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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쌍둥이와 전쟁 상태라 사실 책 읽기가 정말 힘이 든다. 눈에 보이는 책은 전부 찢어놓을 기세라...숨어서 읽는 형편이라 더욱 진도가 안 나간다. 이 책을 사놓은지 꽤 됐는데 이제야 리뷰를 쓸 수 있을 정도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탐독가들은 일전에 고전속에서 좋은 글을 뽑아서 소개해 준 박수밀 작가님의 책이라 믿고 선택했다. 고전시대 지식인은 누구나 독서왕이었다. 책을 읽음으로써 힘든 현실에 낙담하지 않고 삶의 줏대를 세워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세종대왕은 책을 통해 세상을 경영하는 지혜를 배웠고, 이 충무공은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병법서의 구절을 새기며 각오를 다졌다. 이덕무는 책을 읽음으로써 가난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즐기는 자오의 삶을 살았고, 율곡은 자신을 괴롭히는 계모를 공경으로 품는 덕망을 갖추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책의 내용을 관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묵수하지 않았다. 책의 정보를 끊임없이 의심함으로써 새로운 진실을 발견했으며, 실질적이고 실천이 되는 독서를 지향했다. 독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 살면서 거의 유일한 취미요, 인생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고전의 탐독가들의 사례를 통하여 그들의 독서법과 세상을 이끌고 간 독서리더십의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정말 독서를 좋아하고 독서의 도움도 많이 받지만 가끔은 내가 왜 책을 읽는가를 물어본다. 특히나 아이를 낳고, 또 점점 지금 하는 직장일과 다른 분야의 책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독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해서 실천하는데 있다. 일을 살피지 않고 오롯이 앉아 책만 읽는다면 쓸데없는 학문이 된다." ---<자경문>
결국 율곡은 정치 일선에서 활동할 때도 실천에 뿌리를 두고 이념과 현실, 의리와 실제를 통합하는 실천의 정치 활동을 펼쳐 나갔다.
"누군가 힘들게 하면 스스로 돌이켜 깊이 반성해서 상대방이 감화하기를 기약해야 한다. 한 집안 사람이 변화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나의 성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구절이 많다. 역시 모든 답은 책에 있습니다.
1부에서 고전 지식인의 독서 행위가 각자의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되는지를 사례로 들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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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가들》 : 조선 지식인의 독서 리더십과 독서론 박수밀 지음 | [카모마일북스]
‘삶을 지탱하는 책읽기, 삶을 열어주는 책읽기’
조선 시대의 왕 중에서 정조는 호학 군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여러 지식인들의 독서와 삶을 다룬 책 《탐독가들》에 따르면, 정조는 또한 다양한 배경의 지식인들을 등용하어 업적을 남길 기회를 마련했다. 정조는 다산 정약용으로 하여금 자신의 강력한 개혁 정책을 돕게 했고, 다산은 거중기를 발명하여 수원 화성의 축성을 단축했다. 또 정조는 규장각에 검서관을 설치하여 이덕무와 같은 서얼 출신의 실력 있는 학자들을 등용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에서 한 가지 주목하게 된 지점은 정조가 승하한 후의 사건이다. 이른바 천주교 박해 사건인 신유사옥(1801)이 일어났던 것인데, 주축이 된 노론 세력이 천주교를 믿던 남인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천주교를 믿는 이가 있었던 다산의 가문에는 시련과 고난이 시작되었다. 둘째 형과 막내인 다산은 유배를 가게 되었고, 심지어 셋째 형은 참수를 당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다산은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 동안 5백 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중세의 말기 이탈리아의 시성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신곡》을 완성한 것이 집이 아닌 길 위에서였음을 떠올려보게 한다.《탐독가들》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일부인데, 여기에는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자신들은 망한 가족이며, 망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두 아들에게 ’너희들이야말로 진짜 독서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다’(57)고 용기를 주었다.
