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명강' 시리즈를 구매한 지도 꽤나 오래전에 지났고, 책꽂이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장식해두었건만, 좀처럼 읽지 못하고 있다. 날마다 출근길에 '책등'을 바라보며 읽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상기시키곤 하지만, 늘 다른 책에 밀려 읽지 못하고 있다. 쟁여두고 읽지 않은 책이 어찌 이 책뿐일까. 허나 요즘 오래 묵힌 책장을 하나하나 꺼내면서 책정리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뿐해진 마음으로 휘릭 읽어보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저자 박훈은 '일본사'에 대해서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불편한 이웃이라하더라도 '알아야' 대비할 수 있으며, '알아야'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고작 '일본따위'에게서 배울 것이 있겠느냐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생각에도 일침을 놓는다. "어느 나라 역사이건 간에 배울 것이 없는 역사는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기왕 배울 요량이면 '철저히'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다고 다시 강조한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더없이 옳은 말이라서 다시금 '일본사'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보기로 했다.
허나 '일본사'가 좀 껄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천 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옆에서 알짱거리며 기회를 엿보다가 허를 찌르며 알멩이만 날름 빼가며 '받은 것 없이 주기만'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얻는 것 없이 빼앗기기만' 한 것도 같아 기분이 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우리보다 열악하다 못해 조악할 지경이라 솔직히 배울 것도 없고, 이후로는 배은망덕하게도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치욕스런 수모를 겪게 만들었기에 '일본사'는 배우다가 열폭하기 일쑤다. 그런데도 '일본사'를 꼭 배워야 한다면, 저자는 '명치유신(메이지유신)'부터 공부하라고 귀띔해주었다. 확실히 일본이 급속도로 '변화'를 보이며, 빠르게 '발전'을 하고 있어 배울 맛이 나는 지점이기도 하고, 오늘날의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란다. 역시나 이 말에도 수긍해버렸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명치유신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진왜란 이후 대략 360년간 실제적인 권력을 갖고 있던 '에도 막부(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왕(천황, 이하 '일왕')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이양(대정봉환)하면서 '근대 일본'으로 변환됨과 동시에 점점 조여오는 '서양의 침탈'과 극심한 '내부의 혼란'을 대외 팽창으로 극복해보려는 의욕과 야심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일대 개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서는 '명치유신'을 4인방을 중심으로 해부하고자 했다. 바로 '요시다 쇼인'과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요시다 쇼인은 근대일본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일본의 '명치유신'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거의 '쇼인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스승이라는 작자가 가르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침략'이었으니,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에 물들어 '이웃나라'를 침공한 원흉이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가르쳐도 부족할 판에 제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르쳤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런 까닭에 요즘에도 일본의 극우파들은 '쇼인의 사상'을 내세우며 일본의 단결을 주장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말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망언을 일삼곤 한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본성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을 철저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렇게 유명인사는 아니었으나 일본의 국민작가로 알려진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개혁인물이다. 료마는 근대일본의 핵심인물을 많이 배출한 조슈번과 사쓰마번 출신이 아니라, 도사번 출신이다. 하지만 료마는 일찌감치 '번 탈주'를 시도해 '낭인' 신분으로 명치유신의 한복판에서 대활약을 했으니 '아싸'와 '인싸'를 오가는 대활극을 보여준 유명인이다. 하지만 쇼인과는 다르게 '대외무역'을 주장하면서도 '침략'에는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라 우리로서도 호의적인 인물로 봐도 무방하단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도 일찍이 '료마'를 존경한다고 표방했고, 료마가 말했다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꼭 집어 예를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근대일본이 료마의 사상으로 나아갔다면 '동양의 평화'를 이루는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을지도 모르겠다. 암튼, 우리가 주목하기에 바람직한 인물이라고 보면 좋겠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곧잘 표현한다. 그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서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정작 '일본의 전통'을 지키는 쪽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상반된 활약을 보여주어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어찌 보면 '극단적인 인물'로 중간이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테지만, '명치유신'의 주역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거침없이 시도했으면서도 끝내는 '사무라이'로 남아 죽음을 자초한 인물이다.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우호적인 듯 싶다가도 품속에서 칼을 꺼내들고, 속내를 알 수 없어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도 난데없는 헛발질로 사람을 놀래키는 것이 '일본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고 당췌 이해할 수도 없는 일본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꼭 연구해야 할 인물임에 틀림없다.
