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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을 다시 읽게 된 것은 복이다. 이 시대에 역사적인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하는 관중을 읽는다는 것은 참된 복을 얻는다는 뜻이다. 관중을 읽으면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 세상에서 능력자가 되는 길을 보게 된다. 관중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은 이런 능력 있는 처세와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자세로 서서 살아갈 것인가? 그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삶을 만들어 나간다고 보면 되리라. 관중은 그런 의미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일깨워 준다.
관중은 소백과 규가 제의 왕위를 다툴 때 규의 편에 있었다. 소백에 의해 공자 규가 제거되었을 때 따라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때 소백의 편에 서있었던 친구 포숙아가 관중을 소백에게 추천한다. 소백은 관중을 등용하기가 쉽지 않다. 적의 편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포숙아가 환공에게 말한다. <제나라가 이 작은 나라로 만족하려면 관중을 등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천하를 장악하려면 관중이 꼭 필요합니다.> 그렇게 설득해 환공(소백)은 관중을 등용한다. 포숙아는 관중이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모습이고, 대의를 위해 생각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둘의 신뢰하는 관계를 <관포지교>라 하기도 한다.
관중은 제자백가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치국평천하의 이론과 실제를 모두 아우른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다.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부민부국>이다. 이는 치국평천하의 요체로 상가 이론의 핵심에 해당한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걸고 실현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제 환공을 춘추의 첫 패자로 올려놓는다.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고 백성이 부하면 다스리기 쉽다.”는 이치를 일찍 깨닫고 그것을 위해 정책을 펴나간 모습을 보여준다. 그 부민이 곧 부국이 되고, 부국은 강병으로 나가갈 수 있는 기틀이 된다. 그렇게 국력이 신장됨으로 인해 패자국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관자는 어떻게 나왔을까? 그것을 독해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는 크게 관중 자신, 관중의 문인 또는 제자, 제나라 도성 임치에 설치된 직하학궁의 학자들 등이 말해지고 있다. <관자>의 내용이 복합적이어서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종합적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관자는 내용 면으로 볼 때 관중의 정치사상에 부합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일부 내용은 제자나 문인이 기술한 것으로 추정되는가 하면 후대인이 끼워 넣은 게 확실한 대목도 있다. 책이 흘러오면서 첨언이 되어 약간씩 보강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근원에는 관중의 사상이 들어있고, 그것이 보완되는 형태로 오늘까지 이어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관자는 <경제학> 부분에서 출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중을 경제학파인 상가의 창시자로 보고 있는 이유도 된다. 관자는 백성을 부하게 하고, 국력을 신장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을 위해 엄격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질서가 유지되게 하는 면에서 철저함을 보여준다. 그것이 강병을 이루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 이론이 춘추 시대 동쪽의 조그만 나라인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면서 주의 힘을 빌려 패자 국으로 춘추 전국을 다스려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 관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관자는 잡다한 내용으로 인해 법가나 잡가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법가로 분류하는 데는 문제가 있었다. 관자에는 유가와 도가, 병가, 음양가가 두루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제자백가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다양한 사상에 영향을 준 관자다. 그러기에 관자를 일부분만 봐서 법가, 잡가 등으로 분류하는 것을 옳지 않다. 후대에 성리학이 등장한 이래 <관자>가 폄하된 면은 있었으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백성을 잘 살게 만드는 사실주의적 사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관자>는 <묵자>와 함께 가장 난해한 고전으로 분류된다. 당나라 전기까지만 해도 <관자>가 중시되었던 경향을 보인다. 위징 <관자치요> 두우<관자지략> 윤자장의 <관자주> 등은 반증이 된다.
송대에서는 성리학에 함몰된 하대부들이 <관자>의 부국강병 책략을 경시해 윤지장의 주석서를 뛰어 넘는 <관자> 관련 연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이 명, 청대에 들어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어 다양한 주석서와 관련된 서적들이 나오게 된다. 이 책은 후대에 나온 <관자집교><관자교주><제자집성> 등의 주석서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역자의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낱낱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지만, 근간이 되는 내용은 마음에 담을 수가 있다. 책이 역사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드는 귀한 책이다. 청과 조선이 망하게 된 것도 결국 관중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적고 있다.
