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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신문에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을 비판한 책이 나왔다고 해서 찾아본 책이다. 물론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조금 있지만 이 책은 대한민국 외교사를 돌아보고 우리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 그리고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지 조언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책 서문에 미국 트럼프 집권 시기 행정부의 3무 외교(인재, 절차, 정책이 없음)를 언급하고 있는데, 국무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층에 자격 없는 사람들을 선임하였고, 정부 내 부처 사이, 행정부와 의회 사이의 협의가 결여되었으며, 주요 이슈에 대한 합리적인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이 3무 외교가 지금 우리나라에도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외교는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번영을 도모하며, 위신을 선양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란 점을 강조한다. 또한 외교는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과 수단을 효과적으로 구사해야 한다면서 국익을 우선으로 하는 효과적인 외교는 실용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실용적 외교란 외교가 집권자나 그 그룹의 이념과 감정,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면서 말이다. 근현대 외교의 역사가 일천하고 성공적인 외교의 선례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는 국익을 위하여 외교가 실속과 내용이 있는 것이 되도록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가 외무부장관에다 주미대사도 역임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외교관이 외교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 우선 외교관은 어느 경우이든 말을 안 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으나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다. 도덕적인 견지는 접어두고라도 실익의 면에서 이익보다는 불이익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사실 국제사회에서 명성이라는 것은 무척 중요하기에 정부나 개인이 신용을 잃게 되면 그만큼 그 나라의 외교를 어렵게 할 것이라 언급하고 있다. 물론 외교 실무에서는 진실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에 이런 경우 협상에서는 명백한 거짓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숨김은 불가피한 것이라 첨언한다. 아울러 외교에 있어서는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고, 행동보다도 실제의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말은 적게 하고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면서, 다만 적게 하는 말이라도 그것은 신빙성이 있고 절제되고 논리가 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 언급한다. 한편 각국이 자국의 이익에 충실하다고 하여 반드시 두 나라의 이익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강대국과 공동이익을 발견하고 그것을 설득시키는 과정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이 왜 그런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협상이나 협의 상대에 대하여 건전한 회의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상대를 무조건 불신하고 의심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이유에서든 간에 모든 것을 진실되게 말하지 못할 것임을 전제하는 것이라면서 최소한 행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할 것이라 언급한다. 이 책의 중반부는 주변 강대국들과 외교사를 쭉 일별하고 있는데, 몇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 보였다. 이를테면 중국이 북한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1992년 8월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한 이유를 몇 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냉전의 종식과 미중간의 화해라는 상황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경제 발전이 정치나 안보보다 앞서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한국을 새로 등장하는 경제체로 인식하였고 그만큼 한국과 교역 및 투자 관계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서 말이다. 중국은 특히 한국의 급성장이 발전적 권위주의에 의한 한국식 발전 모델 덕분이었다고 판단했고, 중국으로서는 초기의 경제적 도약을 위해서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매력적인 모델이자 유용한 파트너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던 동기 중 하나는 소련이 이미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는데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 해석이 보이는데,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 요인 중 하나로 2차 세계대전 이전 한국이 주로 서양 국가들의 지배를 받던 다른 피식민국가들과 달리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다른 피식민지의 민족주의자들 대부분은 백인들의 서방 국가를 최소한 의심의 눈으로 보며 최악으로는 증오의 감정으로 대했던 반면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서양 세계를 새로운 문명과 자유주의의 개척자로 여겼다면서 말이다. 