오쿠보 도시미치는 '근대일본'에 마침표를 찍은 인물이다. 도중에 암살을 당하긴 하지만, 일본은 끝내 도시미치의 구상대로 '진격'을 한다. 그래서 친구였던 다카모리를 죽음으로 내몰고,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해 완성을 시켜나갔다. 그의 모토는 '서양을 배워 강한 일본을 만들자'였고,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도시미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된다. 우리가 보기에 그가 '정한론'에 반대한 점을 들어 보기에 좋은 느낌도 들지만, 그가 반대한 까닭은 어디까지나 '아직 준비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막부의 잔당들이 일으킨 '사무라이 봉기'에 싹쓸이 작전을 펼치는 잔혹함 면을 확연히 드러냈지만, 이후 '대만 문제'에서처럼 신중한 모양새를 띤다. 허나 준비를 마치자 '청일전쟁'부터 1945년 패망 때까지 줄기차게 전쟁을 일삼는데, 이게 '도시미치의 계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다. 근대일본의 방향키를 알 수 있는 '명치 유신지사들과 일왕의 속셈', 더 나아가 '일본국민들의 속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유명한 '4인방'을 중심으로 분석을 해나갔지만, 일본국민들이 유독 '4인방'에 주목하는 까닭을 짐작해보면 얼추 비슷한 맥락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웃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찌해야 할까? 무엇보다 '평화적인 해법'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분이 풀리고 일이 손쉽게 해결할 것처럼 보이는 '전쟁'과 '팽창'은 근대일본의 패망에서 보여지듯 망조만 가득한 해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은 인류의 공영과 평화의 선두주자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 점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쓰지 않고도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으니, 인류의 공영과 평화도 '그런 방식'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실현시킬 것인지 말이다.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내는 대한민국을 떠올리며 '일본사'를 낱낱이 파헤쳐 보련다. |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중국이고 하나는 한국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중국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딱 하나 있다. 어딘 줄 아느냐? 한국이다."(중국을 무시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는? 프레시안, 2010.12.10.) 떼놈, 왜놈이라 하며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는 역사는 길 것도 같다. 수많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늘 싸웠어야 했다. 수천 번의 외침 속에서 상대를 놈으로 격하하고, 외부인을 적으로 규정해서 내부 결속을 다질 필요가 있었을 테다. 그래야만 우리 스스로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었을 법도 하다. 떼놈과 왜놈은 길고 긴 투쟁의 과정에서 핍박받고 상처받아 생긴 단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고난의 역사를 보여주는 인식체계라 생각한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근원적인 인식,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똑같은 ‘놈’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두 국가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크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보다 강자였다. 분열의 시기도 있었지만, 대국으로서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군사력과 문화적 우위는 중화세계의 근원적인 힘이었고, 그 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겨우겨우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해 왔다. 떼놈의 어원이 어쨌거나 비하의 의미에는 상위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다. 반면, 왜놈은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게 한다. 비하의 의도는 명확하다. 우리를 창구로 중국의 문물을 수용했고, 우호적인 세력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역사가 길다. 반면, 임진왜란, 식민지 지배의 경험은 강한 증오심을 갖게 한다. 언제부터 한반도의 역량을 초월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메이지 유신’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일본의 우위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분기점이다. 여기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테다. 서세동점의 근대 세계에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식민제국으로 성장했다.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전면전을 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강한 일본에 대해 한반도는 늘 모순적인 감정을 가져왔다. 왜놈이라 비하하지만, 한 때는 우리는 지배했던 민족. 경제 강국이지만 점차 노쇠해가는 일본. 그럼에도 아직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 그런 와중에 극일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극일을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단계가 극복 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만 한다. 