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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쓸모는 무엇인가? 예술은 왜 그리도 특별한가? 누가 예술을 소유하고 향유하는가? 예술은 사람살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질문을 유도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책을 만났다. 예술책 읽는 책, 혹은 예술책의 세계로 초대하는 글이다. 예술 관련 책을 읽는 저자들의 서평책이라고 보면 되겠다. 예술과 책의 관계, 미학과 사회학의 관계를 엿보고 그로인한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 총 23권의 책에서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최근에 읽은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에서 철학자는 문학과 문화 속에서 살아온 경험의 습득, 교육이 자기 결정과 자기 인식에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었다. 나는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로 보았는데 예술 또한 사회학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 부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의 모든 것이 곧 사회, 사회학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술 평론서 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예술을 말하였는데 그 책의 한 권이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중에서 일본 고미술계에서 일어난 위작 사건을 다룬 「진위의 숲」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 단편에서 고미술 비평가와 연구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관점에 따라 미술품의 진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였다. 아무래도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작품 속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음에 더 와닿았던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어려울 수도 있는 예술 비평 책들도 이해하기 쉽게 말하여 책에 대한 호기심, 예술에 관한 사회학 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만남과 대화가 결국 예술에 대한 담론과 예술가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쩌면 고독을 통한 사유, 고독의 알아봄, 고독에 기반한 우정 공동체가 아이디어를 통한 기획, 능력의 알아봄, 프로젝트에 기반한 팀워크로 대체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예술에 대한 담론과 예술가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 일은 또 다시 사회학자의 몫이 될 터이다. (47페이지, 장 주네의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편 중에서)
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작품을 말하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건넨다. 예술 시장과 예술 정책에 대한 관심을 넘어 예술가는 무엇으로 나뉘는지, 예술가는 능력 있는 자와 능력 없는 자로 나뉘는 것은 아닌지. 예술가와 예술계 내부에서 동료가 남아 있다면 그 동료는 어떤 동료인지 말이다. 사회학자들이 바라보는 예술가의 정체성이란 그들 또한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할 터다.
에드워드 W.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책 『평행과 역설』은 좀 더 생각할 꺼리를 준다. 음악가 바그너는 자신이 쓴 에세이에서 유대인 혐오를 적극 표출하였지만 바렌보임은 바그너가 자신만의 음악적 사상을 추구했다며 그의 삶과 음악은 구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에게 음악은 소리였으며 침묵 속에서 태어나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삶이자 죽음이었다고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처럼 삶과 예술을 다르게 구별했다는 점이 특별했다.
화가 고흐를 좋아한다. 고흐에 관한 책도 꽤 가지고 있다. 살아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가난 때문에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했었다.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될 텐데, 저자는 ‘천재’ 편에서 모차르트와 함께 고흐를 말한다. 나탈리 에니크의 『반 고흐 효과』라는 책이다. 일반적인 전통 회화가 아닌 독특한 화풍 때문에 비평가들로부터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에니크가 고흐를 가리켜 ‘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했다는데 적극 동의하는 바다.
많은 예술가들이 다른 직업 없이 예술 창작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게 되는데 예술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들을 ‘티칭아티스트’ 라고 한다. 캐스린 도슨과 대니얼 A. 켈린의 『성찰하는 티칭아티스트』에서는 예술의 현실을 보게 한다. 티칭아티스트는 현대예술의 기능과 역할의 변화시켰다. 한국의 티칭아티스트의 역할도 개인이 아닌 공적 지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명시하였다. 예술가의 전문성과 잠재성의 방향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심보선 시인의 예술의 문학적인 시선이 궁금해 읽게 된 책이었다. 그림, 음악 등 각자 고유한 예술을 논하기 보다는 예술이라는 주제를 놓고 예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더욱 유익했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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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책과 예술을 연결시켜 논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두 명의 공동 저자가 각각 예술에 관한 책을 읽고, 그에 관한 독후기를 풀어낸 내용을 다루고 있다. 평소 지인들과 더불어 ‘책을 매개로 예술과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출판 관련 잡지에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약 2년 동안 예술에 관한 책들을 소개하는 서평을 잡지에 연재했고, 그것들을 엮어 출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한다. 예술 일반에 관한 책들을 그리 많이 접하지 못했기에, 이 책에서 리뷰의 대상으로 삼은 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미처 읽지 못한 것들이었다.
