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 목회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성경 따로 현실 따로인 경우가 왕왕 있다 게다가 성경에 대한 불신을 갖은 상태에서 목회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순한 활자나 고대의 경전으로 치부될 수가 없다 성경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본뜻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함에도 그렇치 못하는 모습이 주류이다 보니 애석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좋은 도서를 통해 다시금 신발끈을 동이게 되었다 |
| 주위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소재를 성경의 진리와 매칭시킨 저자의 혜안이 놀랍다. 그냥 넘어갈수 있는 가담항설이 결코 가볍게만 볼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진리와 연결된 일상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방법이란 생각도 스친다. 세상 살이에서 숱하게 느끼는 한계상황을 뛰어넘는 주님의 말씀이 더 달고 오묘해지는 순간이랄까?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에도 한계가 있지만 주의 계명에는 한계란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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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대학가에서 회자되다가 지금은 청소년들이 주로 쓰게 된 유행어가 있다. ‘인싸’와 ‘아싸’라는 신조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친화력이 좋아 모임 안에 잘 흡수되는 사람을 인싸(insider)라고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밖으로 맴도는 사람을 아싸(outsider)라고 한다. -한계란 없다 중 발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위축되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에 놓은 인류에게 복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복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바르게 제시해주고 있어 유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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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없는 지구는 그저 암흑의 얼음 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태양이 달과 별의 아름다운 존재를 위해 물러선다는 것이다. 해가 져야 세상이 밝아진다는 이 시의 역설은 자연스럽게 십자가의 역설로 이어진다. 해가 져 줘야 우리가 쉴 수 있는 밤을 맞이할 수 있다. 지구를 위해 기꺼이 매일 져 주는 해처럼 반드시 져야만 승리하는 신비한 역설이다. “No cross, no crown”(고난의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말은 “No sweat, no sweet”(땀이 없으면, 달콤함도 없다)이나 “No pain, no gain”(수고가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대가 없이 된 대가(大家) 없다”는 식의 말들을 파생시켰다. 그러나 원 속담은 이렇게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십자가 고난으로 얻은 영광의 면류관은 왕의 금관이 아닌 ‘가시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골고다 언덕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약 800미터의 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는 가시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하며 걸어 올라가야 하는 저주의 길이었다. 군중들이 침을 뱉고 야유하는, 온갖 조롱과 멸시 가운데 무거운 나무 형틀을 직접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는 가시밭길이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 끝,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가 섰다. 십자가를 져야만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이 역설의 현장. 오로지 가시로 가득한 길을 통과해야만 꽃길에 도달할 수 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럽고 포기하고 싶은 길이었지만, 그 길이 꽃길임을 아셨기에 그분은 묵묵히 걸어가셨다. -한계란 없다 중 발췌
죽음, 역병, 전염병이란 뜻의 히브리어 데베르는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에서 유래된, 뿌리가 같은 한 단어다. 세상의 중심에서 나의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데베르’를 통해 ‘다바르’해 주신다. 그렇다면 주님은 이 다바르를 우리 인생의 어디에 놓기를 원하실까? 성경 66권 중에서 정중앙에 위치한 시편 119편은 성경에서 가장 긴 절을 담고 있다. 무려 176절에 달한다.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개를 가지고 열덟 절씩 배열한 이 편은 온통 다바르에 관한 내용이다. 증거, 도, 법도, 율례, 계명, 판단, 말씀, 길, 강령 등 다양한 다바르를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무력함이 드러난 한계 상황에서 주님의 말씀은 빛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