그 시작은 분명히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역사로 배우면 쉽다. 나아가 역사 속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알아야 한다. 즉, 유신을 설계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훈 교수의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 지금의 일본은 여전히 메이지 유신의 그늘 아래 있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 제국, 그리고 세계2차 대전 후 촉발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현재의 일본을 설명하는 큰 줄기다. 이 줄기는 메이지 유신에서 시작된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메이지 유신이 촉발된 시기를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한 시대를 확인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영웅과 위인, 역사상 유명인물을 살펴보는 것이다. “역사상 유명인물이란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한 이유로 현창된 것이 쌓여 우리 앞에 제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자체가 ‘역사적(historic이 아닌 historical) 산물’(p.112~113)”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을 살펴볼 때 보통 인물의 위대함과 한계를 살펴본다. 인물의 한계와 위대함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이 누구건 절대로 시대적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아무리 훌륭하고 민본주의적일지라도 조선을 현재의 민주주의국가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통해 일본이 전성기를 향해가는 시대적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흐름에 매혹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실로 마주한다. 일본은 근대화를 성공하며 수많은 문화적 자산을 남겼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위상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했다. 식민지를 거쳐 내전과 냉전의 격전지의 상처로 여전히 날개가 꺾여있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주도권을 잃은 채 시대에 휩쓸려 다닌다. 메이지 유신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들은 가능했지만 우리는 왜 실패했을까. 역사적 인물에도 마찬가지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유신삼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등등 인재가 넘쳐났다. 우리는 왜 그렇지 못했는가. 누가 있을까? 실패한 개화파, 시대착오적인(또는 오해받는) 위정척사파는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하다. 역사에서도, 인물에서도 극명하게 비교된다. 메이지 유신, 4명의 인물을 살펴보며 박지원, 김옥균 등의 개화파와 비교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역사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 p.15 우리는 모두 하늘이 펼쳐놓은 그물망 속에서 산다. 달리 말하면 시대적 제약이다. 역사상 위업을 이룬 인물들은 이 그물망의 한 부분을 뚫고 나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영웅적 활약에만 흥미 본위로 집중하다 보면 영웅사관에 빠지거나 궁중사극의 재판이 될 것이고, 그물망 분석에만 치중하다 보면 역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은 희미해질 것이다. p.19 영웅과 위인은 그 시대적 제약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한 겹, 두 겹, 혹은 세 겹 벗겨낸 사람들이다. p.20 역사상 유명인물이란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한 이유로 현창된 것이 쌓여(p.112) 우리 앞에 제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자체가 ‘역사적(historic이 아닌 historical) 산물’인 것이다. p.113 어떤 시대에 어떤 인물들이 교과서나 위인전에 실리고 동상과 지폐초상으로 등장하는가는 그 사회의 사상과 지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지점이다. p.113 도쿠가와 시대 사람들에게 ‘국가’는 일본 전체가 아니라 자기 번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국가의 틀을 넘어, 천하로 인식되던 일본을 ‘새로운, 유일한 국가’로 창출해가는 것, 그리고 번주에 대한 충성을 천황에 대한 충성(존왕주의)으로 전환해가는 것, 이것(p.119)이 메이지유신의 과정이었다. p.120 메이지 유신의 과정을 보면 이런 점진적 개혁의 연속이다. 구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퇴로는 열어둔다. 오도 가도 못할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이 큰 무력충돌 없이(p.275) 개혁이 진행된 이유다. p.276 일본 전통과 일본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을 ‘유럽적인 하나의 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p.282 철벽같은 체제를 부수고 백척간두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말 미친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이 부국강병을 이루었을 때에는 정신을 가라앉혀야 한다. 부국강병을 손에 쥐고도 계속 이런 자세라면 대사를 그르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여전히 제정신을 못 차린다면 국가의 핵심에서는 제거해야 한다. 초기 메이지 정권은 이에 성공했고,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이에 실패했다. p.292 메이지유신은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 기억투쟁의 주전장 중 하나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 일본의 유래와 현재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깊게 이해하려면 메이지유신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 p.311 메이지유신은 그 자체로도 혁명사의 흥미로운 사례다. 거대한 변혁을 수행하면서도 기존사회의 어떤 부분은 잔존시켰고 연속성을 중시했다. 천황제의 온존은 대표적이다. 그 과정은 격렬하지만은 않았고 매우 타협적이었다. ‘연속하면서 혁신’한 것이다. p.311 |
