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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그 아름다운 비판.
"행동. 그 아름다운 비판." 내용보기
김규항씨는 우리 나라 불문학자 중에 가장 프랑스 사람같은 사람이 김정란씨라 하던데 그건 어떻게 들으면 칭찬이고 어떻게 들으면 욕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분이 여타의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건 이 분이 쓴 시를 읽거나 아니면 이분의 홈페이지를 조금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일면 과격한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진보 좌익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행동. 그 아름다운 비판." 내용보기
김규항씨는 우리 나라 불문학자 중에 가장 프랑스 사람같은 사람이 김정란씨라 하던데 그건 어떻게 들으면 칭찬이고 어떻게 들으면 욕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분이 여타의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건 이 분이 쓴 시를 읽거나 아니면 이분의 홈페이지를 조금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일면 과격한 페미니즘의 선봉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진보 좌익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관이 보수우익에 치우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거품 아래로 깊이는 우리 사회의 문화 현상과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김정란 씨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 집이다. 주관이 뚜렷하고 성찰적 반성이 담겨 있는 이 에세이집은 읽는 사람의 긴장과 성찰을 요구하고 행동을 요구한다. 그저 예뻐지고자 하는 젊은 여자들에게, 정책없이 우왕좌왕 하는 정책입안자들에게, 그저 모방하고 생각없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들에게 이제 여기 멈추어 다시 뒤돌아 보라고, 거품을 좀 걷어내고 밑바닥을 한 번 쳐다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왜 울었었는지 그건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이 이가 아버지, 어머니를 얘기할 때, 이 이의 아이들에 대해 얘기할때는 막 눈물이 났다. 이 이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어서 그랬나보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므로 젊은 그대여, 그대의 팔팔하고 예쁜 육체를 너무 믿지 말라. 그건 가장 배은망덕한 것이다. 그건 아주 빨리 그대를 저버린다. 그대는 생각보다 빨리 늙는다. 그리고 그때 그대에게는 늙은 육체와 텅빈 정신만이 남는다. 지금 그대가 투자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보나마나 빤하다. 지금 시간이 천천히 흘러갈 때, 그때 승부를 내라. 길은 단 하나는 아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결말에 이르는 태도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성실'이다. 빤하고 진부한 얘기라고?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진부함 속에 있다. 문제는, 그 진부함에 뉘앙스를 부여하는 솜씨이다. 문제는 디테일의 변주이다. 도망쳐 봐야, 인간은 꼼짝없이 인간인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m******n 2000.08.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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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정답을 쓰는 연습
"주관적 정답을 쓰는 연습" 내용보기
김정란 시인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시에 대해서 철저한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녀의 시는 풀기 힘든 암호일 때가 대부분이다. 나의 문학적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시인이 쓴 여러 칼럼을 신문지상이나 문학잡지에서 접하게 되면서 난 그녀의 직설화법에 늘 신선한 충격을 받곤 하였다. 자신이 어떤 주제를 던져놓고 변죽만 울리다가 애매모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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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시인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시에 대해서 철저한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녀의 시는 풀기 힘든 암호일 때가 대부분이다. 나의 문학적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시인이 쓴 여러 칼럼을 신문지상이나 문학잡지에서 접하게 되면서 난 그녀의 직설화법에 늘 신선한 충격을 받곤 하였다. 자신이 어떤 주제를 던져놓고 변죽만 울리다가 애매모호한 답변이나 원론적인 대안에 그치고 마는 소위 지식인들의 글을 언론이나 방송을 가릴 것 없이 수없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이란 참으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분열된 자아와 소외된 이웃에 작은 손을 내밀 줄 아는, 한편으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으로라도 잘못된 사회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열차게 낼 줄 아는 시인이 바로 김정란씨가 아닌가 싶다. 이 책 <거품 아래로="" 깊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가족을 통해 느끼는 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감회에서부터 대중문화에 대한 날카롭고 준엄하기 이를 데 없는 부페식 단상, 한국 90년대 후반을 장식했던 굵직굵직했던 대형참사를 바라보는 안목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폭넓은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끔 꾸며져있다. 수필집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고 그때그때 기고하던 칼럼과 수필을 중심으로 묶었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복잡다양한 사회현상을 조목조목 따져보고 냉철하게 비판하는 능력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점은 분명하다. 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권력의 꼭두각시로 놀아나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현실 속에서 시인이 자신만의 주관적인 정답을 써가는 모습들이 책 군데군데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세계의 추악함 앞에서 눈을 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란 시인이 꿈꾸는 '겸손의 인간학'-서문 제목이기도 하다!-처럼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 원칙이 존중받는 사회와 진정한 개성이 스며든 삶를 만들어갈 줄 아는 시민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중문화라는, 사회폭력이라는, 국가권력이라는 신흥 골리앗에 용감히 맞서싸울 수 있는 속사람이 강한 다윗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소신있는 결단을 할 수만 있게 된다면, 운이 좋아 먼저 읽게 된 사람으로서 흐뭇할 일이 될 것 같다.
