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리랑>의 주연배우이자 감독인 나운규는 우리 영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급하기 위해 열정을 기울였던 모습을 이 책을 통해서 엿볼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영화를 하련다'라는 이 책의 부제는, 영화에 대한 나운규의 의지를 가장 잘 드러낸 문장이라고 하겠다. 36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루게 된 토대에는 나운규를 비롯한 초기 영화인들의 꿈과 눈물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나운규의 생전에 잡지와 신문 등에 기고했던 글과 인터뷰 기사들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 영화인으로서의 나운규라는 인물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일제 강점기의 엄혹한 검열 체제에서도 영화로 자신의 예술혼과 의지를 표출하고자 했던 나운규의 면모를 충분히 엿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아직 필름이 발견되지 않아 <아리랑>이라는 영화를 볼 수는 없지만, 당시에 소설화한 작품을 통해 그 대강의 줄거리는 알 수 있다. 이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소설로 보는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에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엮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소설과 달리 배우들의 연기로 의해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소설로 보는 내용은 영화 작품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나운규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러시아로 피신해 얼마 동안 방랑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비록 연재가 이어지지 못하고 1회의 기고에 그쳤지만, 책의 맨 처음 항목에 수록된 '나의 러시아 방랑기'에는 나운규가 그 시절에 겪었던 경험의 일단이 잘 드러나고 있다. 아마도 당대에는 나운규의 영화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들이 적지 않았던 듯한데, '내게는 조선 영화가 전부다'라는 1장의 글들에서, 자신을 둘러싼 평가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북돋우는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아리랑>과 사회와 나'에서는 당시에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아리랑>에 대한 자부심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영화뿐이다'라는 제목의 2장에서도, 역시 자신이 만든 영화들에 대한 후일담과 함께 함께 활동했던 영화인들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이 드러난다. 당시 나운규는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사실성을 중요시했던 듯, 경비 문제로 빈약한 세트를 만들어서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것처럼 보이는 당시 영화 제작 기술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하고 있다. 영화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던 시절에, 일단 만들어진 영화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기존의 투자자마저 잃을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당시 채플린의 영화가 소개되었던 듯, '예술가라면 세계에 나가 무엇을 보고 들어올까'라는 부제에 대한 답변으로 나운규는 '채플린과 그 예술을 보고자'한다고 자신의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 3장에서는 '다시 태어나도 영화를 하련다'라는 제목으로, 주로 나운규가 참여했던 대담들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에 수록된 '당대 인기 스타, 나운규의 대답은 이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나운규를 '당대 인기 스타'라고 소개하면서 그에 관한 기자의 질문과 답변으로 채워져 있다. 영화인으로서의 나운규에 대한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본인의 글과 말을 통해서 영화에 대한 생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미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영화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우리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한 나운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전설이 된 한국 영화의 혼불'이라는 표지의 소개가 나운규의 삶과 그 의미를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대중은 영화의 최후의 심판관이 아니냐. (나운규, 1930년)
이다출판사에서 펴낸 ‘나혜석의 말’ ‘안중근의 말’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다.
평소 나운규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대중적인 형식으로 나온 책이 우선 반가웠다.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나운규는 1924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1926년에 『아리랑』을 발표해 명실상부한 조선 대표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영화전문지를 비롯해 신문, 문예지, 대중잡지에 기고한 글, 기자와 한 인터뷰, 대담을 엮은 책이다.
지금 읽기에 어려운 말들만 고치고 그 시대의 문체를 최대한 살렸다.
와 이 책은 모든 면에서 내 취향 저격, 최애로 가득했다. 1920~1930년대의 대중 언론을 읽는 재미, 영화인의 애환, 그 피 땀 눈물을 담은 것까지.
일제강점기에 영화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지금 상상하기 어려운 애환으로 가득했다. 소설, 시, 글을 쓰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영화는 제작부터 수많은 인력과 함께 하는 공개적인 일이기에 검열이 기본이었다.
