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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이 시집은 고해록이다. 생의 여분을 거역할 수 없기에 청년이전의 시간에 대해 고해하고, 태어났으되 갇혀버린 몸과 명점(命點)에 대해 고해한다. ... 이름을 받지 못해 엉킨 채로 서글프게 떠도는 허공의 회로들과 한 몸이 되어 쓰고, 서로를 태우고 살아갈 것이다.. - 이병률
[ 소라일기 ] 수초의 질감이 잠긴 하늘 슬픔은 오른쪽이야, 돌아갈 집이 없는
[ 여백 ]
기억은 나를 뒤집어놓은 빈집. 머리위로 철새는 세상을 딛고 여백은 죽거나 사라진다. 눈이 오는 소리를 또각, 또각, 발음했다.
일정하지만 오차가 난무하는 곳. 겨울은 점점 깊어지고 구름은 어디까지 우리의 눈을 가리고 가나.
겨울은 수평속으로 사라진다. 그건 새들의 여백일까, 텅빈 겨울은 밥짓는 냄새가 난다.
부러진 눈송이는 여백을 지우고 있다. 잘못된 것을 봐도 서글퍼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다.
[ 적화(摘花) ] ; 아오리가 있던 여름
모르는 당신에게 어둠을 돌려주고 오는 길, 서늘한 길은 기울어 잠이 들고, 비오는 과수원이 활시위처럼 나를 당깁니다. 벌레의 눈으로 걸음으로 별을 옮기는 밤, 저의 음색은 낮을 사랑한 별자리입니다. 걸어온 길은 갈변되고, 지키지 못한 사과들이 굴어와, 어둠을 할퀴고, 투신하는 사과속으로 그어지는 연붉은 적화. 형제들과 둘러앉아 노래를 잇지. 모닥불을 피워 악몽을 잊지, 짐을 챙길 즈음 여름이 익고 여치를 튀기면서 가을이 오지. 자세히 보면 추악하고 멀리서 보면 그리운 것. 그대를 껴안고 얼굴을 묻지. 좋은 맥주에선 흡내가 나고, 좋은 사람에겐 흙내가 나지. 호기로운 건배로 인사를 하자.
재가 날리네, 박차에 찍힌 말은 놀라 달리고, 들판의 달빛은 녹아가는 빙하같지. 텅빈가지들이 눈을 가리는 누군가의 긴노래 아오리가 익어가. 툭, 툭 등 뒤로 사과꽃이 떨어져. 두눈이 붉어지는 것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이라. 오래도록 저물어야 알게 되는 늦여름의 일이라, 누군가는 금방 잊게 되는 묽음, 과육을 도려내듯 칼끝을 숙여 그리움의 알몸을 베여내고 사과 반쪽을 입속에서 입속으로 옮기면 내안의 붉음이 넘실거려 단물을 입속에 오래 맡깁니다. 나는 변치 않는 물빛을 바스러 뜨리고, 발목을 걷고 당신 모르게 입술에 핀꽃까지 톡, 톡 따주고 싶은 적심(赤心)
[ 스노우볼 ]
나의 늙은 개가 헐떡이며 눈길을 걷는다
눈동자 안 유리속으로 수많은 기억이 쌓이고 더이상 견디지 못할 때 콰직- 깨져버리는 세계
사람이 죽게 되면 함께 살았던 것은 우르르 달려나와 멀리서 눈빛만 보고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입김은 서두르지 않고
누군가를 버리고 가는 마음은 울기 직전의 눈썹 가장 살고 싶을 때의 표정으로 우리는 두 발이 움푹 눈밭의 깊은 곳에 살자고 했었지
젖은 당신의 눈가를 떠올린다 눈이라는 단어를 지우면 나는 완성될 수 없는 문장 괄호 안이 비워진 마음으로 눈이 먼 다정한 손으로
둥글게 뭉쳐 던진다 왈칵~~~ 쏟아져 버릴 유리의 세계로
당신은 안녕하신가
나에게 스노우볼은 이거다.. → 저렇게 산삼과 겨우살이로 채워진.. 저안에서 서서히 술이 익어가고 있다
[ 늦잠 ] 죽은 할머니와 고양이가 눈 밟는 소리에 깼다 눈곱을 떼며 문을 나섰다.
