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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민족지도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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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시기 항일운동을 했던 민족지도자 중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어야만 했던 이유는 단지 민족주의진영과 대립되었던 좌익경력의 소유자란 이유때문이었다. 한국전쟁에 의해 첨예화된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 속에서 좌익 지도자는 반공적 역사가들에 의해 매장당하는 불운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
"잊혀진 민족지도자의 초상." 내용보기
일제강점시기 항일운동을 했던 민족지도자 중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어야만 했던 이유는 단지 민족주의진영과 대립되었던 좌익경력의 소유자란 이유때문이었다. 한국전쟁에 의해 첨예화된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갈등 속에서 좌익 지도자는 반공적 역사가들에 의해 매장당하는 불운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운형선생, 김원봉, 김성숙, 장건상, 이극로 등의 쟁쟁한 항일운동가들 역시 그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희생된 민족지도자들이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허헌선생 역시 그러한 반열의 인물이었다. 일제시기 민족변호사로서 독립운동가들의 변호를 도맡다시피 했던 그는 하나의 오점도 없는 항일경력으로 인해, 해방 후 민족지도자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사회주의적 이념에 공감하고 있었던 좌익진영의 인물로서 그는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의 일원이자, 남로당 위원장 등의 화려한 경력을 소유한 바 있다. 그러나 우익진영과도 융화할 수 있는 좌익온건진영으로 인식되기도 했는데, 조국의 통일을 위한 그의 헌신적인 활동들이 이를 입증해 준다. 남한에서 좌익의 활동이 불가능해지고, 북한에서 정권이 탄생될 무렵 그는 북한으로 정치무대를 옮겼다. 북한의 국회격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가 성립되면서 허헌은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역임하는 등 북한에서도 화려한 정치경력을 쌓은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좌익적 활동과 월북 경력으로 인해 남한정권과 남한의 역사학계에서 매도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허헌 선생의 장녀 허정숙 역시 좌익진영의 여성지도자로서 해방전 중국의 연안에서 활동하다가 북한의 정권수립 초기 그곳으로 정치무대를 옮겨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그녀는 북한의 여성지도자로 인민위원회 선전부장을 역임하는 등 아버지 못지 않은 정치활동을 전개했지만, 숙청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한편 허헌 선생은 6.25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조있고 절개곧은 민족지도자 허헌선생이 이 책을 통해 다시 역사속에서 복원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우리 역사학계의 과오를 바로잡는 첫 걸음이기도 하다.
k*****l 2002.06.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