그 시절, 영화 각본을 쓰고, 촬영을 하는 일은 지금의 영화환경에서는 끔찍할 정도의 열악한 일이었다. 공식적인 검열은 당연시하는 가운데, 창작하는 당사자들이 ‘굴욕’적으로 스스로 검열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면 세 달 전 구상한 영화와, 극장에서 영사되는 영화가 천지 차이가 되는 일도 벌어지고, 나운규에 따르면 그런 일은 흔했다 . 시나리오 상에서 낮이 여러 이유로 밤이 되고, 심지어는 여자 캐릭터가 남자가 되는 등 치명적인 변질은 늘상 존재했다. 나운규가 대단했던 게 그런 상황에서도 ‘양질’의 영화를 만들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한 검열로 최종 영화가 너덜너덜해지고 발표되면 당연히 대중들은 외면을 하고 흥행은 참패한다. 나운규는 그것이 영화인들 주체의 잘못이 아니라, 산업 자체의 딜레마라는 걸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고 ‘창작’의 의미를 변동시키지는 않았고 지금의 독자로서 내가 감동한 게 그 부분이었다. 외적인 환경, 가위질을 당할 가능성으로 피해의식에 젖지 않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한 영화인. 그가 바로 나운규 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문화, 정서, 정신을 담은 문화는 철저히 짓밟혔다.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창씨개명을 하고 신문 잡지가 폐간되었으니 소설, 시, 영화가 태동할 수 조차 없었다. (친일 부역자는 제외하고)
나운규는 안타깝게 1937년 서른 여섯에 죽었지만 일제 정책이 극에 달하기 직전까지, 정말 피와 혼을 담아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영화를 하고자 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총독 암살, 조선총독부 폭파, 일왕 제거 등을 계획했으나 실패했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의 의거들을 소중히 기억하고자 한다.
‘영화’, 우리의 영화 산업이란 게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대에 나운규는 저러한 운동가들처럼 끝까지 아름다운 예술 창작을 하는 일에 헌신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고 가늠하는 나운규는 그러했다. 시대는 암울하고, 영화산업은 엉망진창이었지만 그 가운데도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영화를 꿈꾸고, 제작해 발표했다.
글 가운데는 자기도 이러한 영화들이 단점 투성이 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존재 자체’를 그 명맥을 끊이지 않게 하고 싶고 영화 작업이 자신의 천직이기에 포기하지 않는다고 썼다.
윤동주의 시를 지금 읽어도 시 자체로 아름다움에 감탄하듯이 나운규의 영화에 대한 애정, 온 몸을 불사른 창작 혼을 이 책을 통해 또박또박 읽으며 또렷이 접한 기분이다.
지금 우리가 영화 강국의 하나가 된 것과, 시대를 앞서간 나운규의 영화 사상이 전혀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신비하다고 까지 느껴진다.
영화를 안 만들었다고 해도, 시대가 어쩔 수 없었다고 후대는 평했을 텐데 굳이, 영화라는 대중 예술을 꿋꿋이, 때로 꾸역꾸역 이라도 해낸 나운규를 새삼 경이롭게 보게 한다.