c****e 2000.02.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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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은 거품이였을 뿐이다.
"거품은 거품이였을 뿐이다." 내용보기
우리사회에서 지성인의 목소리 높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고종석씨의 [코드 훔치기]에 사르트르는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61쪽)라는 표현이 나온다. 혼돈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구촌에 살아가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게 존재 가능한가는 실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것은 범위의 한정에 의한 문제라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그 범위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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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서 지성인의 목소리 높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고종석씨의 [코드 훔치기]에 사르트르는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61쪽)라는 표현이 나온다. 혼돈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구촌에 살아가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게 존재 가능한가는 실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이것은 범위의 한정에 의한 문제라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그 범위를 떠나서 사르트르의 말을 인정한다면 지은이의 따스한 비판은 우리가 수용해야 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은이의 표현을 빌리면 "적극적으로 세계가 원하는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하는 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10쪽)"는 표현은 지식인으로서의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가 지식인으로 '우리사회, 어디가 어떻게 아픈가'는 근원적인 문제는 문화와 여성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4부로 나누어진 1부 '문화, 삶을 담는 그릇'에서는 문화를 상품성으로 나누는 우리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다. 그는 람세스를 통해 "대중은 삶을 세계문화사적인 맥락 안에서 새롭게 파악할 수 있는 문화 상품을 기다려왔던 것(58쪽)"이라고 판단을 내린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며 이것은 "인류가 20세기를 살아오면서 발달시켰던 서구 주도형의 근대성 패러다임을 폐기처분하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명제를 정부(문화관광부 유감)와 대중매체에 종사하는 사람(황금 송아지 앞의 노예들)들은 문화를 상품과 돈으로 연관시키고, 돈벌이 급급한 것을 한심해 한다. 이러한 대한으로써 그는 "상상력(62쪽)"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강렬한 집착은 앞으로의 세기에 대한 번민에 의한 지은이의 고뇌가 녹여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단편적인 접근과 감정적으로 인하여 깊이 있는 대안 제시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이다. 또한 2부 '우리 사회, 어디가 아픈가'에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 아닌 이분법으로 인한 여성의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죄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된다는 가정 하에 나누어지는 이분법을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깊이 있는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남성의 여성에 대한 불편함을 논하기에 다양한 우리 사회의 고찰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말의 인류는 여성의 손을 필요로 하고 있다(130쪽)"는 단정은 "남성들의 세계를 끌어온 개발의 방식"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가정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으며 깊이 있는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동서양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또한 그가 말하는 대안이 "여성이 자연과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는 유일한 인간 종(131쪽)"이라는 표현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여자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우월의식의 어설픈 표현이다. 람세스를 강조하는 것은 설령 그 작품이 대단할지언정, 오얏나무에서 갓을 고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하기 힘든 지식인의 과시욕으로 비친다.(역자가 지은이이다) 3부의 '살며, 사랑하며'는 세상에 대한 연민과 따스한 시야는 느끼지만 자기 가족 안에서 느껴지는 관찰은 가족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수많은 사람이 아름답고 힘겹게 사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방만이 아닐까한다. 설익은 과일은 입맛만 쓰다. 과일은 햇살을 받아서 익어야만 제맛을 살리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기우 때문에 펜을 들었다는 마음을 백분 이해하더라도 설익은 과일을 배어 먹었다는 느낌이다. 다양성과 깊이가 많이 아쉬운 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오만'과 '경쟁'의 합리적.외적 세계관을 넘어, '사랑'과 '겸손'의 영적.내면적 인간학을 수립해야 한다(13쪽)"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추신; 제4부 나비를 위한 변명은 읽지를 안았습니다.
h******k 2002.12.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