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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책을 자주 읽어주고 있는데요 한권짜리 긴 이야기보다는 짧은 이야기들이 묶인 책이 읽어주기 좋더라구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끝이 났을때 뒷 이야기를 상상해보게끔 하는 재미도 있구요 몇몇 이야기들엔 조금씩 판타지 적인 요소도 있어서 아이들이 많이 흥미로워 했어요 현실적인 내용과 환상적인 내용이 적절히 섞여있어 읽으면서도 즐거웠습니다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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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안녕>은 동화작가를 수업을 받는 작가가 나에게 적극 권해주었다. 최근 읽은 동화책중 으뜸이라며. 확인도 해볼겸 구매하고는 한동안 다른 책들로 인해 방치되어있었던 책이다. 장마통에 시간이 조금-원치 않았던 여유가-생겨 그간 밀어두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천천히 안녕>은 총 여섯 편의 짧은 동화를 하나로 엮은 동화집이다. 짧지만 아이들에게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충분한 것 같다. 성인 내가 읽어도 받은 감정은 아이들과 동일한 듯 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책 제목에 꽂혀 도데체 왜 제목이 '천천히 안녕'일까를 생각하다가 비본질적이 것에 의식이 팔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의미를 알고 싶은 건 여전하다. 요즘 머릿 속이 복잡하고 생각할 것이 많아 혼란스러워 그런가 싶기도 하다. 책 표지 뒷면에 "기묘하고 낯선 세계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동화집"이라는 묘사가 있다. 인사까지는 알았는데, 아직도 '천천히'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하지 못했다. "새로운 만남을 앞두고 설레는 인사를 준비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까요?" 그제서야 네 번째 동화 제목에서 '천천히'는 죽은 반려 거북이와의 헤어짐을 위한, 떠나보내기 위한 인사를,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천천히'라고 표기한 거구나 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며 슬픔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천천히' 헤어짐의 '안녕'과 새로운 만남에 기대감 찬 '안녕'을 말하는 거구나 싶었다. 장마 때문에, 고통 받는 여럿들 때문에 복잡한 머릿 속에 조금은 뿌옇던 안개가 살짝 걷히고 있었다. 그런데 슬픔을 딛고 슬픔을 떠나보내며 안녕하기가 새로운 만남을 앞두고 기대감에 차 '안녕'하기가 쉬울까 싶다. 앞의 슬픔을 모두 잊지않으면 앙금이 남을 텐데. 혹, 과거의 상실의 상처는 새로운 만남을 통해 잊혀지는거야 라는 걸까? 잊혀지는게 아니라 묻어두는거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난 두고두고 기억이 떠오르곤 해서 쉽게 과거의 슬픔으로부터 헤어나오질 못하던데. 아마도 그래서 천천히 안녕이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겐 너무 무거운 짐을 안겨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린아이의 기억은 무의식 속에서 잠자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에 그렇다. (여기까진 그저 나의 최근 의식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넋두리이다. 게다가 출판사 리뷰에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의 일상이라고, 표현했는데, 고학년인 걸 알 수 있는 건 <자꾸 생각나>에서 아이들이 5학년, <옆 반 아이>에서 4학년, 그 외에는 <어디까지 왔니?>가 9살, 나머지는 학년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자꾸 신경쓰이고 있다. 이 또한 머리가 복잡하니 쓸데없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동화는 총 여섯 편으로 '옆 반 아이, 자꾸 생각나, 불 꺼진 사이에, 천천히 안녕, 영재의 의자, 어디까지 왔니?'순이다. 한편 한편이 '동화'로서 오랜 전통적 '동화'에서 벗어난 '속된 말로' 요즘 감각의 작품들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구시대적 동화는 이제 그만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공모전들은 아직도 그 수준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옆 반 아이>는 도깨비와 외계인이 평범한 여느 아이들처럼 한 교실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자꾸 생각나>는 삼각관계(?)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삼각관계처럼 보이는 아이들간의 이야기를, <불꺼진 사이에>는 정전된 승강기 안에서의 두 소녀의 이야기 인데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에 가장 공감이 갔다. 가장 아이들의 민낯과 함께 현실 세태를 지켜 켜볼 수 있었고, 순수한(?) 아이들조차도 속내를 전부 드러내고 살지 않는 계산된 혹은 드러낼 수 없는 현실이 반영된 작품이었다. 어둠 속에서 두 소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에도 어딘가 벽이 느껴지는. <천천히 안녕>은 반려 거북이의 시체를 냉장고에 보관 중인 아이와 그 아이에게 다른 몸을 빌려 찾아오는 반려 거북이의 영혼, 그리고 그 둘의 대화를 통해 서로에게 남긴 아쉬움을 해소해가는 이야기, <영재의 의자>는 세상에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란 명제와 잘 어울리는 이야기와 친구가 주는 위로라고할까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왔니?>는 산동네 사는 9살 승연이에게 귀갓길 도우미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 모습이 눈에 띈다. 노란 머리에 연분홍색 망토를 두르고, 빨간 구두를 신고 있다. 정말 동화에서 튀어나올 법한 할머니이다. 승연이가 집으로 가는 길의 골목길엔 검은 고양이 '짝눈'이가 있다. 그리고 불쑥불쑥, 심심찮게 튀어나와 승연이를 놀래킨다. 아빠가 일찍 집에 돌아 오면 좋겠지만 아빠는 일하느라 바쁘다. 길동무를 해주시는 할머니는 승연이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주게될지,,,책을 읽어보자. 이야기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다루지만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아도, 우리는 실상 아이들의 그 속내를 알기는 어렵다. 특히나 요즘은 더욱. (친구들과의 교감도 중요하지만 실상 가족내에서의 교감이 더 중요함에도, 우리는 미루며 떠넘긴다. 그나마 친구에게라도 드러내길 바란다.) 작가는 아이들의 속내를-눈에 보이는 현상 그 이면의 심리를- 스스로 드러내길 원한다. 또한 아이들이 스스로 속내를 드러낼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여기에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해소할 동화적 환상적 판타지로, 스스로 드러낼 속내가 다양한 관계맺기에서 오는 긴장과 기대에서 오는 설렘임으로 용기가 필요한 순간, 아이를 다독이며 격려하는 작가는 관계 맺기의 설렘과 재미를, 그리고 의미를 '재현' 하고 있다. 동화 전체에서 관계의 시작을 담아내고 그 안의 설렘의 의미를 아이들은 재미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의 오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아이들은 관계의 시작이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아마도 현실 사회의 문제일거라고 믿고 싶다. 어린이는 어린이 답게 자라길 바라던 방정환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동화작가는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소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한편의 동화는 평생에 의미가 있다. <천천히 안녕>에서 보여주는 아이의 반려 거북이의 시체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에 대한 아이만의 사고는 어른의 사고를 뒤집는다. 생각할게 많은, 그러나 고정된 사고의 어른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점이 동화를 읽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일 것이다. #자유자리뷰, #천천히안녕, #고재현, #이소영, #창비, #201201, #새로운만남, #설레는인사, #관계의시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