책은 <관중은 누구인가> <관자란 무엇인가> 로 구분해서 얘기를 진행해 나간다. <관중은 누구인가>에서는 관중의 삶과 사상을 중심으로 표현하고 있다. 관중의 사상은 <부강> <존양> <패도> 등으로 귀결된다. 이 사상을 제의 환공을 통해서 실천한 인물이 관중이다. 그가 있을 때 제는 춘추의 패자 국이 된다. <관자란 무엇인가>에서는 관자가 나오게 된 경위, 관자에 대한 읽기를 말하고 있다. 상권에서는 제 1편 경언에서 제 4편 단어(短語) 34장 정언(正言)까지 풀이를 하고 있다. 낱낱이 들려주는 얘기가 관중를 더욱 거인으로 느끼게 만들어 나간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참 공부가 많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무엇인가 미진한 것들이 마음에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 관중만 제대로 읽고 치국의 도리를 좇아 나갔더라면 구한말 그리 아픈 역사는 없을 것인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존의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으면 무엇을 하겠는가?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자들이 관중을 제대로 읽고 무엇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민족을 지킬 수 있는 길인가를 깨달아 간다면 민중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수천 년 전의 사람에게서 오늘의 지혜를 배운다. 치국의 건강함을 깨닫는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이다. 이렇게 지금이라도 읽어보고 있다는 자체가 소중하다. 2권은 더욱 찬찬히 읽어볼 작정이다.
*인간사랑의 서평 이벤트 도서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읽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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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역자는 그동안 수많은 동양의 고전을 주해한 신동준 선생이다. 그토록 수많은 고전 중에서 역자는 왜 이 책을 '사상 최초의 정치경제학서'라 칭하면서 고전에서 배우는 경제 활성화와 국가 경영 전략을 표방하고 있을까? 인간사랑에서 출판한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관자(管子)]의 현존하는 76편의 내용을 8편 76장(이 책에서는 10편 86장으로 구성)으로 나누어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백가라 일컬어지는 사상 또는 철학을 단번에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에 대한 다양한 해설과 설명을 위한 책들이 끊임없이 출간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동안 제대로 출간되지 않았던 [관자(管子)]의 원전의 내용을 비록 해석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곧바로 읽고 이해하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 우리가 왜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지 공감하여 또 기존의 제자백가와 달리 어떤 점이 특징인지를 이해한 이후에 원전을 접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두 권의 책 중에서 상(上)권의 원전 이전의 내용과 하(下)권의 원전 이후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내용은 [관자(管子)]를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보다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동준 선생은 관중(관자)이 법가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관중이 단순히 공자와 한비자와 같은 유명 제자백가 사상가들보다 먼저 태어나서활동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관자(管子)]의 본편에 해당되는 내용이 제자백가에서 말하는 다양한 사상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중이 제환공을 패자의 지위에 올려놓는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부국강병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과 계책은 곧 제자백가가 지향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례로 그가 민생을 부유하게 함으로써 부국의 길에 오르는 과정은 유가와 법가와 통하는 것이며, 그가 제환공에 올린 계책과 군을 양성하고 통솔하는 방법은 손자의 병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그의 삶 역시 이후의 사상가들이 각기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다양한 사상가들에게 오르내리고 있는 부분을 감안한다면 [관자(管子)]에 담긴 폭넓은 의미는 여러 사상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든다며 효와 충을 강조한 유가의 대표적인 사상가 공자는 관중이 자신이 모시던 공자 규가 왕위에 오르지 못하여 결국 죽음을 당하자 그를 따라 자결한 다른 신하와는 달리 라이벌이었던 제환공을 모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제환공을 패자의 지위에 올려 놓음으로써 불필요한 전쟁을 미리 방지하였다는 점을 들어서 높게 평가하는 점이 그렇다. 단순히 그의 행적을 하나의 사상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메이지 시대에 일본이 다양한 제자백가 사상 중에서 [관자(管子)]에 주목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들은 [관자(管子)]의 주요 키워드인 '경세제민(經世濟民)'과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메이지 유신의 기치로 삼았는데, 특히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경제(經濟)'로 번역하면서 관중의 사상을 그들의 치세에 적극 활용하였다. 사실 이러한 [관자(管子)]의 주요 키워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여 국가의 정책으로 삼을만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자(管子)]는 그동안 본거지인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남송 때 주희가 맹자사상에 기초한 성리학을 집대성하면서 맹자의 주장만이 횡행하게 됐다. 순자와 그의 제자인 한비자가 이단으로 몰리게 된 이유다. 이를 계기로 원래 치국평천하에 초점을 맞춘 공자사상은 수신제가에 방점을 찍은 도덕철학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 p. 12 中에서 -
조선의 학문과 이념의 근간이 된 주자학(朱子學)을 역설한 주희의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맹자사상에 기초한 그의 관점과 생각은 이후 중국은 물론 조선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즉, 상황을 불문하고 오로지 '왕도'만이 바람직하다고 여긴 맹자의 입장에서 난세에는 '패도'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예 허용조차 되지 않았으니 한비자의 법가는 물론 훨씬 이전의 '관자(管子)' 역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주자학 이외에는 사문난적으로 몰리는 조선의 상황에서 '관자(管子)'는 이단으로까지 취급받았으니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는 유가의 창시자인 공자가 관중의 업적과 그의 철학을 상황에 맞게 평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였다. 이로 인하여 청나라는 물론 조선은 결과적으로 열강과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니 상황에 따른 왕도와 패도의 추구가 이루어져야 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신동준 선생은 현재 G2는 물론 세계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의 상황에서는 맹자가 말하는 왕도가 아닌 관중이 추구한 경세제민과 부국강병이 절실한 상황이기에 [관자(管子)]에 대한 이해와 활용이 더욱 절실함을 피력하고 있다.