저자들은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는 책들을 선정하여, 각자의 관점에서 그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서평을 통해 제시하였다. 저자들이 선정한 내용들에는 예술 자체에 대한 성찰을 다룬 책들이 있는가 하면, 예술가나 예술의 세부 분야에 대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모두 11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 주제마다 2~3권의 책을 선정하여 그에 관한 리뷰를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 제시된 '예술'이라는 키워드는 마지막 항목에서 ‘다시, 예술’이라는 주제로 반복되고 있으니, 실상 이 책에서 다루는 키워드는 모두 10개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글에 저자를 명시하지 않고, 본문의 활자를 달리하여 구분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즉 명조체로 이뤄진 본문은 이상길의 글이고, 고딕체의 본문은 심보선이 작성한 내용임을 책 말미에 제시된 출전 목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와 마지막 키워드인 '예술'과 '다시, 예술'에 수록된 5개의 글은 모두 이상길에 의해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항목인 '대화'는 조각가 자코메티와의 대담을 엮은 장주네의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그리고 에드워드 사이드와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화를 엮은 <평행과 역설>이라는 책에 대해서 심보선이 쓴 글이 수록되어 있다. 세 번째인 '천재'라는 항목에서는 모차르트와 고흐를 다룬 책들을 다루면서, 예술가의 천재성이라는 문제를 다룬 이상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밖에도 이들이 구분한 키워드를 보면 ‘애호’, ‘교육’, ‘이미지’, ‘사라짐’, ‘정치’, ‘벗어남’, ‘놀이’ 등이다.즉 누군가에게는 특별히 '애호'되는 대상이기도 하며, 그것이 ‘교육’의 수단이거나 ‘이미지’로 소비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의 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영원한 듯이 보이는 예술(작품)도 누군가의 관심이 줄어들면 ‘사라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정치’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키워드를 통해서, 저자들이 예술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보다 넓은 이해를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두 저자가 제시한 책들에 관한 리뷰를 먼저 읽고 관심이 가는 책들을 선정해서 읽는 것도 필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진다. 아울러 책의 뒷부분에 참고도서의 목록이 있어,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조금 넓혀줄 수 있을 것이라 이해된다. 이 책을 통해서 예술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와 함께 두 저자의 개성적인 측면을 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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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흠모한다. 예술의 세계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번지다, 예술을 읽다』란 제목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필자의 이름에 시인 심보선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시인이자 사회학자가 읽은 예술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일까. 순수한 호기심과 이 책을 통해 예술이 우리 사회에 스며드는 과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심보선과 이상길 두 명의 저자가 소개한 책은 23권으로 예술, 대화, 천재, 애호, 교육, 이미지, 사라짐, 정치, 등 키워드 별로 필자가 다르다. 사회학자가 예술을 주제로 한 책을 한 권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서평집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다룬 책들은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쓸모는 무엇인가? 예술은 왜 그리도 특별한가? 누가 예술을 소유하고 향유하는가? 예술은 사람살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7쪽)
우선 목록을 살펴보니 내가 아는 책은 거의 없었다.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은 보였지만 정작 깊게 읽은 책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예술서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였다. 예술을 키워드로 한 챕터에서 그레이슨 페리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란 책에 대한 글은 무척 흥미로웠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미술관 관람에 대한 소박한 지식도 없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의 전시회가 있다고 하자, 그때 그 소식을 어떤 경로로 접하는지에 따라 대중이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유명 큐레이터, 동료 예술가가 극찬을 한다면 나 역시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예술가를 작품을 평가하는 건 같은 동료나 예술가가 아닐까. 당연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의 세계가 한정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서평집의 단점이자 장점은 새로운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이 궁금해지는 일이다. 나는 그레이슨 페리란 이름을 몰랐는데 이제는 긴 제목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책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으로 이뤄진 『평행과 역설』에서 인상적인 건 바그너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 명의 음악가를 향한 서로 다른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일. 그 역시 예술의 자유가 아닐까. 바렌보임은 바그너를 자신만의 음악적 사상을 추구함에 있어 자신의 편협한 인종주의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반면 사이드는 바그너가 추구한 집단의식이 독일 민주주의를 구현했다고 말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바그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현대 음악과 연주자, 예술에 대한 심보선의 사유와 문장에 반할 수밖에.
