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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장에서 조이를 만났다면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가 목장에서 조이를 만났다면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나는 염소에게 밥을 줘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동물이 있는 곳에 여러 번 가 봤다. 아빠와 오빠와 함께 말과 염소가 있는 곳에 간 적도 있고, 엄마와 함께 간 적도 있다. 다른 친구 가족과 아는 동생 가족까지 함께 놀러 갔다가 다음 날 양떼목장에 간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양과 염소에게 직접 먹이를 주었다.그래서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내가 목장에서 조이를 만났다면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나는 염소에게 밥을 줘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동물이 있는 곳에 여러 번 가 봤다. 아빠와 오빠와 함께 말과 염소가 있는 곳에 간 적도 있고, 엄마와 함께 간 적도 있다. 다른 친구 가족과 아는 동생 가족까지 함께 놀러 갔다가 다음 날 양떼목장에 간 적도 있다. 그때 나는 양과 염소에게 직접 먹이를 주었다.

그래서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조이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조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앞다리에 힘이 없어 다른 염소들처럼 걸을 수 없었다. 목동은 그런 조이를 품에 안아 돌보았다. 그리고 조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나뭇가지를 이용해 세 바퀴가 달린 도구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목장에서 앞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염소를 만났다면 아마 깜짝 놀랐을 것 같다.

“저 염소는 왜 못 걸어?”

하고 물어보고, 다른 염소보다 불쌍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나도 목동이 조이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목동은 조이를 계속 안고 다닌 것이 아니었다. 조이가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었다.

세 바퀴로 움직이게 된 조이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염소들과 함께 다니고 어린 염소들과 놀았다. 도움이 필요한 염소를 돕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기 염소를 낳아 엄마도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 조이를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 이상해졌다.

앞다리를 사용하기 어렵다고 해서 조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이에게는 못하는 일도 있지만 할 수 있는 일도 아주 많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양떼목장에 갔을 때는 염소들을 그렇게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냥 먹이를 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떤 염소가 빨리 달리는지, 어떤 염소가 느린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 세 바퀴로 움직이는 조이가 있었다면 나는 조이만 계속 쳐다봤을 것 같다. 세 바퀴가 신기해서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이는 불쌍하다고 바라봐 줘야 하는 염소가 아니다. 다른 염소들처럼 풀을 먹고, 놀고, 자라고, 자기 방법으로 움직이는 염소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를 내가 먼저 정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줄 수 있지만, 할 수 있는 일까지 대신해 줄 필요는 없다.

다시 양떼목장에 가게 된다면 동물들을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다.

그리고 정말 조이를 만난다면 다른 염소들에게 먹이를 주었던 것처럼 손을 내밀어 보고 싶다.

“조이야, 너도 먹을래?”

조이도 그 목장에 사는 염소 한 마리니까.

l*********9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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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수영선수를 보고 놀랐을까?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나는 왜 수영선수를 보고 놀랐을까?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나는 학교에서 장애인 수영선수를 본 적이 있다. 그 선수는 다리 한쪽이 없고 손가락도 일부 없었지만 아주 뛰어난 수영선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으면서 그 선수가 다시 생각났다.조이는 태어날 때부터 앞다리에 힘이 없었다. 다른 염소들은 자기 다리로 걸어 다녔지만 조이는 그러지 못했다. 목동은 조이를 품에 안아 집으로 데려가
"나는 왜 수영선수를 보고 놀랐을까?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나는 학교에서 장애인 수영선수를 본 적이 있다. 그 선수는 다리 한쪽이 없고 손가락도 일부 없었지만 아주 뛰어난 수영선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다.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으면서 그 선수가 다시 생각났다.

조이는 태어날 때부터 앞다리에 힘이 없었다. 다른 염소들은 자기 다리로 걸어 다녔지만 조이는 그러지 못했다. 목동은 조이를 품에 안아 집으로 데려가고, 그 뒤로도 가방에 넣어 함께 다닌다.

처음 조이를 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본 것도 앞다리였다.

‘걷지 못하네.’

내가 수영선수를 처음 보았을 때도 비슷했다. 그 선수가 수영을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다리와 손가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목동은 조이가 다른 염소들과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개암나무 가지로 세 바퀴가 달린 도구를 만들어 준다. 세 바퀴를 이용하게 된 조이는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나는 처음에는 ‘이제 조이도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조이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조이는 자라면서 다른 염소들과 어울렸고, 어느 날에는 덤불에 걸린 검은 염소를 발견해 도와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기 염소를 낳아 엄마가 된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처음부터 조이가 할 수 없는 것만 보았을까?

