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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를 쓰며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이 책의 제목에 관해서다. 서점에 놓여있는 이 책을 본 사람들이 대부분 나와 비슷한 오해를 이 책의 제목으로 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책이 여럿의 선택에서 빗겨같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주는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 한국어로 번역된 제목 <몸이라는 선물>의 영어 원본 제목은 Fearfully and Wonderfully: The Marvel of Bearing God's Image
이다. "Fearfully and Wonderfully"는 시편 139편에도 나오는 표현인데, 개역개정에는 이를 '기묘하심'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부제는 번역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경이로움"으로 번역할수 있다. 갑자기 영어 독해시간같아졌는데, 이 책에 대한 내용을 다루기 앞서 책의 제목을 이렇게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한글제목으로 갖는 인상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이 책은 '인체'에 대해 다루거나, '기독교 성'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한 책이다. 바로 '공동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들의 공동체, 즉 교회, 그 너머 사회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한 책이다. 이 책을 저술한 저자 중 한명인 폴 브랜드는 영국에서 정형외과 의사로 수련하고 이후 인도에서 의료선교사로 일생을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한센병을 발견했다. 한센병은 작디작은 신경세포를 마비시키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몸 전체를 마비시키는 병이다. 사람의 온기도, 차가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무통'의 병. 감각과 감정을 상실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전락되는 이 저주받은 것같은 이 병을 앓는 이들을 브랜드 박사는 지극적성으로 치료했다. 그는 그렇게 저주의 삶에 있는 이들에게 새롭게 몸의 감각, 세상의 온기와 흔들리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치 예수님께서 딱딱히 굳어 누군가의 아픔도, 아니 나 자신이 병들어 썩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기쁨도 절망도 없이 그렇게 반복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우리에게 죽음의 고통과 삶의 대한 환희를 느끼게 해주신 것처럼말이다.
이 책은 그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 특히나 한센병 환자와 같이 저주받은 취급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이들마저도 아무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밝히는 책이다. 필립 얀시의 권유로 자신의 경험과 신앙적 가치관을 저술한 그는 신약의 '그리스도의 몸'의 비유로 자신의 삶과 의료행위들을 비춰 얻어낸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이다.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인체의 몸을 하나의 세계로 빗대 풀어간다. 먼저, 인간은 육체를 입고 있지만 이 안에 인간됨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생기'이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을, 그는 이렇게 해석한다.
"신비롭기 그지없게도 하나님은 그 형상을 우리처럼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드러내기로 하셨다." 이 문장이 이 책의 많은 내용을 함축해서 담고 있다.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다 평범하다. 감히 어떤 이가 하나님 앞에서 특별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평범한 이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입히시고, 그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기로 하셨다. 바로 나, 그리고 너, 우리 모두. 평범해보이는 우리 모두는 그래서 평범하지 않다. 이 평범함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드러내기로 하셨다. 인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이 '한 인격체'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곧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출발선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출발점은 '자신'부터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하셨다. 지나친 자기애도 문제이지만, 부족한 자기애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을 바르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또한,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를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사랑할때 '이웃'이라는 주님의 명령의 개념을 품을 수 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성공을 신앙의 수준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는 사회 어느 곳보다 교회 안에서 더욱 심화되어있다. 신앙이란 이름 아래, 그리스도를 쫓는 신앙이 아닌 인간의 욕망과 불안함을 쫓는 인간의 신앙 위에 십자가를 걸어 놓은 이러한 잘못된 기독교 신앙이 오랫동안 한국교회에 심겨져 왔다. 청소년들을 만나 함께 신앙생활하다보면 이러한 문화를 정말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성적과 대학이 신앙을 넘어선 가치이자 신앙의 궁극적 가치로 여겨지는 문화는 비단 아이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어른들의 문제이다. 장로, 권사, 집사인 부모들 조차 학원과 시험에 신앙은 늘 뒷전이고, 그것을 어느 교사와 목회자들도 문제삼지 않고 당연시 여기는 신앙 문화는 아이들에게 신앙의 목적과 목표를 대학과 성공, 풍요로운 삶으로 귀결시킨다. 교회학교 교사를 하는 어른들조차 아이들에게 이러한 신앙을 가리킨다. 이러한 성공주의 지향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몸'을 약화시킨다. 몸의 다양성도 거부한다. 우리 몸은 아주 다양한 세포와 장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조화가 건강한 몸을 이룬다. 그런데 교회는 이러한 다양성을 거부한다. 획일화된 믿음, 동일한 성공과 대학이라는 목표에 아이들을 투과시킨다. 교회 안에 더이상 문제 많은 애들, 소위 좀 논다는 애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건, 교회를 다녀 다 성화가 된게 아니라 교회가 어느샌가 그런애들은 발을 딛일수도 없는 곳이 되어버렸기때문인것 같다.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거부는 지금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도 드러나고 있다. 젠더, 정치성향의 문제 갈등에 교회는 항상 중심에 있다. 단순히 진리를 떠나 자신과 다른 이념을 가진이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저주하는 행위는 결코 예수님스럽지 않는 행위들이다.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계명은 잊혀진지 오래고, '성경적'이라는 주장 아래 다른 신념과 존재를 너무 쉽게 짓밟는다. 이에 대한 문제가 최근 더 붉어진 계기가 바로 '코로나19'이다.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된 작년 초부터 만1년간 코로나19의 확산의 중심에는 늘 개신교회가 있었다. 사랑제일교회 인터콥 IM선교회
등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서 교회는 그 원인의 중심에 있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사회는 이제 개신교 교회를 향해 '지긋지긋하다'고 표현한다. 지역 맘카페 커뮤니티에서는 동네에 있는 교회들을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손가락질하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이것은 교회의 극히 일부의 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사 그것이 극히 일부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몸이 하나인것처럼 교회또한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이다. 몸의 지체 중 일부가 아프거나 장기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이 온 몸을 아프게하고 영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이 상황은 일부의 상황이 아니다. 그것이 내 책임(개교회)이든 아니든, 이러한 사태는 교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 이상은 그 책임여부를 떠나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넘길만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 이상황에서 어느 누구도, 교회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이것이 내 책임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없다. 교회가 잘되고 부흥할 때는, 마치 그 부흥기의 중심에서 앞다투어 간증하고 그 은혜를 찬양했던 이들이, 교회의 문제와 아픔 속에서는 나서는 이들을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의 6장의 제목은 "몸 전체를 위해 나를 내줄 때 내 존재 이유가 선명해진다."이다. 그리고 이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린의 글을 인용해서 자신의 말을 이어간다. "인간은 늘 자기 이외의 무엇이나 누군가를 지향하며 거기로 이끌린다. 