후대인들은 관중의 부국강병 책략에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관자(管子)]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어가 '중상(重商)'을 통한 부민무국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나아가 역대 왕조 모두 중농 대신 중상을 역설한 사마천의 주장을 극도로 꺼린 까닭에 이전 왕조의 사서를 편찬할 때 [평준서]를 모방한 [식화지]만 편제하고 [화식열전]은 아예 편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상가의 존재가 오래 묻힌 이유다. - p. 95 中에서 - [관자(管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위와 같다. 다행히 현재에는 과거 상가(商家)가 말하는 철학이 통용되는 시점이기에 그동안 역사에서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관자(管子)]의 내용 중 상가(商家)와 관련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리뷰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역자인 신동주 선생은 [관자(管子)]를 제자백가의 효시로 보고 있는데, [관자(管子)]에 대한 그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관중은 비단 병가분만 아니라 유가와 법가 등 제자백가의 시원에 해당한다. 예의염치의 문화대국은 유가, 엄법에 기초한 강병강국은 법가,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민무국은 상가와 통한다. 문화대혁명 당시 법가를 극도로 높인 사인방은 관중을 법가의 효시로 간주했으나 그보다는 사상 최초의 중상주의에 입각해 상공업의 진흥을 역설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 129 中에서 - 이를 통하여 [관자(管子)]는 역사에 기록된 그의 행적과 함께 살펴봄은 물론 이후 그 내용들이 다른 사상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부 내용은 후대의 사람들이 다시 썼다는 평도 있지만, [승마]와 [구부], [경중]편은 정치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관자경제학'과 관련된 내용으로서 [관자(管子)] 전체의 3분의 2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고 있는데, 이 내용만으로도 관중의 사상과 철학을 보다 깊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내용과 함께 다른 편들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그간 잘 다루지 않았던 [관자(管子)]에 담겨진 대표적인 사상이라 할 수 있는 '부강주의(富强主義)', '존양주의(尊壤主義)', '패도주의(覇道主義)'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 책의 상(上)권에서는 [관자(管子)]의 8편 76장 중에서 [경언(經言)], [외언(外言)], [내언(內言)], [단어(短語)] 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현존하는 총 76장의 내용을 전한 시대의 유향의 편집 기준에 맞게 정리하였지만, 일부의 내용은 따로 편성한 구성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든다면 [구부]가 원래 [경언]편에 포함되어 있으나, 신동준 선생은 따로 하나의 편으로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이 책은 총 10편 8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각 편은 여러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 대한 설명과 함께 '원문(한자) - 해석 - 주해 또는 설명'의 형식으로 각 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단연 돋보이는 점은 바로 역자인 신동준 선생의 주해가 아닐가 싶다. 원래 [관자(管子)]의 원전은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기에 단순히 원문인 한자를 해석한 것만을 읽는다고해서 그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자(管子)]의 의미와 이 책의 구성을 이해하게 된다면 낯선 [관자(管子)]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는 일은 조금은 수월할 것이다. 그래서, 무턱대고 [관자(管子)]의 본문을 곧바로 읽는 것보다 이 책에서 제공하는 [관자(管子)]와 관련된 다양한 의미와 배경 지식을 이해하는 것은 필수이다.
군주가 예법을 잘 지키면 육친이 굳게 단결하고, 예의염치의 4유를 널리 베풀면 군주의 명령이 잘 시행된다. 형법을 간소화하는 요체는 사치를 금하는 데 있고, 국가를 보존하는 법도는 4유를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교화하는 원칙은 귀신을 떠받들며 산천을 제사지내고 조상을 숭경하며 친구를 존중하는데 있다. - p. 214 中에서 - [경언(經言)]편의 제1장 '목민(牧民)'에 등장하는 위의 내용을 보면 왜 신동준 선생이 [관자(管子)]가 제자백가사상의 시초로 볼 수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위의 내용 중 4유로 언급된 '예의염치'는 훗날 유가에서 말하는 항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하여 국가를 유지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특히 그러하다. 물론 이 원전의 내용을 곧바로 접하고 이것이 훗날 유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 원전의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이 언급하는 바를 미리 알고 있다면 확실히 이해하기 더 수월하다.
