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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아마 평화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국가 간 전쟁이든 아니면 내전이든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설사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대부분의 국가는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전이 아닌 휴전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북핵을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의 전쟁가능성은 늘 상존해있다. 모두가 원하는 평화인데도 사람들은 왜 전쟁을 부추기고 또 하는 것일까?
브뤼셀 자유대학 국제정치학 교수인 조너선 홀스래그가 쓴 이 책 [권력쟁탈 3,000년]은 기원전 1000년경 철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000년 동안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는 국제정치사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지난 3,000년의 역사를 조감하되, 그 중 가장 굵직한 사건들을 소개하고, 국제관계의 기능과 역할을 설명하고, 가능하다면 독자 스스로가 앞으로 더 면밀하게 역사를 탐구하도록 관심을 환기’(16쪽) 시키기 위해 3,000년의 역사를 통찰했다고 한다. 총 13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그는 각 장마다 250년의 시간을 다루며, 그 시기에 가장 중요했던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의 정치사 첫 장의 지도는 지리적으로 주어지는 세 가지 자연자원이 그 윤곽을 결정했다. 풍부한 물, 비옥한 토양, 온화한 기후가 그것이다. 인간은 세 자원이 모두 풍부한 곳에서 쟁기와 삽을 휘두르며 서서히 문명의 경계를 확장했다. 마을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왕국이 되고, 왕국이 제국이 되었다.’(32쪽) 기원전 1,000년경, 그 시대의 최대의 농업중심지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였다. 곡창을 소유한 자가 정치권력을 차지했고 잉여로부터 시작된 노동 분업과 나일강을 이용한 작물 교역이 군사를 조직했다. 국제관계는 폭력의 장이었으며,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규모가 작았을 뿐이다. 전쟁이 평화보다 우세했던 이유는 전쟁이 비록 안보의 목적에서 시작되었을 지라도 거기에 인간의 물질적 욕망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원전 1,000년경 ‘전쟁은 이미 큰 이익이 되는 사업’이었다. 두려움, 권력, 탐욕 그리고 자연재해가 고대의 국제관계를 결정한 인자들이었다.
저자는 시대를 따라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수많은 제국들을 살펴본다. 아시리아 제국으로부터 페르시아 제국, 마케도니아 제국, 로마 제국, 중국의 한 제국과 당 제국, 이슬람 제국,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이들 제국들은 주변의 도시국가 혹은 부족국가를 정복하여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방어와 공격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교역을 통제하고자 했다. 외교는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위상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원전 750년부터 500년 사이, ‘페르시아가 동반구 한복판에 역사상 최초로 강력한 정치적 통합을 실현했다면, 그 외 모든 지역, 특히 지중해와 인도-갠지스 평원, 화베이 평야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었다.’(128쪽) 이 시기의 이상은 조화였을지 모르나 현실은 대체로 무질서 그 자체였다.
‘한과 로마, 이 두 제국의 몰락과정에는 놀라울 만큼 비슷한 점이 발견된다. 둘 모두 처음에는 제국체제를 통해 본토의 안보를 유지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지배층이 타락했다. 제국의 중심이 허약해지는 동안에도 영토는 더욱 팽창했다. 그 결과 병력이 과잉 산개되었다.’(238쪽)
제국이라는 체제의 핵심은 작은 수도의 특권을 넓은 주변 영토의 특권 위에 두는 것, 그리고 부유한 지배층 소수의 이익을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의 이익 위에 두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지배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에게는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었다. 사방이 시체로 뒤덮이는 가운데서 남자들은 군대로 끌려가 생사를 넘나들었고, 남은 백성들은 빈곤과 약탈과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몇 가지 반복되는 원인에서 전쟁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첫째는 지배층의 권력과 야심이다. 이들은 힘이 강해지면 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복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힘을 잃을 때에는 주변세력이 침략해오거나 국내의 반란과 소요를 진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다가 혼란에 빠지곤 했다. 두 번째는 안보 딜레마이다. 영토와 세력권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기에 한 나라가 안보를 강화하면 그 이웃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서로간의 긴장이 쌓일 대로 쌓이다 보면 결국 전쟁이 시작되곤 했다. 세 번째는 교역로를 장악하고 그 수익을 차지하려는 욕망 때문이었으며, 마지막으로는 종교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많은 종교가 평화와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전쟁의 원인과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모든 전쟁의 근원에는 바로 인간의 탐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처럼 서기 첫 1000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평화를 열망했지만 국가, 문화, 지역 간 관계는 적대적이었고 따라서 전쟁은 현실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의 외교, 정치, 통치는 질서회복을 향한 열망과 전쟁이라는 현실사이에서 결정되었다. 