그래서 의미를 실현하고 싶어 하고 타인을 만나려 한다. 이렇게 자신을 잊은 상태로 열심히 대의에 힘쓰거나 타인을 사랑할 수록 우리는 더 인간다워진다." 이는 교회다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자신을 잊고 대의에 힘쓰거나 타인을 사랑해야 더 교회다워진다. '날마다 우린 죽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대의와 그분이 명령하신 나와 같은 '이웃'을 사랑할 수록 우린 더 교회다워질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한국교회를 볼 때 너무나 가슴이 아픈 현실이다. 타인의 두려움과 고통은 외며한채 대면예배만을 고집하며, 그것이 신앙이라 주장하는 모습은, 참된 신앙을 지키는 이들의 모습이라고만 바라볼 수가 없다. 세상의 아픔과 고통은 외면한 채 나의 신앙만을 고집하는 것은 전혀 예수님스럽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과 구원의 확신이 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쳐도, 오히려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 끝나지 않는 절망에 대한 좌절감이 더 클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히려 아직 믿음이 없거나 약한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행동을 조심하고 배려하는 것이 성숙한 이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모이는 것으로 믿지 않는 이들이 두려워한다면, 우리가 모이는 것으로 오히려 그리스도를 욕되게 한다면 과연 그럼에도 이것을 고집하는 게 바람직할까? 우리가 대규모로 모이지 않는다해서, 그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닌 믿지 않는 이들, 지금 이 전세계적인 재앙 속 두려움과 좌절에 빠진 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과연 그런 우리의 모습과 행위를 믿음이 약한자로 보시고 꾸짖으실까?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과연 낮은 자를 위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예배'를 버린다면, 그것을 과연 잘못한 일이라고 비판하실까? 오히려 요즘 교회는 타인에 대한 공감을 잃은채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잃은 채, 세상사람들을 자신의 선교의 수단화 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자신의 영광과 부흥을 누리기 위해 한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수천명 분의 1로 여기는 그러한 왜곡된 인간이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곳곳에서 이러한 잘못된 행태의 현재 우리의 모습을 찌르는 문장들을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19를 예견한 것도, 그 중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고 쓴 것도 아닌데 지금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코로나19 속 한국교회 현실에 답답해하고 아파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꼭 추천한다. 책의 제목만으로 내용을 오해하고 책을 외면하는 실수를 하지 않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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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것 -[몸이라는 선물] 서평
몸은 정말 선물일까? 나는‘몸이 선물’이라는 말에 슬픔을 넘어서 반감을 느낀다. 영혼까지도 파괴될 것 같은 육체의 질고를 알기 때문이다. 내 뜻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져 살아내야 하는 삶의 질고도 만만치 않은데 온몸으로 감당해야하는 만성통증을 달고 사는 사람에게 몸이란 벗어버리고 싶은 짐일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누구나 한 여인의 육체가 찢기는 고통 속에서 이 세상에 와 본향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은 생로병사의 고통이다. 그래서 몸이 선물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필시 인간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의 강도가 어떤 건지 모르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결국 우리의 끝은 죽음인데, 죽음을 담보로 주어진 삶 앞에서‘몸’을 선물로 느낄 수 없는 이들이 분명 있을 테고 (부활을 믿지만, 부활하기까지의 고통은 어쩌란 말인가?) 그런 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인간에게 육이 없이 영만 존재하도록 만들어졌다면 어땠을까? 몸이 생로병사를 겪지 않고 질병의 고통을 모르도록 창조되었다면 더욱 완벽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고통의 근원과 인간사 갈등의 사유가 적어도 반 이상은 사라져버렸을 것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완벽하신 주님이 왜 우리에게 거추장스러운 몸을 주셨을까? 그리고 누군가는 몸을 선물이라고까지 말할까? 저자에게 내 마음의 반론이 설복당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며 책장을 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나의 이런 반박과 궁금증에 대한 정답을 ‘새롭게’무마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동안 기독교 채널로 배운 내용을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그렇다하여 이 책이 지닌 고유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독특하고 아래 열거할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내가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 의구심들을 몹시 학구적이고 의학적인 방법으로 재확인시켜 주었다. 이 책은 우선 표지의 제목과 책 내용에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외과 의사이자 의료 선교사로 한센병 환자를 위해 헌신한 폴 브랜드와 탁월한 필력을 지닌 작가 필립 얀시가 공동 저자로 집필한 이 책의 원제는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심히 기묘하게 지음 받은)와 In His Image(그의 형상을 따라). 두 책을 압축하고 개정한 합본이다. 이 책은‘몸=산물’이라는 표제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인체의 신비를 통해 은유적으로 도출해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의 표제 『몸이라는 선물』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한 몸의 은유인 것이다. 일찍이 한 몸의 지체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연대할 것을 강조한 나의 사부는 ‘헨리 나우웬’이라는 영적거장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 우리 각자에게 독립된 하나의 몸을 주시며 개개인들이 서로 떨어져 지낼 것이 아니라 서로 연합하라 이르셨다. 몸을 낮추어 지체들을 섬기고 각각의 은사와 개성을 더해 하나로 연합하여 더 큰 하나가 되라 하신 것이다. 헨리 나우웬이 주장하는 이러한 공동체 의식을 이미 일독한 적이 있어서 폴 브랜드와 필립 얀시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중심 사상이 새로운 건 아니었다. 다만 의학적이고 학구적인 은유에 끝없이 밑줄을 그으며 문체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발췌한 밑줄에 감상을 피력하는 식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건강한 몸은 가장 약한 부위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308쪽 …고통은 인체 세포를 보호할 때만큼이나 공동체의 지체들을 통합하는 데도 중대한 역할을 한다. 건강한 몸은 가장 약한 부위의 고통을 느낀다. …신체 조직이 다치면 아파서 부르짖는데 그 소리가 온몸에 들린다. --314~315쪽.
폴 브랜드는 인간의 몸을 개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표현한다. 개개의 건강한 세포들이 몸 전체를 위해 협력하듯이 우리 각자에게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기여할만한 은사로 하나가 되라고 한다.‘건강한 몸은 가장 약한 부위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308쪽). 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려면 서로의 고통에 연대해야한다는 의미이다. 그 의미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으로 개개인의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어서 저자의 사상에 내 감정이 산뜻 따스해지진 않았다. 저자는‘고통을 다룰 때 현실과 동떨어져 학구적으로만 접근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나 학구적이고 학문적인 방식으로 느껴져서 그 이론의 적합성을 강요받는 느낌도 조금은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책의 몸에 대한 기록이 권력과 풍요로움 가득한 외과의사의 연구실이 아니라 고난과 빈곤의 대명사같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실이라는 걸 알아채면서 서서히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문장의 행간에 박혀있는 저자의 눈빛이 젖어있는 걸 본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이 있다. 루이지애나 병원에 있는 우리 환자들이 자신의 손발과 주고받던 소통을 잃을 때다. 통각이 사라지면 그들은 자신의 팔다리를 여분의 부속물로 본다. -312쪽
자신의 환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정형외과 의사의 처연한 눈빛이 이렇게 책갈피에,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에서 울고 있었다. 통각 잃은 환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눈빛.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이룬 지체의 특징이다.