한국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깜짝 놀랄 영감을 줄 것이고 1920,30년대의 매체에 실린 한 예술인의 생생한 목소리로서도 의미있는 역사적 사료가 될 것이다. <나운규의 말> 벅차게 추천한다. (리뷰어클럽을 통해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책 중에서 지금까지 제작된 우리 작품이 결코 완전하다는 말은 아니다. 전에도 말했거니와 불구의 작품이다. 이 불구를 완전한 물건으로 만들려는 것이 우리의 일이요, 보다 더 대중의 요구에 만족스러운 작품을 발표하려는 것이 우리가 한 시간도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이다. 왜 적대시하느냐 말이다. (1930. 5)
앞으로 조선의 작품은 혼이 있고, 정신이 있고, 피와 살이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 난센스의 시대는 지나간 것을 통절히 느낀다. 연극을 해보니 조선 문단에 좋은 각본이 없는 것이 새삼스럽게 개탄스럽다. 천품 있는 극작가의 출현을 재삼 바라 마지않는다. (삼천리, 1933)
조선은 10년 전 조선이 아니요, 우리는 10년 전 옛사람이 아니다. 단 네 사람이 움직인 <라루>가 8년 후 오늘까지 우리 가슴을 쓰리게 만드니, 조선 영화계에 명배우 네 사람이 없으랴. 돈으로 꾸며놓은 화려한 작품은 만들기 어려워도, 단 두 사람이 출연하고 오막살이 세트 하나라도 실력만 있으면 사람의 가슴을 찔러줄 작품은 만들 수 있다. 한 작품으로 끝이 된대도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 (조선일보 1935년)
절망적 무저항에서 재생을 얻은 조선 영화를 등에 지고 나갈 동무들의 건강을 빌면서 붓을 놓는다. (1936년 1월 1일)
도쿄, 교토는 지나던 길에 들러서, 그곳에서 나카무라니 다무라니 하고 이름을 바꿔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10원짜리 촬영소 심부름꾼 자리가 떨어질까봐 벌벌 떨며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조선 영화계가 빈약하다’는 타령만 말고 와서 일 좀 같이 해보자고 부탁이나 해놓고 돌아올까 합니다. (삼천리 1936년) ![]()
|
|
한국 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나운규 배우 겸 감독을 아시나요. 대표작 <아리랑>을 포함해 그의 작품들은 현재 만날 길이 없지만, 한국 영화 역사에 나운규 시대를 당당히 펼쳐 보인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이다북스의 시리즈 중 한국 최초의 여성 운동가 나혜석의 글을 엮은 《나혜석의 말》도 느낌이 참 좋았고, 이번에는 시대의 정신을 영화에 담으려 애쓴 나운규의 글을 만나봅니다.
나운규는 1902년에 태어나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1937년까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독립군 비밀 단체 활동을 한 바 있어 1993년에는 건국훈장을 추서 받습니다. 춘사 나운규라고 부르는데 춘사라는 이름은 2년간의 옥살이 당시 얻었다고 합니다.
신문과 잡지에 게재한 글과 대담을 모은 《나운규의 말》. 개인사보다는 영화인으로 활동하며 토로하는 당시 영화계 현실을 엿볼 수 있는 글이 많습니다.
연기력 갖춘 배우로 주목받으며 데뷔 후, <아리랑>에서 시나리오와 감독 및 주연을 맡으며 1인 3역을 두루 해내는 만능 영화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신파물, 번안물 중심 영화계에서 핍박받던 조선의 현실과 민중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영화화한 <아리랑>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습니다. 1926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조선 영화 최초의 대형 흥행작이자 문제작이었습니다. 해방 이전에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 무성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로 손꼽힙니다.
당시 일본인 사업가들이 출자해 세운 영화사에다가 걸핏하면 가위질 투성이었던 현실에서 어떻게 민족의 혼이 담긴 <아리랑> 같은 영화가 상영될 수 있었을까요? 수차례의 검열을 거친 데다가 감독 이름도 일본인으로 내세워서야 개봉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혼을 담은 영화로 평가받으니, 과연 어떤 스토리인지 궁금할 수밖에요.
책 《나운규의 말》 후반부에는 아리랑 소설도 실려있어 줄거리를 살펴볼 수 있는데, 그야말로 숨겨진 맛이 제대로인 스토리더라고요. 지금 읽어도 두근두근 대는데 당시엔 얼마나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을지 상상이 안 됩니다.
좌익영화인 평론가였던 서광제(책에서는 서군이라 부릅니다)와의 논쟁은 영화사에서도 유명한데, 이 책에서는 나운규의 반박글이 실려있습니다. 그의 영화가 비현실적이라 평하는 이들에게 되려 현실을 망각한 평이라며 조목조목 따지고 있습니다.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도 빵 터졌는데, '그러면 니가 만들어 봐라' 식으로 한마디 내지르거든요. 양심 있는 붓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혼내고 있어요. 그들은 허울만 좋은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비꼰 거죠.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고 있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요, 영화 비슷한 장난감이다. 우리는 이 장난감을 영화라는 수준으로 끌어가야 한다." - 책 속에서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한 작품이 발표되기까지의 사정을 속속들이 털어놓기도 합니다. 광대는 천하게 쳐온 당시 현실 속에서 배우를 신광대 취급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로 하기도 하고, 영화 기술의 부족한 상태에서 원하는 장면을 찍을 수 없어 대체하게 된 사정, 조선 내 영화 시장 규모의 빈약함에 대한 안타까움 등을 보여줍니다.