늦잠이 없는 것들은 벌써 일어나 가버렸나,
저 눈 고개를 넘어 주검 속을 다녀올 수 있다면 내가 서두를 수 있다면 미안, 내가 많이 늦었다고
어떤 이별도 없겠지.
나는 잠이 들때마다 그곳에 갈 수 있다.
잠이들면 꿈에서 만날 수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소금달] 잠든 엄마의 입안은 폭설을 삼킨 밤하늘, 사람이 그 작은 단지에 담길 수 있다니 엄마는 길게 한번 울었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김치를 꺼내지 못했다. 눈물을 소금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슬플 때의 맛을 알 수 있을텐데. 둥둥 뜬 반달 모양의 뭇국만 으깨 먹었다. 오늘은 간을 조절할 수 없는 일요일
가지를 부러뜨린 자리 눈송이가 손바닥에 걸린다. 꽃을 걸고 맹세했던 자리 겨울 가지 끝에서 손금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깊어질수록 어긋나는 저쪽 젖은 달을 몰고 온 까마귀는 필기체로 앉는다. 처음부터 오른손의 가지와 왼손의 가지는 다르게 적힌다. 운명을 문지르듯 부러뜨린 즉시 돋아나는 해석들 오는 너는 안녕, 사랑을 실패할 운명,
흩어진 겨울의 천변. 손 흔들며 안녕, 그의 손바닥을 들여다 볼 때 손금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해 금 간 손바닥을 내게 천천히 맞추어보는 것. 빛나는 슬픔을 훔쳐보는 것. 원래의 너는 안녕. 실패한 마음도 사랑 할 운명
[ 겨울의 젠가 ]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 우리는 목조 계단을 쌓아올렸습니다. 신체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손에 쥔 적 없는 마음을 밀어 넣으면서 눈을 마주 보면서
팔과 다리로 탑을 쌓았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사이 폭설을 내려주시어 들어갈 수 없는 길을 알게 하소서 한토막의 슬픔으로 무너진 사람이 혼자 걷는 눈길이 사랑이라고 말하게 하소서 눈과 눈 사이 거스를 수 없는 빛을 눈빛이라 부릅니까. 서로의 눈을 닫으면 슬픔만을 가져갈 수 없음을 기쁨, 그것은 불탄 혀로 슬픔을 핥고 입술이 겹쳐 죽을 힘을 다해 외롭게 허물어지는 것. 사랑과 기쁨이 되어 타오르지 않는 발화점이 되어
시를 읽으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이.. 슬퍼보였습니다.. 그 마음을.. 그 눈빛을 왠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입니다. 지금 내 눈빛이 그럴 것 같습니다.. 옆에서 그대가 나를 본다면..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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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모든 시집들을 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비 시선은 종종 '어나더 커버'라고 해서 원래 표지 위에 또 하나의 표지를 덮어 씌운 시집들을 출간한다. 이 경우엔 보랏빛의 '어나더 커버'를 원래 표지(원래 표지도 같은 계열의 색을 썼다)에 덧씌웠는데, 전반적으로 겨울 느낌과 슬픔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데 시들을 읽다 보면 딱 이 표지 같다. 첫 눈을 볼 때의 정서. 아름답지만 언젠간 녹거나 때가 탈 걸 알기 때문에 슬플 수밖에 없는. 그런 양가적 감정이 지배적인 시집이다.
II
'모든 슬픔을 한꺼번에 울 수는 없나'는 이 시집의 1부의 제목인데, 1부에 실린 시들이 하나같이 다 좋아서 한 편의 시만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쌀쌀한 계절에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정도다.
1부의 시들도 좋았지만, 2부의 시들도 한결같이 좋다. 등단 6년만에 나온 첫 시집이다 보니, 시인도 고심해서 시들을 추린 걸까? 주변에서 이 시집을 많이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정현우 시인은 시인이면서 가수이기도 하단다. 밴드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시들은 어떤 면에선 화가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시각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파랑의 질서」라는 시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브 클라인(Yves Klein)이 블루로 작업한 다양한 작품들이 떠오른다. 물론 정현우의 시풍에는 이전의 화풍에서 신성시되었던 블루의 느낌도 있지만(예를 들어 성화에서 예수나 마리아의 옷은 블루이다), 그보다는 좀더 모던한 느낌이랄까.
