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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일어난 공산주의(또는 현실 사회주의) 정권의 도미노 식 붕괴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투항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서 그동안 세상을 휩쓸었던 맑스(마르크스)와 레닌주의의 폐기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자유주의의 승리’로 요약하고,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세계가 영원이 이어질 것이라는 얼치기 헤겔주의가 주류를 이루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붕괴 이후의 상황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위와 같은 전망이 얼마나 낙관적이고 한심한지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더 혼란스러워졌고, 어두워졌다. 뒤늦게 읽은 월러스틴의 ‘자유주의 이후’는 이런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흐름에 대해서 적절한 비판을 하고 있고, 자유주의에 대한 혹은 근대사회의 주요 사상적 흐름인 ‘보주수의-자유주의-사회주의’라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의견은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의문스럽게 다가오게 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의견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그의 주저인 ‘근대세계체제’와 같이 철저하게 학문적이기 보다는 보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인 느낌보다는 에세이와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읽게 된다면 이게 무슨 에세이냐고 반문을 하겠지만... 그는 ‘자유주의 이후’에서 ‘자유주의의 승리’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가 서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세 가지의 이데올로기가 결국 자유주의 하나로 수렴될 수 있고, 세 가지 변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결국 자유주의라는 것은 기술의 민주주의와(예컨대 자본주의의 세계화나 기술로 인한 근대화 등) 해방의 민주주의(말 그래도 전면적인 민주주의) 중 기술의 민주주의만 실현하려고 하고 있고, 해방적인 부분에서는 최대한 점진적인 혹은 부분적인 민주주의만을 이루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자유주의라는 것은 진정으로 변혁을 혹은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는 세력 혹은 계급들에 대한 순응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론일 뿐이라는 것이고, 1989년의 사건은 이러한 자유주의 프로그램이 더 이상 자신의 프로그램으로는 모든 것을 머뭇거리게 만들지 못하게 되어버린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가 이제 종언을 고한다고 해서 그는 새로운 시대에 대해서 낙관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1989년의 사건으로 인해서 결국 우리는 다시금 근대시대 초기의 혼란기와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 이 시기(그는 1968년 혹은 1989년부터 시작해서 50년간의 기간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에 우리가 어떤 선택과 실천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새롭게 시작할 시대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되도록 보다 민주적이고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최대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혹은 시각을 제공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그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인 직접적인 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보다 안정적인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붕괴되었다고 해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보다 더 첨예한 대립과 문제점들을 양산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는 냉전 이후의 전세계적인 문제점과 (특히)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고, 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위해서 세 가지의 이데올로기를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주의라는 것이 그리고 세 가지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근본적인 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수사일 뿐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다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된 맑스의 시각과 분석을 다시금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맑스의 시각 중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을 수 있는 시각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전망함으로써 자본주의가 그리고 자유주의가 극복시킬 수 없는 모순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모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논의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두 개의 사례로 말하는 이란의 호메이니와 이라크의 후세인에 대한 그의 논의는 꽤 흥미로운 시각이었다. 기본적으로 월러스틴은 브로델과 맑스의 시각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세계체제론의 입장에서 전체적인 논의를 이끌어가고 있고, 자신의 개인적인 전망을 덧붙이고 있다. 각각의 논의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인 짜임새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꽤나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부터 공산주의 붕괴까지의 일련의 역사적 흐름과 월러스틴 개인의 전망과 시각이 뒤엉키면서 그의 논의가 때로는 복잡하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관성을 갖고 있고, 지속적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간간히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다.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논의를 보여주고 있고,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도록 만들어주고 있는 월러스틴의 ‘자유주의 이후’는 앞으로도 꽤 중요한 시선을 제공할 것 같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 같지만... 참고 : 한국에서는 그의 업적에 비해서 월러스틴에 대한 논의가 그다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좀 묻혀있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는 그에 대한 논의가 보다 더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