당시엔 결국 연애 타령하는 영화만 나오는 수준이었으니까요. 그 역시 자신의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고 불질러 버리고 싶다고 소회한 적도 있지만, 조선 영화를 어느 수준까지 끌어가고 싶었던 그의 의지가 그만큼 잘 드러납니다.
나운규는 '혼이 있고, 정신이 있고, 피와 살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애썼습니다. '불구를 완전한 물건으로 만들려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해외에서 당당히 조선인의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민족의 혼을 영화로 승화시키려 애쓴 나운규. 시대적 고민을 담으려 노력한 나운규의 발자취를 그의 글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다북스의 'OOO의 말' 시리즈의 다음 번 주인공은 누구일지 벌써 기다려집니다. |
|
지은이 나운규는 1902년 10월 27일 두만강 강변의 함경북도 회령군 회령면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한 그는 독립군 비밀 단체에 가담해 2년간 옥살이를 했는데, 춘사라는 호는 감옥에서 얻었다. 1923년 신극단 예림회에 가입했으며, 23세 때인 1924년 조선키네마 프로덕션 연구생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1925년 <운영전>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해, 이후 이경손 감독의 <심청전>에서 심봉사 역을 맡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농중조(새장 속의 새)>로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뛰어올랐다. 1926년 <아리랑>의 원작, 각색, 감독, 주연을 맡았다. 신파물이나 외국작품의 번안물이 넘쳐나던 당시 <아리랑>은 핍박받던 조선의 현실과 민중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영상화함으로써 한국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한국 영화의 중심인물이 되었으며, 그 후 10년간 무성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아리랑>의 큰 성공을 기반으로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며, 특히 1929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영화라 할 수 있는 <벙어리 삼룡>을 내놓았다. 1936년 <아리랑 3편>을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유성영화로 제작했으며, 1937년 병든 몸을 이끌고 만든 <오몽녀>는 흥행과 예술성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1937년 8월 9일, 오랫동안의 생활고와 과로 등으로 폐결핵이 심해져, <오몽녀>를 유작으로 남긴 채 사망했다. 당시 36세로, 죽기 전까지 그는 <황무지>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엮은이 조일동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여러 출판사에 몸담았고, 현재 이다북스에서 출판 기획을 맡고 있다. 이 책은 나운규가 신문과 잡지에 쓴 글과 대담을 묶었으며, 배열 순서는 신문과 잡지에 실린 연월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들어가는 말과 1장/ 내게는 조선 영화가 전부다, 2장/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영화 뿐이다, 3장/ 다시 태어나 영화를 하련다로 구성되어 있고, 부록으로 소설로 보는 <아리랑>이 실려 있다. 1. 내게는 조선 영화가 전부다 '나의 러시아 방랑기' 등 5편의 글이 실려 있다. '신변산화(身邊散話)'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배우를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다. 연극을 잘하면 "그놈 잘한다", 못하면 "이놈 집어치워라"한다. 50전이나 70전이나 더 싸게는 10전, 20전을 내고 입장했으니, '너는 내가 돈 주고 산 놈이니 놈이 마땅하다'는 것인지, '예전부터 광대는 천하게 쳐왔으니 너희들도 신광대이니 놈이 마땅하다'는 것인지, 어쨌던 배우로 극장에서 놈 소리 듣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작품을 발표할 때면 객석에서 어느 틈에나 끼어 관중의 평을 듣노라고 애를 쓰는데, 어쨌든 '놈'이다. 장사하는 사람에게도 사람, 농사하는 사람에게도 사람인데 왜 배우들에게만 놈인지 원인을 알 수 없다.(62~63쪽) 2.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영화 뿐이다 '개화당의 영화화' 등 6편의 글이 실려 있다. '<개화당>의 제작자로서'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극인 <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이란 작품의 제작 당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만 1년 만에 <개화당이문(開化黨異聞)>이라는 작품이 완성되었다. 어느 작품에서나 느끼는 바지만, 착수할 때에 가졌던 희망은 제작 중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 작품도 처음 준비할 때는 완전한 사극을 만들어 이름을 '개화당'이라고만 붙이려던 것이, 여러 가지 형편으로 완전한 사극으로는 될 수 없었고, 그렇다고 꾸며낸 이야기도 아니므로 '개화당' 밑에 괴이하게 글자들을 부쳐 <개화당이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78쪽) 더군다나 금번 촬영 중에 머리를 제일 아프게 한 것은 검법이다. 그때 유학생들이라고 이름만 일본 유학생이지 사관학교 몇 달 동안에 무슨 검법이라도 배웠을 리가 없고, 배웠다 하더라도 사진(영화)에 일본 검법 그대로 하는 것이 보이면 일본 구극 흉내를 낸다고 관객이 그대로 보아줄리가 없다.