서가명강(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은 국립 서울대학교의 유명 강의를 엮은 시리즈로, 현직 서울대 교수들의 유익하고 흥미로운 강의를 재구성하여 책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책은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4명의 사무라이인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중심으로 일본사를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박훈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 일본 최고 대학에서 공부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역사의 분수령에서 지도자들이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한 나라는 강국이 되어 아시아의 다수를 식민지 삼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쟁을 한 강국이 되었고, 한 나라는 한 때 왜놈, 문화와 역사가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겼던 그 나라로부터 지배를 받는 나라가 되었다. 흔히들 우리가 정치나 선거 이야기를 할 때 우리 한 명이 뭐 바뀌겠어...또는 그사람이 그사람이야, 하는데 사실 정치인과 지도자는 정말 중요하다. 배를 0.1도 키를 돌리면 처음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지만 나중에는 전혀 다른 목적지에 우리를 데려다 준다. 근대 일본의 레일을 깐 네 명의 사무라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우러러본다고 해서 우리 만큼은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언제나 자세히 알고 대비해야만 한다.
오쿠보 도시미치 메이지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유신삼걸 중의 한 사람으로 일본의 근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강제병합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토 히로부미는 미국을 방문한 환영행사에서 영어로 일본의 개혁정책과 각오에 대하여 연설했다. 유명한 '히노마루 연설'이다. 이토는 1862년 21세 나이로 조슈번의 지원을 받아 막부 몰래 영국 유학은 한 바 있었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했다. 사절단은 다음으로 워싱턴에 들어가 그랜트 대통령을 면담했다. 미국은 일본이 아직 근대국가가 갖춰야 할 법 체계 등이 미비하다는 이유를 들어 조약개정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국력 차이 앞에서 조약개정은 단념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었고, 결국 시간이 흐른 뒤 큰 차이를 만든다.
다시 지도자를 뽑아야 할 시기가 왔다. 미래를 보는 지도자, 자신의 안위나 정권 재창출보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할 시기인데, 문제는 그런 인물이 잘 안 보인다는 슬픈 점이다. 항상 역사적인 순간에 정치인들보다 훨씬 현명했던 우리 국민들을 믿어본다. |
소설이나 영화 혹은 만화 등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메이지유신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아니어서 심도 깊게 알아보자는 생각은 해보지.않았는데, 기회가 되어서 읽어 보니 지피지기는 백전불태!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잘 읽었어요. |
...일본역사 중에서도 근대 일본의 출발점인 메이지유신 과정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펼쳤던 네 인물을 통해 일본 역사와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이들 네 인물은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다... ...일본을 상대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또 전략적이어야 한다.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뿐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일본 사회를 조금 이상하게 보기는 해도 무시하지는 않으며, 중국인들은 꽤 미워하지만 그렇다고 깔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단 무시하고 본다. 꼭 알아야 할 지점에서 눈을 그냥 감아버린다. 그래서는 안 된다. 혹여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
일본은 중국만큼 우리나라와 가깝지만 사실 많이 알고 있지는 못한 듯 싶다. 이 책은 근대 일본을 만든 메이지유신에 대해 다양한 자료로 구성되었다. 메이지유신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용어정리에 메이지유신에 대한 배경지식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게 메이지유신에 대해 알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본문부터는 메이지유신에 대한 4명의 주요인물에 대해 서술했다. 나는 특히 타국을 침략하자고 주장한 요시다 쇼인과 사이고 다카모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본은 내전을 겪으면서도 조선과는 달리 외세에 대해서는 태세전환을 하여 뭉쳤다는 점이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 |
