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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배우고 말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말의 근원, 혹은 모국어에 대한 궁금증은 없었다 오히려 외국어에 대한 탐닉이 더 강하고 할까. 그렇다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공부하는 영어도 나는 모르는 척 살아가고 있으니까. 다만 제2외국어 선택을 했던 시절로 돌아가다면 그 언어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그럼에도 말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안다. 언어라는 게 한 나라를 상징하면서 역사, 문화, 민족성까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으니까. 우리 역사를 돌아봐도 그렇지 않은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언어학자 다나카 가스히코의 『말과 국가』는 제목 그대로 말과 국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치적인 입장과 사회학, 언어학의 입장에서 말은 그 역할이 다르다. 정치적으로 국가어는 하나여야 하고 그 말을 모두가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속어(방언)의 가치는 남다르다. 작게는 작은 마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며 크게는 한 민족의 존재가 사라지는 일이니까. 그러나 언어 그 자체로만 본다면 말은 누군가의 권력이나 지배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언어학은 올바르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미리 정해진 잣대를 대고 말에 임하지 않는다. 마치 생물학이 장수풍뎅이는 올바르지만 지렁이는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라틴어는 올바르지만 스페인어는 형태가 망가져 잘못되었다거나, 서양어에는 문법이 올바르게 갖춰져있지만 아시아의 미개한 언어는 문법이 엉망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77쪽) 말은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 적응해 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 문법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결코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말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문법은 태생적으로 말의 외부에 서서 말을 지배하는 도구인 것이다. 말은 현실이지만, 문법은 관념이자 규범이다. (86쪽)
사실 이 책은 무척 흥미롭다. 과거 그리스인들은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을 “말더듬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시작으로 언어의 고유성, 모국어, 속어, 문법, 등 다채로운 주제로 말을 연구하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말이 어떻게 사라지고 어떻게 부활하는지 그 과정을 알려준다.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 소수어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우선은 소수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니. 말이란 사회 내부의 제도이며, 심지어 ‘항상’최하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그 기반이 있다. 그런 내재된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혹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바꿔야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끄럽다는 감각을 주입시킬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하고, 출세와 권위에 대한 갈망으로 꼼짝달싹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211쪽) 언어학에 관심 있거나 공부하는 이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책이다. 국가와 언어의 관계, 모어와 국어에 대한 자세한 설명, 속어, 방언의 개념 성립과 정리까지 일반 독자인 내게도 유익한 책이었다.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어의 부활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 최근에 만난 소설 『사랑의 역사』에서 이디시어를 만났기에 반가웠다. 소설 속 이디시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할까. 또 하나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관한 진실도 놀라웠다. 감동만을 생각할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한 권의 책을 통해 알아가고 생각하는 게 늘어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말은 항상 사회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국가나 민족을 벗어나 형태를 갖출 수 없다. 다시 말해 국가는 방언을 뭉개버리거나 반대로 방언을 국가어로 조성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든 언어나 방언은 그 언어의 내적 특질을 간직하면서 언어 외적인 자장 안에 놓여 있는 것이다. (182쪽) 한류의 영향으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어는 어떤 의미일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궁금해진다. 단순하게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K-POP를 즐기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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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영어공용화론에 찬성한다. 어제까지 순한글전용에 반대하고 국한문혼용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면, 오늘부터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영어공용화론까지도 진지하게 찬성하는 바이다. 내가 순한글전용에 반대하는 이유는 순한글전용론자들의 언어관에 문제가 있고,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편협한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한글론자는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순박한 언어론이 가장 큰 문제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작가 고종석의 말대로, "정말 위험한 것은 불순한 게 아니라 순수한 것이다."