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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변했을까’ 제목을 보면 아리송하다. 독자에게 ‘질문’ 자체를 던진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 아닌 독자에게 ‘스스로 의문을 가져보라’라는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다.
책을 읽어보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잘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이 모두 연결돼있고 저자의 통찰에서 출발해 하나의 종착지로 귀결된다. 아마 흩어져 있는 수많은 구슬을 꿰어 하나의 목걸이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책의 요지는 명확하다. 인류는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변화만 있을 뿐이고 모든 것은 평균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허무한 주장으로 들릴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득당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서양의 플라톤 동양의 공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데아를 발견하기 위한 도전이었고 철인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 유능한 사람을 황제나 대통령으로 앉혀놓으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현실 앞에서 그 기대는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인종청소를 실시한 히틀러가 탄생했고 기독교는 이슬람교와 대립하여 수많은 학살을 단행했다. 또한,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을 만들어냈다. 북한의 현실은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대다 수 시민들의 삶이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이 밖에도 세계의 여러 사례를 살펴봐도 ‘진리’ 혹은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수록 문제가 발생하기만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많은 사람이 믿어왔고 지금도 믿고 있는 ‘진리’는 없다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과학 역시도 마찬가지다. 현대 과학의 대표 이론인 양자 역학에서도 세상은 오로지 확률로만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과학조차도 이 세상의 ‘진리’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세상은 그동안 변화를 거듭해왔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것만이 오로지 ‘정답’인 것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정반합, 노자의 유무상생, 고대 중국의 역학(易學)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저자가 오랫동안 탐구했던 고대 중국의 지혜 ‘주역’의 내용과 같다. 주역은 64가지로 만물의 변화와 인간의 변화를 설명해낸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걸맞은 조언을 제시한다. 그 조언은 결국 ‘순리대로 살라’로 정리될 수 있다. 올라가면 내려가는 게 있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순리이고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주의를 따르고 있으며 그 흐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소감을 함께 나눠보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잘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생겼다. 지나친 노력이 화근이 돼서 건강에 이상을 초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안 좋은 일들이 겹겹이 일어났다. 좌절했다. 그런데 이를 순리로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내려갔으니 다시 올라갈 길만 남았다는 생각에서다.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고 책에서 말한 대로 80% 정도면 만족하려고 한다. 노력해도 안 되면 포기하면 된다. 노력해서 된 만큼만으로 만족하면 된다는 것이다. 노력 이상의 결과를 기대했던 전과 달리 마음이 편해졌다. 몸도 전보다는 더 기운이 나고 생기가 있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신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돈을 벌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한국 사회에서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가?’란 생각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단순히 철학책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부딪히고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겪은 한 작가의 이야기다. 한국사회의 일원으로서 현명하게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도움을 원한다면 자기계발서, 재테크 실용서 등보다는 이 책을 사서 천천히 음미해보면 어떨까 말씀드리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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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 해법을 찾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 중 쟁점으로 추출할 수 있는 대상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한 개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고 사회 구조, 역사적 환경, 외부 압력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사회 문제들의 근원을 찾는 일이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사회 문제로 나타나는 현상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하면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신문과 뉴스 속의 괴롭고 어두운 수많은 이야기와 해결될 새 없이 발생하는 더 괴로운 사건들. 고단한 현실 속에서 무릉도원과 유토피아에 목말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완전한 경계를 정하기 어렵지만 사람, 문화, 사회, 지식이 자본으로 표현되는 세계 경제 시대에 접어들었다. 자본주의의 천하 제패, 생산의 절대적 요소로서 지식의 급부상, 학습과 경제의 융합으로 인해 개인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평생학습 시대가 열렸다. 지식이 없는 개인과 국가는 사라질 것이다. 생산의 핵심 수단은 지식이고 그것을 소유한 지식 노동자가 역사의 중심에 있다. 이 책은 국가가 국가 경쟁력 제고와 산업 혁신 체제 구축을 위해 국민의 지식 보유액과 학습 역량을 마련해 줘야 함을 피력한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빠른 경제 성장과 휴식기 없이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온 대한민국의 현실감도 보여준다. 도시적 이기심과 무정함, 살벌할 정도의 공격성. 요즘 젊은 사람들의 오가는 대화가 거칠고 차가운 점을 반성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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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이야기도 좋았고, 개인적으론 시장원리에 대해 간결한 해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립물의 균형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하는데... 그 틀로 세상을 보면 균형감있는 시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아울러 유토피아라는 헛된꿈을 꾸며 서로 싸우고 헐뜯고 각자의 정답으로 전쟁을 하기보다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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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처럼 인류의 희망이라고 칭한 그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다. 저자는 ‘그’를 인류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었던 나 자신, 그때 그 사람, 역사 속 인물, 선망했던 사회 시스템일 수 있다고 들어가는 말에서 밝히고 있다. 마치 실재하지 않는 인물 테스 형에게 세상이 왜 이렇냐고 묻는 요즘 노랫말의 ‘그’처럼 들리는데, 그의 실체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열린 질문을 던진다. 먼저 묻고 스스로 답하는 작가들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참신함이 다가온다.
