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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를 따라 길을 걷는다는 것은 민족의 아픔을 따라가는 일과 대동소이하다. 시인이 공부한 북간도-서울-교토-도쿄, 그리고 감옥에 갇혀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까지 5년여에 걸쳐 답사하고 쓴 저자의 이 책은 그러기에 아픔으로 점철되어 있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낸 동주의 행적을 쫓는 것은 진한 아픔이다. 그 젊은 나이에 이국의 땅에서 생을 달리한 것도 그러려니와 시대가 젊은 지식인을 고뇌의 지식인으로 만들어간 사실이 안타깝다.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커다란 민족의 설움이다. 저자는 그 길을 통해 동주와 민족을 일깨워 보고 있다. 우리는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져 본다.
문학을 통해 자유와 비상을 꿈꾸었을 교토에서 일상의 공간이던 곳에 갇혀 있었으니 동주는 얼마나 억울하고 절망했을까? 그곳에서 동주는 모국어로 쓴 글을 '왜놈의 글자'로 번역해야 했으니 자신의 시가, 자신의 삶이 모두 욕을 당한다고 생각했으리라. 이 고운 길옆에 갇힌 동주의 젊음이 서럽다.
니혼바시 마스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 메트로폴리스 도쿄를 바라볼 때 동주는 자연스럽게 이상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 번만 더 날아서 벗어나고 싶던 식민지 조선에서 그토록 동경했던 도쿄에 왔지만 결국 폐결핵으로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을 말이다.
릿쿄 대학 식당의 전경이다. 이 대학은 동주가 오래 머문 곳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에서 동주의 마지막 시 5편이 쓰였기 때문이다. 날짜가 확인되는 동주의 마지막 시는 ‘쉽게 씌어 진 시'로 1942년 6월 3일 창작 도는 기록됐다. <흰 그림바 1942.4.14> <흐르는 거리 1942.5.12> <사랑스런 추억 1942.5.13>과 날짜가 확인되지 않는 <봄>까지 다섯 편은 동주가 릿쿄 대학 시절 완성해 연전 동창 강처중에게 보낸 작품이다.
동주가 버릇처럼 '조선'을 되뇌었다는 우에노 공원은 그러나 우리 역사와 질긴 악연으로 엮여 있다. 메이지 시대 이곳은 박람회장으로 활용되며 박물관 동물원이 들어섰다. 이를 주도한 이가 이토 히로부미다. 그는 일본 황실 제도를 정비하며 총리 자격으로 우에노 공원을 근대식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동주의 시를 부끄러움의 미학이 들어 있다고 한다. 나라를 강제하고 있는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조국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그 설음을 언어에 담는다. 조국은 일제의 지배 아래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지식인으로 공부만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슬프고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이 언어가 되었다.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쓴 동주를 알며 저자는 부끄러움은 잊지 않되 자조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동주는 또한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일상을 간직해. 몇 줄의 글을 겨우 얻었다고 했다. 동주의 그 곡진함 또한 잊지 않고자 했다. 동주는 참 모순적이다. 고전적이면서도 모던하고 우울하면서도 세련되었다. 동주를 만나고 있으면 진한 향기가 난다. 그것은 젊은이의 지적 세련과 사랑이다. 그 사랑이 자신을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만난다. 동주와 같이 걷고 있는 저자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동주와 같이 물리적인 거리를 지우고 걷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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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소개된 책들 중 가장 읽고 싶었던 <동주, 걷다>. '靑年' 이라는 수식어와 맞춤옷처럼 어울리는 윤동주 시인을 표현한 듯한 파란색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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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소식이 왔다! 일본 교토에 세 번째 동주 시비가 세워진단다."로 시작하는 『동주, 걷다』 는 독립운동가이자 천재 시인 윤동주의 일본 유학시절을 비롯하여 그의 산책길, 등굣길을 직접 거닐며 쓴 여행 에세이겸 인물사와 관련한 내용이다. 여정의 시작은 세번째 시비가 세워진 교토 남쪽 휴양지 '우지 강변'이다.
우지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며 풍광이 아름다워 귀족들의 별장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근처에는 아마가세다리가 있는데, 동주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 사진 속엔 교복을 입은 스물 일곱의 청년 동주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다.
동주는 우지 소풍 직후인 1943년 7월 14일 일제특별고등경찰에 체포되었고, 약 1년반 후, 후쿠오카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45년 2월 16일)
우지의 시비가 세 번째 시비라면 동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비는 어디에 세워졌을까? 첫 번째 시비는 동주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곳, 도시샤대학 예배당과 하리스 이화학관 사이에 1995년 2월 16일 동주 영면 50돌을 기억해 세워졌으며, 동주의 시비 바로 옆에는 동주가 가장 존경했던 정지용의 시비가 있다.
동주의 시비 세 개를 모두 찾은 뒤, 저자는 동주가 하숙집에서 도시샤대학을 오갔을 등하굣길로 향한다.동주의 등하굣길을 따라 걷던 저자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동주'를 떠올린다. 그는 동주의 고종사촌 형인 '송몽규'다. 송몽규와 둥주는 북간도 같은 집에서 태어나 한마을에서 자랐고, 명동소학, 은진중학을 함께 다녔으며 잠시 떨어져있다 연희전문에서 다시 만나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이국 교토에서도 가까운 곳에 살았다. (동주의 하숙집과 몽규의 하숙집은 걸어서 5분거리다.)