두터운 경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 또 그 이해한 바를 일상에 적용하는 것은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한 목적이나 결코 쉽지 않다. 두 권으로 구성된 [관자(管子)]를 직접 마주하게 된다면 감히 넘겨볼 용기도 생기지 않지만,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이 책에서 말하는 이 시대에 왜 [관자(管子)]를 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관중의 행적을 떠올리며 그의 사상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자백가와 관련하여 그것을 주장한 사상가는 많지만, 그것을 직접 실천으로 옮긴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자(管子)]는 제환공을 춘추오패의 자리에 오르게 한 관중의 역사적인 행적으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껏 접한 제자백가보다는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다. 또한 현재 한국의 상황은 겉으로는 경제적인 번영과 내부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행착오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안정된 상황처럼 보여지지만,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그리 녹록치 않음을 감안한다면 춘추시대와 마찬가지로 난세의 상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을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 15페이지 5번째 줄 : 군주독재 -> 군주독제 15페이지 6번째 줄 : 군신독제 -> 군주독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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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상) 관중/신동준 인간사랑/2021.1.29. sanbaram
관중은 포숙아와 더불어 관포지교 고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관중은 법가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사상가에 해당한다. 관중은 사농공상의 최하층으로 분류된 상업을 농업만큼 중시하는 농상병중을 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본서가 관중을 제자백가의 효시이자 최초의 정치경제학파인 상가의 창시자로 규정하는 이유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옮긴이 신동준은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저서 및 역저서로 <조조통일론>, <삼국지통치학>, <전국책>, <국어> <인물로 읽는 중국현대사>등 많은 책이 있다.
“관중이 역설한 경세제민과 부국강병 계책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이민에 기초한 부민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가 40여 년 동안 제환공을 곁에서 보필하면서 제나라를 문득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낸 비결이 여기에 있다.(p.16)” 관중은 사농공상으로 요약되는 4민 가운데 최하층으로 분류된 상인을 농부만큼 중시해 이른바 농상병중을 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본서가 일련의 저서를 통해 ‘종횡가’대신 ‘상가’용어를 사용하며 관중을 제자백가의 효시이자. ‘상가’의 창시자로 규정하는 이유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춘추좌전>은 제환공이 비록 미흡하기는 했으나 초나라를 제압한 이후에 보여준 일편의 패업 행보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말할 것도 없이 관중의 헌신적인 보필 덕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주왕실을 받들고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른바 존왕양이와 패망한 중원의 제후국을 일으켜 세우고 끊어진 후사를 잇게 하는 존망계절 행보를 들 수 있다.(p.76)” 제환공과 관중이 보여준 리더십은 이른바 군도(君道)와 신도(臣道)의 표상에 해당한다. 21세기 리더십이 이론에서는 통상 ‘군도’를 1인자 리더십, ‘신도’를 2인자 리더십으로 해석한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1인자는 2인자의 보필이 없으면 대업을 이룰 수 없고, 2인자는 1인자의 전폭적인 성원이 없으면 제기량을 발휘키가 어렵다. 경서와 사거를 포함한 동양의 모든 고전이 ‘군도’와 ‘신도’를 동시에 언급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제환공을 명군으로 평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상황에 따라 두루 활용하는 게 군도(君道)이고, 사물의 요체를 파악해 일을 공평히 행하는 게 신도(臣道)라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p.78)”. ‘지인(知人)’과 ‘지사(知事)’가 요체인 군도와 신도는 달라야만 한다. 뛰어난 군주가 되는 비결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많은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깊이 이해해 두루 활용할 줄 아는 데 있다. 제환공은 소인배인 역아 등을 총애한 이유로 후대 사가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가 춘추시대의 첫 패자가 된 것은 주변에서 관중 및 포숙아 등의 인재들을 포진시켜 힘을 실어준 덕분이다. 인재들을 곁에 두고 이들의 계책을 활용하는 한 수초와 역아 등의 소인배들을 곁에 둔 것은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인재와 소인을 구분해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법가와 도가, 유가, 상가 등이 무사무편(無私無偏)한 통치를 최상의 통치로 간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인애민(愛人愛民) 이념을 국가공동체의 존재이유로 파악한 결과다. 제자백가 치국평천하 방략을 놓고 치열한 사상논쟁을 전개한 백가쟁명(百家爭鳴)도 따지고 보면 ‘애인애민’의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P.159)” 또한 왕도와 패도는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없다. 왕자는 사람을 얻고자 하고, 패자는 동맹국을 얻고자 하고, 강자는 땅을 얻고자 한다, 사람을 얻고자하는 자는 제후를 신하로 삼고, 동맹국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제후를 벗으로 삼고, 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제후를 적으로 삼는다. 강자는 힘으로 승리를 거두는 까닭에 남의 백성이 날마다 나와 싸우려 들고, 나의 백성이 날마다 나를 위해 싸우려 들지 않게 되어 도리어 약해진다.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고, 공격하지 않고도 얻고, 무력동원을 하지 않고도 천하를 복종시키는 3가지 요건을 아는 자는 원하는 대로 왕자가 되고 싶으면 왕자, 패자가 되고 싶으면 패자, 강자가 되고 싶으면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논어> [헌문]편에서 자로가 공자 앞에서 말했다. “제환공 소백이 공자 규를 죽이자 신하 소홀은 그를 위해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관중은 ‘인(仁)’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환공이 제후들을 9번 규합하며 병거를 동원치 않은 것은 모두 관중의 공이다. 