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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나쁜책'이라는 책에 나오는 우한일기에대한 설명을 보고 읽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여직껏 미뤘다가 드디어 읽어본다. 우한에서 태어나고 자라, 코로나19가 발견되고 도시봉쇄가 된 60일간의 기록이다 작가 팡팡의 시선에서 쓰여진 일기이긴 하지만 기록문으로써 가치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지 그리 오래 지나지않았건만 벌써 사람들은 그 병의 지긋지긋함을 잊어버렸다. 나조차 마스크 쓰는걸 다시 잊었다. 이 책에는 '사람간에는 전염되지않고 막을수있고 통제가능하다' 는 잘못된 의사의 말로인해 우한에서 급속도로 번졌고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서 화장장에 시신을 태울 자리가 없고 죽은 사람들의 주인잃은 휴대폰들이 거리마다 가득한 아비규환의 상황을 낱낱이 표현한다. 그와중에 기록에대한 '극좌파'들의 공격까지. 작가 진짜 갇힌채로 욕먹어서 제정신 아니었을듯. 읽으면서 코로나19에대한 짜증이 또 몰려왔다. 중국 고위공무원들은 코로나19를 종식한거조차 선전물로 이용하던데 내심 부끄럽지않을까? 저런 병을 만들고 확산됐고 60일간의 도시봉쇄와 직업을 잃고 아사하는 우한시민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전세계로 번져서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염치가 있다면 부끄러워야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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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년하고도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마스크 착용이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마스크 없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토록 극심한 변화를 가져다준 것일까.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음에도 원인도 치료법도 아직은 불분명한 코로나19에 대한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경우는 물론 건강하게 이 시기를 보낸 이들도 한동안은 코로나19로 인한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기가 힘들 듯 싶다. 아직은 이른 것일 수도 있지만 코로나19의 종식과 더불어 이후에 대해서도 준비할 필요가 분명 있다. 비교적 가까운 중국이지만 이 나라에 대한 나의 앎은 미천한 수준에 불과하다. 뉴스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우한이라는 지명은 내게 매우 낯설기만 했다. 도시 내 야생 동물이 자유자재로 유통되는 시장이 있고, 그 곳에서 박쥐 고기를 접한 이들이 이번 바이러스 전파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게 초창기의 주장이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해당 내용을 비롯하여 그간 제기된 코로나19 관련 다양한 의견의 옳고 그름을 다루지는 않았다. 오랜 기간 봉쇄 생활을 견딘 인물의 일기에 가까우니 지독히 개인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의 글이 주목을 받기는 쉽지가 않은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한으로 쏠린 상황이었지만 진실을 담아낸 글은 한없이 부족했다. 우리에게 진실을 선사할 글이 필요했다. 글의 성격이 개인적인지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저자는 젊은 층에 속하지는 않았다. 인터넷 매체에 크게 익숙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언론 통제가 가해지기 시작하자 그는 발설 통로를 잃을 뻔했다. 다행이도 그의 곁엔 그의 글이 지닌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한 봉쇄 해제 소식을 접하는 시점까지 저자가 적어 내려간 60회의 기록은 그렇게 세상 빛을 보았다. 글에는 뭐라 설명이 어려운 감정들이 계속해서 묻어났다. 하필이면 왜 우한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는지 의아했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에 화가 났다. 진실을 통제하기에 급급했던 비양심적 의사들을 향한 분노도 이어졌으며, 자신의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아니 한 채 비난하기에 바쁜 수준 이하의 사람들을 향한 연민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힘을 합쳐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도 모자란데 각기 다른 입장 뒤에 숨어 진실을 알려 들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갑갑했다. 만일 초창기에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감염자들을 철저히 색출해 격리 조치시켰더라면, 병상을 충분히 확보해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적절히 치료했더라면 봉쇄라는 극한의 상황만은 피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저자는 한탄했다. 몇몇 출중한 의사들이 마치 총알받이라도 된 양 바이러스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접할 때마다 무기력증이 몰려왔다. 활동 반경이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이는 자칫 삶의 의지를 놓게 만드는 극약 처방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조심스레 희망을 점지했다. 어려움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은 조를 짜서 생필품을 구해 배달했다. 몇몇 이들은 무려 6층에서 바구니를 내려 식량을 끌어 올리는 수고를 해야만 했음에도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자신이 구한 음식물의 일부를 타인과 나누는 일에도 그들은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생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봉쇄는 비단 우한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에서도 연일 사람이 죽어 나갔다. 난 시체를 채 묻을 여력도 없는 스페인의 끔찍한 영상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그들 중에도 저자처럼 기록으로 이번 비극을 남긴 이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은 독보적이다. 일단 문제가 발발한 최초의 도시 ‘우한’이 그의 생활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사람들의 머릿속엔 ‘우한’이란 지명이 제대로 각인된 상태다. 이 도시가 행한 모든 건 최초였는데, 문제를 한없이 키우기에 바빴던 초동 대처 또한 그랬다. 이제껏 훌륭한 문명을 이끌어온 인간이지만 한 번도 경험치 못한 낯선 상황 앞에 놓이면 무척이나 서툴 수밖에 없음을 우한의 사례를 통해 우린 제대로 배울 수 있다. 한 가지 더 이 기록이 가치 있는 까닭은 중국 정부의 철통 통제 덕분이다.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을 철저히 따르고 있으나 권위주의적 성향만큼은 여전히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중국이다. 저자의 기록은 올리는 족족 삭제됐고, 이번 책도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한 나라가 지닌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지, 그의 글에 담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제 본분에 충실했던 사람들이 말해주는 듯 했다. 세상을 이끄는 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