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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든 나라의 과학자, 분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설립의 산파역을 한 대한민국 1세대 과학자의 일대기인데 과학사책에서 회자되던 과학자들이 등장해서 놀라웠다. 정말 세계적인 석학들은 어나덜 레벨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학계에서도 지도교수, 동료들과의 인간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950년이 역사책 속의 아주 옛날이 아니라 100년도 안 된, 70년 전의 이야기임에 화들짝 놀랐다.
6.25 전쟁 부산까지 피난갔던 힘들었던 시절 중에서도 치열하게 공부했구나 싶어 너무 나태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하게되었다. 정근모 박사는 전쟁 중 부산 구덕산 기슭에 자리잡은 천막 교실 경기중학교에 1회 국가고시 전국 수석으로 경기중학교에 입학했고, 경기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학입학 검정고시에 수석 합격하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물리학도가 행정대학원 1회 수석합격자가 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행정을 맡을 사람도 필요하지만 물리학자가 부족하니 한국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공부하라고 미국 유학 장학금을 주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는 정근모 박사에게 원자력원 초대원장인 김법린 원장이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과학자가 되지 말고 귀국하여 한국의 미래 과학기술을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어라고 당부하셨다. 잘 되라는 덕담은 숱하게 들었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이야기는 처음이었고, 미국의 연구 개발 체계와 과학기술 인재 양성 제도를 자세히 공부하고 돌아오라는 구체적인 주문까지 하셨으니 역시 훌륭한 스승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고 1학년 때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수석통과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도 1년 다니다 유학을 떠나왔는데 미시간 주립대학교 자격시험에서 A를 받은 덕분에 석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박사 과정에 들어가 고교 졸업장과 석사학위도 없는 천재 소년은 23세에 응용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 물리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학생들보다 나이가 어린 '소년 교수'는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사우스플로리다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할 수 없고, 더 깊은 학문에 대한 미련과 유학을 온 본래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에 프린스턴대학교 핵융합연구소인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연구소(PPPL) 연구자 모집에 응시하였다. PPPL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과 연구하며 인맥도 쌓고 이론 물리학자지만 실험도 하였다. PPPL에서는 실험 아이디어는 누가 제안하든 참신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졌다. 업무 업적이 논문이나 특허 숫자 등 과거 업적이 아니라 획기적 안목이 있는지, 마우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내는지로 평가되었다. 아인슈타인이 평생 4편의 논문만 발표했지만 물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현대 과학기술 문명을 바꿔놓은 것을 기억하며 우리나라 또한 아이디어의 중요성과 참신성이 장려되는 과학기술 시스템을 운명해야 한다는 박사님의 생각에 적극 공감하게 되었다.
프린스턴 시절은 박사짐에게 과학자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는데 학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 시절이었다. 미국 과학 연구의 심장부에서 많은 과학자와 교류했는데 형님의 친구였던 이휘소 박사님과의 교류는 더욱 각별했다. 이휘소 박사님께서 42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그런지 오펜하이머 박사가 목요 학술세미나를 열었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는 대목은 정말 역사의 한 장면으로 아주 멀게 느껴졌다. 과학자 윤리에 대해 논할 때 늘 등장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그 유명한 오펜하이머 박사까지 등장하니 너무나 까득한 옛날 이야기같이 느껴졌는데 생각해보니 옛날도 아니라 정말 세상이 급변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대국 미국이 미래를 개척할 과학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끈질기제 기다리는 것을 MIT 연구교수와 하버드대학교 행정대학원 과학기술 정책과정 학생을 병행하면서 배운 박사님의 열정이 정말 놀라웠다. 수강생 중에는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미국보건교육복지부 장관으로 발탁되거나 원자력위원회 위원이나 미국과학재단 간부로 임명된 사람도 있어서 인맥을 넓히고 미국 과학기술 행정을 파악하고 훗날 도움을 받을 동료와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뉴욕공과대학교 전기물리학과 부교수 겸 플라스마 연구소장을 역임하고 1969년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카이스트 설립을 최초로 제안하여 600만 달러의 차관을 받아 카이스트 설립을 주도하였다. 카이스트 과학기술사회연구실을 설립하고 캐나다 국제개발연구센터의 지원을 받아 과학기술입국의 정책수단 연구를 수행하여 1980년대와 90년대의 대한민국 과학기술입국 정책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차례(12대, 15대) 역임하며 우수연구센터(SRC/ERC), 고등과학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및 국가핵융합연구소를 만들었고 항공우주 종합개발 계획을 수립·추진하는 등 그야말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역사의 산증인이다.
지식 전수와 시험 준비가 중심이 아니라 영감이나 감동을 주는 학자나 멘토를 만나 새로운 학문적 경지와 인격을 열어가는 스승과 제자들의 창조적 탐구 정신을 키워주는 교육의 필요성을 체감했기에 KAIST가 탄생하였다. 과학기술은 곧 인재양성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60년간 미국과 한국에서 교수 직함을 놓지 않은 박사님의 밀알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음을 과학도들이 기억했으면 좋겠고 그런 과학자들의 연구를 존중하는 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뇌유출방지를 위해 설립된 카이스트가 의대 진학을 위한 이탈율이 많은 학교 중 한 곳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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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국가가 된 것은 지난 100년간 이 나라를 성장시키고 이끌어온 많은 선배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유럽이 수 백년이 걸린 경제성장을 미국이 백 년에 해냈고 미국이 백 년에 해냈던 경제 성장을 한국은 20년만에 해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땀흘려 노력하고 무에서 유을 창조해낸 선배님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및 과학, 원자력, 통신, 물리학 등의 분야에는 정통한 선배님들 계시고 과학계의 원로들이 계신데,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1세대 과학자의 대표는 정근모박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국 한림원에 대한민국 과학자로 첫 번째 등재되고 과학기술처장관을 두 차례나 역임했던 정근모 박사는 대한민국의 현재 과학기술을 올려 놓은 1세대 선배 과학자입니다. 그 정근모박사의 자서전이면서 대한민국 과학 기술 발전의 지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지금 세대의 우리들이 잘 알지 못할수도 있는 지난 대한민국 과학 기술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독자인 내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던 과거의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정근모 박사가 미국에서 첫 공부를 시작하고 다양한 인재들과 함께 경쟁하고 협업하면서 과학자가 되었던 과정을 살펴보고 미국의 기술을 보며 조국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선배님들의 생각을 보게 됩니다. 미국과 소련이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하고 우주개발과 군비증축에 힘을 쏟을 때 대한민국의 기술 수준은 전혀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국 등 유수한 곳에서의 부름과 거액의 비용을 마다하고 조국을 위해 힘쓴 정근모박사의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의 과학이 발전했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정근모박사는 대한민국 KAIST의 창립에 이바지했으며 초대 부원장을 역임했었습니다. 이 과정을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설명과 박정희대통령 등 실존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보다보면 역사책을 읽는 듯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 삼성반도체와 다른 유수의 기술들의 시초가 되는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낯선 이름인 한국반도체가 1974년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그 당시의 작은 시작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르게 생각한다면 2021년 지금 투자하는 과학기술의 한 밀알이 50년 후에는 새로운 대한민국 1등 기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기술의 지난 역사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가난한 나라였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2021년 지금의 대한민국에게도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