| 윌러스틴은 자유주의 이후에서 자유주의의 종말을 주장한다. 저자은 1989년 이후 소련의 해체 , 동구의 몰락은 자유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몰락이라고 보았다. 자유주의는 보수주의의 대항하기 위한 정치 이데올로그 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해방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은 두가지 중요한 원칙을 확립한다. 두 원칙중 하나는 정치적 변동의 정당성이다. 프랑스 혁명을 기점으로 혁신적인 정치 변화가 일상적인 정치 환경으로 받아들여진다. ( 기존의 절대 왕정시대로 돌아가려는 몇번의 시도가 전통적 계급에 의해서 추진되었지만, 이전의 정치 형태로 돌아갈수는 없었다. ) 다른 하나는 민이 국가의 주인이다는 인민주권이다. 이 두원칙을 토대로한 급격한 정치, 사회적 변화가 대륙을 휩쓴다. 변혁 자체가 근대화를 상징하면서 이 변화에 대응하는 정치 이념들이 등장한다. 그 첫번째 이념이 보수주의다. 보수주의는 급격한 변화에 대한 반발이자, 이전의 전통사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고적인 이데올로기였다.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계급, 전통사회를 중요시여겼고, 이전의 지도 계층이 사회를 지배해야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보수주의 움직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 이념으로 자유주의가 등장한다. 자유주의는 과정의 합리성과 합법성을 중요시 여겼고, 전문가 집단, 엘리트에 의한 문제 해결과정(이것은 곧 반민주성을 내포하기도한다.)을 선호했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체제를 공고화 하는데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였다. 1840년대 급격한 혁명을 거치면서 자유주의는 유럽의 노동계급을 자본주위 체제안에 포섭하기 위해 세가지 주요 정책을 수행한다. 첫번째, 선거권와 같은 정체제도의 개혁으로 부르주아 정치체제에 노동계급을 포함시킨다.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에 정치적으로 편입시키므로써 노동계급을 동의의 지배한에 두게 된다. 두번째, 복지국가의 실현이다.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전 국가적인 사회복지 정책의 실현으로 총생산물 잉여가치의 일정부분을 노동계급에게 분배함으로써 노동계급의 불만족을 잠재우고자한다. 세번째가 민족주의를 기초한 국민국가를 정착시킨다.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계급간의 갈등과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이요인을 제거하고, 계급간의 갈등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민국가론을 확대 발전시킨다. 유럽 내부의 노동자들을 길들이기 위한 자유주의 노력은 곧 세계로 확대된다. 제 3세계의 민족해방투쟁은 곧 세계체제에 또하나의 위협으로 등장한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 3세계를 편입시키고 길들이기 위한 방식으로 나타난 국제 정책들이 민족자결주의라 불리는 윌슨주의와 레닌주의에 기초한 발전국가론이었다. 그러나, 해방투쟁에서 승리한 식민지국가들의 상당수가 그들이 희망하던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다. 1960년대말부터 세계 경제의 불황이 찾아오기 시작한것이다. 경제 성장을 위해 부채를 끌어들인 제 3세계는 제대로된 생산 정책을 수행할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개척할만한 시장이 없었다. 위환 위기가 도래했고, 경제 파탄이 이어졌다. 뒤이어 국제 금융기구의 개혁요구안은 자국민의 삶을 더욱더 피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결국 자유주의가 제시한 장미빛 희망이 거짓일수 있음을 드러낸다. 68혁명은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에 흡수된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이었다. 혁명세력은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했으며 동시에 체제의 모순에 무기력한 구좌파와 인간 해방이 아닌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한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에 맞서 투쟁했다. 이것은 일국이 아닌 전세계적인 행동이었다. 혁명은 실패했지만, 자유주의의 기만성을 폭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이 이어지면서 세계는 이것이 곧 자본과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윌러스틴에게 이 역사적인 사건들은 자유주의 승리가 아닌, 몰락의 징조였다.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는 우편향으로 행진하고 있으며,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의 일부는 좌편향을 향하고 있다. 지금 현재 자유주의는 체제의 모순이 폭발하는 이 시기에 더이상 대안이될수 없다는 사실이 자유주의의 몰락을 증명한다. 자유주의가 중도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수주의와 사회주의가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변화 해왔으며 체제에 적응했다는 사실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윌러스틴의 이 저서는 정치이념으로써의 자유주의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1970년대 보수주의의 반격, 레이건과 대처로 대변되는 신보수주의의 승리, 워싱턴 컨센서스를 기초로한 자본의 세계화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동시에 이에 저항하는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운동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신보수주의와 민중의 저항이 대립하는 현실은 대한민국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IMF이후로 계속되는 극심한 사회 경제적 불평등, 일자리의 불안정과 비정규직의 확대, 부자가될것을 강요당하는 사회, 물신주의의 만연 실질적인 사회 경제적 민주주의가 점점 후퇴하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자유주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지금 현재 한번쯤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