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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페리노의 회상 】 인류 평화를 향한 장 앙리 뒤낭의 염원 _장 앙리 뒤낭 / 주니어김영사
제70연대 소속의 한 척탄병이 있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간호해 주던 귀부인이 가족에 관해 물어보았다. “저는 독자이며, 부모님은 제르 지바에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제가 생계를 책임졌기 때문에 부모님이 지금 많이 힘 드실 거예요. 그 생각을 하며 몹시 괴롭습니다. 무엇보다 죽기 전에 어머니를 한번 안아 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부인은 급히 기차를 타고 척탄병의 부모가 사는 제르 지방에 갔다. 늙고 지친 병사의 아버지에게 2천 프랑을 건네고, 어머니를 밀라노로 데려왔다. 척탄병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지 불과 6일 만에 소원대로 어머니를 안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귀부인은 병사들의 간호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던 여인을 의미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이라고 생각했다. 앙리 뒤낭이 남긴 글이다. 앙리 뒤낭은 누구인가?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닐 것이다. 뒤낭은 1828년 5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와 신앙심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집안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특권을 한껏 누렸다. 성년이 되면서 자선적이고 종교적인 활동을 열심히 했다. 한편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었다. 1859년 6월 24일, 뒤낭은 사업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솔페리노 지방으로 가던 중이었다. 우연히 그 지역 카스틸리오네에 도착하여 그날 일어난 전투의 참상을 눈으로 직접 본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팔을 걷어 부치고 부상자들을 간호하기 시작했고, 이 경험은 장 앙리 뒤낭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솔페리노의 참상을 잊지 못한 그는 1862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같은 제목의 《솔페리노의 회상》 청소년판이다. 책을 읽다보면, 특히 전쟁 중 부상자의 상태를 완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진정한 ‘나눔의 삶’이 무엇인가? 내가 가진 것은 평소 생각보다 풍족하지 않은가 등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
뒤낭은 이 글을 읽으면서 이런 궁금점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슬픈 장면을 계속해서 언급하며 마음을 괴롭히는가? 어째서 비참한 광경들을 그토록 세밀하고 절망적으로 묘사해야 했는가? 그것이 과연 친절한 일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뒤낭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전시 부상자들을 위해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며 자격을 충분히 갖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전시가 아닌 평시에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전쟁 시 부상자의 치료를 돕도록 훈련된 구호단체를 모든 나라에 두자는 제안과 구호단체를 중립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국제적인 협약을 하자는 뒤낭의 제안은 유럽 전역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이후 이 제안은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출범하고, 국제회의에서 ‘제네바 협약’이 체결되어 본격적으로 국제적십자운동이 시작될 수 있게 했다. 뒤낭은 근대 인도주의 활동의 기운을 싹틔운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적십자운동 일선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그의 말년은 (그동안 그가 돌보지 못한 사업체 파산으로)가난과 궁핍 속에 처하게 된다. 1901년 노벨위원회는 제1회 노벨평화상을 장 앙리 뒤낭과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파시에게 공동으로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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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협약이 체결되면서 국제적십자운동이 시작되는데, 이것을 이끌어 낸 인물이 바로 장 앙리 뒤낭이다.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내편네편을 가리지 않고 부상병들을 구하는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처음 공식화하였다.
그 단초가 된 책이 바로 <솔페리노의 회상> 이라고 한다. 장 앙리 뒤낭이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과 체험을 이 책으로 1862년 11월에 출간했고, 유럽 전역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까지 이끌어 내었다고 한다.
이 책은 ‘솔페이노의 회상’을 옮겨놓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한 시대배경설명(이탈리아 독립전쟁 전개)과 저자의 생애와 활동, 제네바 협약 등도 앞뒤에 신경 써서 넣어놓았다.