내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몸의 통합성을 일깨우려 해도, 통증이 없는 그들로서는 도무지 태평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고통이 몸을 통합시켜 주듯이 고통을 잃으면 그 통합성이 무너져서 되돌릴 수 없게 된다. -313쪽. 저자는 이렇게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을 대신 느끼며 자신의 환자들을 온 마음으로 껴안았고, 그렇게 하여 혁신적인 의술의 발전과 날카로운 통찰력과 깃든 이 책을 쓸 수 있었으리라.
인체는 개개의 세포들로 구성된 하나의 공동체다. 예컨대 백혈구는 아메바와 매우 비슷하지만 자율성은 아메바보다 훨씬 떨어진다. 백혈구의 임무를 전체 유기체가 결정하므로, 백혈구는 때로 유기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도 백혈구의 필수 기능은 다른 아무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아메바는 위험을 피해 달아나지만 백혈구는 위험에 맞서 싸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도 백혈구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이 비유를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고찰했다. …바울의 비유를 내가 더 보충해 보았다. <몸은 일체로되 다세포로 되어 있으니 많은 세포가 한 몸을 이루느니라. 만일 백혈구가 “나는 뇌세포가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하였다”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속하지 않은 게 아니요 만일 근육세포가 “나는 시신경세포가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하였다”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속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온몸이 시신경세포면 걷는 기능은 어디서 나며 온몸이 청신경이면 시각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모든 세포를 몸에 두신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느니라. 만일 모든 세포가 동일하면 몸은 어디냐. 이제 세포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32~33쪽.
저자는 정형외과 의사답게 피부의 복원력, 뼈의 힘과 구조, 근육의 역학적 균형을 가진 인체를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공동체’로 비유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진술해 나간다. 몸이 있음으로써 치러내야 하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생각한다면 ‘선물’이란 말은 분명 대치되는 언어인데 몸에 고통이 있음으로써 삶,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은 환자에게 헌신한 의료 선교사의 경험과 의학지식에서 온 것이기에 반박할 여지가 없다. 저자는 계속 몸 어디에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통각으로 몸의 신경세포를 마비시키기 시작해 종국에는 자멸의 상황까지 치닫는 한센병 환자들의 실태를 세밀 묘사해 보여준다. 한센병 환자가 입는 부상은 한센병에서 온 상처가 아니라 통증에 무감각한 결과라며 의구심 많은 독자의 반론을 가볍게 맞받아치는 것이다. 건강한 몸은 수십조(兆) 개의 세포가 제 몫을 하며 긴밀히 협력해 통증 신호를 보내는데 비해 통각을 잃은 한센병 환자는 통증에 대한 자각을 못하다보니 적절한 대처를 못해 몸의 세포를 상실하게 된다는 논리는 의학적 사실에 기반해 설득력을 지닌다 해도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가? 한센병이 이 시대 그리 흔한 병은 아니기에 나는 저자의 논리가 처음엔 좀 낯설었다. 그런데 이것이 21세기에도 너무 흔한, 당뇨병 환자에게도 적용되는 예여서 다시 주목하여 본다. 브랜드 박사의 ‘통증’에 대한 혁신적인 연구로 해마다 수만 병의 당뇨병 환자가 발을 절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지론인, 통증이야말로 생명 유지의 열쇠이며 선물이라는 결론은 이렇게 그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삶의 결론임에 밑줄 긋게 되었다.
뇌는 일종의 하드디스크처럼 우리의 동작을 하부 뇌에 저장한다. 어떤 행동이든 오래 반복되면 잠재의식의 반사 작용으로 굳어진다. 그래서 예컨대 걷는다는 생각이 없이도 걸을 수 있다. -276 뇌는 지배할 때도 있고 위임할 때도 있다. 뇌가 내리는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결국 인체 곳곳에 있는 국소의 자율 세포(평범한 최종 관문)에 달려있다. 각 신경세포 속의 초소형 컴퓨터가 내 의도를 파악하고, 다른 근육들과 상의하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를 계산하고, 모든 통증 신호를 감시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해당 근육 집단에 할지 말지 명령을 보낸다. -358
근육이 어찌나 충직한지 인간의 의지로는 심장 박동이나 호흡을 멈출 수 없다. 아무도 숨을 참아서 자살할 수는 없다. 허파에 이산화탄소가 쌓이면 이때 유발되는 기제가 의식적 욕망보다 우세해 늑골과 횡격막과 허파의 근육을 움직이게 만든다. ---물리적 몸이든 영적 옴이든 근육은 자꾸 써야 한다.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면 근육도 위축되고 작아져 나머지 몸에 흡수된다. -279
인체의 모든 작용에는 그에 맞먹는 반작용이 있다. 근육도 서로 짝을 이루어 길항 작용을 일으킨다. 예를 들어 삼두근이 수축하면 이두근은 이완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신경생리학 분야 선구자인 찰스 셰링턴 경이 입증했듯이, 모든 근육 활동에는 억제와 흥분이 동시에 수반된다. 근육이 문장이라면 문장마다 “그러나”로 이어지는 대등절이 있어 앞뒤의 균형을 잡아 준다. -280
충직한 세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경청이다. 나는 몸 된 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다양한 메시지를 숙고하고, 준비된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성령께서 다양한 통로로 말씀하시며 내게 갈 길을 알려 주시겠지만, 이는 내가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야 곧장 행동으로 뛰어들고 싶을 수 있지만, 그것이 성령께서 감화하신 반응이 아니라면 몸 된 교회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390-391
그는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매력적인 소통 기관’으로써 ‘피부’를 소개하고, 방어의 최전선인 피부가 각종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몇 년 전, 2박3일 교회 수련회에 다녀와서 한 달이 넘도록 아토피 피부염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아토피를 앓던 공동체의 아이를 위해 매일 매순간을 드려 중보 했다. 동병상련의 고통을 통해 중보자로 섰고 몇 개월 뒤 놀랍게도 아이가 아토피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에게 고통을 통해 중보자로서의 행동을 펼치라고 그 고통을 주셨던 걸까? 고통에 대한 삶의 화두를 다시 꺼내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힘과 재물과 미모를 떠받들지만, 하나님은 나를 한센병 환자들 속에 두셨다. 그들은 대게 약하고 가난하고 볼품없다.’(42쪽)
