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노레 드 발자크 <기자 생리학>은 1840년 작품이다. 원제는 기자들이며, 당시 유행했던 ‘생리학’이란 풍자 장르를 이용하여, 기자들의 행태를 마치 식물의 종을 나누듯, 논객과 비평가 종으로 분류하고 그 아래 하위 품종(아종)으로 세분화하여 언론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발자크는 특유의 반어법을 사용해서...
발자크는 당시의 프랑스 문인협회를 이렇게 평했다.
문인협회에는 크게 논객 종과 비평가 종이 있다. 그 아래 다른 하위 종과 몇몇 품종이 있다. 파리의 언론 및 출판은 너무나 큰 힘을 갖게 되어 이제는 추락할 법도 한데, 정부의 과오 탓인지 결코 추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여, “한 민족을 죽이듯 언론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자유를 줌으로써”
예전에는 논객의 평론이 하나의 구심점 있는 큰 거울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이 거울을 산산 조각 내 그 가운데 조각만을 이것이 전체인 양 대중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라고? 부끄럽게도 이들은 오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롭다
논객
8개의 하위 종이 있다. 신문기자, 기자 겸 정치인, 팸플릿 작가, 공염불하는 자, 직에 연연하는 자, 하나만 우려먹는 자, 번역기자, 신념작가
본디 논객은 몽테스키외, 보댕, 블랙스톤, 벤담, 루소 같은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하는 데, 숭고한 보편적 원리를 제시하는 자나, 예언자, 사상적 지도자들을 논객이라...지금은 강물에 떠 다니는 작은 막대기처럼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바쁜 이들을 논객이라 한다.
신문기자에도 5가지 품종이 있다. 1. 편집국장-편집주간-주필-사주, 2 테너가수, 3. 전문기자. 4. 셰프 자크, 5 도당파
사설을 쓰는 주필은 오페라에서 주요 매상을 책임지는 테너 가수처럼... 파리 사설은 어감 차이를 제외하면 틀이 두 가지 밖에 없다. 야당 편, 여당 편...
우선 때리고, 변명은 나중에
형편없는 정치인일수록 신문사에서는 최고의 달라이라마가 되어 있다.
어떤 종류의 구독자가 되었건, 구독자가 늘지 않는 신문은 망한다
신문의 수명이 길고자 한다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단 한 사람의 재능에만 의지하는 신문에 불행 있을지어다. 대개 편집국장은 재능있는 사람이 필요하면서도 이들을 질투한다. 결국 그의 주변에는 아첨하거나 신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만 남는다. 파리 최고 신문이 항상 이런 식으로 망하는 것이다.
두 번째 종 비평가
비평가도 하위 5개의 품종이 있다. 구식비평가, 금발의 젊은 비평가, 대비평가, 문예 비평가, 군소신문비평가
비평가의 특징은 능력 없는 작가가 비평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비평가가 되기 위해서는 학식과 경험, 긴 공부가 필요했다.
지금은 대번에 비평가처럼 굴면서 게임 규칙을 다 파악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게임을 할 줄 모르면서 단박에 비평으로, 요즘 비평가들은 이런 말부터 시작하고 보는 식이다. 그러고 보면, 자고로, 헐뜯는 게 비평의 이유가 된 것이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되면서 비평가가 무슨 사상이나 작품, 출판사가 반드시 거쳐야 할 세관 같은 게 되어 있다. 한 마디로, 통행세를 내라, 이거다. 통행세를 내면 어리석고 유치찬란한 것도 매력적으로 봐준다. 반대로 위대한 작품에는 채찍질을 하고, 비방의 나팔을 불고, 가면을 쓰고, 검을 휘두른다.
구식 비평가 안에는 대학교수도...
자, 이렇게 보면 19세기 중반에 이미 기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21세기 이미 2세기 200백 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모습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를 두고 보편성이라고 해야하나, 절대불변성이라고 해야하나. 오늘날의 여론전쟁이 집단 히스테리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