몽골제국의 형성과 이들의 정복전쟁으로 숨을 죽였던 세계는 이들이 물러나자 새로운 제국왕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각각의 국가들은 영토, 교역, 노예, 종교를 빌미로 서로 충돌했다. 단지 규모만 달랐을 뿐이다. 정복과 피정복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적 역량의 유무였다. 15세기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군사력이라는 하드 파워의 상대적 열위로 인해 유럽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대규모 식민화의 운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16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유럽의 팽창이 아니라 서아시아와 남아시아에 출현한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 제국과 같은 이슬람 제국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유럽은 장차 세계를 지배할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지만 세계 패권에 이르는 길에는 훨씬 더 막강한 세력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은 정치권력 면이나, 많은 인구를 통치하는 역량 면에서 이제 막 도약하려는 참이었지만, 중요한 다른 측면에서는 대륙 국가들을 능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빠르게 바다를 장악할 수 있는 범선의 개발과, 시장을 넓히고 기술발전을 주도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나라가 갖가지 이유를 대며 전쟁을 정당화하지만, 그 와중에 유럽에서는 군주 개인의 이익이 아닌 국가의 이익이 통치원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외교가들은 국가주권의 원칙을 도출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미국에 그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유럽의 세계지배가 계속될 수 있었다.
저자는 이처럼 인류가 3,000여년에 걸쳐 공전의 진보를 경험했음에도 평화가 요원했던 이유는 진보가 지구 전역에 골고루 미치지 못한데 있었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한 지역의 발전이 다른 지역의 희생을 토대로 했고, 불균형한 발전은 질투와 불신을 낳고 갈등으로까지 불거졌다. 제국의 평화란 착취의 다른 말이었고, 착취란 필연적으로 적개심과 저항과 대립을 낳았다. 그러므로 제국의 중심부 국민들이 누리는 평화는 변방의 전쟁 때문에 가능한 평화였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강력해지는 시기는 언젠가 반드시 끝나고 경기침체, 불평등 심화, 사회적 소요가 뒤따르는데 이것이 보호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자충수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평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전쟁의 공포’였다고 말한다. 평화는 인류의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갈망이지만, 그러나 전쟁역시 보편적이었으며, 역사상 모든 강대국은 비슷할 정도로 흉포했다고 한다. 역사에 도덕적 우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적 우위, 문명의 혜택, 법과 정의라는 것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 단지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인간의 도덕성에 기대어 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교적 노력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외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평화가 아니라 자국의 이익 수호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과 경제쇠퇴 모두 갈등을 유발시키며, 국가 간 교역이 평화를 증진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세계의 모든 지역, 모든 정치체제의 모든 역사가 말해준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러면서 3,000년 역사의 교훈은 ‘인간의 자연 상태는 무한한 평화가 아니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권력을 키워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는 ‘안보와 탐욕은 동전의 양면이다. 국가는, 안보 때문이든 탐욕 때문이든, 권력을 추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사가 너무도 많은 불화와 충돌로 점철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536쪽)고 말하며 책을 마친다. 그가 책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평화를 위해서 우리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얻어야 할지는 스스로 탐구하란 뜻으로 읽힌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전쟁과 평화를 주제삼아 인류의 3,000년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세계사라하면 민족이나 국가위주로 배워왔지만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250년을 시간단위로 하여 그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지역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어느 한 지역이나 민족 혹은 국가만의 시각이 아닌 균형 잡힌 시선으로 세계사를 읽게 해준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란 생각이 든다. 아울러 전쟁과 평화라는 책의 주제가 북한과 미국의 대립 속에서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요구하는 것 같다. 