일찍이 내가 존경하는 영적 거장 헨리 나우웬처럼 이 책의 저자 폴 브랜드도 그의 지혜롭고 영리한 두뇌와 몸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인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연구로 보냈다. “열한 자녀 가운데 누구를 가장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아픈 자녀를 몸이 성해질 때까지 사랑하고, 떠나 있는 자녀를 집에 돌아올 때까지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존 웨슬리 어머니처럼 매번 고통당하는 이들의 편에 섰던 예수의 마음으로 그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다. 두꺼운 한 권의 책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지는 은유에 비해 이 책이 주는 의미는 너무나 단순하고 간결하다. 고통이라는 선물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특권을 놓고도 감사하라는 것이다(347쪽).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고통을 가진 지체들과 연대하라는 것이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질문처럼 내가 처음에 가진, ‘따뜻한 사람이 어떻게 추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316쪽)’하는 의구심을 폴 브랜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하고 초라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묘사로 가볍게 종식시켜 주었다. ‘건강한 몸은 가장 약한 부위의 아픔을 함께 느낀다.’- 나, 지금 건강한가? 그렇다, 통증을 느낄만큼 건강하다! 고통이‘행동을 촉구하는 자극’이 될 수 있도록 고통에 감사해야한다는 이 책의 결론을 뼈에 새긴다.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야지. 인간을 충분히 영적인 존재만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몸을 주시고 당신이 먼저 몸을 통해 고통 받으심으로 인간과 연대하신 주님을 기억해야지. 만성통증이라는 고통에 지배당하지 않고 싶은 이들, 몸이 내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의식의 전제를 늘 기억함으로 강인함을 유지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매일 외치며 잊지 말아야겠다.-‘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언제나‘고통이라는 선물’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밑줄 긋기 사랑을 수표나 신용카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면 인격 대 인격의 반응을 놓치고 만다. 반면에 몸으로 부대기는 사랑은 인격적 소통을 이끌어 낸다.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지역이 많지만 모두가 타국까지 가서 봉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감옥과 노숙자 쉼터를 방문하고, 집이나 병실에 갇혀 사는 환자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한부모 가정을 지원하고, 부모 없는 아이를 입양해 기르는 일 등은 우리도 할 수 있다. 굳이 멀리서만 사랑하면 자신도 빈곤해진다. 사랑은 직접적인 소통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 진리의 가장 좋은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의 리더이신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히 1:3)이신데도 이 땅에서 사셨고, 그 경험 덕분에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에 능히 공감하신다(히4:15), 하나님은 우리를 멀리서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성을 보시고 우리 곁으로 오셨다. …우리가 세상을 다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이 땅을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고자 함께 힘쓸 수는 있다. 우리가 도우려고 내미는 손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의 손이다. (44쪽) : 이 구절은 내가 이 책에서 찾아낸 기도의 응답이었다. 어쩌면 이리도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는지 놀랐다. 이 말씀을 붙들고 나는 다음 주부터 감호시설의 청소년들을 만나러 가기로 결정했다.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눈에 띄는 대로 다 해결하라고 명하신 적이 없다. 다만 그분이 당신에게 주신 특정한 관심사와 남다른 전문 기술과 독특한 기회가 있다. 당신의 마음을 잘 살펴보라. 유난히 마음이 끌려 돕고 싶은 분야는 어디인가?
작은 도움이나마 장기간 베풀면 어떤 가치가 있는가? 예를 들어 당신 동네나 교회에 있는 금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 한 명을 도울 수도 있다. --345쪽.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므로 그 영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신다. 신비롭기 그지없게도 하나님은 그 형상을 우리처럼 평범한 수많은 사람을 통해 드러내기로 하셨다. 이 형상을 우리는 한 몸과도 같은 집단으로서 지닌다. 누구든지 혼자서는 온전하지 못한 형상에 그쳐, 마치 박살 난 거울의 파편처럼 일부는 틀리고 늘 일그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각양각색의 우리가 공동체로 모이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 p.30-31 인체는 개개의 세포들로 구성된 하나의 공동체다. 예컨대 백혈구는 아메바와 매우 비슷하지만 자율성은 아메바보다 훨씬 떨어진다. 백혈구의 임무를 전체 유기체가 결정하므로, 백혈구는 때로 유기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데도 백혈구의 필수 기능은 다른 아무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아메바는 위험을 피해 달아나지만 백혈구는 위험에 맞서 싸운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도 백혈구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당신과 나도 마찬가지다. 세포는 유기체의 기본 단위다. 세포는 자기만을 위해 살 수도 있고 전체 유기체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동일한 원리를 이웃 공동체와 심지어 국가 같은 인간 집단에도 적용할 수 있다. … 사도 바울은 이 비유를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고찰했다. 교회를 인간의 몸에 빗댄 본문인데, 날마다 인체의 세포를 다루는 내게는 특히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바울의 비유를 내가 더 보충해 보았다. 몸은 일체로되 다세포로 되어 있으니 많은 세포가 한 몸을 이루느니라. 만일 백혈구가 “나는 뇌세포가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하였다”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속하지 않은 게 아니요 만일 근육세포가 “나는 시신경세포가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하였다”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속하지 않은 게 아니라, 온몸이 시신경세포면 걷는 기능은 어디서 나며 온몸이 청신경이면 시각은 어디에 있느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모든 세포를 몸에 두신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느니라. 만일 모든 세포가 동일하면 몸은 어디냐. 이제 세포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32~33쪽.
실아남으려면 수시로 멈추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들이마셔야 하고, 의식적으로 내 사고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쪽으로 돌려야 한다. 성령님과 생생하게 교제하지 않고는 이질적인 이 땅의 대기에서 영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거리를 내다보면서도 생각과 영혼은 예루살렘에 가 있었다.-268-269
한센병 환자는 끊임없이 속삭이는 세포 간의 대화를 잃었기 때문에 5킬로미터를 걸어도 걸음걸이를 바꾸거나 체중을 옮기지 않는다. -- 고통은 다양한 어조로 대화한다. --위험이 커지면 고통의 속삭임이 보통의 말소리로 변한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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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 성경은 인간 창조에 대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고 기록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어쩌면 막연할 수 있고, 어쩌면 심오할 수 있는 의미에 대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학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간 육체에 대한 신비함을, 단순히 육체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영적인 의미로 잘 해석해주고 있다.