이 책은 메이지유신에 기여한 여러명의 인물에 대해 기술한 책이다. 서두에는 용어 설명과 메이지유신에 대한 배경 설명에 이어 본론에는 4명의 주요인물을 다룬다. 요즘 같은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결이 다른 개혁을 했다. 중앙정부의 통제하에 이루어진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특히 내부적으로는 내전을 겪지만 외세에 대해서는 태세전환을 하여 똘똘 뭉쳤다는 점이 구한말의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
본 도서는 21세기 북스 출판사, 박훈 저자의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서가명강 시리즈를 모으며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역사적 이유로 일본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러한 이유로 더욱 일본의 역사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본을 있게한 메이지유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
요시다 쇼인이라는 학자가 있다. 정한론의 초기 아이디어를 설파하고, 서당인 송하촌숙을 열어 그 도당들을 길러낸 희대의 '일본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원수의 선조급 된다. 마냥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자세에 반했다. 적을 배우고자하는, 배워서 이기고자 하는 그 자세다. 자기 나라를 한방에 무릎꿇린 미국을 배우고 싶다는 일념에 통통배 하나 띄워 요시다 쇼인은 고래등같은 미국 군함에 접근한다. 미국인은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책을 읽는 사람이요" "미국에 가서 뭘 하려고 그러시오?" "학문을 하고 싶소"
청년 요시다 쇼인은 편지를 품에서 꺼냈다. "무릇 절름발이가 뛰어다니는 사람을 보고, 뛰어다니는 자가 말 탄자를 보았을 때, 그 부러움이 어떻겠는가"
이 일화가 나는 참 인상 깊었다. 그의 절절함이 느껴져서다. 니들은 뭔데 그렇게 잘났는가. 무엇이기에 말도 안되는 발전으로 이렇게까지 절망감을 줄 수가 있는가. 그렇다면 배우자. 네놈들을 배우고 배워 나도 하겠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걸 보여주겠다. 적이라도 배울 것은 배우자. 적이라서 더욱 배워야한다. 이 정신이 일본을 지배했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켰으며, 조선을 압도했다.
물론 이런 학자적인 부분만 있는게 아니라,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 같은 소소한 이야기도 나온다. 왜 그런 차이가 있는지를 일본 근대 역사와 함께 읽는 맛이 쏠쏠하다. 글이 잘 읽히고, 재밌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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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아시아의 섬나라로 19세기 중반까지 외부 세계에서 그 존재감이 미미했던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라는 혁명적인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계기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친 강국이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메이지유신이 발생하기 이전의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일본 내부의 사회적인 배경을 설명하면서, 메이지유신에서 중요한 여러 인물들 중에서 나름 4명을 추려서 각 인물의 성격과 메이지유신에서의 역활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한 사회를 결과적으로 크게 변화시킨 메이지유신이 4명의 주인공으로 완성될 수 있는 드라마는 결코 아니지만, 이 책은 그러한 구도에서 쓰여졌고, 비교적 읽기가 쉬운 편이다. 저자는 가능한 객관적으로 일본을 기술하려는 입장의 역사학자이지만,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는데 어쩔 수 없는 제약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로 의한 식민지배 역사를 알고 있는 나는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굳이 민족적인 인식의 틀을 벗어 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으로, 손자병법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고 일본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일본을 한 집안으로 비유하면서 그 집안이 크게 부흥해졌을 때, 우리는 그 집안 몇대째의 누가 특별히 출중해서 집안을 크게 흥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집안의 출중한 형제 4명은 메이지유신 이전의 일본 사회에서 칼을 찬 사무라이 신분이었고, 메이지유신의 전개과정에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다. 복잡한 정략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메이지유신에서 형제들간의 싸움인 내전중에 마지막까지 몰리다가 자결한 한 명을 최후의 사무라이라고 부르면서 영웅시 한 측면도 있다. 사무라이(侍,さむらい)는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 계급을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서는 사족(士族)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그 일컫는 범위와 위상을 보면 유럽의 기사(Knight, 騎士)와 유사하다. 허리에 칼을 찬 많은 사무라이들 중의 소수의 깨인 선각자가 외부 세계로 부터 유입된 지식을 접하였고 행동으로 사회변화를 시도하였다. 