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다보니 한자나 한문을 외래문화로 간주하여 배제하는 것이 순한글애용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다. 하지만 나는 한문이 우리 고유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언어가 태생적으로나 기질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매우 잡스러운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언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순박한 언어학자들이 없지 않지만, 이들은 대개 나치즘과 파시즘 같은 극우 정치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했다. 말과 핏줄에서 '순수성'을 너무 주장하면 언제나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일본의 언어학자 다나카 가쓰히코는 언어와 권력의 관계, 특히 모어가 국가어로 승급하는 '국어의 탄생 과정' 혹은 '국어의 발명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근대 국가 이데올로기와 사회정치적 파생력을 설명한다. 디아스포라의 이스라엘, 일본의 재일한국인, '프랑스 안의 비프랑스어' 등을 예로 들지만, 저자가 언급한 여러 사례들 가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에 관한 진실이었다. 저자는 모어와 모국어를 구분하고, 마치 모어를 정치와 민족, 문화와 같은 잡스러운 때가 잔뜩 낀 모국어로부터 안전하게 분리해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처럼 모어를 예찬한다. "모어는 국가라는 비언어적인 정치권력으로부터도, 문화라는 민족의 프레스티지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 민족, 언어라는 세 가지 항목이 결부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언어를 순수하게 개인과의 관계에서 파악하는 시점을 제공해준다."(54쪽) 하지만 나는 저자의 이런 모어에 대한 해석에 반대한다. 저자는 모어를 순수한 언어의 핵처럼 소중하게 간주하는데, 모어를 지지하기 위해서 얄궂게도 서구 근대 언어학의 아버지 소쉬르의 술어 '이디엄'을 빌려온다.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처럼 유명한 용어 대신에, 책에서 '고유어'로 번역한 소쉬르의 '이디엄'이 모어와 같은 그러한 언어의 순수한 예로 제시된다. 물론 '모어'와 '모국어'는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어는 소중하고, 모국어는 정치와 사회에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순한글전용론자들의 오류와 매한가지다. 저자의 말대로, 국어의 탄생은 근대 일본국가의 탄생과 불가분의 관계다. 동양 학교에서 '국어' 교과서에 '국어'로 표기된 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모국어'다. 19세기 일본에선 '국어', '방어', '일본어', '나랏말씀(황국어)' 등의 용어가 서로 경합했지만, 결국 '국어'라는 표현이 천하를 평정했다. 국어의 승리는 '국가'와 '국체'를 염두해 둔 언어 내셔널리즘의 승리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에다 가즈토시의 국어론'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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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의 다양한 언어들을 연구하고 또 탐구하려는 시도 가운데서 표현한 책 속의 주제. 이에 이 내용을 들여다보는 나에게 있어서 분명 '문자'와는 다른 말과 방언(사투리)에 대한 저자의 세세한 주장들은 그 나름 새롭고 신선한 지식으로서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것이 대한민국의 말과 언어 더욱이 글자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과거 훈민정음의 반포가 빠질 수 없듯이 한국은 그 시점의 반포(퍼뜨림)를 시작으로 한국어의 발전과 쇠퇴... 이후 계승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잡아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인이고, 더욱이 유럽 등지의 수 많은 지역의 말을 비교하는 시도에 비추어볼때, 넓은 의미에서의 '세계속의 말과 그 특징'은 분명 비교적 특이한 한국말의 형성 과정과는 다름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자가 크게 분류하는 말의 종류와 그 내용 중에서, 여느 국가의 통합(정복 또는 합병되는 과정)속에서 발현된 지방어의 특징과 함께 더욱이 민간사회와 상위계급의 자연스러운 분리 과정에서 갈라지기 시작한 계층간의 말! 일종의 문화어의 등장을 정의한 이 두가지의 예가 가장 (독자) 나의 기억에 남는다. 이처럼 이 책속에서 정리되는 수 많은 설명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현상(또는 주장)은 이른바 언어가 가지는 본래의 소통과 정보교류의 쓰임새와는 달리, 그 밖에도 부모의 말투(억양)에 익숙해지고, 어느 공동체 사이에서의 소속감을 가지게 하며, 더욱이 인간사회에 있어서, 어느 이상의 품격과 학습의 질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결국 언어가 보다 포괄적인 가치에서도 나름의 역활을 다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종의 문화어가 어느 국가.문명 속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 속에서도 그 밖의 방언이 소멸되지 않고 또 그 나름의 지위를 지니고 계승되어가는 현상은?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는 차이만 만들 뿐이다. 그 차이를 '차별'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항상 취미의 재판관으로 군림하는 작가, 언어평론가, 언어입법관으로서의 문법가, 한자업자 혹은 문법가적 정신으똘똘 뭉친 언어학자, 나아가 어설프게 주워들은 지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일부 비굴한 신문잡지 제작자들이다. 246쪽 예를 들어 오늘날의 일본이라는 나라의 언어를 떠올릴때, 단순한 지역 사투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옛 아이누의 언어와 오키나와(류큐어)가 모두 일본어로서 뭉뚱그려 인식되어지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아이누어는 공식적으로 일본어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에 나름대로 정리해보자면 이는 모두가 일본이라는 국가의 지형과 행정&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탓이 크다. 물론! 그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개척과 정복의 역사를 드러내면 결국 나름의(복종과 권위에 대한) 정의와 정당성 등의 의문을 품게되지만... 