학교에서 만난 수영선수를 보고 놀랐던 것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 선수가 장애가 있는데도 수영을 잘해서 놀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 속에는 나도 모르게 ‘장애가 있는 사람은 운동을 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장애가 없는 수영선수가 수영을 아주 잘했다면 나는 그렇게까지 놀랐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놀란 이유는 그 선수의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사람을 보기 전부터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장애가 있는 사람도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말만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장애인이 수영선수처럼 뛰어난 운동선수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조이처럼 다른 염소를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모든 일을 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못하는 것 하나만 보고 그 사람 전체를 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이는 앞다리를 사용하기 어렵다. 그것은 조이의 모습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조이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조이는 세 바퀴로 움직이고, 다른 염소들과 어울리고, 누군가를 돕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한다.

학교에서 만난 그 선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처음 보자마자 없는 다리와 손가락부터 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다리가 없는 수영선수’로만 기억될 사람이 아니라 수영을 아주 잘하는 한 명의 선수였다.

다시 그 선수를 만난다면 이번에는 다른 곳을 먼저 보고 싶다.

그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지.

조이를 다시 만난다면 앞다리보다 먼저 세 바퀴를 힘차게 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람을 볼 때 없는 것부터 찾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조이에게 배운 새로운 보는 방법이다.

l*********9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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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는 정말 불행했을까?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조이는 정말 불행했을까?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만약 내가 태어났는데 나만 걷지 못한다면 어떨까?처음에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은 뛰어다니는데 나만 움직이지 못한다면 속상하고 화도 날 것 같다.『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의 조이가 그랬다. 어느 봄날, 목동이 염소와 양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기 염소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기 염소는 앞다리에 힘이 없어 다른 염소들처럼 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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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태어났는데 나만 걷지 못한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정말 끔찍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은 뛰어다니는데 나만 움직이지 못한다면 속상하고 화도 날 것 같다.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의 조이가 그랬다. 어느 봄날, 목동이 염소와 양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기 염소가 태어났다. 그런데 아기 염소는 앞다리에 힘이 없어 다른 염소들처럼 걸을 수 없었다. 목동은 아기 염소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가방에 넣어 데리고 다녔다.

나는 조이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염소들은 자기 다리로 산과 언덕을 돌아다니는데 조이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조이라면 ‘왜 나만 못 걷지?’ 하고 매일 속상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목동의 품에 안겨 다니는 것은 좋지 않았을까?

걷지 못하는 것은 속상하지만 목동이 나를 소중하게 안아 주는 순간까지 끔찍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슬픈 일이 있다고 하루 종일 모든 것이 슬픈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이의 마음에는 두 얼굴이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도 다른 염소처럼 뛰고 싶어.’

그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목동이 나를 이렇게 아껴 줘서 좋아.’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목동은 개암나무 가지를 가져와 구부리고 비틀며 조이를 위한 것을 만든다. 바로 조이가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세 바퀴였다. 세 바퀴를 이용하게 된 조이는 다른 염소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나중에는 아기 염소를 낳아 엄마가 된다.

나는 처음에는 세 바퀴가 생긴 뒤에야 조이가 행복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조이는 걷지 못할 때도 목동에게 사랑받았다. 세 바퀴가 생겼다고 갑자기 더 소중한 염소가 된 것도 아니다. 달라진 것은 조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장애가 있으면 계속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처음에 조이를 보자마자 ‘나라면 끔찍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조이의 마음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걷지 못해 속상한 날도 있고, 목동의 품이 따뜻해서 기분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세 바퀴를 타고 신나는 날도 있고, 넘어져서 화나는 날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다. 나는 장애가 없지만 매일 행복하지도 않고 매일 불행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조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이는 불쌍한 염소도, 특별한 염소도 아니다. 그냥 조이다.

앞다리는 움직이기 어렵지만 세 바퀴로 다니고, 목동의 사랑을 받고, 다른 염소들과 어울리고, 나중에는 엄마가 된 조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에 했던 질문을 조금 바꾸고 싶어졌다.

‘내가 조이라면 얼마나 끔찍할까?’가 아니라,

‘내가 조이라면 오늘은 어떤 기분일까?’

그 질문이라면 매일 답이 달라질 것 같다.


l*********9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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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도 세 바퀴가 있다면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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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집 안에 계시는 시간이 많다.나는 예전에는 할머니가 밖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다. 혼자 밖에 나가려면 힘든 일이 많기 때문에 집에 계시는 것이다.『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으며 자꾸 할머니가 생각났다.조이는 다른 염소들과 다르다. 앞다리가 불편해 다른 염소들처럼 마음껏 뛰어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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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집 안에 계시는 시간이 많다.