모든 질서는 왜 파랗게 질려 있는가? (...) 파란이 파랑보다 먼저 쓸려가고
- 정현우, 「파랑의 질서」 부분
III
대체로 '첫 시집'을 내는 시인들은 젊을 가능성이 크고, '젊은 시인'들의 '첫 시집'은 그들의 모든 가능성과 심혈을 가득 담아 새롭고도 난해하고 낯설고도 도전적이기 마련이다. 어쩌면 '첫 시집'을 읽는 건 그런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첫 시집'이나 '첫 소설'을 읽는 건 감각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늙지 않겠다는 다짐같은 측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경우 취향에 맞아서 읽는 경우보다는 공부하듯 읽는 경우도 다분하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가 MZ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정현우 시인의 시들은 시를 읽는 데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마치 동년배의, 친구의 이야기를 듣듯이 시를 읽자마자 저절로 흡수되고 이해된다. 그 정서나 감정, 그가 표현하는 방식 등을 이해하는 데 따로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읽자마자 바로 '느끼게 된다'. 그런 점이 참 좋다.
IV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나려고 하는 게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받는 데 수고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아마 정현우의 시는 거의 모든 세대가 보편적으로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을, 역시 모든 세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표현과 언어로 전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본인에겐 그게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타의 젊은 시인들과 같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건 시인만이 가진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도 장벽 없이 그의 시에 다가갈 수 있으니까.
3부의 시로는 「서랍의 배치」를 들고 싶다. 짧고 간결한데 힘이 있다. 수묵 정물화를 보듯 시 앞에 오래 시선을 두게 된다.
이 시집의 마지막 챕터인 4부의 시들 역시 시집을 끝내는 게 아쉬울 만큼 한 편 한 편이 아름다웠다. 한동안 끝까지 못 읽고 중간에 만 시집들이 많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다 좋아서 기쁘다.
전반적으로 보라색처럼 여리고 슬픈 정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슬픔을 승화한 뒤의 훼손되지 않은 인간성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는 게 이 시인의 가장 큰 장점이란 생각이 든다.
4부의 제목은 '여름의 캐럴'인데, 같은 제목의 시를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다.
V
이 시집은 김언 시인의 해설로 마무리된다. 시인의 첫 시집의 해설을 김언 시인이 썼다는 것도 시집의 의미랄지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병률 시인이 추천평을 쓰고 김언 시인이 해설을 썼는데, 각각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가 떠오르는 시인들이지 창비가 연상되는 시인들이 아니다. 그런 두 시인이 (자발적이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꺼이') 이 시인과 시집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집과 시인이 가진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첫 시집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김언의 해설은 아니나 다를까 '정현우의 시에는 유독 ‘슬픔’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로 시작된다. 시인의 말대로 이 시집은 슬픔에 대한 시이다. '슬픔'이라는 단어 자체도 많이 나오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을 우리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단어들로 표현하고 드러내고 말한다. 그래서 그 감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고 익숙한 것인지 새삼 깨닫고 느끼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래 지속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텐데, 그래서라도 이 시집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감정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묘하게 위로가 된다. 카타르시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된다.