그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그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p.174)” 자로는 직선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은 매사를 선악의 잣대로 나눠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공자는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관중을 인하다고 강조하는 장면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공자 규가 죽고 소홀이 그를 좇아 죽었을 때 나는 함거에 갇혀 모욕을 받는 길을 택했다. 그런 나를 두고 포숙아는 치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소절’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밝게 드러내는 ‘대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P.175)”라고 관중이 말했다. 관중이 포숙아를 두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인 ‘생아자(生我者)’못지않은 ‘지아자(知我者)’라고 찬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2권 ‘<관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 몇 장의 내용을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목민 :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데 있다. 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하고, 빈천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부귀하게 만들어야 하고,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보호하여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후사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길러야 한다.(p.217)
제10장 오보 : 명군의 임무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농업생산을 강화하며 쓸모없는 사치품을 제작하는 말작을 없애는데 힘쓴다. 그래야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량한 자를 선발하고, 능력 있는 자를 등용한다. 그래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세금을 줄이고, 백성에게 가혹하게 굴지 않고, 성실하고 애호하는 자세로 대한다. 그래야 백성을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p.382)
제18장 대광 : 포숙아는 공자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달아났고, 관중과 소홀은 공자 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망명했다. 노장공 9년인 기원전 685년 봄, 공손무지가 대부 옹름을 학대하자 옹름이 공손 무지를 죽였다. 소백이 거나라에서 먼저 제나라로 들어오려고 하던 즈음 노장공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로 쳐들어 왔다. 공자 규를 옹립하려는 의도였다. 간시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관중이 미리 길을 막고 있다가 소백에게 활을 쏘아 그의 허리띠 갈고리를 맞췄다. 간신히 제나라로 돌아온 소백이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가 노나라 군사를 깨뜨리고 보위에 올랐다. 그가 제환공이다. 얼마 후 제환공이 노장공을 압박해 공자 규를 죽이게 했다.(p.535)
제22장 패형 : 이 장은 주로 패업의 방략을 놓고 관중과 제환공 사이에 오간 대화로 구성돼 있다. 크게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째 세금감면과 약자보호 등을 통해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정책이다. 둘째, 향락의 절제와 제후들과의 수교이다. 셋째, 중원 제후들의 규합을 통한 초나라 제압이다. 제환공은 관중의 이런 단계별 패업 방략을 좇아 춘추 5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p.634)
“관중이 제나라로 들어오거나 제나라에서 빠져 나가는 모든 물류 및 인류에 대한 관세를 완전히 철폐했다.(p.110)” 덕분에 열국을 넘나들며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성에 몰려들었다. 임치성이 전국시대 말기까지 가장 번화한 도시로 존재한 근본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환공이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건과 사람의 통제를 풀고 국민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하고 북돋워 줄 때 진정 국민이 원하는 발전된 나라가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관자>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명분에 집착하여 나라를 잃는 망국의 한을 남겼던 조선 말의 선택을 거울삼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옮긴이는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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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목민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데 있다. 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하고, 빈천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부귀하게 만들어야 하고,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보호하여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후사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길러야 한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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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상) 관중/신동준 인간사랑/2021.1.29. sanbaram
관중은 포숙아와 더불어 관포지교 고사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관중은 법가뿐만 아니라 유가와 도가 병가 등 제자백가의 효시에 해당한다. 그는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사상가에 해당한다. 관중은 사농공상의 최하층으로 분류된 상업을 농업만큼 중시하는 농상병중을 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본서가 관중을 제자백가의 효시이자 최초의 정치경제학파인 상가의 창시자로 규정하는 이유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옮긴이 신동준은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저서 및 역저서로 <조조통일론>, <삼국지통치학>, <전국책>, <국어> <인물로 읽는 중국현대사>등 많은 책이 있다.
“관중이 역설한 경세제민과 부국강병 계책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이민에 기초한 부민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가 40여 년 동안 제환공을 곁에서 보필하면서 제나라를 문득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낸 비결이 여기에 있다.(p.16)” 관중은 사농공상으로 요약되는 4민 가운데 최하층으로 분류된 상인을 농부만큼 중시해 이른바 농상병중을 천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본서가 일련의 저서를 통해 ‘종횡가’대신 ‘상가’용어를 사용하며 관중을 제자백가의 효시이자. ‘상가’의 창시자로 규정하는 이유라고 옮긴이는 말한다.