나는 예전에는 할머니가 밖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다. 혼자 밖에 나가려면 힘든 일이 많기 때문에 집에 계시는 것이다.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으며 자꾸 할머니가 생각났다.

조이는 다른 염소들과 다르다. 앞다리가 불편해 다른 염소들처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없다. 목동은 조이를 가방에 넣고 데리고 다닌다. 조이는 목동의 도움을 받으면 다른 염소들이 가는 곳에 함께 갈 수 있다.

하지만 조이는 가방 속에서 다른 염소들이 산과 언덕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본다. 그 장면을 읽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같이 가는 것과 내 힘으로 가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목동은 조이를 위해 나뭇가지를 구부리고 바퀴를 달아 조이가 움직일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준다. 세 바퀴를 얻은 조이는 자기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른 염소들과 어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된다.

나는 처음에는 목동이 조이를 ‘도와주었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가방에 넣어 데리고 다니는 것도 도움이고 세 바퀴를 만들어 주는 것도 도움인데, 두 도움은 조금 달랐다. 가방에 있을 때 조이는 목동이 데려가 주는 곳으로만 갈 수 있다. 하지만 세 바퀴가 생긴 뒤에는 조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도움이 더 좋은 도움일까?

이 질문을 하자 다시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밖에 나가실 때 우리 가족이 옆에서 부축해 드리는 것도 도움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혼자서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과 시설이 많다면 누군가를 꼭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버스나 전철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고 버스를 타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계단 하나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보면 내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도와드리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항상 할머니 옆에 있을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밖에 나가기 힘든 세상보다 혼자서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세상이 더 좋다.

조이에게 세 바퀴가 생긴 뒤 조이의 다리가 갑자기 나은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조이가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에게도 그런 ‘세 바퀴’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 쉽게 탈 수 있는 버스와 전철, 쉬어 갈 수 있는 장소가 많아져서 할머니가 가고 싶은 곳을 스스로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느 날에는 할머니가 집에서 나에게 먼저 말할지도 모른다.

“연호야, 오늘은 어디 갈까?”

그날에는 내가 할머니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와 내가 함께 나가는 것일 것이다.

l*********9 2026.09.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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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는 도움만 받는 염소가 아니었다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조이는 도움만 받는 염소가 아니었다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나는 아주아주 어렸을 때 장애인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장애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장애가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했던 생각이다. 학교에 들어간 뒤 장애가 있으면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 내 생각은 반대로 바뀌었다. 장애인은 힘들고,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
"조이는 도움만 받는 염소가 아니었다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내용보기

나는 아주아주 어렸을 때 장애인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장애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장애가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했던 생각이다. 학교에 들어간 뒤 장애가 있으면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 내 생각은 반대로 바뀌었다. 장애인은 힘들고,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바퀴로 걷는 염소 조이』를 읽고 나니 그 생각도 완전히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봄날, 초원에서 아기 염소가 태어난다. 목동은 아기 염소에게 조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런데 조이는 앞다리에 힘이 없어 다른 염소들처럼 일어나 걸을 수 없었다. 목동은 조이를 불쌍하다고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조이가 움직일 수 있도록 세 바퀴가 달린 기구를 만들어 준다.
처음 세 바퀴를 달고 움직이는 조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목동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몸이 불편한 사람은 누군가 도와줘야 하는구나.’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서 내 생각을 바꾸는 장면이 나왔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조이가 덤불에 뿔이 걸린 흑염소를 발견하고 구해 준 것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조금 놀랐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조이가 다른 염소를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목동도 조이를 계속 안고 다니지 않았다. 조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세 바퀴를 만들어 주었고, 그 뒤에는 조이가 자기 힘으로 초원을 돌아다녔다. 친구들과 놀고 동생들을 등에 태워 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새끼를 돌보는 엄마 염소가 되었다.
조이는 앞다리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염소는 아니었다. 걷는 방법이 다른 염소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다.
나는 그동안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 착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 갑자기 빼앗아 대신 해 준다면 나도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도와야 하지만, 내가 먼저 ‘이 사람은 장애가 있으니까 못 할 거야.’라고 정해 버리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몸이 불편한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달려가서 도와주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보고,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면 물어보고 싶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필요하다고 하면 도와주고, 괜찮다고 하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리면 된다.
조이에게 세 바퀴는 다른 염소의 네 다리를 흉내 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이가 자기 방법으로 초원을 달릴 수 있게 해 준 바퀴였다.
나도 이제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먼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이처럼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도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l*********9 2026.09.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