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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이곳에 리뷰를 적었던 기억이...없다. 그냥 짧게 적으려고 들어왔다. 책을 읽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을 집필하느라 저자의 몸이 그리 말라버린 걸까? ebs특강을 보니 바짝 말라서 못 알아 볼 뻔 했는데. 건강이 걱정됐는데... 책을 보니 알겠더라. 왜 그리 몸이 상했는지. 숨이 차서 몇날 며칠을 나눠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의 숨이고 살이다. 고맙다, 강신주. 애쓰셨다, 나의 길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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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줄 알았 습니다. 철학책에 두껍고, 그러나 의외로 술술 읽힙니다. 재미 있습니다. 제 인생의 큰획이 되어주었고, 큰 위로 당근 됩니다. 고맙습니다 짝짝짝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만나다니 완전 신기방기 저는 철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 숙여버릴 정도 싫어했어요. 그런데 강신주라는분을 마나고 제가 바꾼거어묘. 철학을 알게 후주신거죠. 제 인생 은 바뀔겁니다. 분명히 믿줄그으며 열심히 읽었습니다. |
| 감정수업에서 출발한 철학의 호기심을 현실세계로 인도하는 책이다. 한동안 쏟아지던 작가의 책에서 다소 실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사년여의 공백의 이유를 확실이 입증한 책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 이후,오랜만에 가르침을 받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연작의 다음권 출간이 진심으로 기다려진다. 젊어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보다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 강신주 선생님 반열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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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작가의 책은 여러권 읽어봤다.어려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특히나 많이들 어려워하는 철학이라는 분야를 매우 쉽게 담아내주는 능력이 탁월한 분인것 같다.유럽의 역사에서 파리코뮌은 대단한 혁명이자 인류가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던 혁명이었는데 그것과 더불어 한국의 집강소까지 같이 다루어주니 매우 유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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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있는 대중 철학자 강신주의 신간. 사실 내용자체는 그간의 저서들과 압도적으로 다른 것 같진 않다. 그래도 흥미진진하게 읽혀지는 재미가 있다. 마르크스를 다시 살펴야하는 뒷 배경과 그의 사상과 호흡을 같이하는 파리코뮌과 집강소 사람들의 이야기도 인상깊게 읽었다. 그런데 주장하는바의 구체적 실천 방안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권위를 타파하는 평의회적 삶의 공동체가 우리 사회 곳곳에 만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사실 이 주장은 이전의 저서에서도 있던 것이다. 구체적 실천이 너무 빈약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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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마르크스, 정치학자 마르크스는 많은 곳에서 다루지만 청년 마르크스와 그의 철학은 오히려 가려져있습니다. 이 책은 청년 마르크스의 철학이 그의 말년까지의 기획과 저작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추적하고 전달하면서 국내외 정치사에서 중대한 사건인 프랑스혁명과 동학농민전쟁의 의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더불어 책에서 다룬 동학, 김수영, 랭보 등도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알튀셰르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급니다. 덕분에 정치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연이은 출간을 응원합니다. (구경꾼도 이미 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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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옷을 입히려면 과거의 옷을 강제로 벗겨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농민들을 자본주의적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지배계급은 그들을 지역공동체적 질서에서 강제로 분리해야만 했다. 이 대목에서 자본주의 대변인들은 자본주의가 개인들을 봉건적 질서에서 해방시켰다고 찬양한다. 멍청하지 않다면 누가 이런 찬양에 속겠는가. 농민의 옷을 강제로 벗겨야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프롤레타리아의 옷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 - <철학 vs 실천> | 2020 | p.193 [...]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라면, 타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은 노예다. 고대사회의 노예도, 중세사회의 농노도, 그리고 부르주아사회의 노동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원하는 걸 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을 분배하는" 혹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 가능한 사회는 본질적으로 노예제사회일 뿐이다. [...] -같은 책, p.4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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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마르크스는 아마 현재의 영상 트렌드에 키에슬롭스키의 영화를 보는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냥 '예전' 담론이 아닐까. 한번쯤은 흥미를 느낀다. 역사적 의미도 찾아본다. 하지만 21세기의 초소비시대에, 조금이라도 더 본인의 값을 올리려는 시대에, 인간의 본성에 반한다는 철학가의 심판까지 나온 그 마르크스를 우리는 너무도 쉽게 넘어간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 불러온다. 마르크스의 철학을 다시 읽어보라고 한다. 실천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물어본다. 단순히 5천쪽에 가까운 지적 소일거리로 끝나고 말것인지.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앞으로 몇 달동안 거칠게 피부에 꽂히는 강신주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 강의에 푹 빠진 이후에 생각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