“<춘추좌전>은 제환공이 비록 미흡하기는 했으나 초나라를 제압한 이후에 보여준 일편의 패업 행보를 상세히 기록해 놓았다. 말할 것도 없이 관중의 헌신적인 보필 덕분이다. 대표적인 예로 주왕실을 받들고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치는 이른바 존왕양이와 패망한 중원의 제후국을 일으켜 세우고 끊어진 후사를 잇게 하는 존망계절 행보를 들 수 있다.(p.76)” 제환공과 관중이 보여준 리더십은 이른바 군도(君道)와 신도(臣道)의 표상에 해당한다. 21세기 리더십이 이론에서는 통상 ‘군도’를 1인자 리더십, ‘신도’를 2인자 리더십으로 해석한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1인자는 2인자의 보필이 없으면 대업을 이룰 수 없고, 2인자는 1인자의 전폭적인 성원이 없으면 제기량을 발휘키가 어렵다. 경서와 사거를 포함한 동양의 모든 고전이 ‘군도’와 ‘신도’를 동시에 언급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제환공을 명군으로 평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 그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을 상황에 따라 두루 활용하는 게 군도(君道)이고, 사물의 요체를 파악해 일을 공평히 행하는 게 신도(臣道)라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p.78)”. ‘지인(知人)’과 ‘지사(知事)’가 요체인 군도와 신도는 달라야만 한다. 뛰어난 군주가 되는 비결은 사물에 대한 지식이 많은데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깊이 이해해 두루 활용할 줄 아는 데 있다. 제환공은 소인배인 역아 등을 총애한 이유로 후대 사가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가 춘추시대의 첫 패자가 된 것은 주변에서 관중 및 포숙아 등의 인재들을 포진시켜 힘을 실어준 덕분이다. 인재들을 곁에 두고 이들의 계책을 활용하는 한 수초와 역아 등의 소인배들을 곁에 둔 것은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인재와 소인을 구분해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법가와 도가, 유가, 상가 등이 무사무편(無私無偏)한 통치를 최상의 통치로 간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인애민(愛人愛民) 이념을 국가공동체의 존재이유로 파악한 결과다. 제자백가 치국평천하 방략을 놓고 치열한 사상논쟁을 전개한 백가쟁명(百家爭鳴)도 따지고 보면 ‘애인애민’의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P.159)” 또한 왕도와 패도는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없다. 왕자는 사람을 얻고자 하고, 패자는 동맹국을 얻고자 하고, 강자는 땅을 얻고자 한다, 사람을 얻고자하는 자는 제후를 신하로 삼고, 동맹국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제후를 벗으로 삼고, 땅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제후를 적으로 삼는다. 강자는 힘으로 승리를 거두는 까닭에 남의 백성이 날마다 나와 싸우려 들고, 나의 백성이 날마다 나를 위해 싸우려 들지 않게 되어 도리어 약해진다.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고, 공격하지 않고도 얻고, 무력동원을 하지 않고도 천하를 복종시키는 3가지 요건을 아는 자는 원하는 대로 왕자가 되고 싶으면 왕자, 패자가 되고 싶으면 패자, 강자가 되고 싶으면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논어> [헌문]편에서 자로가 공자 앞에서 말했다. “제환공 소백이 공자 규를 죽이자 신하 소홀은 그를 위해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관중은 ‘인(仁)’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환공이 제후들을 9번 규합하며 병거를 동원치 않은 것은 모두 관중의 공이다. 그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 그 누가 그의 인만 하겠는가!(p.174)” 자로는 직선적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은 매사를 선악의 잣대로 나눠보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공자는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관중을 인하다고 강조하는 장면이라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공자 규가 죽고 소홀이 그를 좇아 죽었을 때 나는 함거에 갇혀 모욕을 받는 길을 택했다. 그런 나를 두고 포숙아는 치욕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내가 ‘소절’을 지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밝게 드러내는 ‘대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P.175)”라고 관중이 말했다. 관중이 포숙아를 두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인 ‘생아자(生我者)’못지않은 ‘지아자(知我者)’라고 찬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2권 ‘<관자>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에서 몇 장의 내용을 소개 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목민 :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는데 있고, 폐해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는데 있다. 백성은 근심과 노고를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야 하고, 빈천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부귀하게 만들어야 하고, 위험에 빠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보호하여 안전하게 만들어야 하고, 후사가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까닭에 군주는 그들을 잘 길러야 한다.(p.217)
제10장 오보 : 명군의 임무는 크게 3가지다. 첫째, 농업생산을 강화하며 쓸모없는 사치품을 제작하는 말작을 없애는데 힘쓴다. 그래야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현량한 자를 선발하고, 능력 있는 자를 등용한다. 그래야 백성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세금을 줄이고, 백성에게 가혹하게 굴지 않고, 성실하고 애호하는 자세로 대한다. 그래야 백성을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p.382)