결국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고 역사는 말하는데, 우리는 어떠한지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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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폭력과 전쟁 등 인류 역사의 어두운 면을 책 두께만큼이나 꼼꼼하고 방대하게 살펴봤듯이, 전쟁과 폭력은 인류사에 있어서의 일상적 행위이면서 동시에 평화와 더불어 가장 큰 관심거리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원시시대 유적을 발굴, 연구한 로렌스 H.킬리 또한 <<원시전쟁>>에서 원시사회와 문명사회의 전쟁을 비교한 결과, 전쟁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사회 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부제가 ‘전쟁과 평화의 3000년’임을 생각할 때, 조너선 홀스래그는 인류사에서의 전쟁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권력쟁탈 3000년>>이라는 책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서기전 1000년경부터 시작해서 서기 2000년까지 총 3000년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250년씩 총 13개 장으로 나누어 다룬다. 통사 형식이긴 하되,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제국, 강대국, 피지배국들 사이에서의 경쟁과 다툼, 전쟁의 양상과 원인을 정치사, 외교사, 국제관계사 중심으로, 특히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살피며 인류사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흔히 접하는 정치사 위주의 세계사 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책은 ‘정치사를 바라보는 체계적인 관점, 구성과 서술의 간결함, 포괄적인 공간적 접근’이라는 세 측면에서 여타 역사책들과 구별되며, 나름의 독특함을 지닌다. 우선, 저자는 정치사를 다루되,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이러한 이유로 공격했고, 과정은 이러했으며, 그 결과 이렇게 되었다’라고 단선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저자는 정치사의 복잡한 역사적 사건들을 서로 얽혀 있는 다섯 가지 층위, ‘권력 분포, 정치체제, 정치체 간 접촉과 교류, 환경과의 상호작용, 정치 사상’의 측면에서 살피고 있어 전쟁의 원인과 국가들의 흥망에 대한 입체적인 상을 그릴 수 있게 한다.
두꺼운 책이지만, 구성과 서술이 간결하여 상당히 잘 읽힌다.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 앞서 언급했듯 3000년을 250년 단위로 구분하여 서술하였기 때문에 호흡이 적당하여, 그 시대에 대한 개괄적인 상을 그릴 수 있다. 이에 더해 각 장이 여러 소제목 하에 다양한 주제로 서술되어 있다고 할 때, 항상 첫 주제로 해당 시기의 정치사를 개관하고, 마지막 주제에서 해당 시기를 정리하며 정치사의 다섯 가지 층위를 고려할 때 살펴야 할 점들을 정리한다. 덕분에 각 시기 정치사에서 있어서의 중요한 사항들, 예컨대 해당 시기 권력분포에 미친 지리적 요인, 기온, 강수량과 같은 환경적 요인, 현실주의나 국가들간의 합의체와 조약 성립 등의 외교적 노력 등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수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주로 지구 동반구(유라시아 대륙)에서 등장했다 사라진 다양한 국가와 제국들 사이에서의 전쟁, 반목, (간헐적) 협력, 외교적 협상 등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파르티아-로마, 거대한 세 제국들 사이에서의 교류와 전쟁 외에도 메소포타미아 제국들과 남아시아 인도 지역과의 끊임없는 교류 또한 자세히 다룬다.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메소포타미아 지역, 아라비아 지역에 등장했던 제국들과 소국들의 상호작용 외에도 지금은 그 역사적 중요성이 조금씩 강조되고 있는 중앙아시아 스텝 지대의 흉노, 훈족, 선비 등 유목제국들의 역할 또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반갑게도 한반도의역사적 국가들 중 고조선,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도 다룬다)
이 3000년 시기 중 최소 1100년 동안 전쟁 중이었으며, 로마 제국은 그 역사의 절반 이상이 전쟁이었다(520p). 이렇듯 전쟁이 과거에도 현재도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전쟁이 보편적이라는 것과 전쟁의 명분은 그것이 도덕적 명분이든, 정의의 회복이든, 문명의 혜택 전파든 모두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반증한다. 진지한 외교적 노력 또한 평화 유지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대 도시 국가 사이에서나 국가와 제국들 사이에서의 이루어진 끊임없는 외교적 노력 속에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현실 외교의 목적은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국제정치에서의 외교적 노력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쟁국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 같은 요인들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파괴적인 힘들 앞에서 외교적 노력이 갖는 제한적인 성과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상대국의 행동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태도 즉, ‘감수성’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조너선 홀스래그는 3000년 역사에서 ‘인간의 자연 상태는 무한한 평화가 아니다’라는 교훈을 이끌어낸다. 결국 완전한 평화란 존재할 수 없음을 뜻한다.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때 가졌던, 완전한 평화라는 이상을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그 다음 단계, 일말의 평화라도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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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역사를 시작한 이래 단 한번도 전쟁을 멈춘기간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