그래도 오늘의 현실을 판단할때 그 다양한 방언들이 최종적으로 현대의 일본이라는 공통체의 통합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대상이 되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허나 역사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도! (일제 강점기 떠올려보자) 얼마든지 일어났다. 그야말로 언어의 등장, 확산, 변질, 소멸, 계승... 이 많은 과정을 겪으면서 역사에 비춘 언어의 역활 또한 그 환경과 진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때문에 국가의 운명, 계층의 분리와 갈등... 이 수많은 예가 보여주듯 이 짧은 내용 만으로 이 책이 정리하고자 하는 바를 오롯이 드러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 그 각각의 무리들이 언어를 형성하고, 어느 언어를 품위있다 여기고, 스스로의 언어가 가장 영향력있는 힘을 발휘하는 예라 자부하는 그 갖가지 방식 속에서도! 이에 수많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수단인 언어는 묵묵히 그 본연의 역활을 다했으며, 이에 그 역활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앞서 여러번 언급한 인간과 역사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욕구에 대한 궁금증을 보다 생생히 이해하게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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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부르고 있는 국어라고 하는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또한 누구에 의해 ‘국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국가적 언어가 된 것일까요? 이 책은 언어연구를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언어들의 관계 그리고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AK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좋은 책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했던 것일까? 또한 수많은 나라에서 보여지는 말들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쓰여졌는지도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동물로 태어났는데 왜 언어가 다른지도 궁금한데요. 그렇게 쓰여지는 말이 언어로 만들어지고 그 언어는 일정 규칙에 의해 다른 언어로 재해석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을까요? 이 책을 읽다보니 ‘슬픈열대’가 생각났습니다. 아프리카의 언어가 점점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언어는 그만의 존재로 존중되어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간이기에 그럴 필요가 있지만 역사는 그렇지 못합니다. 한 나라에서도 여러 언어들이 존재했지만 기득권의 입장에서 다양한 언어가 걸림돌이 됩니다. 그로인해 언어의 통일화를 추구했고 이는 수많은 언어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예로 국가가 언어를 나라에 귀속시킨 예라고 합니다. 조선어가 아닌 한국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렇게 국가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언어의 중요성과 언어의 자유를 위한 것인데요. 문법을 적용함과 동시에 언어의 자유는 사라지게 됩니다. 방언이나 속어조차도 규칙을 만들려고 한다고 합니다. 국가가 있고 언어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가 있고 민족이 있고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국가가 만들어진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봅니다. 국가의 통제하에 언어는 규제를 당하고 해당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차별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합니다.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언어 고유의 언어는 반드시 존속시키고 적응하기 위해 다른 나라 언어들을 배우고 익혀 사용한다고 합니다. 나라를 잃어도 그들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언어가 살아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언어를 공부하는게 결코 쉬운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나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이 언어를 왜 사용하는지 누구에 의해 규정되어져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건 이익을 위해 변화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 뻗어갈지는 모르지만 그 결말은 좋지 않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번 시간에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좋은 책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오늘도 좋은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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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작가님의 <바깥은 여름>이라는 작품에는, 언어의 동물원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보존을 위한답시고, 그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를 한 곳에 모아놓은 이야기다. 내게는 마치, 언어의 죽음을 전시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말을 할 줄 아는 것이 인간' 이라고 한다. 세상에는 몇 개의 언어가 있을까? ![]() 나는 막연하게, 나라가 있는 수만큼 언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어떤 경우에 특정한 말이 '하나의 말'이라고 판단하여 계산에 넣을 수 있는지, 다시 말해 말이라는 단위가 과연 어떤 기존으로 나뉠 수 있는지에 존재한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태어난 국가나 민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태어나기 전 자신의 어머니를 고를 수 없듯이,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말을 선택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 "문법의 오류 따위는 문법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F.