(81쪽) (...)시일이 급하고 그것 때문에 4, 5일을 허비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우리끼리 모여 하자니, 칼은 조선 칼을 한 손에 쥐고 일본 무사 식으로 덤비는 사람, 서양식으로 휘두르는 사람, 별별 우스운 일이 다 많았다. 그러노라니 작품은 우스운 물건이 되는 수밖에 없다. 이 검법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83쪽) 3. 다시 태어나도 영화를 하련다 '당대 인기 스타, 나운규 씨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등 3편의 대담과 2편의 글이 실려 있다. '조선 영화감독 고심담 : <아리랑>을 만들 때'에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800명이라는 많은 사람(엑스트라)을 출연시켜 <아리랑>을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 이렇게 해가지고 일을 시작했으나, 원체 수가 많고 훈련이 없는 사람들이라 뜻대로 될 리가 없다. 춤을 춰달라고 먹인 술이 너무 지나치게 취해 코를 골고 자는 사람, 평생 먹었던 불평이 한잔 먹은 김에 폭발해 저희끼리 여기저기에서 싸움이 시작되고, 그것을 말리던 각 대장들의 옷이 찢긴다. 매를 맞는 사람, 끓여 놓은 술국으로 배를 불리느라고 국솥 옆에 붙어 서서 떨어지지 않는 사람, 화가 난 이명우 군이 국솥에다 모래를 퍼 넣고 말았다. 노대 위에서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지르나 취중에 영화감독쯤의 존재는 문제도 아니다. 해는 벌써 기울어졌고, 일은 절반도 진행되지 못하고, 목은 쉬어 소리도 지르지 못할 지경이고, 자동차로 돈 1천원(엑스트라 출연료)을 1원 지폐로 바꾸어 들고나온 전주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화가 나서 몇 사람 때려도 보고 하는 중에 극장에서 나간 몇 사람이 중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니, 제 흥에 겨워 춤추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 점점 장면이 어우러져 들어간다.(135~136쪽) 나는 이 책을 통해 춘사 나운규와 그가 제작한 영화들, 초창기 영화 제작의 실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명배우 명감독이 모여 조선 영화를 말함'이라는 대담에서는 나운규 외의 모든 참석자들이 <아리랑>을 조선영화 최고작으로 꼽았다. '명배우 나운규 씨,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이라는 대담에서는 '아리랑' 주제가를 나운규가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여배우 캐스팅, 당시의 영화 제작 비용, 서로 병든 몸으로 작가 이태준을 만나 <오몽녀>에 대해 이야기 한 것 등이 기억난다. 오늘날 한국 영화가 세계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제작 초창기에 나운규와 같은 영화 배우, 감독이 밑거름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 영화를 자주 감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다시 책 리뷰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궁금한 동시에, 제가 영화에 관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서도 한국 영화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선택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한국 영화를 잘 안 본 것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에게 나운규 라는 인물은 영화 많이 보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울림을 주기에는 미묘한 경우가 많이 있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한국 무성 영화 시절은 일제 강점기에 나온 작품이 대다수이고, 이로 인해서 아무래도 영화 자체가 검열로 인한 품질 저하 내지는 분노를 자아내는 이야기만이 남아 있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운규 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국사책에서 한 번 들어본 인물이라는 정도로 마무리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 해서 무성영화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잘 모릅니다. 흑백 영화의 경우 마저도 아무래도 여오하를 정말 열심히 보는 분들 외에는 잘 찾아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말입니다. 심지어 무성영화 배우중에 찰리 채플린은 알지만, 버스터 키튼은 모르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래도 나운규 라는 인물에 관해서 굳이 책으로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사적인 면에서, 그리고 한국사의 한 측면에서 나운규는 참 재미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이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 활동했던, 심지어는 식민지 노릇을 하고 있던 국가에서 배우 활동을 한 인물이었으니 말입니다. 보통은 당시 체제 선전으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던 상황에서 아리랑 이라는 매우 한국적인 면을 가진 영화의 작업에 참여 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아리랑 이후에 정말 많은 영화에서 배우와 제작자로서 참여를 한 면도 있고 말입니다.
