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조망하면서 ‘지금 여기의 인간과 생명의 자리에서’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AI가 시적/철학적 의미를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특허를 내지 않고 공개했다는 점은 대단한 성과를 이룰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 이도흠
약자의 입장에서 텍스트와 세계를 다르게 읽고 쓰고 실천하려는 저자는 변방에 서서 ‘수입오퍼상’과 ‘고물상’을 모두 지양하며 동양과 서양,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우리 이론을 모색하고 있다. 이 타락한 세상을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바꾸는 일에 좁쌀만큼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 화쟁사상을 통한 형식주의와 마르크시즘의 종합』,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등을 썼고 틱낫한의 『엄마』를 번역했다. 현재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시가학회와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로 있다. 한국기호학회 회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계간 <문학과 경계> 주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원효학술상, 유심학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연구재단 우수학자에 선정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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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점점 초연결사회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 사물, 공간, 데이터들이 인터넷과 지능시스템을 매개로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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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미래를 향한 조언이나 예측, 경제학적인 분석이나 사회학적 접근, 인류학과 미래학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 등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준비나 고민 등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 책이 갖는 특징적 요소나 저자의 논리나 주장이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해당 도서는 1권과 2권으로 구성된 책으로 다양한 분야를 접목시켜서 말하고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4차 산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상에 대해 진단하며 더 나은 미래와 사회를 위해 우리 인간은 어떤 가치에 주목하며 연결사회의 구현이나 더 나은 형태의 사회 인프라 구축 및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지, 질문하고 있다.
특히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일정한 논리와 주장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며 역사적 풀이나 해석을 가미하고 있는 측면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런 인류 문명의 성장과정을 분석하며 현재의 모습에 도달했고 여러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미 진행된 인공지능발 사회변화상, 로봇 등으로 표현되는 자동화, 기계화 열풍으로 인해 인간의 설자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산업혁명이 주는 동전의 양면성과도 같을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새롭게 등장하거나 떠오르는 분야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선 역사와 종교, 문명사 전반에 대한 접근을 통해 산업혁명을 조명하고 있고 중반 이후에는 인공지능발 변화상에 주목하며 우리는 미래를 어떤 관점에서 설계하며 판단해야 하는지, 또한 결과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의 역량을 어디까지 구현하며 우리의 삶을 드높일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결국 대중들이 바라는 정보나 지식을 의미하거나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하지만 결국 사회학적인 분석, 인간학 자체에 대한 논리와 구성 등을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사회의 변천사, 진화과정에 등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변화의 가속성,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지만 분명 또 다른 기회가 존재하며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람들의 역량과 또 다른 형태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의미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회는 진화할 것이며 이런 변화에 편승하지 못한다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형태의 대안사회, 모두가 불안해 하는 요즘 책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미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며 일정한 답이 존재한다고 풀이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2권, 읽어 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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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느끼는 바가 크다. 내가 몰랐던 분야에 이리도 방대한 지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책의 두께로 가늠할 수 있듯이 많은 정보가 함축된 이 책은 1권,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1편의 내용과 전혀 중복되거나 같은 정보가 기재되는 일 없이 책 제목과 같이 4차 산업혁명과 그에 따른 여러가지 발전된 산업군에 대하여 저자의 논리정연한 글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다. 이 책을 약 2주간 꽉차게 읽었다. 주말에는 하루에 거의 3시간 가량을 투자하여 집중적으로 읽었다.
2편에서는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의 뇌의 단련, 트레이닝에 대한 주제가 목차로 구성되었다. 이번 서평은 제 3장 인공지능의 쟁점에 대한 주제로 쓰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인간의 뇌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유난히 관심이 가는 이유는 얼마전 아이가 뇌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는 한창 무언가를 습득하고 배우는 시기이다. 마치 스펀지처럼 어른과는 달리 호기심도 많고 지식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터라 지인을 통하여 아이의 나이또래에 뇌 트레이닝이 가능하다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학교에서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뤘다. 무조건 외우고 상기시키고 또다시 외우는 반복학습을 통하여 공부를 했던 것이다 . 그러한 교육방식이 너무 당연하였고 교육도 그렇게 받았기에 자연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토록 무자비한 교육방식이 있었다는 것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요즘 아이들의 교육방식을 보면 이 책과 같이 ‘뇌 트레이닝’. ‘뇌새김’이라는 단어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예전 방식이 더 이상 교육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많은 분석을 통하여 과학적인 교육방식에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식 습득보다 사고가 자유로운 아이, 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 자제력을 갖춘 아이가 대접받는 세상이 오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굉장한 공감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차이이다. 이제는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설명하고 주장을 탄탄한 뒷바침으로 설득시키는 ‘자기어필’시대 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앞장서서 발표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면 손가락질 받던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본인의 의사가 분명치 않거나 주장이 없다면 도태되는 삶의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다. 교육의 커리큘럼을 보니 ‘내가 곧 뇌고 뇌가 곧 나다’라는 생각으로 뇌와 교육에 대해 공부했으며, 이후 좌·우뇌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들과 두뇌 트레이닝 놀이를 집중적으로 한다. 좌·우뇌 불균형으로 학습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된 아이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으며, 아이들은 원석과 같으며 갈고 닦으면 누구나 보석이 될 수 있다는 교육철학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그리고 4차산업혁명에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전보다 더욱 중요하진 창의력에 대하여 공감한다.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을 하였기에 이제는 뇌를 트레이닝 함으로써 알려진 뇌의 능력보다 몇 배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교육 커리큘럼을 보면 놀이교구나 퍼즐 학습이 암기식 교육보다 학습효과가 몇배는 높다는 이미 데이터로 입증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보다 좋은 효과를 내는 감성( EQ)를 개발하는 심상력 놀이, 순발력을 키우는 직관력 놀이 의 예시를 소개하며 자세히 알려준다. 또한, 사춘기에 두뇌가 잘 트레이닝되면 아이들은 충동, 반항, 폭력,감정 기복, 도덕성, 이기심, 이타심 등을 잘 조율하고 어떤 상황이든 지혜롭게 대처하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도 알고있다. 이 책의 방대한 주제에 대하여 한번 읽고는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다. 나의 것으로 체득하기 위하여는 수시로 반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2편 책은 단순히 쉽게 일고 지나칠 수 있는 책은 분명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앞설것으로 예상하지만 그에 맞는 우리의 학습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알게되고 느끼게 된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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