마우트너 문법이 없었다면, 글을 쓰면서 이렇게 골머리를 앓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문법의 기원은 무엇보다 올바른 말을 전하기 위한 도구였다. 모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말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한 해에도 얼마나 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났다 사라지는 걸 보는가? 바다에서 정처없이 떠도는 배를 고정시킬 수 있는 장치가 닻이다. 문법은 마치 말의 닻 같은 존재라고 느껴졌다. ![]() 보통 국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외에 말을 모어로 하는 민족 그룹이 국내에 존재할 경우, 근대 국가는 그 국가의 언어 지위 뿐만 아니라 비국가어의 지위도 법률에 의해 규정해 놓는다. 프랑스어의 경우, 프랑스어 이외의 언어에 의한 작명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사례도 나오게 되었다. 프랑스 국민이지만 프랑스어를 쓰지 않는 브르타뉴인이 브르타뉴어 이름을 아이에게 붙이자, 출생신고를 거부당한 것이다. 그 아이는 결국 청년이 되었는데, 그 뒤의 일은 알 수 없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처음 거부당했을 때 프랑스어로 이름을 지었다면, 아이는 평범하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하듯이, 프랑스어를 쓰지 않더라도 프랑스에 사는 사람이라면 프랑스어로 된 이름을 지어주면 안 되었을까? 언어에도 지위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그에 따라 차별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 언어가 유기체처럼 살아있다는 말은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을 때 알 수 있다. 그 변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변했을지, 어떤 계기에 의해 한번에 일어났을까. 이런 현상에 생물주의적 순혈주의를 가지고 들어올 때 생기는 것이 인종주의다. 순수 대 잡종이라는 말은 과학시간에 멘델의 잡종 실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부여해서 편견투성이의 가치관을 만들어낸다. 이디시어나 피진어, 크리올어를 통해 그런 편견과 직접 싸워낸 언어들을 통해 차별과 싸워나가는 언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 언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세어나와 나에게 스며드는 것. 듣고 배운 것이 그것 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고등동물인 이상, 인간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이 꼭 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그림이나 조각, 유물 등으로 우리는 언어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언어에 차이를 두고, 차별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새로운 말을 만난다는 것은 세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것과 같은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고 나보다 열등하다고 규정지어서 차별에 가둬버린다는 것은 인간은 참 잔인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국가와 언어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에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언어를 통해 국가도 알 수 있다. 진정으로 소통하고 문화와 사회에 쓰이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만났다. |
이 책의 Keyword : 라틴어, 속어, 모어, 모국어, 국가어, 마지막 수업, 자곤, 이디시어, 피진어, 크레올어 Before 이 책을 받고 보니 "말은 영혼의 집"이라는 글귀가 불현듯 떠올려진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말을 조사해 보면 된다. 그 사람의 관심사와 기대 수준 그리고 가치관 등이 그가 사용하는 말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중 속의 개인이라면 그 파급력이 미미할 수 있겠지만, 지명도가 높은 이라면 그가 구사하는 말이 갖고 있는 힘은 대단할 것이다. 오죽하면 속담에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는 말이 있었겠는가? 그만큼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더군다나 힘과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척도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언론자유'일 것이다. 활발한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해 도달한 결론이 최선은 아닐지라도 그 과정에서 공유하게 되는 경험은 그 사회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인터넷 문화는 그 익명성으로 인한 은밀함으로 인해 그 폐해가 사뭇 심각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서로에게 화살이 되어 꽂히고, 칼이 되어 상처를 남기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개인들끼리도 이렇듯 심각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데, 하물며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의 말이 갖는 힘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짐이 국가"라고 말한 프랑스의 어느 오만한 황제가 그 증거다. Reading 다양한 언어가 인정되게 된 계기는 대제국의 성립과 선교사들의 활동이었다. 국가에 의해 몇 가지 언어들은 명백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방언으로 치부되는 경우들이 있다. 언어가 민족보다는 국가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분류를 언어 자체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사람들이 언어에 사용하는 차별의 필터를 제거하려 했다. 언어를 그 자체로 보고자 한 것이다. 로마 제국의 라틴어는 유일한 문어로 존재하였지만, 여러 나라의 토속어들과 뒤섞이게 된다. 라틴어는 전통적이고 공식적인 '아버지의 말'로, 토속어들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모어)'이 되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모국어를 모어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외국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모국어가 바로 모어가 되기가 쉽지 않다. 