사실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리랑 이라는 영화가 있다는 소개 정도로 넘어가는 상황이지, 실질적으로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일반적인 공부에서 이야기 하는 데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런 면으로 인해서 아무래도 잊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대에 어떤 영화가 존재 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다시 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영자원 통해서 몇몇 작품들이 복원되어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많죠.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당대 문화에 관해서 한 번쯤은 생각 해 볼만한 지점이 있고, 이를 따라가는 것에 관해서는 당대 문화 일을 하던 사람의 이야기를 반드시 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때 했던 이야기들을 정리 해 놓은 책입니다. 사실상 들여다 볼 이유가 충분하죠. 특정한 시기에 살던 한 인물의 직업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통은 해당 시기의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사실 매우 우리가 잘 아는 류의 이야기가 핵심인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그 시기에 얼마나 일본이 억압을 했는지, 그리고 그 억압으로 인해서 얼마나 힘들게 일을 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죠. 이 책 역시 그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기는 합니다. 실제로 당시에 매우 골치아픈 일이기도 했고, 그 문제에 관해서 매우 미묘한 상황이 매우 다양하게 벌어지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나름대로 생각 해 볼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인간사의 일부를 다루는 만큼, 분명히 매우 다양한 지점들중 하나인 동시에, 당시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점이니 말입니다. 동시에 이 속에서 얼마나 문화에 관하여 일본이 기묘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우리가 아는 지점을 통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기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제작자인 만큼, 그리고 영화사를 운영했던 사람인 만큼 아무래도 다루는 이야기가 분명히 해당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에 정말 상황이 나빴던 만큼 그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분명히 영화사 운영으로서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지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의외의 면모라고 할 수 있는 면이 되는 만큼, 나름 신선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라고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가게 되면 그 운영과 예술관의 충돌 이야기 역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술가로서의 마인드와 영화 제작자로서의 상업적 마인드 모두가 다 들여다 보이는, 어떤 면에서는 다른 데에서도 상당히 보기 힘든 귀중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말 그대로 ‘영화 제작’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만한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죠 덕분에 다루는 이야기들에 관해서 매우 재미있는 지점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자신이 거친 영화들에 관해서 역시 상당히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에서 매우 독특한 지점들을 몇 가지 가져가고 있는 상황인데, 당대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지점들을 들여다 보는 동시에, 민족적인 면에 관해서 역시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할 수 잇는 면모를 같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이야기가 매우 절절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들을 나름대로 많이 가져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운규라는 사람에 관하여 오직 그냥 아리랑 하나만 아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면모들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당대의 시대상을 보는 것과 민족에 대한 문제로 인하여 탄합 당하던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에서 벌어지는 예술산업과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충돌들 모두를 아루를 수 있는 책이라고 말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짧고 간결하기 때문에 매우 편하게 접할 수도 있고 말이죠.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