김언 시인의 표현대로 아름답고 슬픈 시집이다. 슬프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정화는 아마도 이 두 감정이 함께 하는 데서 기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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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회를 떠올려 본다면 무언가 삭막하고 꽉 막힌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냉소적 개인주의와 자본에 대한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회.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나"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해 보기도 했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어떤 색을 입혀서 살아야 하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에서 마주하는 슬픔은 고민하던 내 존재와 맞닿아 있었다. 책의 리뷰와 추천평을 보며 삶 속에서 나아가 사회 속에서 호명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것들에 대해 낮은 자세로 바라볼 수 있는 책인것 같다고 느꼈다. 정말 기대가 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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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내게 온 시집한권 정현우 시집을 통해 마음에 풍요로움을 느끼네요~ 나도 천사에게 말을 배웠을텐데 말이죠~ 기억 먼 곳에 있는 많은 추억들~ 책을 알게되고 정현우 시인을 찾아보니 2015년 신춘문예 당선하신 분이고 윤동주 문학상을 수상하신 문학계의 신예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시집 한권으로 마음이 풍요로울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낍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오래전 기억들도 떠올리며 반성하고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고 이모든게 행복이란 것을 느끼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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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 주고 산 첫번째 시집이지 않나 싶다. 지금 딱 한편 읽었는데 제목만 보고 산 책이지만 어떤 기대는 있다. 아마 시인 윤동주에게 기대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산 것 같다! 어떤 이야기는 화자를 생각하게 되거나 나에대해 생각하게 되거나 작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거나 내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두 감상에 빠진다고 할 수 있는데 얼마나 깊게 빠질지 또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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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의 시를 읽었다. 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 네이버를 검색했는데, 그 중, 특이하게도 '신춘문예풍'의 시가 많이 실렸다는 평이 보였다. 그것은 좋은 말로 최근에 소통되는 시의 첨단을 정갈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고, 나쁜 말로 유행을 따르는 작품이라는 평가이다. 시가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느낌을 준다. 조악한 표현이 있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상징으로 난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쉽게 이해되거나 상투적이지도 않은, 절묘한 균형이 있다. 마치 남사당패의 어름산이가 요령 있게 줄을 타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다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보니 너무 젊은이라 놀라게 되듯.
약간 멋부린 듯한 시구가 없지는 않다. "눈꺼풀을 닫으면 / 죽음이 필요해진다."(「용서」), "배교가 없는 새들은 / 발목이 없다"(「오르톨랑」)과 같은 시를 마무리하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시의 문맥을 다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리는 성급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시의 주제 의식을 살리기 위해 기교를 발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런 면모가 유행하는 시 스타일로 보이게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시집 4부의 툰드라 연작은 김경주 시인의 시를 읽는 것 같았다. 단지 느낌일 뿐이다.
현재 시집을 4부까지 읽고 있는데, 시인의 배치를 추측해보건대 1부에 가장 큰 공을 들인 듯하다. 1부에 시인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 포진되어 있다.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천사 이미지가 가장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시인의 개성적인 투시가 돋보이는 '남성의 여성-되기'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상해서 나는 화장을 했다. 내가 태어난 것이 여자를 벗은 것 같아 누나의 검정 치마를 입었다.
거울 속에서 숨죽인 내가 립스틱을 쥔 채로 매달려 있었다.
아랫입술을 잃어버렸다. 쏟아지는 검은 가시들 누나의 마스카라는 나의 베갯잇에 물들고,
벽에 매달려 있는 동안 나는 어느 얼굴이 되는 걸까.
누군가 방문을 열까봐 우는 얼굴로 저녁을 닫았다.
나는 내 몸을 만지면서 눈을 감고 얼굴을 그린다.
어른이 될 때까지 나는 흩어지고 싶은 구름 가슴이 없는 까마귀떼 나의 몸에서 풀이 자란다. 금방 풀이 죽는다. 풀숲에서 벌거벗은 여자를 훔쳐보는 마음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지는 밤에는 나는 여자가 되었다. 아무도 없는 방문을 잠그고 나와 반성문을 썼다.
방문을 삐져나온 뱀들은 악몽에 목이 베였다. 밤을 켜면 벼랑은 나를 떨어뜨렸다. 여자를 흉내 내고 깨진 유리를 삼키고 바람의 목을 쥔 채로 길어지는 밤 잘린 손가락들은 유리의 성을 쌓고 스타카토, 스타카토, 카스트라토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런 존재는 나의 가랑이 밖에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개들이 나의 얼굴을 더듬거리고 웃을 수 없다. 아름다운 얼굴이 지워질까봐
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벽에 그려진 낙서보다 숭고했다.
끝없이 바깥을 쌓아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성 안에서 얼굴 없는 여자가 또각또각 걸어나간다.