어릴 때 익혔던 방언이 표준어보다 더 애틋한 감정을 준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단테는 라틴어 대신에 속어를 사용하여 문학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속어를 예찬했다. 이전까지 라틴어가 가지고 있었던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문법이 출현한 것은 국가 탄생이라는 필연적 이유가 있었다.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스페인은 새로운 국가를 수립하면서 카스티야 문법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반세기 뒤에 포르투갈 역시 문법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문법은 국가에 의해 주도되면서 말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닌 국가의 요구를 반영하게 되었다. 말을 지배하고자 하는 국가의 필요성이 문법을 낳게 한 근거라 하겠다. 또한 문법은 엘리트 위주의 교양을 뜻함으로써 계급성을 드러내게도 되었다. 문법을 기준으로 이를 준수하는 국가어 사용 계층과 속어를 사용하는 계층으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프랑스 역시 북부의 오일어가 남부의 오크어를 압도하게 된 것은 국가 권력의 힘에 기인한 것이었다. 또한 라틴어 역시 국가 언어인 오일어에 의해 그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오늘날의 프랑스어는 국내적으로는 다른 방언들을 핍박하고, 국외적으로는 라틴어를 축출함으로써 완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역시 '국어'의 탄생은 근대 일본국가의 탄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메이지시대 초기에 프랑스와 독일 등 서양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문화정책상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언어 국가주의를 대변하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무대인 알자스·로렌이 독일어 사용 지역이었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이라고 하겠다. 소설 속의 아멜 선생님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랑스어를 교육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모국어 사랑보다는 언어적 지배의 독선을 폭로하고 있는 셈이며, 오히려 식민지 지배자의 정치적 선동을 담아낸 소설이라고 하겠다.
이디시어란 10~13세기에 걸쳐 라인강 일대에 이주해 살던 유대인들이 해당 지역에서 익힌 독일어의 한 방언에서 유래한다. 독일어보다 보수적이었기에 오늘날 독일어보다 고대 중세의 독일어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참고로 독일어에 비해 프랑스어는 훨씬 중앙집권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에 근간을 두고 있었던 이디시어는 독일인이나 오스트리아인들로부터 방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단지 게토의 하층사회에서 사용하는 자곤(빈민굴의 은어)으로 취급받았다.
유대인 중에는 뛰어난 언어 학자들이 많다. 야콥슨, 촘스키를 비롯해 에스페란토어를 창시한 자멘호프가 있다. 유대인 중에 어학의 천재가 등장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유대인들의 유랑 과정에서 여러 언어를 섭렵해야 했던 사정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말은 일종의 사회제도다"(소쉬르) "언어는 민족이며 민족은 언어다" 많은 유대인들이 히틀러의 순혈주의에 희생당함으로써 그들이 사용하던 무너진 독일어 '이디시어'도 극심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두 가지 언어가 서로 접촉할 때 생겨난 제3의 언어를 피진(pidgin의 어원은 business에서 유래했다고 본다.)어라고 부른다. 유럽인과 접촉을 하게 된 토착민들 사이에서 생겨난 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일종의 '무국적의 외국어'인 셈이다. 피진이 모어화된 것을 크레올어라고 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독립투쟁 과정에서 이러한 불완전한 언어는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특히 파푸아나 비스마크르 제도에 퍼져 있던 피진어는 TOK PISIN(영어의 TALK에서 유래)으로 불리기도 한다. After 이 책을 읽으면서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언어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집중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전문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쉬르라는 언어학자의 이름을 언제 들어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한데, 이 책에서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의 명칭은 대부분 국가명과 합성어로 되어 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등. 이 책의 집필 의도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언어는 문자 언어인 글이 아닌 음성 언어인 말이었다. 이러한 말이 국가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러움을 잃고 인공적으로 통제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수의 언어는 그 차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 당하면서 강제적으로 통합되어야 했다. 프랑스의 다양한 언어들이 그렇고, 게르만 민족의 이동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방언들이 모두 그 개별적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쓴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일본 사례도 제시되고 있다. 아이누어와 류큐어 역시 그 다름을 인정받지 못했다. 류큐어는 완전히 중앙 일본어에 제압 당한 반면에, 아이누어는 소수의 사용자이지만 그 차별성을 유지하고 있는 건 언어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언어의 이름이 국가명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국가가 언어의 중요성에 주목했다는 반증이다. 일제가 그토록 조선어를 탄압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한 이유도 이에 따른 것이다. 