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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이다보니 책을 많이 읽고 싶어서 김동인 충용 삼형제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406)을 구매해보았습니다. 오늘 읽어보았는데 괜찮았던것 같아요. 두 나라에 꼭 같이 원심은 품었지만 고구려와는 하도 실력이 대상부동하여 어디라 감히 딴 생각을 품지 못하고 하다 못해 백제에게라도 앙갚음을 하여 보려고 고구려에게 원병을 청하다가 이루지 못하고다시 당나라로 간게 가슴아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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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시대 이야기속에 유언이 담겨있는 좋은 자리 있을 자리 인간의 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이야기들 교훈들을 만들면서 왜 작가자신은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시대상과 엮여서 작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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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아버지를 여의었다. 하나 벌써 장발한 子息들이라, 아무 影響하는 바가 없었다. 다만 이제부터는 各各 따로이 살기로 하였다. 各各 自己의 妻子며 眷率이 따로이 있는 三兄弟라, 아버지의 膝下에서는 함께도 살았거니와 아버지 없고 보니 生活 性格이 各各 다른 三兄弟라, 따로따로 사는 便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갈리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歸農─ 農事나 지으며 살겠네.≫─ 맏兄 夫果의 意見이었다. ≪그러세요. 저는 出家해서 道나 닦으며 餘生을 보내겠읍니다.≫ 本是부터 佛道에 歸依해 있던 둘째는 이름도 <道玉>이라 고치고, 實際寺에서 僧侶 生活을 始作하였다. 막내 逼實도 두 兄과 갈려서 제 眷率과 딴살림을 始作하였다. 때는 新羅 太宗 武烈王 中葉, 그때 鼎立해 있던 세 나라 가운데 가장 新羅가 弱國이었던 때문에 다른 두 나라(더우기 百濟)에게 늘 侵略을 當하고 그로 말미암아 新羅는 두 나라에게 큰 怨心을 품고 있던 時節이었다. 두 나라에 꼭 같이 怨心은 품었지만 高句麗와는 하도 實力이 大相不同하여 어디라 敢히 딴 생각 품지 못하고 하다못해 百濟에게라도 앙갚음을 하여 보려고 高句麗에게 援兵을 請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다시 唐나라에, <藩國이 되어서 唐나라를 上國으로 섬기고 朝貢하겠노라>는 條件으로 둘째 王子 金仁問을 唐나라에 보내서 助力을 비는 그런 時節이었다. 이런 時節에 驟福의 세 아들은 아버지가 世上 떠난 뒤에는 各各 헤어져서 딴살림을 차려 놓은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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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충용 삼형제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406)을 구매해서 읽어보았어요. 사내가 세상에 났다가 죽을 자리를 바로 만나서 죽는 것도 큰 행복이라는게 멋진 말이네요. 죽을 자리를 잘못 잡아서 더러운 이름을 남기고 죽는 건 천만대의 치욕, 거저 났다가 거저 죽으면 치욕은 안남는다 하지만 보람없는 일생을 보낵 보람없이 죽는 게니 났던 보마람은 당연히 어디 있겠는가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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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충용 삼형제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406)을 구매해서 읽고 바로 리뷰를 작성합니다. 유언이 가장 기업에 왔네요. 다들 왔냐면서 자신의 임종을 차분이 이야기 하는 그 모습... 다 장발하고 더우기 남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못하지 않는 자식들이라고 인정해주는 모습이 마지막까지 부모로써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한것 같아요. 자식들도 이런 부를 닮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