제18장 대광 : 포숙아는 공자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달아났고, 관중과 소홀은 공자 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망명했다. 노장공 9년인 기원전 685년 봄, 공손무지가 대부 옹름을 학대하자 옹름이 공손 무지를 죽였다. 소백이 거나라에서 먼저 제나라로 들어오려고 하던 즈음 노장공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로 쳐들어 왔다. 공자 규를 옹립하려는 의도였다. 간시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관중이 미리 길을 막고 있다가 소백에게 활을 쏘아 그의 허리띠 갈고리를 맞췄다. 간신히 제나라로 돌아온 소백이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가 노나라 군사를 깨뜨리고 보위에 올랐다. 그가 제환공이다. 얼마 후 제환공이 노장공을 압박해 공자 규를 죽이게 했다.(p.535)
제22장 패형 : 이 장은 주로 패업의 방략을 놓고 관중과 제환공 사이에 오간 대화로 구성돼 있다. 크게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째 세금감면과 약자보호 등을 통해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정책이다. 둘째, 향락의 절제와 제후들과의 수교이다. 셋째, 중원 제후들의 규합을 통한 초나라 제압이다. 제환공은 관중의 이런 단계별 패업 방략을 좇아 춘추 5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p.634)
“관중이 제나라로 들어오거나 제나라에서 빠져 나가는 모든 물류 및 인류에 대한 관세를 완전히 철폐했다.(p.110)” 덕분에 열국을 넘나들며 장사를 하는 상인들이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성에 몰려들었다. 임치성이 전국시대 말기까지 가장 번화한 도시로 존재한 근본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환공이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건과 사람의 통제를 풀고 국민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보장하고 북돋워 줄 때 진정 국민이 원하는 발전된 나라가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서 <관자>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명분에 집착하여 나라를 잃는 망국의 한을 남겼던 조선 말의 선택을 거울삼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옮긴이는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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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랑 간 <관자 상, 하>를 만난 순간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775쪽과 800쪽! 그래서 한곁에 두었다가 이번 연휴에 꺼내서 읽었습니다. 읽다보니 부담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기억났습니다. 정치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국가경영전략.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경제를 살리는 관자 이야기만 찾아 읽었습니다. 성세 제도 제자 노자 도가 군주가 치도로 먹고 살면 예제가 자세해지고 의리가 밝아진다.예제가 자세하고 예의가 밝으면 사람들이 등급을 참월하지 않는다. 747쪽
관중이 상가와 병가의 효시라는 점과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를 통해 부국강병을 꾀했다는 점을 기억하면 <관자 상>의 핵심을 이해했다고 보입니다. 일단 간단하게 관중과 제환공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읽는다는 기분으로 일독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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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 중 제(齊)나라는 산동성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제나라는 강태공이 세운 나라다. 수도는 임치. 당시 변방 중 하나였다. 제는 환공(桓公, 재위 기원전 685년~기원전 643년) 때 이르러 전국을 주름잡게 되었으니 제환공은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 그의 곁에는 재상 관중(管仲)이 있었다.
관중은 기원전 725년 제의 땅 영상(潁上)에서 태어났다. 오롯이 제나라 사람이다. 당시 영상은 수로가 발달해 사방에서 물자가 모이고 거래됐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는 포숙과 죽마고우였다. 하지만 섬기는 군주가 각기 달랐으니 관중은 강규, 포숙은 강소백이었다. 결국 소백이 우여곡절 끝에 기원전685년 등극하니 바로 제환공이다. 관중은 급히 노나라로 달아났다. 포숙이 그를 천거해 재상이 되었다. 새옹지마가 따로 없다. 관중은 환공보다 2년 먼저 세상을 떴다(기원전 645년). 거의 환공과 40년을 함께 한 셈이다.
세월은 흘러 기원전 4세기 무렵 또 다른 환공(桓公)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오(田午, 재위 기원전 384~기원전 379)다. 전오는 원래 진(陳)나라에서 피난온 진완(陳完)의 후손이다. 당대에는 진(陳)과 전(田)이 구분 없이 쓰였다. 그래서 진씨였다가 전씨였다가 했다. 이때 진완을 받아들인 사람이 바로 소백 제환공이었다. 전씨 집안은 기원전 386년 강씨의 마지막 임금 제강공을 몰아내고 제후가 된다. 바로 전화(田和)다. 나라이름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썼다.
이듬해 병사한 전화의 대를 이은 이가 전오다. 전오는 백성들의 마음을 사고 천하의 인심을 얻기 위해 애썼다. 전오의 아들 제위왕(이때부터 ‘왕’이라 칭함)이 위업을 이어받고자 직하학궁(稷下學宮)을 세웠다.
직하학궁은 도읍 임치성의 직문(서문)이 있던 직산(稷山) 아래 세워졌다 해서 이렇게 불렸다. 학문에 뜻이 있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었고 학비는 나라에서 부담했다. 총장은 학문이 깊고 덕망이 높은 이가 추천을 받아 임명되었다.
이런 이유로 학궁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인재로 넘쳐났으며 제가 진에 멸망할 때까지 전씨의 통치에 큰 밑바탕이 되었다. 신동준 선생은 제위왕을 “제나라 군주 가운데 최고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라고 평한다.