_나는 이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여행자에 불과했다. 우연히 그 곳을 지나다 가슴 뭉클한 전쟁을 목격했고, 그 특별한 경험을 기록에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책에 개인적인 느낌만을 기록하고자 한다._ <솔페리노의 회상>에서
우리가 그의 행적과 글에서 가지고 와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온갖 이해타산적인 것들을 떠난 인류애, 생명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_인류와 문명을 위해 지금까지 말한 임무를 행해야 하며, 이 일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무이다.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협조를 얻고, 선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_p165
_진보와 문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임에도 우리는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인도주의와 진정한 문명 정신을 바탕으로 전쟁을 막거나 적어도 전쟁의 공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_p166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고 있는 분쟁들에 대해 부끄러울 뿐이다. 분쟁을 줄이고 없애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인권문제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기본 사상 및 태도를 장 앙리 뒤낭에게서 다시금 가져올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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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장 앙리 뒤낭의 책 <솔페리노의 회상>을 청소년판으로 만나봅니다. 사진과 그림 자료가 있어 역사적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현재 남아있는 유산을 볼 수 있어 읽는 맛도 좋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출신 장 앙리 뒤낭은 1859년 카스틸리오네 지역을 지나다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에 충격받아 부상자들을 간호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3년 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책을 펴냅니다. 이 책에는 고통과 슬픔의 현장을 묘사했고, 전쟁 시 부상자의 치료를 돕도록 훈련된 구호단체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 책 덕분에 국제적십자운동이 시작될 수 있었다고 하니 의미가 큽니다. 솔페리노는 작은 도시지만 국제적십자사가 창설되는 계기가 된 역사적 장소입니다.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은 유럽 곳곳에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의식을 심어줬지만, 나폴레옹의 패배로 유럽 열강들은 나폴레옹 이전 시대로 되돌아갑니다. 분열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놓이고 독립전쟁을 벌이지만 순탄치 않습니다.
1859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서 3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20킬로미터에 달하는 전선을 사이에 두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단 하루 동안의 격전. 바로 이탈리아 통일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솔페리노 전투입니다.
이탈리아가 승리했으나 양쪽 모두에게 엄청난 사상자를 냈습니다. 1859년 6월 24일 금요일에 약 4만 명의 연합군 사상자가 나왔고, 2개월 후에는 여기에 다시 4만 명이 추가됩니다. 여기서 숫자에 의문이 생깁니다. 15시간 넘게 계속된 하루의 전투가 끝나고서도 피해가 극심합니다. 총탄 속에서 살아남았더라도 제대로 치료와 간호를 받지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에 죽어간 겁니다.
솔페리노 전투는 군사 전략이나 승리의 관점이 아닌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럽의 대참사라고 말할 정도로 사상자 수로만 보면 보로디노 전투, 라이프치니 전투, 워털루 전투와 비교할 수 있는 19세기 유일한 전투라고 합니다.
장 앙리 뒤낭은 사업차 프랑스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가던 중 참상을 목격합니다. 아군과 적군을 불문하고 많은 부상자가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맨땅에 버려진 겁니다. 다행히 부녀자들과 여행자, 상인, 신문기자 등이 합심해 자원봉사대가 결성됩니다. 물과 먹을 것을 챙겨주고 상처 부위를 붕대로 감싸고 피투성이 몸을 닦아주는 일을 아수라장 속에서 해내지만, 턱없이 부족한 물자와 인력난에 지쳐갑니다.
솔페리노 전투의 직격탄을 맞은 카스틸리오네 지역은 특히 참담한 현실이었습니다. 부상병들은 고통을 견디다 죽어갈 뿐이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장 앙리 뒤낭은 무력감과 괴로움, 도덕적 갈등을 겪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과장해서 말하는 영광이 얼마나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 얻는 것인지를 롬바르디아 지방의 많은 병원에서 보고 깨달았다." - 책 속에서
장 앙리 뒤낭은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도덕심, 부상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고자 했던 인간적인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국적의 차별을 두지 않고 돌본 장 앙리 뒤낭의 모습은 자원봉사대들의 귀감이 됩니다.
<솔페리노의 회상>에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묘사됩니다. 차라리 전장에서 갑작스럽게 죽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비통함과 상심이 가득 찬 상황이 이어집니다. 현명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자격과 경험을 갖춘 봉사원의 필요성이 절실해집니다.
연민과 충격을 헌신, 인내, 자기희생으로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희망하는 장 앙리 뒤낭. 크림전쟁 당시 나이팅게일이 보여준 행동에 찬사하면서도 국제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은 없던 당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솔페리노의 회상>에서 합니다.
전시 부상자들을 위해 열성적이고 헌신적이며 자격을 충분히 갖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구호단체를 설립하는 것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구호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을 던지며 공론화합니다. 구호단체 설립에 관한 그의 생각은 결국 1863년 국제적십자위원회 창설, 1864년 최초의 다자조약인 제네바 협약으로 이어지며 국제적십자운동이 시작됩니다.
인도적 지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네바 협약 덕분에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구호단체가 각국 내에 설치되었고, 부상병을 돌보는 구호요원을 보호하고 이들의 의료 활동을 보장할 수 있게 됩니다. 사상이나 태도를 넘어 실천과 행동의 의미를 담은 인도주의의 발현입니다.