이들에게 음악은 소리였다. 침묵 속에서 태어나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삶이자 죽음이었다. 이제 우리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는 소음이거나 복제되고 재생되는 인공음이다. 결국 소리가 사라지면 침묵도 사라질 것이다. (55쪽)
‘‘그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탈리 에니크 『반 고흐 효과』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나 역시 반 고흐의 작품과 그에 대한 책을 읽었고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 열광하는 이유는 뛰어난 화가의 자질과 더불어 그의 생애와 결부시켰기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불운한 고희의 생 말이다. 대중은 생전의 그의 작품에 대한 몰이해가 빚으로 남아 후세에 고흐 숭배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애드 디 앤절로의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를 다루며 심보선은 공공 문화기관에서 담당했던 시민교육과 공공 도서관이라는 기관 자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는 점이 흥미롭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공공 도서관은 닫힌 세상이었다. 단순히 책을 빌리고 그 안에서 운영해는 문화 강의만 떠올랐으니까. 우리 주변의 공공 도서관은 일반 시민에게 어떤 위치와 의미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제목만으로도 반가운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보편적으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될까. 작가에 대한 이력, 목차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읽은 책의 제목, 작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읽지 않은 책에 대 무얼 말할 수 있겠는가. 피에르 바야르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상길이 정리한 것처럼 나의 책 읽기에 적용해도 좋을 듯하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읽었는가 여부보다는, 관련된 책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책 속에 파묻히거나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과 나누는 담론이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지식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잊는 것, 또 잃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책이라는 대상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164쪽)
예술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지는 날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연주자는 연주를 하지 못하고, 연극 무대는 폐업 상태와 다름없고 전시회를 찾는 이들도 많지 않다. 책으로 만나는 예술은 여전히 높은 벽의 실체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다양한 예술에 대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읽는다는 건 어렵고도 즐거운 일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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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화가의 드로잉을 집 안이나 카페에 배치해두는 실내 인테리어의 유행이나 공중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에서 알 수 있듯 예술 작품은 우리 주위에 흔한데, 그럼에도 순수 예술은 어렵다고 생각되기 일쑤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예술에 문외한인 내 기준에서는 '저게 무슨 저 정도 가격이나 해?' 싶은 것도 좋은 예술 작품이라고 칭송받으며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알고 나면 왠지 더더욱 예술과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나 같은 독자들을 염두에 둔 듯 예술, 대화, 천재, 애호, 교육, 이미지, 사라짐, 정치, 벗어남, 놀이라는 여러 챕터로 나누어진 이 책이 처음 다루는 주제가 바로 예술이다. (시작이 예술이니 끝도 예술로 마무리된다. 끝 챕터는 '다시, 예술'이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정말 아무거나 예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 현재, 동시대 예술의 딜레마. 이미 제목만으로도 흥미로웠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의 그레이슨 페리가 이야기하는 예술로 여겨지는 경계선의 표식이나 예술의 질과 평가에 관한 문제들이 흥미로웠다.
천재 챕터는 말 그대로 쉽고 재밌었다. 음악계의 신동·천재의 대명사인 모차르트를 범접할 수 없는 예술적 예외로 그리지 않고 아버지의 지도 방식, 궁정음악가로서 지위 등에 주목해 사회적 구조 속에서 분석한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그리고 작품의 인기가 넘쳐 굿즈로 제작되다 심지어 과자 패키지(해태 아이비 아몬드 블라썸 패키지에 고흐의 아몬드 나무가 그려져 있던 것이 인상 깊었다. 사 먹지는 않았던 것 같다.)에까지 진출한 인기 화가 반 고흐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열광이 집단적 과오에 대한 속죄라는 해석을 다룬 <반 고흐 효과>. 이 두 가지 책을 소개하는 챕터다. 클래식과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모차르트, 고흐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므로 잘 읽힐 것이다.
교육 챕터에서 다룬 책 <성찰하는 티칭아티스트>를 통해서 티칭 아티스트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은 생계의 문제 때문에 부업으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데 그중에 특히나 예술 교육에 많이 종사한다. 그들을 단순하게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가르치는 예술가라고 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언뜻 보면 어순만 바꾼 것 같지만 '예술을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하며 예술 하는 사람'이 의미하는 바는 다르다. 예술가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일하는 이들의 두 가지 전문성을 모두 인정하는 좋은 표현이다 싶었다. 이어서는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는 데서 더 나아가 모든 교육이 예술 교육이라 주장하는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이 소개된다. 예술 서적만 다룬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통해 교육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만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눈에 띄었다. 랑시에르는 전통적 교육은 '바보 만들기' 체계라고 하면서, 대신 '예술가 되기'라는 테마를 도입한다. 랑시에르에게 교육이란 '자신의 영혼을 주어진 재료를 통해 표현하고 나누는 타인과의 소통 과정'이라고 한다.