언어는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 권위를 거부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이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자랑하게 된 이유도 다양한 언어의 섭렵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아울러 우리의 방언이 촌스러운 것이 아닌 자유로운 감정과 사상의 표현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점차 사라지고 축소되어 가는 현실이 못내 아쉽기도 하다. 이 글의 내용을 하나의 문장으로 간추려 본다면, "언어는 차이일뿐, 차별이나 편견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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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택과 상관없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국어를 사용해왔다. 출생지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내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영어를 구사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영어 공부를 평생 하며 골머리를 썩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나라의 말을 인식하기 이전에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어를 못하는 다른 민족을 말더듬이라고 불렀다. 러시아인들도 독일인을 보며 벙어리라고 했다. 그들이 자신들과 다른 말을 사용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와서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며 언어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지구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적게는 3000개에서 많게는 6000개가 존재한다. 언어가 없어지기보다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여러 종류의 방언이 사용된다. 중국은 5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민족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투리가 여전히 쓰이듯이 말이다.
방언을 언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방언은 표준어보다 가치가 열등한 말로 받아들여진다는 측면이 있다. 지역 특유의 말이긴 하지만 언어가 방언보다 격이 높고, 방언은 언어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방언은 언어의 하위 단위로 봐야 한다. 언어는 대체로 글로 작성될 수 있으나, 방언은 글로 작성되는 경우가 드물다.
어머니로부터 듣고 배워온 말은 '모어'다. 비슷한 단어인 '모국어'는 출생 국가의 언어다. 만약 한국인이 미국에 이민을 가서 2세, 3세로 살아가는데 영어를 사용한다면 '모어'는 영어다. 그리고 모국어는 한국어가 된다. 성인이 된 이후에 모국어를 모어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어의 특징은 문법적인 교육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체득한다는 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다르다. 말하듯이 글을 쓸 수 없으며, 글을 읽듯 말을 하면 어색하다. 말은 끊임없는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성질을 지녔다. 반대로 글을 다스리는 문법은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말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작업이며 말을 지배하는 도구다. 문법은 말에 대한 규칙이지만 창작이라는 행위와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프랑스 언어학자 앙드레 마르티네는 문법가들이 말을 죽인다는 제목의 논문을 쓰기도 했다. 문법을 지켜가며 글을 쓰는 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과 글에 대한 애착이 강할수록 외래어에 반감을 가질 수 있다. 우리도 한때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자는 캠페인을 하곤 했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는 영어의 범람에 위협을 느꼈고, 독일에서도 외래어를 사용하는 대신 최대한 독일어를 사용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이것은 민족감정을 드러내려는 선동적인 운동이 아니다. 외래어를 사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러지 못하는 계층 간의 단절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궁극적으로는 모국어의 풍요로움에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막는 방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세계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언어의 형성 과정과 성립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본질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사람마다 다르게 주어지는 소중한 모어가 표준어이거나 방언으로 나뉘며, 선진국의 언어인지 아닌지로 구별되는 이유를 고찰한다. 우리말 국어가 다른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유지되고 그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는 한편, 국가나 개인의 경계를 넘어 언어의 의미를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P.90 파울은 선행하는 다양한 방언들 중에서 공통어나 문학어의 규범이 나왔다는 사고방식이 인정되지 않은 채, 일단 먼저 규범 언어가 미리 존재했다는 사고방식이 매우 넓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런 태도 안에서, 문어만이 본래 생존권을 가지며 구어는 그것이 붕괴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는 과거와 같은 선입관에 여전히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언어사의 원리 中>
P.165 언어의 순화라고 해도, 현실 속에서 그 순수한 상태를 실제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순수한 상태라는 것은 외래 요소가 침입해오기 훨씬 이전의 일로, 관념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 기원에서 이미 불순했던 것이, 시대를 거쳐 내려온다고 순화될 리 없다. 요컨대 기원은 항상 순수하며 순수한 상태는 기원이라고 가정될 뿐이다. 기원이 순수하다면 논리적으로 그 이후는 보다 순수하지 않게 된다. 이 점은 훗날의 비교언어학의 기초를 이루는, 언어의 계보적 사고방식 안에서도 그대로 찾아볼 수 있는 사항이다.