제위왕은 앞선 제환공 때의 영광을 찾고자 했음일까. 그런 왕의 뜻을 쫓아 직하학궁에 모인 학자들은 관중과 관자를 부국강병의 방책으로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리라. 관중이 당대에 남긴 글은 물론이거니와 수백 년에 걸쳐 쌓였던 토론과 논평, 그리고 당대 필요한 것들이 가필되거나 보완되어 체계를 잡았을 것이다.
이 작업은 전한까지 이어졌다. 현존 《관자》의 체제를 정비한 인물은 전한 말기의 대학자 유향(劉向)이다. 그는 당시 564편으로 잡박하게 전하던 관자를 총 86편으로 새롭게 편제하면서 크게 8개 부류로 나눴다. 〈경언經言〉, 〈외언外言〉, 〈내언內言〉, 〈단어短語〉, 〈구언區言〉, 〈잡어雜語〉, 〈해언解言〉, 〈경중輕重〉 등이 그것이다. 송대 이후 10개편은 제목만 있고 본문은 사라진 채 총 76편만 현존한다.
이 중 〈경언〉이 가장 오래된 글로 ‘목민’, ‘형세’, ‘권수’ 등을 관중의 유저로 본다. 한편 〈경언〉과 《국어國語》, 《좌전左傳》 등에 있는 관중에 관한 기록을 합쳐보면 관중의 일대기를 얼추 알 수 있다.
신동준 선생은 8개 부류를 10개로 늘였으니, 제7편 〈해언〉과 제10편 〈경중〉 사이에 제8편 〈승마(承馬)〉와 제9편 〈구부(九府)〉를 추가한 것이 그렇다. 인간사랑판 《관자》 상권은 〈경언〉에서 〈단어〉까지 4편을, 하권은 〈구언〉에서 〈경중〉까지 6편을 실었다.
《관자》의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승마와 구부 및 경중 편을 포함해 정치경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른바 ‘관자경제학’이다. 관자 전체의 3분의 2에 달하는 매우 방대한 분량이다. 본서의 편제에 따르면 제1편 〈경언〉의 6장 ‘승마’와 제8편 〈승마〉, 제9편 〈구부〉 및 제10편 〈경중〉이다.
선생에 따르면 ‘승마’에는 21세기 경제논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매우 많다. 개별적인 생산단위의 생산 양식인 균지분력(均地分力)과 고른 분배를 뜻하는 여민분화(與民分貨) 등의 이치가 그렇다. 우리가 인간사랑판 《관자》를 읽을 때 상하권을 오가며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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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 객관적으로 볼 때 ‘관포지교’는 크게 3가지 사실을 전제로 하여 성립한 것이다. 첫째, 주인공인 관중과 포숙아 모두 젊었을 때 장사를 해야 할 정도로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둘째,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학문을 닦았다.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공자 규와 소백의 스승이 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셋째, 재주는 관중이 뛰어났으나 인품 면에서는 포숙아가 훨씬 위였다. 매번 관중이 앞서 계책을 내거나 일을 저지르고, 이로 인해 관중이 낭패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포숙아가 감싸며 변호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p.31 제환공은 보위에 오른 즉시 군사를 동원해 노나라를 치고, 내심 관중을 죽이고자 했다. 이를 제지한 장본인이 바로 포숙아다. 군주가 장차 제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고혜와 저로도 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패왕이 되고자 한다면 관중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가 보필하는 나라는 반드시 패권을 차지할 것이니 그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p.48 관중은 전에 왜 나를 그리 대한 것이오 모시는 주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 규가 죽지 않았다면 어찌 군주를 섬기겠습니까? 제나라 사직을 안정시키고자 하면 서둘러 그를 맞이하십시오.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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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패형 이 장은 주로 패업의 방략을 놓고 관중과 제환공 사이에 오간 대화로 구성돼 있다. 크게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첫째 세금감면과 약자보호 등을 통해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정책이다. 둘째, 향락의 절제와 제후들과의 수교이다. 셋째, 중원 제후들의 규합을 통한 초나라 제압이다. 제환공은 관중의 이런 단계별 패업 방략을 좇아 춘추 5패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p.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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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대광 ‘대광’은 크게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이 장은 관중이 제환공을 보필할 때의 일을 싣고 있다. p.525 포숙아는 공자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달아났고, 관중과 소홀은 공자 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망명했다. 노장공 9년인 기원전 685년 봄, 공손무지가 대부 옹름을 학대하자 옹름이 공손 무지를 죽였다. 소백이 거나라에서 먼저 제나라로 들어오려고 하던 즈음 노장공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로 처들어 왔다. 공자 규를 옹립하려는 의도였다. 간시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관중이 미리 길을 막고 있다가 소백에게 활을 쏘아 그의 허리띠 갈고리를 맞췄다. 간신히 제나라로 돌아온 소백이 제나라 군사를 이끌고 가 노나라 군사를 깨뜨리고 보위에 올랐다. 그가 제환공이다. 얼마 후 제환공이 노장공을 압박해 공자 규를 죽이게 했다.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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