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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말대로 건망증이 아니라 어휘력이 부족해서 말을 못하는 거였다. “ 어떤 말이나 글의 의미나 어감을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눈치’가 부족하다가보다 ‘어휘력’이 부족한 탓이 크다. 말인즉슨 맞는데 묘하게 거슬리는 말도 ‘인간미’가 부족하다기보다 ‘어휘력’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걸하는 힘이자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작이며 어휘력을 키운다는 것은 이러한 힘과 시각을 기르는 것이다. 동시에 자신의 말이 상대의 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른’다운 어휘력이다.
어휘력, 감정을 품위 있게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인간에게 극한의 스트레스를 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정당한 분노임에도 억누를 수 밖에 없어 생기는 억울함은 모멸감과 비루함을 동반한다. 감정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내 감정을 적절한 어휘로 표현하는 일. 내 속을 풀어내는 것도 타인을 설득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다 말일 수 밖에 없다.
‘물건을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 ‘몸값’, ‘거치적거리다’, ‘걸리적대다’ ‘쓴다’, ‘치워버려’라는 말이 사람을 향했을 때 얼굴에 침 뱉기보다 더한 모욕 주는 말이라는 것.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도구나 수단으로 취급하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 하는 이가 최악이다. 인격은 연출이 불가능하다.
옛날 엄마가 쌀을 팔았다는 말을 했었는데 우리집은 농사도 안 짓는데 쌀을 어떻게 파나했다. 쌀을 돈 주고 산다는 의미를 가진 '쌀 판다'는 농경사회에서 나왔다. 쌀을 장에 내다 팔아 필요한 물품을 샀으니 쌀이 돈 대신이었다. 엄마랑 장호원읍내 장을 보러 나가면 버스에 내리자마자 쌀과 곡식을 받으려고 장사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집은 엄마가 화장품 장사를 하면서 돈 대신 쌀을 받아와서는 그 쌀을 장에 내다 팔았다. 그걸 돈으로 바꿔 필요한 물품을 사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쌀을 팔았다는하고 것이였다.
나는 돌덩리 뜨겁게 지져봐라 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 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 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 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
살아나는 나... 나는 다이아
난 다이야가 될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다이야였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 다이아였기에 깨지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 불꽃을 쏘아 올리리라.
책은 남의 관점이다. 어떤 관점이냐는 무엇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이기도 한데 의미가 없다는 것도 관점이며 열두명이 모였을 때 열세가지 관점이 나올 수 있다.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려 들면 책의 도움을 받아 자기 내면으로 입장하는 티켓을 받기 힘들다.관점이 올바르지 않는 상태에서는 극단적으로 편협한 어휘를 쥐려한다. 말을 하고 글을 쓸때 도사리는 유혹이자 위험이다. 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중요하거나 좋은 구절이 나와도 되도록 필사하지 않으려 한다. 독서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읽은 책을 징검다리 삼아 저자의 다른 책, 저자가 영향을 받은 책, 같은 주제를 담은 다른 저자의 착,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나 문화 관련 책 등으로 건너간다. 즐거움에서부터 모욕까지, ‘놀다’라는 어휘 하나의 폭이 넓다. 땅도 똥도 모음 하나 차이다. 누구는 무른 땅에 말뚝 받고 누구는 마른 땅에 말뚝 박는다. 부지런한 농사꾼에게는 나쁜 땅이 없다는 말이 옳기는 하나는 사는 게 고단하고 한 자 땅 밑이 저승이니 아뿔사! 정신차려 얻은 지혜가 ‘아끼다 똥 된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일한 만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보상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센티브를 독과점하는 이는 언제나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상실감은 정의가 무너졌다는 분노와 내가 이용당했다는 모멸감, 급기야 삶의 회의로 이어진다. 그래서 말을 잘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