에세이 형식의 쉬운 글로 쓰인 이 책은 1부 동전의 앞면에서는 순리와 인류가 경험했던 다양한 유토피아를 정리하였고, 2부 동전의 뒷면에서는 자연의 순리 혹은 근본원리라고 말하는 대립물의 균형과 그로 인한 다양한 삶의 그림들을 묘사하며, 특별부록에서는 대한민국이 근대 이후 가지고자 했던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쉬운 말로 빨리 읽히지만, 내용마저 쉽지는 않다. 철학, 사회학, 종교, 예술, 경제, 문화, 역사 등 세상을 읽어내는 기존의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저자의 내공이 곳곳에 묻어난다.
저자의 호는 평균(平均)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수나 같은 종류의 양의 중간값을 갖는 수를 뜻하는 바로 그 평균 맞다. 이 책의 요점은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작용과 반작용, 음과 양, 정반합 등저자가 인류사를 관통하는 현상을 통찰하여 칭한 ‘대립물의 균형’이라 할 수 있다. 원대한 시야로 바라보자면 지난 2500년간 일어난 인류사의 부침은 이러한 대립물의 균형을 맞추느라 일어난 현상이며 그의 호는 이를 잘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대립물의 균형이라는 개념도 신선하지만, 양 당사자 간의 대립 관계에 균형을 맞춰주는 제삼자의 길을 택하여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을 살찌웠던 역사적 사실에 관한 해석도 매우 흥미롭다. 19세기 초 절대왕권과 사회주의가 경합을 벌이는 사이를 파고들어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이렇다 할 피해 없이 짭짤한 재미를 보았던 제3세력이 되어 세계 최강국에 오른 미국이 그 좋은 예다.
기원전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이상향을 꿈꾸어왔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의해주는 악당 대장이 늘 필요한 미니언즈처럼 ‘이것이 정답이오’를 외치며 이상향의 깃대를 높이 올린 자들을 추종해왔다. 그들 대부분은 인류의 정신세계에 심대한 영향을 준 인물들로 플라톤, 공자, 헤라클레이토스, 노자, 자라투스트라 등의 철학자, 케인즈, 마르크스와 같은 경제학자, 인류 최대의 이상주의자 예수 등이다. 이들의 추종 세력이 이끄는 이상향 찾기 행보는 오늘도 진행 중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이상향을 찾았다는 소식은 없다. 본래 그리스어의 ‘없다’(U)와 ‘장소’(topia)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유토피아’는 결국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혹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대립물의 균형’ 개념은 서양 철학의 변증법, 동양 철학의 음양 조화로 설명되며,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를 내세웠다면 순리의 철학은 자유, 평등, 균형으로 요약된다. 어느 순간부터 인생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면 반대로 인생이 꼬이게 되는 에너지 역시 동시에 응축되고 있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둘이 합하여 평균을 이룬다는 게 핵심이다. 인류의 염원인 이상향이 절대 올 수 없는 이치가 여기에 담겨있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 값싸고 질 좋은 상품 등 모든 요소를 동시에 만족할 수 없으며 설령 지금 그렇다 하더라도 잠깐의 현상에 불과하다. 기나긴 영겁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면 모든 부침은 결국 평균으로 수렴한다는 뜻이다. 인생 새옹지마요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자칫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소용없다는 염세주의로 들릴지 모른다. 지금 배불리 먹어 봐야 곧 배는 꺼질 텐데 식사가 대체 무슨 소용이며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아등바등 살아봐야 무슨 의미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배곯고 죽음이 닥치더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평형상태(equilibrium)를 유지하려 든다. 태어나자마자 생을 마감하고픈 유기체는 없는 법이다. 인류가 2,500년 전과 똑같은 상태로 살고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2,500년에 걸쳐 유토피아를 찾아가기로 한 합리적 선택과 실험 이후, 찾지 못한다는 결론 혹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합당하다고 말한다. 유일한 정답은 없는 대신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과 수백 년 전 풍만한 육체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은 유력한 성인병 대상자인 것과 같다.
그럼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정답과 유토피아가 없는 상황에서 인생의 중요 포인트는 각자의 행복이며 삶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유명 가수의 노랫말처럼 인생 즐기는 내가 챔피언이다. 정해진 답이 없는 인생이므로 반드시 정답을 찾으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 인생을 즐기는 가운데 행복을 느끼되 꼭 100점을 받으려 너무 애쓰지 말고 80% 정도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없을지언정 목마른 하루를 쉬어갈 오아시스는 있는 법이니,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인생을 살아보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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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고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