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지 감수성은 페미니즘의 다른 모습이자 도구이다. 시간순서대로 페미니즘을 시대별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20세기 전반: 신마르크스 주의로 학생운동, 베트남전쟁반대운동, 흑인인권운동과 함께 페미니즘 운동이 같이 떠올랐다. 공산주의자들은 반문화주의와 페미니즘을 포함한 계급 운동을 통해 미국에서 문화 투쟁을 벌였고 이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1940~5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여성학이 성 차별이 강조하고 이를 성정치학이란 영역으로 밀고 나갔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라는 관점을 강조하며 유럽에서 미국으로 퍼졌다. 1960년대: 미국 존 머니라는 의사에 의해 젠더 아이덴티티와 젠더 역할이란 개념이 생겼다. 1970년대: 존 머니의 의견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성정치학>이 펼쳐지며,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다. (모성, 가족, 결혼, 성의 해방) 1990년대: 주디스 버틀러에 의해서 이성애 정체성을 해체하는 해체주의 페미니즘과 성별 구별을 없애려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생겼다. 그리고 이는 제4차 유엔여성회의에서 젠더 이퀼리티라는 말로 페미니즘의 법제화로 이어졌다. 각 시대별로 페미니즘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으며 사용하는 이름/도구도 달랐다. 20세 전반에는 문화막시즘(차별과 혐오는 없게 만든다는 사회적 운동을 법, 헌법으로 만들려는 운동), 1960~80년대에는 개인에게 다중의 억압이 존재한다는 교차성 페미니즘, 1990년대에는 성차를 없애려는 젠더 이데올로기로서 페미니즘은 존재하고 도구로 이용했다. 최근에 나온 성인지 감수성은 성정치학과 젠더 이데올로기를 잇는 개념이자, 페미니즘의 역행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념의 모호성과 타당성 문제, 다른 성별에 대한 억압과 차별, 적절하지 못한 성교육과 검토할 필요성이 있는 정책, 자연적인 성별 차이의 무시와 관련된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의 무시가 있다. 개인이 성차별을 인지하는 정도는 당연히 다르다. 이를 어떤한 수치로 만들 수는 없다. 개인의 시각에 따라서 바뀌는 데이터라면 이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수치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드는 정책도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성정치학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다른 모습인 성인지 감수성은 남성이란 다른 성별에만 갖추어야 하는 필수 요소로서 강요된다. 이는 다른 성별에 대한 억압이며 성차별이다. 여가부에서 실시한 나다움 어린이책, 각종 성인지 감수성 교육 정책은 적절하지 않은 점이 많다. 동성애와 동성혼 그리고 성관계와 출산을 다루는 부분을 조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동성애와 동성혼을 이미 합의가 되어 권리가 되고 인정하는 듯한 책은 성교육에 적합하지 않다. 초등학생의 발달과정을 생각하지 않은 성관계와 출산에 대한 외설은 초등학생의 성교육에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나다움에서 성별 차이를 빼기 힘들다. 근육량과 호르몬처럼 어떻게 할 수 없는 성별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성별 차이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으로서 자아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사회적인 젠더만을 고려하며 생물학적인 성을 무시한다면 이는 개인의 정체성의 일부를 무시하는 바로도 볼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의 정체를 알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를 한다. 그러나 나는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에 나온 모든 의견을 동의하지 않는다. 비혼, 동성부부, 낙태 합법화, 페미니즘과 출산률 사이에 필수적인 관계를 입증하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의견이 나온다면 그렇다.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은 정보와 의견이 혼재되어 있다.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난 일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1970년대 세계적으로 출산률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산업구조의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 지역사회의 붕괴, 양육환경의 변화와 같은 다양하고 많은 요인들이 출산률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덕과 가족의 해체에도 적용이 된다. 페미니즘 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변화들이 존재했던 만큼 여러 요인으로 성도덕의 변화와 가족의 해체가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낙태를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무조건 출산이 건강한 사회구성원 생성과 사회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산을 통한 건강한 사회구성원 생산에는 좋른 양육 환경 조성과 교육을 포함한 사회제도 개편 그리고 부모의 안정감(심신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감)이 필요하다. 그런 요소들이 갖추어지지 않은체 태아의 생명만 중시하고, 태아가 태어난 뒤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결정은 단순한 인구 증가에만 집중한 체 건강한 사회 구성원 생성과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비혼의 증가와 동성부부의 존재가 출산률과 어떤 관계를 뛰고 있다는 증거가 이 책에서 안 나온 만큼, 이들의 증가가 출산률을 낮추었다고 볼 수 없으며 이들이 사회에 악영향을 주었다고도 볼 수 없다. 정확한 증거가 없다면, 근거 없는 주장은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은 어렵다. 길고 긴 페미니즘의 시작과 현재 상황을 한 번에 보여줄 뿐만이 아니라 정보와 의견이 섞여 있다. <성인지 감수성 트러블>을 읽기 위해서는 의견과 정보를 구별할 줄 아는 분별력과 스스로 증거를 찾고 비판할 줄 아는 독해력이 필수이다. |
|
“국민 혈세 31조 쏟아 부은 성인지 정책의 실체는?” 독일의 가브리엘 쿠비 박사는 성주류화 대신 가족주류화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정책, 남녀갈등을 조장하지 않고 남녀화합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펼치는 가정전문가들의 역할이 절실하다. (p.94) 끝으로. 제3부 ‘나다움 어린이책과 성인지 감수성’에서 전혜성 대표는 조기성애화를 조장하고 동성애와 동성혼을 미화해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나다움 어린이책’의 내용에 대해 알리며,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이 우리 사회에 들어와 성을 해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성인지 감수성 담론의 실체를 깨닫고 가정과 사회를 함께 지켜나가자고 역설했습니다.
|
| 성에 눈뜨게 하려고 부추기는건가요 성인지감수성 뭔 이름도 희한하게 붙여서 지어가지고 뭔 되도않는 성평등을 하자고 애들한테 이상한 가치관 주입시킵니까? 정신 이상한 동성애 애들한테 가르치고 페미 여자분들은 남자들한테 뭔 열등감이 있어서 그럽니까? 자꾸 이상한 단어 쓰면서 아이들 머릿속에 변태적인 성교육하지 말고 애들 교육기관 엉망으로 만들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