다산이 아들에게 이런 언급을 한 까닭은 ‘인생에서 어려운 일을 겪은 사람이라야 제대로 된 독서를 할 수 있다’(58)는 다산의 지론에서 나왔다고 한다. 집안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난 마당에 자녀들에게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독서가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이다. “(독서는) 날짐승과 벌레의 무리를 초월하여 큰 우주를 지탱한다. 독서야말로 우리의 본분이다”(58)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산에게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 행위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정조가 매우 아끼던 이덕무는 서얼 출신으로 검서관으로 공직에 나아가기 전까지 어떤 기회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가난하게 살았다.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굶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과였으리라. 겨우내 이불하나를 뒤집어쓰고 입김이 보이는 추운 방안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추위를 이겨내곤 하던 이덕무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겨울에 추운 외풍이 들어오니 《논어》로 병풍삼아 바람을 막고, 《한서》한 질을 이불 위에 늘어놓아 또 다른 이불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현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잘 와 닿지 않겠지만, 입김이 나오는 방에서 밤을 나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당장 내일 다시 눈을 뜰 수 있을지 모르는 여건에서 살았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이덕무와 정약용의 독서가 이들의 삶에 미친 영향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이들에게 독서는 고난과 시련에도 이들을 견디게 하고, 현실을 극복할 힘을 길러주는 삶의 과정이었다. 두 사람의 예만 보더라도 독서는 지식을 주고, 직업을 얻는데 유용한 것을 너머 삶을 이어가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반대로 삶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은 자만이 독서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다산의 생각에는 독서가 삶의 일부이자 연장선에서 함께 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 책에는 독서가 다양하게 삶에 영향을 미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교산 허균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갔던 것인지, 공직에 부임한지 10여일 만에 불교를 숭상한다는 혐의(불교 서적을 읽었기에)로 파직을 당하기도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결국 역모죄로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허균이 당대에 규정된 독서를 하지 않고,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세상의 모순과 진실을 절실히 깨우쳤기 때문이다.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허균처럼 책을 읽기 전과 후가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독서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다른 사람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또 결은 조금 다르지만, 저자는 전쟁에 임했던 충무공 이순신의 마음가짐은 유교 경전의 책읽기뿐만 아니라 역사서와 소설책, 병법서 등 폭넓은 독서를 통해 형성된 바가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은 《오자병법》에 나오는 말인데, 후대에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규정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 말은 책 읽는 무사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독서가 조선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들의 독서는 각자의 시련을 이겨나가는데 큰 힘을 주기도 했지만,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울러 《탐독가들》에는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독서법이 소개되어 있다. 일일이 여기에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저자가 관심을 둔 지식인들은 대체로 ‘실천적인 책읽기’를 한 인물을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 지식의 쓸모뿐만 아니라, 이들의 독서의 행위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주목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독서란 텍스트를 읽어나가는 일에서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삶과 상호작용하는 방편이었다. 이 독서가들의 지향점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실천하는 것’에 모아진다고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독서가 곧 ‘사물 읽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허균의 진보적 사상을 담은 《유재론》과 《호민론》에는 인간의 평등적인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이런 생각은 담헌 홍대용의 현실 비판적인 사상, 인간과 사물이 모두 소중하다고 본 생각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 시대 독서가들의 독서론에서는 ‘의문을 품는 독서’, ‘밑바닥 까지 캐는 독서’를 이들의 공통점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 독서관은 현실에 기반을 둔 과정이기에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관심 없이는 지속하기 힘든 독서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들에게 독서는 삶에 닿아 있어야 진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던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된 독서관 중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실학자의 독서론’에서 연암 박지원이 저자의 마음(고심처)을 읽을 것을 주문한 대목이었다. 동양 최고의 명저로 꼽히는 《사기》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을 당한 상태에서 저술한 책이다. 사마천이 흉노족에 항복한 장군을 변호하다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저자는 연암이 언급한 ‘나비 잡는 소년’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가짐이란,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으려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밀고 다가갔다가 망설이는 순간 나비를 놓쳤을 때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나비를 놓쳐서 겸연쩍어 웃다가도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인 것이다. 연암은 이 아이의 마음을 《사기》를 읽을 때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개 궁형을 당한 이들은 자살을 하게 마련이지만, 사마천은 그 울분을 참고 《사기》를 완성해 내었다. 어떻게 보면 연암의 비유는 사마천이 겪은 일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사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속상해하는 마음을 넘어서 울분 속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나갔을 사마천을 상상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거죽만 읽지 말고 작가의 고심을 읽으라는 주문이었다. 아마 우리 시대의 표현으로 하면 ‘공감의 독서’를 하기 위해 정신을 기울이고 상상할 것을 당부하는 말이 될 것이다.
또 《탐독가들》에는 연암의 독서법 말고도 세종대왕과 정조의 독서법에 대해서도 소개가 되어 있다. 물론 이들은 통치자로서의 입장에서 독서를 한 사례를 보여준다. 또 재능보다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경지에 이른 독서가 김득신의 사례를 만날 수 있었다. 번번이 과거에 떨어졌지만, 부지런히 읽고, 꾸준히 공부하여 김득신은 59세에 과거에 급제하고 공직에 나아갔다고 하다. 부족함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한 김득신의 독서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번에 읽게 된 《탐독가들》에서는 무엇보다 독서가 책을 읽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한 조선 지식인들의 독서관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금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서는 위로가 되어 주고, 삶을 계속 살아갈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여러 독서가들이 독서가 이들에게 미친 삶의 양상에 주목해서 따라가다 보면, 인간에게 어느 한 가지 견해를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데다 불가능하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유교 경전만이 옳고 이 경전들만을 읽으라고 한다면,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앎에 이르고 독서가에게 자유로움 또한 준다는 믿음을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겠다. 제도로 사람들의 삶을 구속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정신까지 구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산 허균이 시대를 너무 앞서서 태어나긴 했지만, 허균이 고심했던 사안들(평등한 삶, 차별, 신분제약 철폐 등)은 대략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이슈다. 비록 허균은 당대의 관습에 굴복하여 처형당했지만, 후세인들은 그의 사상과 작품을 여전히 읽고 감상하며, 그의 선견지명에 감탄한다. 이번에 《탐독가들》을 읽으며 여러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독서법뿐만 아니라 독서가 삶에 미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따금씩 나의 독서 목적과 독서 방식도 점검해볼 수 있었다. 독서가 우리에게 어떤 행위인지를 표현할 수 있는 마무리로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로 정리해본다.
“독서, 이것이야말로 인간 세상의 가장 맑은 일이다.”(55) -「두 아들에게」다산 정약용의 편지
[발췌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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