P.187 말의 연구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무엇보다 말은 사회적 현상이다. 요컨대 말은 항상 사회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국가나 민족을 벗어나 형태를 갖출 수 없다. 다시 말해 국가는 방언을 뭉개버리거나 반대로 방언을 국가어로 조성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든 언어나 방언은 그 언어의 내적 특질을 간직하면서 언어 외적인 자장 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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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말과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관계에 대해 언어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인간에게 말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인간 사회 속에서 말이 차지하는 위치와 관계, 변천 과정을 인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고, 총 9개 단원에 걸쳐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의 언어사회학자 다나카 가쓰히코이다. --- 오래 전에 개인적으로 유럽 중부 국가인 룩셈부르크에 여행을 갔다가 특이하게 느낀 점들이 있었다. 영어가 공용어 중에 하나로 쓰이긴 하지만 실생활에서 생각보다 널리 쓰이지는 않고, 오히려 프랑스어와 독일어가 더 많이 쓰인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룩셈부르크 법률과 행정 문서는 독일어로 작성되고, 패션이나 음식, 예술 같은 문화에 관한 내용들은 주로 프랑스어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지만, 룩셈부르크 사람들도 학교 교육으로 다국어를 배우고 능통하다는 점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룩셈부르크처럼 여러 개 언어를 구사하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모국어가 무엇일까? 이 책에 따르면, 이런 질문은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어(母語), 모국어(母國語), 고국어(故國語)의 뜻이 다르기 때문에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과연 언어와 국가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인간에게 언어가 왜 중요할까? 인간에게 직접적이며 근원적인 관련이 깊은 말보다는 부차적이고 인위적인 글이 가지는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말과 글이 한 국가의 소수 지배계층의 독점물이자 지배 수단으로 사용된 사례들이 소개된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사대부 귀족의 반대에도 굴복하지 않고 백성 한글을 만든 조선의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언어학 관점에서 언어는 민족이나 사회 같은 언어 사용자가 중요하지 국가가 필요 없다는 점으로, 2천년이 넘도록 나라 없이 지내다가 새롭게 만들어진 이스라엘 국가에서 헤브라이어의 정착 과정의 사례는 충격적이고 놀라웠다. 한편, 우리에게 익숙한 국어라는 개념이 근대국가가 탄생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권력 세력의 지배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점도 놀라웠다: 표준어처럼 법률적으로 공식언어를 지정하는 것이 권력강화의 하나이자 지역이나 계급적 차별을 조장해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나 이런 행태가 역사적으로 동서양 모두에서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인류역사상 인간이 언어에 투영하는 오해와 편견으로 최악의 사례인 히틀러의 유대인학살 범죄를 보면, 언어에 대한 두려움과 중요성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 전반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끼치는 언어의 중요함을 알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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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사용되는 언어의 갯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할 정도로 무수한 언어가 사용되고 또 동시에 하루하루 소멸된다. 기사를 통해 단 한명의 사용자만 남아 문헌이 없기 때문에 사용자가 사망한 이후에는 연구조차 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말은 곧 권력이며 정치이자 민족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말과 국가>의 저자 다나카 가쓰히코는 말, 언어, 이디엄(저자는 이를 고유어라고 표현함) 등으로 흔히 '언어' 또는 '말'이라고 일축시켰던 부분을 하나하나 구분해 설명해준다. 나라별로 표준어 혹은 모국어라고 일컬어지는 언어와 함께 표준어라고 하기는 어려운 방언, 이때 방언은 특정 지역에 한해서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지역적 특색이 있다면 방언이라고 해도 표준어에 의해 어느정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하며,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방언이라는 표현에 수긍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 방언치고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와 국가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모국어'역시 선택할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재미난 사실은 모국어가 어떤 언어냐에 따라서 국가와 인종 등의 키워드와 맞물려 그다지 우월적이지 못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재미나다고 했지만 사실상 불운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 요즘 세대들이 흔히 말하는 '금수저','흙수저'가 모국어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 재미난 것은 아마 책의 초반에 설명한 그리스인들과 러시아인들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을 '외국어'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더듬지 못하거나 말을 할 줄 모르는 이들로 치부했다는 점이고 이런 경우가 먼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인에게 있어 독일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유사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이다. 