‘몸이라는 선물’ 이라는 제목처럼, 선물로 받은 몸에 대하여, 전문가인 저자가 전문 지식을 통해 풀어내기에, 더욱 신뢰감이 있고, 성경에서 몸과 관련하여 언급된 부분들에 의미가 더욱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장점이 있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시대에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너무나 풍성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책으로, 생물학적이지만, 영적인 교훈을 풍성하게 담아내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근육, 피부, 뼈, 피 등 육체의 한 요소, 한 요소의 신비함을 잘 표현하고, 설명해주고 있고, 영적인 의미까지 더해지니, 우리 몸이 너무나 신비롭고, 하나님의 창조에 깊이에 대해서도 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의사처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세밀하게 알 수 없는 지식들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고, 저자의 의학적 식견과 통찰력을 통해 무엇보다 성경을 조금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p188 뼈를 아릅답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뼈는 힘과 기능으로 말한다. 내 정강이 뼈를 더듬어 보면서 이 뼈가 더 길거나 짧거나 관절이 많기를 바랄 일은 없다. 이 뼈로 걸으며 감사할 뿐이다. 두 다리로 체중을 떠받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율법에도 똑같이 반응해야 한다. 율법은 관계의 골격에 불과하며, 몇 가지 믿음직한 신뢰의 원리에 기초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
p340 자가 면역 질환인 류머티즘성 관절염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갑자기 몸의 면역계가 자해에 나서 실수로 관절을 공격한다. 마치 관절이 이물질인 양 말이다. 즉 윤활막이 두꺼워져 염증을 일으키면서 내전이 시작된다. 방어 기제 자체가 병으로 변한 것이다. 영적 몸에도 분명히 비슷한 현상이 보인다. 교회의 관절은 스트레스가 꽤 많은 활동을 함께 수행하느라 사람들 사이에 마찰이 생길 수 있는 영적이다. 선하고 중요한 일을 하는 개인들을 때로 영적 류머즘성 관절염이 공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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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브랜드는 인도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뒤를 이어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삶을 헌신했습니다. 폴 브랜드는 많은 사람에게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인데 그 영향력을 이어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필립 연시입니다얀시입니다. 필립 연시는얀시는 폴 브랜드를 “이론으로만 실존하던 삶을 실제로 살아낸 인물”로 표현합니다. 그만큼 그의 삶 자체가 현실로 이룩하기 어려운 것을 실현해낸 인생이었습니다. 이 책은 필립 연시가얀시가 폴 브랜드가 쓴 두 권의 저서와 그의 삶을 잘 엮어 만든 책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인사이트의 창고입니다. 폴 브랜드는 의사로서 인간의 신체를 치료하고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풍부한 의료경험을 통해 그가 깨닫고 느낀 바를 기독교적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평범한 목회자인 저로서는 전혀 시도해 볼 수 없는 각도로 교회와 복음을 바라보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입니다. 그는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큰 공헌을 했는데, 한센병을 “고통을 잊은 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통감이 없어서없기 때문에 신체가 썩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한센병의 치명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이는 영적인 감각에도 동일하다고 봅니다. 영적인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스스로 영혼을 파멸로 몰아가게 된다고 말하죠. 이와 같은 의료적 식견으로 10가지 세부적인 분야에 걸쳐 교회 복음을 바라보고 설명합니다. 신기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새롭습니다. 기존의 기독교적 식견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만 의학적인 용어와 개념들이 다수 등장하기에 생소하고 낯설기는 합니다만 충분히 극복 가능한 정도입니다. 교회와 복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길 원하시는 목회자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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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이와 한 몸의 의미 당연하지 않았던 나의 몸, 그리고 은혜와 회복 담임목사님이 한 달에 한 권 추천도서를 늘 알려주셨지만, 지난 일년동안 부끄럽게도 담임목사님 추천도서들을 추천해주신 해당 월에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21년의 첫 달, 1월 담임목사님 추천도서는 <몸이라는 선물>이었다. 담임목사님은 늘 책을 선정하시는 기준이 있으셨기에 왜 이 책을 이번 달 추천도서로 꼽으셨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더 큰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쳐보았다. 의사와 또 다른 공동 저자와의 만남으로 이 책은 쓰여졌다. 책 표지에서 봤듯 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이와 한 몸의 의미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의사의 시선으로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건강과 나의 몸 구석 구석을 이 책을 통해 살펴보았다. 몸으로 부터 시작해서 피부, 뼈, 혈액, 호흡, 근육, 통증, 뇌,신경계, 호르몬까지 이 책은 정말 내가 당연하게 누리던 몸을 구석구석 관찰하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내 몸을 생각하며 어떤 글을 읽었었나? 싶을정도로 저자는 구석 구석 내 몸 어느 하나 그냥 지어진 것이 없음을 세밀하게 말해준다. 우리의 창조주되시는 하나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서술하며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실존이 담고 있는 은혜의 복음을 몸과 함께 제시한다. 몸과 복음이라니! 참 낯선 조합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 있는 조합이다. 내가 신학을 좀 더 배우겠다고 생각한 것도 어찌보면 몸 때문이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살아있는 하나님의 형상인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복음을 더 공부하고 누리는 길로 들어섰기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유형의 인간이 어떻게 무형의 영이신 하나님을 닮을 수 있을까? 많은이들은 궁금할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므로 그 영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신비롭게도 하나님은 그 형상을 우리처럼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드러내기로 하셨다. 각양각색의 우리가 공동체, 한 몸으로 모이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나는 과연 한 지체 한 지체, 한 영혼 한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았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외모로 판단하는 세상의 시각에 맞추어 나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하며 살아왔는지 반성하며 다시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특별히 각 장마다 고민하고 토의할 수 있는 질문이 세세하게 나오는데 그 질문들을 차분하게 읽어내려가면서, 생각에 잠기면서 나의 태도와 모습을 고찰해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하신 존재인 내가 과연 영적 몸의 충실한 지체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이 책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머리이신 그분께 충실하고 또 머리를 통해 서로에게 충실할 때 우리는 한 몸의 은혜의 복음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한 몸으로 함께 지어져 가는 축복의 감사함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몸을 살펴보고 나의 피부 그리고 단단한 뼈는 교회로 보면 영적 진리임을 이 책은 말한다. 또한 사람은 한 순간도 호흡하지 못하면 죽지 못하는 존재인데 과연 영적 산소를 날마다 들이마시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되었다. 산소마스크를 쓰듯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시로 멈추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들이마셔야 하고, 의식적으로 내 사고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쪽으로 돌려야 하는 작업이 너무 필요하다. 날마다 하나님의 영을 의지함으로 우리는 살 수 있다. 근육 파트를 보면서는 개인적으로 영적 근육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런 말이 있다. 젊을 때 운동하고 근육을 키워놓은 것으로 노년에 살아간다고. 영적 근육은 계속 키워야만 하는 것 같다. 근육이 없이 흐물흐물 약해질 때 단단한 말씀을 받을 수 없는 말랑을 넘어선 축 처지는 영적 상태로 머물러 있을테니 말이다. 얼마전에 고통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이 책에서도 고통을 선물로 표현하며 몸의 핫라인이 켜진 것으로 비유한다. 은혜안에 온전히 거할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을 선물로 받는 믿음이 더해지길 소망해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마지막은 나에게 이 책을 왜 읽어야 했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주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고민을 학부 졸업 때 직면했는데, 공통의 질문을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다시 이 책을 통해 주셨다. 챕터 22의 제목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산다는 것은 우리가 탐하는 모습과 다름을 다시 분명히 새기라고 이 책을 읽게 하신듯하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따를 때 나는 오늘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 나의 책갈피 ??