동시에 역사상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 입장이었던 한국에는 강대국을 추종하는 사대주의 전통이 살아 있었으며 20세기 들어와서도 한국 지도층에 그러한 사고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결국 6.25 전쟁 휴전 후 상당 기간 미국은 한국에 대하여 일방통행적인 지원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한국은 이를 감수했는데, 이 상황은 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베트남 참전 경험을 통해 한국은 미국의 약점과 힘의 한계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한국군은 베트남에서 전술적으로는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했고 행정적으로는 자주적인 운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법적인 미군의 통제에서 사실상 벗어난 한국군은 이제야 미국군의 감독을 받아가며 군사 행동을 한다는 심리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한편 미국 카터 행정부 때는 주한 미군 철수 계획, 코리아게이트 로비 사건,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문제 등으로 한국과 사이가 안좋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자 지난 정부의 외교 정책들이 효과가 없었다고 판단하고 한국을 대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 한미동맹은 6.25 전쟁의 기억이 없는 세대가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남북한 관계가 호전되면서 그 존재 이유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국제 환경의 변화가 있고 미국의 정책이나 입장에 허점이 있지만 한미동맹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유지하고 강화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가, 또 그러한 의지가 있는가라고 말한다. 한국도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고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동맹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말이다. 특히 전작권 환수 문제가 한미동맹이 약화되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게 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전작권 이양의 시기는 필히 북한의 핵 문제 해결과 연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전작권 이양의 보완책도 마련해야 하는데, 전환된 후에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는 작전과 공군 연합작전, 해병대의 강습 작전 등은 미군이 주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 21세기에 들어와 일본과의 관계 역시 지도층이 전후 세대로 교체됨에 따라 과거청산 문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언급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 중, 일 3국 관계에 대해 정치적인 문제와 비정치적인 문제를 분리할 것, 상호 관계에 있어서 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이 될 것, 젊은 세대 및 청소년 세대 간 우호와 교류, 협력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미국과는 동맹국, 중국과는 우호국 관계를 유지하는게 기본이라 말한다. 즉, 이러한 균형 외교는 미국과 안보, 군사 면에서 협력하고, 경제 면에서는 중국과 활발히 협력하며, 남북한 관계와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압박과 협상 정책을 병행하는 것이라 말한다. 현 시점에서 미국 및 중국과 동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싱가포르라면서 참고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한일 관계에 있어서는 안보와 경제 협력의 관계 회복이 필수라면서 지소미아(GSOMIA) 등 정보협력을 포함한 한, 미, 일 3자 안보협력에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의 확장 억지를 유지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F-22 스텔스 전투기, B-2 스텔스 폭격기, B-1B 전략폭격기, B-52 전략폭격기, 핵 잠수함, 항공모함 등의 순환 및 항시 배치를 언급하고 있다. 한편 북한 핵무기의 완전 포기는 당분간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 활동 동결이 긴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하여 어느 정도 협조는 제공할 것이라 예상한다고 덧붙인다.
북한에게는 핵무기와 미사일로 정권 붕괴 방지가 불가(소련은 수천 개의 탄두 보유 불구 내부로부터 몰락)하므로 미국과의 협상으로 핵무기, 미사일을 제한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를 용인하는 협상을 하거나 북한의 핵 보유가 영구화되면 한국과 일본도 핵무장의 길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다시 외교관의 태도, 외교관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언급이 흥미로운데, 바로 한국 사람이 인내심이 부족하고 싸움을 지주 하는 이유가 무엇보다도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효과적인 외교 대화를 위한 태도 여섯 가지를 언급하고 있는데, 대화를 독점하여 자신의 말로 대화의 시간을 채우려 하지 말 것, 그러나 자신의 입장이 왜 논리적이고 왜 양측에 다 이익이 되는 것인지 주장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준비할 것, 상대방의 의도에 선의와 악의를 전제하지 말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찾아볼 것, 대화 도중 여러 문제가 거론될지라도 종료 전에 중심적인 문제로 돌아와 결론에 도달할 것, 외교적인 대화는 개인적인 대화와는 달리 상대방도 본국 정부의 지시를 받으며 책임자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을 언급한다.
물론 이성에 부합하는 대화를 진행하기 불가능할 때 우리 쪽의 약한 모습을 노정하며 상대방의 오만과 무지를 방조해 줄 의미나 이유가 없다면서, 대화가 깨지는 일이 있더라도 전쟁이나 그에 준하는 파국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감수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라 언급한다. 다만 그러한 결정에 이르는 동안 이성을 지키고 모든 행동은 냉철한 계산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라 조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국격을 제고하기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모범을 세우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라면서 그러한 모범적인 나라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를 들고 있다. 앞의 두 나라는 대외원조에서 선진국이 합의한 범위보다 훨씬 큰 범위로 조건 없이 생색내지 않고 다자기구를 통해 지원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유엔 등을 통한 세계 평화유지 활동, 민주주의와 인권 진작 운동, 국제기구의 활성화, 세계 환경보호 등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서 말이다. 이 책 중간에 저자가 영어 네 글자로 축약해 대외관계를 설명하는 부분도 눈길을 끌었는데, 북한의 대미정책을 BTNB(Brave talk, no bite), 즉 말로는 용감하게 대들어도 정작 물지는 않는 것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을 FSMN(Forsake me not), 즉 날 버리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