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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의 역할과 상보성
"신학과 과학의 역할과 상보성" 내용보기
지난해 김도현 신부님의 ‘과학과 신앙 사이’라는 책을 읽고 상당 부분 신앙에 대한 과학 우월주의, 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했던 기억으로 신부님의 이전 책을 접하고 싶어 읽게 됐다. 순서적으로 이 책을 먼저 읽고 그 이후 ‘과학과 신앙 사이’를 읽었다면좀 더 원활하게 이해가 됐겠지만, 그럼에도 꼭 순차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강대 출판
"신학과 과학의 역할과 상보성" 내용보기
지난해 김도현 신부님의 ‘과학과 신앙 사이’라는 책을 읽고 상당 부분 신앙에 대한 과학 우월주의, 과학 만능주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했던 기억으로 신부님의 이전 책을 접하고 싶어 읽게 됐다.

순서적으로 이 책을 먼저 읽고 그 이후 ‘과학과 신앙 사이’를 읽었다면좀 더 원활하게 이해가 됐겠지만, 그럼에도 꼭 순차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서강대 출판부에서 펴낸 ‘학술총서’인만큼 이 책이 좀더 학문적으로 정리돼 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과학과 신앙 사이’가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신학이 과학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시작으로, 신학의 기본이자 핵심인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 및 예수님 부활 사건과 양자물리학 시각에서의 설명, 창조신학과 빅뱅우주론의 연관성(이 부분이 ‘과학과 신앙 사이’의 주요 내용으로 수정 보완돼 출간된 것 같다), 그리고 교회론을 네트워크 과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신앙이나 신학이 非과학적이며 실체나 증거가 부족한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무신론자들을 중심으로) 신학 또한 충분히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며, 실제 과학의 영역에서 사실 관계에서 설명되지 못하고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는 신학과 철학의 개념 안에 과학이나 일상 생활적인 학문들의 영역(수학/물리학/예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영역이 별도의 학문으로 떨어져 나오고 인문학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시대 흐름에 따라 인식되면서 마치 신학과 과학이 전혀 무관한 정 반대의 영역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신학이 과학을 포괄하고 있고 신학을 이루는 한 요소였었다고 한다.

사실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실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인간의 교만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실증할 수 있는 부분만 관측할 수 있는 부분만 설명하고, 특히 관측자인 인간 스스로가 한낱 미미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크고 넓은 영역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출발부터 인간의 오만함이라 생각해본다.

나 역시도 과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성서 모임을 하고 신학에 여러 내용들을 접하면서 더 없이 크나 큰 세상에서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부정한 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에게 인식의 새로운 내용을 안겨주었던,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논리적으로 신부님께서 설명해 놓으신 부분들을 인용해 가며 다시 한번 책 내용을 돌이켜 본다.

인간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해석하려 한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들 안에는 관찰자의 다양한 주관적 개입으로 인한 ‘관측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래서 아리우스(Arius ; 성부 하느님과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동일하지 않다고 주장해 파문당함)로부터 에우티게스(Eutyches ;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뒤에는 신성이 인성을 지배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주장)에 이르는 여러 편협하고 오류가 포함된 해석들이 나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중요한 특징인 상보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아울러 ‘관측 문제’로 인한 관측의 주관적인 한계성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분을 “두 본성 안에서 혼합되지 않으시고 변화되지 않으시며 분리되지 않으시고 나뉘지 않으시는 분으로 인식”하는 것이 유비의 관점 안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인간의 인식 영역 바깥의 성부와 인간의 인식 영역인 세상 안의 성자 간에는 죄와 타락으로 인한 머나먼 거리가 존재하지만, 얽힘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통한 ‘비국소적 원거리 적용’을 통해 “하나”로 일치되어 있으며, ‘구원경륜 안에서’ 성자의 상태를 인식함으로써 ‘바로 동시에’ 성부에 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성부와 성자가 성령을 매개로 서로 영원히 얽혀있는 상태’로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자체로 완전한 하느님이신 성부와 성자는 ‘얽힘’이라는 특유의 방식으로 하나의 쌍을 이룬다. 그 영원한 얽힘을 가능케 하는 ‘두 위격 간의 특별한 사랑과 친교의 끈’을 “성령”이라고 부른다. 위격 간의 이러한 얽힘은 단 하나의 상태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가능한 상태들’을 가진다는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역사 안에 주어진 ‘유일회적인’ 계시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탄생되고 퍼져나간다. 여기서 신앙의 내용인 계시는 이 세상의 역사 안에서 단 한번 주어지며 결코 반복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유일회적인 계시 내용은 그 자체로는 결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 계시 내용을 접한 사람들이 그 계시 내용과 자신들의 삶의 경험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며 그 계시 내용은 점차 권위를 얻어 나가게 된다.

“신앙이란 인간의 생각과 판단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정순택 베드로 교구장님)

예수 그리스도 역시도 자신만의 고유한 ‘파동-입자 이중성’인 ‘하느님-인간 이중성’을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분의 ‘하느님-인간 이중성’이 ‘삼위일체적 사건’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 결과가 바로 ‘예수 부활 사건’인 것이며, 이 사건 이후 예수의 육신은 ‘하느님-인간 이중성’이 온전히 드러나는 육신, 즉 양자물리학적 육신으로 전이된 것으로 관찰된 것이다.

“나는 예수의 부활은 사실 언어라고 본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가를 상상한 결과 부활이 생겨난 것이 아니고 예수의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신앙 고백이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양자물리학이 우리의 우주 전체를 설명함에도 우리가 거시세계에서는 고전물리학을 통해 우주를 설명하듯이, 예수 그리스도 역시도 양자적 존재임에도 우리가 거시적으로 그분을 고전적 존재로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그분을 하느님이신 성자 혹은 인간 둘 중의 하나로 바라보면서 그분을 해석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양자적 존재로서 받아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온전한 이해에 다다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 네트워크 모델은 교회를 ‘공동체적 계시를 위탁받은 자로서, 사공간적 흐름에 따라 동적으로 변화/변모하는 사회네트워크인 제자들의 공동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공동체 네트워크로서의 교회는 공동체성과 계시의 선포, 그리고 동적인 복음화라는 측면이 특별히 강조된 새로운 교회론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왜 신학을 신앙을 과학이라는 도구로 설명해야 하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조 질서와 무수히 많은 설명되어지지 못한 것들은 차치하고 무신론자들을 중심으로 ‘非과학적’이고, 검증 불가능한 것으로 신학을 치부해 버리는 시도들에 대한 오만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단순히 자기가 보는 것만 믿고, 눈에 설명되어지는 것만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도 그들의 시각에서는 다 非과학적인 픽션에 다름 아닐 것이리라.
이제는 과학이 신학을 위한, 신앙을 위한 도구로서 봉사하기를 그래서 전문적인 실제 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실제 지식과 교양을 신앙과 신학을 더 풍부히 하는데 쓰여지기를 희망해 본다.

책에서도 서술돼 있지만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의 ‘과학’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과학자들은 복잡한 지상의 현상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각 분야에 고유한 목적과 방법을 따라, 그들의 상관 관계뿐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발견합니다. 과학자들은 창조 질서 앞에서 놀라워하고 겸손하여지며,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의 사랑에 이끌리게 됩니다. 신앙은 나름대로, 각각의 특성을 가진 모든 창조된 실재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통하여, 모든 연구를 위하여, 모든 연구를 통합하고 융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만물의 원천이시며 목적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제공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