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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삶의 구비 구비에 파울 첼란이 있었다. 20대와 30대의 어느 순간에서 뜻하지 않게 파울 첼란을 만나곤 했는데, 그건 그를 흠모하거나 동경하거나 그의 삶의 비애를 깊이 생각하는 이들이 내 주변의 곳곳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삶의 골목 어귀에서, 결국은 제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센 강에 투신해 스스로 삶을 마감했던 한 시인이자 고독한 인간, 파울 첼란을 만났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독일어를 모국어로 쓴다는 건, 나치를 경험한 세대에겐 끔찍한 경험이자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파울 첼란도 그러했는데, 그는 부모를 죽인 살인자의 언어인 독일어로 그 민족의 죽음을 생생하게 증언한 유대인 시인이었다. 유대인과 독일어. 모국어와 학살 경험. 이것이 그의 영혼을 어떻게 잠식했는지, 그 생생한 고통들이 명징하고 선명하게 드러나 때로는 읽는다는 행위만으로도 그 고통을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다. (마침 지금은 사순절 기간이다.) 파울 첼란 전집의 첫 권인 이 책엔 파울 첼란의 첫 시집인 『양귀비와 기억』(1952)이 수록되어 더 뜻 깊다. 이 책에는 「죽음의 푸가」가 실린 공식적인 첫 시집인 『양귀비와 기억』(1952)을 비롯해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격자』(1959),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1963)에 실린 시들이 실려있을 뿐 아니라 권말엔 시인의 육필원고로 수록되어 있다. 파울 첼란 전집은 총 다섯 권으로 출간되었는데, 1, 2, 3권은 시인의 생전에 출간된 시집들을 묶었고 4권은 초기작으로 부코비나 시절과 부쿠레슈티 시절, 빈 시절의 시들(과 산문 일부)을 묶었다. 유작을 묶은 5권은 생전 출간된 시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시들과 후기 시들, 쓴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시들이 실렸다고 한다. 이 다섯 권의 전집은 파울 첼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되었는데, 허수경 시인의 번역이라 더욱 의미 있다. 이제는 둘 다 죽은 시인이지만, 살아 생전 파울 첼란이 전달하고자 했던 의지와 감정들이 허수경 시인의 노력에 의해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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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45) 살인자의 언어로 쓰는 시 ? 파울 첼란 전집 1
한줄평 :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희미하게 시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도서명 : 파울 첼란 전집 1 글쓴이 : 파울 첼란 (루마니아 시인) 출판사 : 문학동네 쪽수 : 407쪽 발행일 : 2020년 12월24일 완독일 : 2021년 5월28일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논하는 재일조선인 서경식 교수의 저작물 「디아스포라의 눈」을 읽다가 그가 소개한 유대인 시인 파울 첼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서경식으로 인해 아우슈비츠 생존 증언문학가 ‘프리모 레비’를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서경식과 프리모 레비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경식의 저작 「디아스포라의 눈」에도 나오는 질문, 독일에서 유대인을 절친으로 둔 독일인들에게, 유대인을 도우면 개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당신(독일인이고 절친인 유대인이 있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 어로 저작물을 남겼지만, 파울 첼란은 독일어를 사용했는데,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민족의 언어인 독일어로 문학 작품을 남겨야 했다. 이 끔찍하고 지독한 딜레마 속에서 파울 첼란이 남긴 시들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는 어떻게 살인자의 언어로 시를 쓸 수 있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는 언어가 그것뿐이라면, 낙인찍힌 언어 그것뿐이라면, 얼마만큼 가벼워져야 자기를 버리고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더 가벼워졌다: 이방인들 앞에서 노래할 만큼. (47쪽, <밤의 빛줄기> 중 마지막)
하나의 언어에 감각을 낙인찍는다. 그 언어에게서 그들은 깨어난다, 그들은-: (389쪽, <그리고 타루사에서 온 책과 함께> 중에서)
서경식의 저작물로부터 파울 첼란을 알게 되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가장 최근에 파울 첼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그의 전집이 출간되었음을 알았다. 그렇게 소중하게 그의 책을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독일어로 된 시를 허수경 시인이 번역했다고 하는데, 나는 도통 그의 시가 분해된 채 내 눈으로 들어와 뇌에서 다시 조립되지 않고 그냥 흘러 내리는 것을 느꼈다. 미적분을 푸는 초등학생의 마음과 같았다. 포기해야 할까. 회사에서 일하다 잠이 올 때 조금씩 곱씹으며 그의 단어들을 주워삼켰다.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도, 파울 첼란의 시는 급하게 읽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부분 부분에서 그의 마음을 조금 엿볼 수 있다.
검은 것 속에서 더 검게, 나는 더욱 벌거벗었다. 배반을 하고서야 비로서 나는 충실하다. 내가 내가 될 때, 나는 너다. (49쪽, 〈먼 곳을 위한 찬양> 중)
그의 시에서 많이 발견되는 시어는 ‘눈’이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눈’이 매 시마다 들어가 있다.
<시간의 눈>
이것은 시간의 눈: 일곱 빛깔 눈썹 아래로 비스듬히 바라본다. 그의 눈꺼풀은 불에 씻기고, 그의 눈물은 김이다.
눈먼 별이 가까이 날아와 뜨거운 눈썹 곁에서 녹는다: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고, 죽은 이들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159쪽, <시간의 눈> 전문)
그는 집단 학살 수용소에서 신체적 눈, 마음의 눈을 모두 잃어버린 것일까. 눈꺼풀, 눈물, 눈먼 별, 눈썹, 눈에서 싹을 틔우는 것. 그의 마음은 온통 눈에 가 있다. 눈은 영혼의 창. 눈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삶을,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글을 통해, 시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눈곱만큼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래 시를 읽으며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아픔에 고개를 떨구고 만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으려 하네, 활짝 피어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 누구도 아닌 이의 장미로. (287쪽, <시편> 중에서)
(선한리뷰)
하지만 시인은 절망하지 않았다. 사랑과 희망과 믿음을 노래했다. 그것만이 마지막 희망임을 알기에, 시가 희망일 수 있을까.
나도 다시 시를 희망해야겠다. 시는 그래도 희망이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희망한다, 나는 믿는다- (343쪽, <케르모르방> 중에서)
그를 읽을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그것은 더욱 밝아질 것이다. (343쪽, <케르모르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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