나와 멀어진 나를 사랑할까봐 가장 어두운 구두를 신고. - 「여자가 되는 방」 전문
남성 동성애자가 여장을 한 것을 드랙퀸이라 한다. 나는 정현우의 시를 평한 어떤 글에서 드랙퀸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하고 알았다. 그렇지만 정현우의 시에서 읽은 것은 퀴어적 감수성은 아니었다. 남성 화자가 여성이 되려고 하는 시도들은 성정체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고뇌, 고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위에서 인용한 시에서도 여장을 하는 까닭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상해서",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많아서"이다. 여성을 성애의 대상으로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결핍 때문에 갈구하는 것이다. 화자는 남성/여성으로 분기하기 이전의 상태를 상기한다. "사람이 죽으면 여자일까 남자일까" 또는 남성/여성의 경계에 있는 자를 생각한다. "스타카토, 스타카토, 카스트라토" 생명은 개체발생적으로 기관의 분열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데, 거꾸로 이 시에서는 분할 이전의 단계로 나아가려는 퇴행의 욕망을 보여준다. 존재론적 결핍감을 분열 이전의 완전성으로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나와 멀어진 나"는 내가 남성이 되면서, 분할되면서 잃어버린 반쪽이며, 그것에 대한 사랑이 나를 고뇌하게 하고 위협하며 뒤흔든다. 상실감을 보충하기 위한 마조히즘적인 고통("종아리의 회초리 자국이 / 벽에 그려진 낙서보다 숭고했다.")을 수락하려고 하지만 잃어버린 충일성은 '얼굴 없는 여자'로 나타날 뿐이다. 결국 남성의 여장은 실패한다. 그래서 "가장 어두운 구두"를 신게 되는 것이다.
경계에 대한 탐색은 시인의 주된 테마 중 하나이다. 신내림과 영매를 탐구하기도 하고, 툰드라의 야생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기도 하며, 남성/여성 구분 이전으로 퇴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경계의 탐구가 시인의 시적 기교와 맞물리면서 아름다운 시구를 탄생시킨다. '천사' 이미지는 지상/천계의 경계에 있는 이미지로서 시인의 상상 세계 속에서 흥미롭게 제시된다.
눈 내린 숲을 걸었다. 쓰러진 천사 위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천사를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와 천사를 씻겼다. 날개에는 작은 귀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귀를 훔쳤다. 귀를 달빛에 비췄고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두 귀, 두개의 깃. 인간의 귀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었을까. - 「귀와 뿔」 부분
언제부터인가 천사는 신과 더불어 성스러움의 퇴화 흔적, 신성함의 상실에 대한 알리바이로 현대시에 등장하는 것 같다. 천사는 숲 속에 쓰러질 수 없지만, 시인의 시적 세계 속에서 천사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천사는 지상/천상의 경계에 존재한다. 아마 천사와 대응하는 현실의 오브제는 예술작품, 시일 것이다. 천사에게 말을 배우는 존재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존재는 다름 아닌 시인이다. 그래서 천사도, 시인도 모두 경계에 있다. 진실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든 존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경계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식을 고문하면서 스스로를 순수한 상태로 증류시킨다. 우리는 언제부터 천사의 말을 잊은 걸까. 아마 자기를 순수로 증류하려는 인간들이 우리 주변에 보이지 않게 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시인에게 천사와 여성-되기는 더 근원적인 상태로 나아가는 통로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 이미지는 더럽고 추한 것까지도 미화하는 시인의 상상력과 만나는 것 같다. 이 역시 순간적인 직관일 뿐이라, 시집을 다시 정독하여 읽어봐야 직관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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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그렇고 시라는 문학은 다욱이그렇다. 쉽게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쉽게 써서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이 어려운 일임을 생각해 보았을 때, 쉽지만 세련된 언어로, 짧지만 감성적인 언어로 가슴 벅차오르는 감정을 전달해 주는 정현우 시인의 시들이 새삼 놀랍다. 삭막하고 답답한 요즈음 봄비처럼 가슴을 촉촉히 적셔주는 아름다운 시집. 천사에게 말을 배우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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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겉커버, 그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표지.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현우 시인의 시는 쉽게 읽힌다. 풀이도 나만의 언어로 이해될 것만 같다. 하지만 쉽게 떠나가질 않는다.
똑같은 한글을 쓰고,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상상과 상상을 넘은 감성을 표현해내고 있고, 곱씹을수록 새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