??p42. 모든 인간의 영혼에는 하나님을 닮은 부분이 있으며, 우리 각자에게 타인의 그 부분을 이끌어 낼 잠재력이 있다. 반대로 우리는 그 형상을 무시한 채 외모로 판단할 수도 있다. ??p196. 그리스도인의 행보에도 그래야 할 때가 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가능한 모든 증거를 기다리다가는 끝내 움직일 수 없다. ??p203.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수준 높은 골격을 주려 하신다. 이 골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성장하고 적용한다. 이 책의 특별한 점 ??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져가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나의 인체의 신비를 통해 서술해준 이 책이 참 귀하다. 내 몸과 하나님의 형상 그 신비를 묵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 몸이 왜 선물인지 알고싶은 사람 ?? 하나님의 형상과 몸에 대한 세세한 묵상을 원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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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따른다지만 우리처럼 변덕스러운 이들에게 그분이 자신의 평판을 맡기셨으니 교회야말로 그분의 가장 위험한 모험이다"(21).
몇 해 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쪼개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오랫동안 대형 교회에 몸 담았다가 이제 막 교회 개척을 시작했던 때라 그 고통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함께 교회로 세워져 간다는 것, 신앙고백의 터 위에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잠 못드는 밤이 이어졌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몸이라는 선물>을 읽으며,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하신 하나님의 '뜻'이 얼머나 경이롭고, 기묘하며, 감동적인 이야기인가를 깨닫고 놀라고 놀라는 중입니다! 동시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입술을 열어 가르치기도 했으나, 사실은 그 깊은 진리의 표피에도 제대로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아야 했습니다.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한센병(나병) 환자들에게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다. … 치밀한 연구 끝에 얻은 확신이었는데, 이 잔인한 병의 끔찍한 발현(손가락과 발가락의 소실, 실명, 피부 궤양, 안면 기형)이 모두 하나의 원인 곧 무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한센병은 작디작은 신경세포를 마비시키기 시작해 종국에는 몸 어디에서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자멸의 상황까지 치닫는다"(13-14).
<몸이라는 선물>은 평생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살라는 소명을 받은 폴 브랜드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 그리고 기독교 대표 저술가로 유명한 필립 얀시의 영적 통찰력이 합해진 책입니다. <몸이라는 선물>은 몸의 통각을 잃어 고생하던 이들을 치료해 준 의사의 남다른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오묘한 인체의 신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신비를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한때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졌던 필립 얀시가 들려주는 신비로운 교회(공동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할 수 있겠습니다.
<몸이라는 선물>을 읽으며 하나님께서는 말씀(성경)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계에도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새겨놓으셨고, 자연계를 통해서도 자신을 계시하며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마치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그 별을 따라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몸이라는 선물>은 우리의 '몸'이 하나의 거대한 복음임을 놀랍고 아름답게 일깨워줍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 몸에 가득 새겨놓으셨음을 발견할 때마다 온 몸과 마음과 영혼에 전율이 이는 듯했습니다. 우리 몸의 원리를 이해할수록,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원리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음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몸이라는 선물>이 가르쳐주는 인체의 신비, 그리고 교회의 신비 가운데 하나는, "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몸에는 무언가가 더 필요한데, 그 결정적인 통합의 고리가 바로 고통"(314)이라는 사실입니다. 한센병이 가장 무서운 병 가운데 하나인 이유는 환자가 통각을 잃었기 때문인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이 가져오는 최악의 저주는 위험을 경고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다세포 유기체가 생존하려면 머리가 꼬리가 호소하는 이야기를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몸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몸은 가장 약한 부위의 고통을 느끼는데, 몸된 교회가 지체들의 고통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도 한센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몸이라는 선물>이 가르쳐주는 깊은 영적 통찰력 중 하나는, 어떤 공동체든 연합의 기초는 유사성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시작되지만, 건강한 교회는 연합이 다양성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몸이 건강하려면 많은 지체 하나하나가 다 필요하지만, 그 각자는 전체와 맞물려야 비로소 제 기능을 다 하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내 자율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과 재물과 재능을 바탕으로 남들과 경쟁해야 했던 옛 가치 체계를 버리고 머리이신 그분께 헌신하면, 역설적으로 내게 갑자기 해방이 찾아온다. 경쟁의식이 사라진다. 이제 나는 어떻게든 자신을 입증하려고 경쟁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다.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한 분의 청중 앞에 살아간다는 단일한 목표가 생겨난다. 나아가 몸의 다른 세포들과 협력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다"(88).
<몸이라는 선물>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지으신 놀라운 비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체의 경이로움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는 법을 인간의 몸에서 배울 수 있도록 중요한 영적 통찰력을 제공해줍니다. '몸'으로 부대끼는 사랑의 신비, 피로 씻기는 원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가 어떻게 영이신 하나님을 눈에 보이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들려줍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특히 인체를 설계하는 일에 얼마나 고도의 창의력을 발휘하셨는지를 알게 해주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몸, 하나님의 형상을 담는 그릇인 우리 '몸'을 이전 보다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시편 139:14).
의학적 통찰과 영적 깨달음이 이토록 절묘하게 만나는 책을 또 만나볼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만이 세상 가운데 들려줄 수 있는 복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몸이라는 선물>은 그 어떤 교회론보다 더 탁월하게 교회의 비밀을 깨닫게 해줍니다. 특히, 교회론을 공부하는 분들,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평생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부름받은 한 크리스천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인 다큐로 다가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영적 진리들에 생명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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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으로 피는 신체 기능을 방해하는 화학 부산물을 제거함으로서 생명을 지탱한다. 한마디로 정화다. 피의 은유는 영적 몸인 교회가 가진 고질적 문제인 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개 해 준다. …… 피가 몸의 유해 대사산물을 씻어 내듯이 용서도 참된 건강을 저해하는 죄라는 폐기물을 씻어낸다(242-3).”
