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동은 이젠 우리에겐 문학적인 상징어로 되어버린 듯하다. '성북동 비둘기'에 이어 '달밤'의 배경도 성북동이다. 성북동은 그저 단순한 지명이 아닌 산업화, 도시화로 인간본연의 모습, 정을 잃어버린 곳을 뜻하는 듯하다. 하기야 요즘 이런 성북동같지 아니한 곳이 오진 시골 빼고는 없을 것이다. 성북동의 달밤이라... 그 모습을 떠올려 보니 여러 가지 사상이 겹쳐진다. 드라마 '서울의 달' 이 생각나기도 하고, 정겨운 달밤이 아닌 무언가 어색하고 허전한 달동네가 생각하기도 하고. 옛날 같으면 멀게는 우리 선조들이 운치와 멋을 즐기던 달밤, 가깝게는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누워 옛날 얘기를 두런대던 달밤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혹은 환하게 바추는 달빛을 즐기던 여유가 있었던 삶의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달이 더이상 그 정겨운 것이 아닌 음산하게 느껴진다. 내 마음에 여유와 정이 없어서일까... 이야기 속의 황수건은 이름 때문에 노란 수건이란 별명이 붙었다. 단순한 별명처럼 그는 반편이었고, 말이 많았지만 보통 사람하고는 느낄 수 없는 무언인가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를 만나면 입가에 까닭없는 웃음이 도는..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순박함과 정때문에 연민을 느끼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준다. 아주 사소한 얘기들일지라고 결코 지루하지 않는 이야기들.
원배달원이 되고싶다는 소박한 그의 꿈을 짓밟는 현실에 분노하는 나. 시대의 변화 속도에 뒤쳐지는 그를 사회는 생매장시켰다. 신문사에서 짤리고, 장사도 망하고 그는 나에게 포도를 주고 싶은 마음에 포도를 훔치다 잡힌다. 도둑질을 했다고 해서 내가 그를 매도할수 없게 만드는 건 그의 아름다운 마음씨때문인 것 같다. 푸석푸석한 빵처럼 메말라버린 사회에 그는 촉촉한 온기를 주는 존재였다. '노란 수건'이 단순한 유희의 대상이 아닌 시골을, 옛날을 그립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한 것이다. 산업화된 사회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살내음이 풍기는 그런 분위기가 그리운 우리들이다. 그의 구슬픈 알수 없는 노래를 오직 달빛만이 달래줄 뿐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무어 바깥이 컴컴한 걸 처음 보고 시냇물 소리와 쏴- 하는 솔바람 소리를 처음 들어서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이날 저녁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 몇 마디 사귀지 않아서 곧 못난이란 것이 드러났다.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들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