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파적 운동의 실패와 함께 기존 맑시즘에 대한 개념들은 지속적으로 쇠퇴되어 갔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적 조류와 함께 맑시즘 역시 변모하였다. 보다 미시적 차원의 권력구조에 대한 푸코의 연구들은 이러한 맑시즘적 조류의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싶으나 무언가 중심적인 것이 빠진 듯한 인상을 남기곤 한다. 기존 맑시즘과는 결별을 선언한 듯한 새로운 용어로부터 오는 낯설음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맑스의 계보를 잇고 있는(비록 이단으로 분류되기도 하였지만) 알튀세의 입장을 통해 푸코의 사상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 조명해보고 있다. 단순 이론과 이론간의 차이점에 대한 고찰을 벗어나 작가는 알튀세 이론이 지닌 불확실성에 대한 보완을 통해 푸코를 비판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저항 이데올로기가 파생되며, 이데올로기적 종속은 우리를 주체로 만든다는 식의 알튀세의 논의는 그 종속의 성격을 모호하게 규정함으로 인하여 맑시즘의 중심적 사조라 할 수 있는 변혁과 혁명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릴 문제의 소지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페쇠의 ‘비동일화’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와 같은 알튀세의 문제점을 보완한 후 본격적으로 푸코의 저작들을 통해 이론상의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다. 작가의 시점은 푸코를 근본적으로 맑시즘의 한 변형 사조로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C. Geertz 에 의해 ‘non-historical historian, anti-humonist human scientist, counter-structural structuralist’라는 비판을 받았듯이, 푸코의 담론개념은 지배-착취관계의 본질을 파헤치기 보다는 담론에 의한 단순적 저항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관계의 한 측면만을 파악함으로 인하여 분석하고자 했던 관계를 관계 아닌 관계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는 그가 파악하고자 했던 문제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경제적 갈등의 기본구조를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 인해 빚어진 오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그의 관점에서 갈등의 생산적 측면을 강조한 것은 마치 기능주의자로서 자신을 위치지으려는 듯한 태도로 느껴진다. 그 안에서 푸코는 근본적 사회변화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계급 투쟁과 사회변혁, 진보의 가능성을 놓쳐버렸으며, 신선한 담론 개념을 통해 불러일으킨 센세이션을 스스로 상실하고 만 듯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가는 노골적인 한 조류의 강요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거부감을 생산치 않은 체 맑시즘적 시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입문이라는 원제를 달고 있으나 그리 만만한 책은 아니라는 옮긴이의 이야기처럼, 알튀세와 푸코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이 이 책을 접하는 것은 하나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1968년 이후 끊임없이 대두되어온 푸코의 이론이 절대성을 지니지 않았음을, 더 나아가 민중에 근거한 이론이라기 보다는 대중을 일깨우는 지식인의 입장에 기반한 이론이었음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퇴조했다 생각했던 맑시즘적 논의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흥미로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