<인류 평화를 향한 장 앙리 뒤낭의 염원 : 솔페리노의 회상>에는 우리나라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함께한 대한적십자사의 44년 동안의 이야기도 간략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인도주의 정신과 연대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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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페리노의 회상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고 제1회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처음 알게 되었고 적십자와 제네바 협약의 유래도 알게 된 의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특히 청소년판 도서라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정가의 1%가 대한적십자사에 기부되는 책이었다.
솔페리노의 회상은 근대 인도주의를 촉발 시킨 솔페리노 전투의 참상과 구호활동 과정을 기록한 전쟁 르포 도서로 인류 평화를 향한 장 앙리 뒤낭의 염원이 담긴 책이다. 책의 구성은 서두에 이탈리아 독립전쟁의 양상과 이 책의 의미를 미리 예습할 수 있고 1부 솔페리노 전투부터 전투의 참상, 카스틸리오네, 브레시아, 밀라노에서의 이야기와 마지막 구호활동에 관한 제안들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부록으로 장 앙리 뒤낭과 제네바 협약,‘국제적십자운동 활동’ 연표, 국제적십자운동과 인도주의에 대한 내용도 실려있다. 앙리 뒤낭은 제네바의 경건한 칼뱅주의자 가문 장남으로 태어나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처음 방문한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곡물 사업을 시작했다.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솔페리노에서 벌어진 전투의 참상을 목격한 후 인도주의 활동을 결심한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노벨상 수여식에서 “당신이 아니었다면 적십자도 19세기 최고의 인도주의 성과도 이뤄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라고 평했고 그는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후 생을 마감했다. “인류애는 어디로 갔는가?”
솔페리노의 회상은 1859년 6월 24일, 이탈리아 솔페리노에서 벌어진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의 참상과 구호활동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현장 르포이다. 기록에 따르면 솔페리노 전투에서 24일 하루 동안 약 4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2개월 후에는 그 수가 8만 명에 육박했다. 당시 사업차 인근 마을을 지나던 장 앙리 뒤낭은 이 끔찍한 전투 현장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즉시 인근 마을 사람들과 자원봉사대를 꾸려 구호활동에 나섰다.
그는 아군, 적군 가릴 것 없이 전장에서 스러져 간 청년 병사들의 비참한 모습을 기록한 동시에, 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분투했던 구호 현장의 긴박한 상황을 책 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시시각각 변하는 병사들의 건강 상태와 심리적으로 느끼는 불안감, 다리 절단 수술을 하는 과정과 자원봉사자와 의료진들이 묵묵히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리고 말미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호활동을 위한 민간 자원봉사 단체 구성 및 국제 협약의 필요성을 제시함으로써 책을 쓴 의도를 강한 목소리로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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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1년 반을 지내고 보니 많은 일상이 바뀌었다.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일상이 되었고, 어딜 가나 큐얼 코드로 자신의 위치를 기록한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백신이 보급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요즘 백신에 대한 고마움이 어느 때보다도 커진다.
청소년이 읽기 좋게 많은 사진과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은 1862년 발간된 《솔페리노의 회상》을 새롭게 엮었다. 점점 각박해지는 인간관계, 팬데믹까지 가세해 누군가와 접촉하기 힘들어 고립된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때.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타인의 도움과 협동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다.
때는 1859년 6월 24일, 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이 한창이었다.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에서 프랑스-이탈리아 연합군과 이탈리아의 독립을 반대하는 오스트리아군 사이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우연이 히 곳을 지나게 된 앙리 뒤낭은 전투의 참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즉시 인근 마을의 마을 사람들과 자원봉사대를 꾸려 아군과 적군 구별 없이 부상자 구호에 나서게 된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다. 3년 뒤 이 기록을 담아 출판한 책은 이후 제네바 협약 체결(1864)과 국제적십자위원회 설립(1863)의 계기가 된다.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도주의, 인류애, 이타심, 자비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생명 앞에서 우리 편과 아닌 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의 목숨은 경중이 없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독립투쟁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했으며, 상세하게 지도로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 지명과 전투의 이해를 위해 아카이브 사진과 자료를 최대한 살려 실었다.
이 전투는 하루 동안 약 4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2개월 후에는 그 수가 두 배로 커진 8만 명에 육박했다. 참혹한 현장의 목격자인 뒤낭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만은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전상자들을 보호하는 국제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 192개국에 적십자사가 있고, 196개국이 제네바협약을 체결한 것을 토대도 전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네트워크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뒤낭의 정신은 지금 이 순간도 내전, 코로나19, 기아, 기후재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긴급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전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1910년 국제적십자운동의 창립자이자 제네바 협약의 발안자로 인정받아 제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참고로 이 책 한 권 구매할 때마다 정가의 1%가 대한 적십자에 기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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