그런데 저자의 시선을 따라 동주와 몽규의 등하굣길을 따라가다보면 곧 씁쓸함과 공포감을 선사하는 곳이 보였다. 그 곳은 동주와 몽규가 체포돼 갇혀있었던 '시모가모 경찰서'로, 동주와 몽규의 등굣길 그 언저리에 위치해있었다.
교토에서 체포된 두 사람은 후쿠오카 감옥으로 이감되고 그 곳에서 한 달 사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1장, 천년 고도에서 청년 동주를 만나다.>에 관한 내용이다.
이어지는 <2장, 일본의 신장에서 동주, 부활하다.>는 2019년 2월 17일 도쿄 릿쿄대학에서 열린 '시인 윤동주와 함께 2019'의 추도식으로 시작한다. 일회성이 아닌 열두 번째 열린 이 추도식은 동주가 눈을 감은 1945년 2월 16일을 염두에 두고 잡은 일정이었다. 첨언하자면 몽규의 사망날짜는 3월 7일이다.
릿쿄대학은 동주가 도시샤대학을 다니기 전 짧게 다녔던 곳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다.현재 우리에게 남은 동주의 마지막 시 다섯편이 이때 쓰였기 때문이다. 날짜가 확인되는 동주의 마지막 시는 「쉽게 쓰여진 시」, 「흰 그림자」, 「흐르는 거리」, 「사랑스런 추억」를 포함하여 날짜가 확인 되지 않는 시 「봄」까지 다섯편은 동주가 릿쿄대학 시절 완성해 서울의 연전 동창 강처중에게 보낸 작품이다.
릿쿄대학 답사가 끝난 저자는 도쿄에서 동주가 머물던 하숙집으로 향한다. 교토의 하숙집은 재판 관련 서류에 기록이 남아있어 찾기 수월했으나 도쿄에서의 하숙집은 릿쿄대학시절 동주가 일경에게 체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학교 자료였다. 릿쿄대학 학적부를 통해 얻은 정보로 동주의 하숙집을 들린 후 저자는 우에노 공원과 니혼바시로 향한다.
그런데 우에노공원은 우리 역사와 질긴 악연으로 엮여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메이지 시대 이곳은 박람회장으로 활용되며 박물관과 동물원이 들어섰는데, 이를 주도한 이가 이토 히로부미였다. 이토의 우에노 공원 조성이 왜 우리와 악연인가?
(*훼철 : 헐어서 치워버림)
그렇다면 이토는 왜 하필 창경궁을 공원화 한 것일까?
(*이어하다 : 임금이 거처를 옮기다.)
이 뿐만 아니다. 우에노 공원에는 왕인박사 (4C,백제인물,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 전파)의 기념비가 있는데 여기에도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우에노 공원을 지나 니혼바시로 가는길 '고서점 거리 진보초'를 경유한다. 이제 독자는 <3장, 현해탄에서 동주를 통곡하다>를 마주한다. 3장에서 저자는 후쿠오카 형무소로 향한다. (동주가 갇혀있던 후쿠오카 형무소는 사라졌고 현재는 후쿠오카 구치소가 들어서 있었다.) 1장과 2장은 교토, 토교 답사를 통해 동주의 삶과 흔적을 좇는 여정그린다. 반면, 3장은 후쿠오카에서 시모노세키까지의 답사를 통해 동주의 죽음과 부재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다. 아들의 유골을 안고 후쿠오카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동주의 아버지 윤영석 선생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심정을 누가 이해할까, 동주와 몽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엔도 슈사쿠의 『바다와 독약』이 언급한다 (p108). 필자는 이 책을 읽어보고자 따로 기록해두었다.
동주와 몽규의 죽음, 부재를 확인한 뒤 저자의 시선은 룽징 시내를 지나 명동이란 마을에 도달한다. 그 길 초입에는 '명동' ,'윤동주 생가'라는 한글이 새겨져있고, 그의 생가 앞에도 그의 생가임을 알리는 한글이 적혀있다. 동주의 생가로 알려져 있는 그 곳은 몽규가 태어난 곳이기도하다. 몽규는 동주보다 3개월 앞서 태어난다. 몽규의 어머니는 동주 아버지의 큰 누이로 동주에게는 큰 고모가 된다. 이는 <4장, 북간도, 동주로 기억되다>에서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장인 <5장, 동주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걷다.> 는 동주의 연희전문 시절과 서울의 산책길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말하는 동주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5장에서는 동주의 친구 '강처중' 과 후배 '백영 정병욱'에 대한 이야기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린 동주의 시를 만나보지 못했을 지 모른다.
책을 덮으며 시대의 비극이 함께한 동주의 삶의 흔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동주와 몽규가 조금만 더 버텨주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 안타까움과 함께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떨었다. 도서 『동주, 걷다 』는 가독성 면에서 좋다. 또한 근현대사이야기를 다시 한번 새기기에도 좋은 도서다. 다만 반복되는 내용들이 많다. 그 부분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주, 걷다 』의 저자 김태빈님께선 현재 『육사, 듣다 』 를 준비 중에 있다는 글을 읽었다. 이육사 시인,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그 기대를 품고 필자는 리뷰를 마치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