랑시에르는 유식한 스승이 무지한 학생에게 지식을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수준에 도달하게 하려는 전통적인 교육 방법을 "바보 만들기" 체계라고 주장한다. 스승이 학생에게 학식을 전달하는 교육적 관행은 학생들이 스승보다 무지하다는 가정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중략) 기존 교육의 바보 만들기 기획에서 교육자들은 어떤 음모나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존의 교육 체계에서 교육자들은 "권력과 사회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랑시에르는 오히려 "유식할수록, 눈이 뜨였을수록, 선의를 가졌을수록" 앎과 무지 사이의 거리는 더 커진다고 이야기한다. (중략) 랑시에르는 따라서 교육자 또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를 무지한 자로 탈정체화하고 가르침을 지식의 성취가 아닌 지능을 발현시키는 민주적 과정으로 재편하면서 교육자는 함께 해방적 주체가 될 수 있다. p.103~104 (심보선)
지금까지 흥미롭게 읽은 챕터들을 소개했지만 위 챕터들이 소개한 책들이 제일 읽고 싶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가장 읽고 싶어진 두 책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사라짐 챕터에서 다룬 마르크 오제의 <비장소>.
오제가 창안하고 체계화한 '비장소'라는 개념은 이동(교통), 소비,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전통적 장소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장소다. 그럼 전통적 장소란? 우리의 정체성과 인간관계에 개입함으로써 우리를 만들고 곧 우리의 역사가 되는 곳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을 나와 분리해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제는 비장소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익명의 개인들을 고독하면서도 유사하게 만든다고 보고, 정의상 비장소인 곳도 행위자들이 공간과 맺는 관계에 따라 장소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들과 있는 곳이나 나를 아는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서 억지로 짓던 표정이 숨 막혀 익명의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야 비로소 한숨 쉬었던 때가 떠오른다. 그런 곳을 '비장소'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혼자 익명의 나로서 존재했던 그 비장소에 누군가와 함께 가서 어떤 추억을 만드는 순간 그곳은 내게 더 이상 아무 의미 없는 곳이 아닌 고유한 장소가 될 것이다. 고유함 없는 개인으로 흐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저자(심보선)이 제안하듯 예술가, 그리고 예술가 아닌 사람들도 비장소에서 희망을 찾아내 새로운 장소성을 경험해야 한다. 비장소를 어떤 경험이나 감정과 연결 지어 고유한 장소로 만들어 놓는지에 주목하여 여러 예술 작품을 살펴야겠다 싶었고, 관련된 개념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비장소>는 읽어볼 생각이다.
둘째. 벗어남 챕터에서 다룬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책 읽기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책 사기와 책 빌리기이다. 집에 이미 있는 책을 아직 다 읽지도 못했는데 신간 도서가 나오면 예약을 하고 괜히 도서관이나 서점을 서성거리다 책을 빌리거나 사 온다. 읽지 않았지만 알고는 있는 책이 자꾸 늘어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속도를 맞추려 빠르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전에 읽었던 책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집에 있는 책장이 읽은 책, 안 읽은 책, 덜 읽은 책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 어느 쪽에 속하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면 책을 왜 읽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가 소개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내 생각들을 다 깨어주었다.
바야르는 책을 전혀 읽지 않거나, 책을 귀동냥만 했거나, 책의 내용을 읽었지만 잊은 경우에도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야르에 따르면 지금까지 완독했거나, 혹은 책 표지 혹은 목차나 책 소개만 읽었거나, 흥미롭게 읽다가 어느 날 문득 덮어두고 다시 읽지 않았거나,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서 읽어야지 하고 안 읽었거나 하는 책 모두가 나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나의 내면적 서가를 이루고 있다. 바야르는 읽기를 어떤 책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읽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바야르의 주장은 스스로를 다독가 혹은 애독가라고 부르기 머쓱했던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저자(이상길)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글쓰기 입문서로 읽어 보라고 권하며 책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었다.
책 전체에 걸쳐 바야르는 교양에 대한 문화적 압력을 계속 문제 삼는데, 그것이 학생들의 창조적 글쓰기에 중요한 장애로 작용한다는 판단에서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대접받으려면 '책'을 읽어야 하고, '정독'해야 하며, 그것에 관해 '잘'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억누른다. 그들은 '정답'에 대한 부담감 속에서 창의력을 발휘할 용기를 빼앗기는 것이다. 하지만 바야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p.163~164 (이상길)
훌륭한 책을 계속해서 찾아 읽으며 책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려다 진이 빠지는 것보다는, 내가 지금 접한 책을 현재는 다 완독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이전에 만난 책과 연결 짓고 그를 통해 나만의 시각을 갖추어 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로서 혹은 내 글을 직접 쓰는 창작자로서 용기를 줄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도 꼭 읽어야겠다. 그리고, 더 써야겠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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