독일어는 앞서 언급한 지역적인 부분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로서만 자리잡은 케이스라고 보면 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소리를 내고 또 그 아이가 어떤 언어를 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말을 할 줄 아는가'에 초점이 맞혀지게 된다. 그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만약 부모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아이가 구사한다면 어떨까. 앞서 언급한 그리스인들이나 러시아사람들처럼 우리아이가 말을 할 줄 모르고 '어버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모유와 마찬가지로 모국어역시 아이에게는 선택의 권한도 없는 동시에 상당히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엄마가 수유를 할 때 보통은 무언가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실제 유아교육서에는 수유는 물론 아이에게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의 효용성을 자세하게 그리고 거의 빠짐없이 전달해주고 있다. 모국어가 선택할 수 없다는 부분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나 아이의 모국어가 될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질 것이다. 아마 아이에게는 해당 언어가 모국어가 될 것이다. 이런 유대인들의 경우, 일찍이 조상들이 라인강이나 모젤 강변에 정주했을 때 익혔던 중세 독일어를 계속 사용해갈 수밖에 없었다. -중략-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의 '모어'였던 것이다. 그들은 게토 안에서 태어나,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가 이 말을 사용했고, 당연히 아이는 어머니의 그 말을 익혔던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배우지 않고 도대체 다른 어떤 말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207쪽 200여페이지의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말이 가지는 지리적 혹은 민족적 특성과 그 여파는 물론 모어에 관련된 내용까지 흥미로우면서도 가급적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은 말과 그 말이 가지는 힘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읽어보면 어느정도 답을 찾거나 답으로 가는 길을 마주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이런 이유를 떠나더나도 무작정 읽더라도 상당히 재미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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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말과 국가 동물분류학상 인간의 위치는 호모 로퀜스("언어적" 인간)!! 이 책은 일본의 언어학자인 다나카 가쓰히코 교수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언어에서 시작된 차별과 편견을 대상으로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저자는 말과 국가의 언어 형성 과정을 각 언어마다의 시대적인 상황과 당시의 역사 속에서 전하기도 하고 각 언어가 발생된 지역적인 특징을 살펴보는 등 깊은 고찰로 우리가 생각해 봐야할 언어와 국가에 대한 생각을 안내하며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언어학과의 만남을 통해 끌어올려진 언어학적 정신을 바탕으로,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져나간 언어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잡아주는가 하면 그 깊숙이에 도사리고 있는 엘리트적인 인간 멸시의 반인민적 성격을 짚어주어 반성하게 하고 알려주고 있다. 언어과학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우리시대의 다양한 언어의 보존이 주는 의미 등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돌아봐야할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은 작고 가볍지만 그 내용은 결코 작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작은 책에서 저자의 언어학자로서 세상에 던지는 소명과 같은 묵직한 의지가 크게 전달 되어진다. 전문적인 성격이 강한 책임에도 무난하게 잘 읽히고 그 이미도 친절하게 얻을 수 있는 작지만 힘이 있는 책이다. 그 누구도 이 땅에 태어나기 전 자신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 언어를 선택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는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하고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의 탄생 후 환경 속에서 습득하고 그렇게 언어를 사용하고 자라며 한 나라의 국민이 된다. 인간의 해방은 결코 언어학만이 추구하는 이념은 아니지만, 다양한 사회적 형태를 통해 언어를 상대로 하는 차이는 차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말이 깊이와 닿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언어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생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내포하는 진정한 의미와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를 돌아보며 이 땅의 모든 언어가 그 언어를 쓰는 그들만의 고유한 삶이 저마다 다르지만 다르다는 차이는 차별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언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라는 다르고 우리와 역사적인 마찰이 있었던 나라의 저자이지만, 언어학자로서 가야할 길을 반듯하게 가고 있는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이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