필립 얀시의 글은 18년전 「양과 목자」를 첫 도서였다. 이 책을 읽고 심장을 저격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글의 섬세함과 정교함이 짧을 글이지만 강하게 남았다. 그림을 그리듯 영상을 흘러보내듯 글이 참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폴 브래든 박사와 필립 얀시 이 책을 어떻게 그려낼까? 본서에서 그려지는 폴 브랜드 박사의 모습은 마치 책 136에 “예수님의 사명은 질병 퇴치가 아니었다. 그분의 사명은 개개인을 섬기는 것이었는데, 마침 그중일부에게 질병이 있었다. 그분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사랑과 긍휼을 느끼기 원하셨다.”로 예수님의 사명을 묘사해 내는 부분이 있는 데 책 읽노라면 폴 브래드 박사가 고백한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을 닮은 삶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로의 거울이 되어 주고 있는 듯한 폴 브랜드 박사와 필립 얀시의 필적이 본서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드러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책표지를 펴지 못하고 「몸이라는 선물」의 제목을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를 나 자신으로만 생각했었지, 한 번도 나와 몸을 따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제목을 보는 동안 나와 몸을 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몸에 선물이라는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어 있다니. 과다한 스트레스로 과민한 육체 말할 수 없고 약을 먹어도 통증은 그 때일 뿐 몸이 아플 때면 통증을 주는 부위를 도려내고 싶고 꺼내서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몸을 대하고 생각할 때 항상 그러한 자세였다. 책을 읽으면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내가 주인으로 있었던 삶에서 나의 주인이 그리스도로 옮겨 간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아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생각.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며 이후 우리는 성경과 본서에서 말하듯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내 맘대로 살던 내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다. 여기서 삶의 형태, 삶의 모습 살아가는 과정과 태도에 대해서만 생각해봤지 몸 자체에 크게 집중하지 못했던 거 같다. 함부로 대하던 나의 몸이,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면서 내 육체(내 몸의 건강)도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단순히 육체의 건강을 넘어서 시편에 139편 14절에 개역한글에는 “신묘막측”이라 표현하고 개정에는 “심히 기묘하심이라”로 사용하여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찬양하듯이 심히 기묘하게 지으심을 받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더 소중히 여겨야 함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영접함, 그리스도인 됨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준다. “그리스도의 몸에 합류하는 과정이 처음에는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내 자율성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련과 재물과 재능을 바탕으로 남들과 경쟁햐야 했던 옛 가치 체계를 버리고 머리이신 그분께 헌신하면, 역설적으로 내게 갑자기 해방이 찾아온다(88).” 글의 한 부분이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에서 그리고 각자의 고통에서 온전한 해방을 경험한다는 머리 속 이론이 심장까지 와닿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글은 매우 정교하고 매혹적이며 아름답고 몰입감이 높은 책이다. 때로 역서를 읽노라면 앞뒤문장을 여러번 읽어도 원서를 읽고 싶을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는 데 이 책은 역자와 출판사의 오랜 노력마저 눈에 들어올 정도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이 책을 어떻게 더 설명해내면 좋을까? 그리스도인의 지성, 영성, 인격의 통합을 보여 주는 책. 몸의 각 조직의 기능과 그 기능의 저하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병명)에 대해 소개하고 그 현상을 교회와 개인에게 적용함으로써 교회에 발생하는 영적인 현상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섬세하게 풀어놓은 책. 영과 육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통합하여 보는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 마지막으로 영성과 지성과 인격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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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에 새겨진 복음의 경이와 한 몸의 의미 본서는 참 독특하고도 어렵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몸"이라는 소재를, 의학적 전문성의 낯설고 강력한 유비에 통과시켜 복음과 공동체가 무엇인지 도출해내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 한센병 환자를 돌본 정형외과 의사 폴 브랜드의 경험과 전문지식이, 일상의 신비를 통찰력 있게 풀어내곤 하는 필립 얀시를 만나 꽃을 피웠다. 다만, 의학적 서술이 상당해 꼼꼼하게 읽어나가기에는 독서의 기초체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한낱 오합지졸인가, 가치 있는 어우러짐인가 저자는 세포의 다양성에 집중한다. "내 몸의 다양한 세포를 통해 가정, 집단, 공동체, 마을, 국가 등 더 큰 유기체를 배울 수 있다(72쪽)"며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하나님께서 딱정벌레만 해도 수십만 종을 고안해 내신 창조주시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새삼 강력하게 다가온다. 기실, 우리 모두는,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획일화와 전체주의적 집단문화에 익숙한 관습들로 인해 교회마저 그렇게 만들 때가 많지 않은가? 저자는 세포의 유비를 통해 "이처럼 어떤 공동체든 연합의 기초는 유사성이 아닌 다양성에서 시작된다"고 정리한다. 사역자 입장에서 공동체를 섬길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모두 똑같은 생각으로 교회를 바라보고 성경을 이해하게 만들 때 사역이 얼마나 용이해지겠는가. 그러나 공동체는 본질상 다양하다. 하나님의 크심을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획일화를 지양하고 공동체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역이 필요하다. 전통을 고수하는데서 벗어나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는 가운데 꽃 피울 다양성을 제고하도록 하자. 성경적 공동체의 본질이 확장되면, 사회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쉬이 용납하게 된다. 저자가 “어느새 건물 경비원의 인격적 가치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보다 떨어져 보인다(79쪽)”고 솔직히 고백한 내용이, 저자의 연약함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역시, 한국교회 역시 사회가 내재적으로 수납하는 계층화를 기복적 신앙의 용도로 오용하고 있지 않는가? 피부,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매력적인 소통 기관 저자는 피부 세포가 정서를 움직인다는 사실에 포착해서 예수님의 사명의 성취를 질감있게 설명해낸다. 모든 포유류 새끼가 ‘접촉 위안’이 필요한 것처럼 모든 상처받는 죄인들은 “따뜻한 사랑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단순히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그분의 사명은 개개인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고, 그 섬김의 목록 중에 질병의 치료가 있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언제든 각 영혼의 전인적 회복을 추구하신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율법적 금기를 넘어 그렇게 자주 “만지며 치유”하신 것이다. 저자 역시 의료활동 중에 한 한센병 환자에게 들었던 말을 독자들에게 건네준다. 울먹이는 환자의 말을 전해준 조수의 말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아닙니다, 선생님. 어깨에 선생님의 손이 닿아서 울었답니다. 여기로 오기 전에는 여러 해째 자기 몸에 손을 댄 사람이 아무도 없었대요.” 단단한 필수 골격, 몸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주다 뼈가 단단하게 온 몸을 지탱하는 것처럼, 영적인 몸인 교회 안에도 불변하는 핵심 진리가 있다(179쪽). 보편적으로 모든 인간들이 삶의 일부 영역에서 제한 규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듯이 하나님의 법, 율법은 자유를 주는 제약으로 교회를 든든히 지탱한다. 특히 저자는 부정적인 명령으로 구성되어 있는 십계명을 긍정적인 진술로 바꿔 독자에게 안내해주는데(185-86쪽),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본서에서 가장 탁월한 지점으로 여겨졌다. 1. 나는 너희를 한없이 사랑하기에 나 자신을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에게 필요한 하나님은 영원히 나뿐이다. 2. 나는 너희와 직접 관계를 맺고 싶다. 대용품은 열등하다. 너희에게는 내가 있다. 3. 너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려질 것이다. 이는 특권이니 귀히 여기라. 너희의 새 이름을 더럽히거나 그에 부응하지 못한 삶으로 이 특권을 남용하지 말라. 4. 