메이지유신은 당시 세계사적인 변화의 시대흐름을 먼저 깨달은 사무라이의 일군이 사회변혁의 주체 세력이 되어 이루어진 역사적인 변혁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이 20세기 후반에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대국까지 갔었던 것에 비하여 지금은 힘이 많이 빠져 있지만, 현재도 결코 약하지 않은 강대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역사상의 핵심 전환점을 메이지유신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나열한 4명의 사무라이 주인공을 순서대로 요약해 본다. 1.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알려져 있고, 일본 우파의 뿌리이다. 올해 7월에 피살된 아베 신조는 요시다 쇼인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였다. 서구 열강에 의한 개항 시기에 3년간 1,500여권의 책을 읽어 지식을 쌓은 이론가이며, 황당한 수준의 해외 정벌을 주장하고 미국으로 도항시도 같은 돌출행동을 감행한 행동가이기도 하다. 불꽃같은 20대를 살다가 반역모의로 사형되었다. 메이지유신이 태동한 조슈번(長州藩, 지금의 후쿠오카 지역) 출신이다. 그가 강의한 송하촌숙(松下村塾)은 조선시대의 서원(書院) 같은 당시의 사학교로서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핵심 인물들이 여기서 다수 배출되었다. 2.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20대 중반에 존왕양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도쿠가와 막부를 토벌하는 세력의 양대 축이었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동맹을 절묘한 협상으로 성사시켜 막부 타도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동맹이 성사되지 않았다면 메이지유신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역사가들은 말한다. 3.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사쓰마번 출신의 무사로 에도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으로 이끈 군사지도자이다. 1873년에 정한론을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메이지유신의 동지들과 결별하고 고향인 사쓰마로 귀향하였고, 1877년에 메이지 정부에 대항하는 세이난 전쟁을 일으켰으나 패하여 자결하였다. 2003년에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Last Samurai)는 메이지유신 초기의 세이난 전쟁이 배경이고, 정부군에 대항해 싸우는 반군의 지도자(사이고 다카모리)와 반군의 지도자를 가까이서 돕는 미국인 장교(톰 크루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4.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도쿠가와 막부의 말기와 일본 메이지 정부 초기의 초대 내무경(?務卿)이다. 실질적으로는 근대 일본 최초의 총리라고 볼 수 있다. 동향인 사쓰마번 출신인 사이고 다카모리 등과 함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중심 인물이다. 1866년 메이지유신 이후에 산업근대화정책, 지조(地祖)제도 개혁, 식산진흥을 포함한 과감한 사회제도의 개혁을 단행하여 메이지유신을 완성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한 때 메이지유신의 동지였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일으킨 세이난 전쟁을 진압하였으나, 이로 인한 원한으로 1878년 정적에게 암살당했다. [ APPENDIX ]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일본이 정치·경제·문화 전 분야에 걸쳐 근대적인 통일국가로 형성된 일련의 대사건을 말하며, 역사학에서 분류한 시기는 메이지(明治) 원년인 1868년으로 간주한다. 구제적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 수도를 세운 도쿠가와 막부체제(幕府體制,1603~1866)의 마지막 다이쇼군(だいしょうぐん, 大?軍)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에 메이지 천왕에게 권력을 넘기는(대정봉환,大政奉還)을 통하여 왕정복고가 이루어 진 정치적인 변혁을 말한다. 중앙집권 통일 국가를 이루어 일본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사회, 정치, 문화적인 큰 변혁의 과정인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1853년에서 1877년의 기간으로 잡고 있다. 1867년에는. 메이지 정부는 학제, 징병령, 지조개정(地租改正)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관주도(官主導)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이 과정에 농민, 사무라이의 격심한 사회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대부분 강압적으로 진압하였다. 메이지유신을 통하여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도입되었고,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개시되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특히,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천황제의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시켰다.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정책에 비하여 메이지유신의 일본은 서구 열강의 군사무기·과학기술·문화를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일본은 서구와는 일원이 되려는 추종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는 강압적이고 침략적인 태도를 취했다.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의 도발과 러일전쟁(1904~1905) 승리에 이어서, 강압적인 군사력을 동원하여 1905년의 한일협약을 통하여 조선을 침탈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