나는 너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주어 거기서 일하고 놀고 즐기게 했다. 다 누리되 하루를 떼어 이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라. 너희 몸에는 휴식이 필요하고 영혼에는 환기 장치가 필요하다.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모든 사람의 생명은 신성하다. 인간을 통해 나의 형상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너희는 신성한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 7. 결혼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외로운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다. 육체의 친밀함을 그 본연의 자리인 결혼 관계로 국한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가 싸구려로 전락해 파괴돼 버린다. 8. 나는 너희에게 사유 재산이라는 큰 특권을 주었다. 도둑질은 그 권리를 침해한다. 9. 나는 진리의 하나님이다. 거짓말은 계약과 약속을 파괴하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너희는 신뢰받기에 합당한 존재니 그에 걸맞게 거짓말을 삼가라. 10. 나는 너희에게 소, 곡식, 금, 음악 등 좋은 것들을 주어 누리게 했다. 사람을 사랑하고 재물은 그저 이롭게 사용하라. 재물을 사랑하느라 사람을 이용하지 말라. 저자의 다음 진술은 너무 탁월하다. “십계명은 연골이 처음 골화되는 시기인데 태아의 뼈 발달에 해당한다. 반면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법은 발육이 완전히 끝난 상태라서 뼈를 자유롭게 해준다. 관절마다 사랑으로 제자리에 척척 들어맞아 더 큰 몸인 교회의 동작이 원활해진다.” (188쪽) 나에게는, 십계명 혹은 율법에 대해 정확한 성경적 지식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개념 중에 하나였다. 단순한 정보적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의 마음에 깊이 남는 유비로 전달돼야 그들의 삶에 적용이 될테니까, 그걸 생각해보면 고민이 참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본서의 이 내용을 읽는 순간 “유레카”를 외쳤다. 율법이 공동체의 뼈처럼 핵심 지지대가 된다는 사실과, 단순히 법정적이고 확정된 명문으로서의 율법이 아니라 정신이 전수되고 발전되어 구현되는 율법이라는 특징, 나아가 그 율법의 본질이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 1:25)이 모두 이 비유에 담겨있다. 성경 진술이 아니긴 하지만, 위 문장에 “아멘”을 외치고 싶다. 뇌, 독불장군 리더가 아니다 “인체의 모든 결정을 뇌가 의식적으로 명령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관리의 원칙인 위임에 어긋날 것이다. 대신 많은 평범한 상황은 믿을 만한 반사 신경이 처리한다(354쪽).” 이를 통해 저자는 예수님의 머리되심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제공한다. 이전에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 말씀하실 때는 그분의 절대적인 권위의 측면만 생각한 것이 다이다. 그러나 뇌가 지배할 때도 위임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통해 예수님의 교회의 통치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물론 성경 저작 당시 저자들이 위와 같은 뇌의 기능적 본질을 충만히 이해한 채 그와 같은 명제를 도출해낸 것은 아니겠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가 때로는 침묵하시는 것과 같은 우리 주인의 말씀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실천적 명령과 가깝게 인도해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나아가 다음 챕터인 [뇌, 수많은 살아 있는 배선을 통해 현실을 향해 발돋움하다]를 통해, 예수님께서 비루한 제자공동체(와 그 뜻을 이어받는 성령공동체 교회)에게 지상명령을 위임하시고 떠나신 이유를 감각하게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 땅 가운데 성육신하게 하는 분명하고 확실한 통로이다. 교회가 때로는 세상에 멸시를 받고, 때로는 스스로의 연약함으로 주님의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원흉이 될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증언하실 것이다. 추천의 말 본서는 우리의 복음에 대한 이해에 입체감을 제공한다. 교회의 하나됨이라는 명제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역사임을 깨닫게 해준다. 의학적 정보들은 충성스럽게 읽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가볍게 읽더라도 꾸준함만 유지한다면, 그 정보 너머에서 풍성하게 드러난 복음과 교회의 진가에 대해 감탄하는 독서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경적 배경지식이 다소 구비되어 있고 조금 더 성경적 진리에 대해 풍성함을 기하고 싶은 성도님들에게 본서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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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선교사이신 부모님께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찾아왔던 아픈 사람들이 있었다. 항상 환자들을 맨 손으로 치료해주던 부모님은 여느날과 달리 장갑을 끼고 겨우 응급처리를 해주셨다. 환자가 돌아간 이후에도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그들은 한센병 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폴 브랜드라는 소년은 정형외가 의사가 되었다. 평생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새 삶을 열어주는 사명을 감당했다. 그가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하며, 의사로서 몸을 진료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통찰들이 있다. 그 통찰들에 작가 필립얀시가 글을 입혀 주었다. 전문가가 밝히 보여주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의 깊이는 매우 깊다. 일반인들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우리 일상 가까이에서 깊이를 헤아려보도록 돕는다. 세포부터 피부와 뼈, 혈액과 근육 그리고 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욱 묵상하고 그리스도께서 해주신 말씀의 의미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지금 매일성경은 누가복음을 묵상하고 있다. 책에서는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모습이 자주 언급된다.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모습들을 다시 묵상할 수 있다. 누가복음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을 적절한 시기에 잘 만난 것 같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령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셔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 맺길 기도한다. 51p 인체는 약 4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구수보다 5천 배나 더 많은 수치다. 230p 그리스도는 단지 우리에게 삶의 모본을 보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생명 자체를 주러 오셨다. 영적 삶은 우리 바깥의 천상에 있지 않으며,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 내야 할 무엇이 아니다. 영적 삶은 모든 살아 있는 목숨을 흐르는 피처럼 우리 안에 가득 퍼져 있다. 341p 인체는 신기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 마찰을 예방한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몸에서 배워, 공동 활동에 협력할 때 마찰이 발생할 수 있는 부위에 윤활유를 쳐야 한다. 나와 견해가 일치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데는 은혜가 별로 필요 없다. 은혜가 시험에 부쳐질 때는 나와 함게 일하는 사람들이 방식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를 때다. 내 비위에 거슬려서 마찰이 일어날 때다. 382p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대개 나는 따로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빚어진 내 모습이 그 순간을 좌우한다. 그래서 나는 작은 새인 꾀꼬리와 멧새를 생각하며 기도한다. 하나님이 내 사고를 새롭게 하셔서 유전 암호처럼 내 안에 가르침을 새겨 주시기를 구한다. 머리이신 그분의 메시지가 막힘엇이 흘러오고 내 쪽에서도 충실히 순종하게 해 주시기를 구한다. 390p 그리스도인 개개인은 사사로운 계시를 구하기보다 하나님이 이미 밝혀 놓으신 뜻에 날마다 순종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396p 작가 프레드릭 뷰크너는 하나님의 뜻을 분벼라는 일을 이렇게 간단하고 분명하게 요약했다.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곳은 당신의 깊은 즐거움과 세상의 깊은 굶주림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406p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곳은 권력과 풍요가 가득한 전당이 아니라, 인간의 고난과 빈곤이 서린 뒤안길이다. 412p 인간의 자아상은 멋진 외모와 사회적 지위와 지능과 재능을 바탕으로 꽃을 피운다. 이런 자질을 하나라도 갖춘 사람은 거기에 의지하느라 성령께 의지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사할 사람들에게 그분이 요구하시는 자질은 겸손과 이타심과 사랑인데, 인기와 명예는 이런 자질을 억누리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성령은 약자의 연약함, 빈민의 무력함, 곱사등과 같은 기형을 통해 가장 찬란하게 빛나신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전12:2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