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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왜 지금껏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이런 고전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온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보장된 작품이지만 웬만해서는 책을 읽자고 마음먹게 되지 않기도 한다. 그동안 생각은 있었지만 딱히 계기가 없었던터라 읽지 못하고 있던 데미안을 스타북스의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 스페셜 에디션 출간을 계기로 읽게 되었다. 읽는 기간을 다른 책들에 비해 오래걸렸지만 들인 시간만큼의 재미도 충분했다.
" '데미안을 잊어버렸어?'(84) "
데미안이라는 인물의 매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부분이었다. 표현이 섬세하고 유려한 문장들 속에서 유약하고 어린 내가 주위 관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간교한 주변 인물들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유추해보는 것도 꽤 즐거운 과정이었다. 알 수 없는 경로로 프란츠 크로머에게서 벗어난 싱클레어가 "교실의 양로원을 연상케 하는 퀴퀴한 공기 속에서 그의 목덜미 근처에서 풍겨오는 향기로은 비누냄새를 아주 기쁜 마음으로 들이마(101)"시게 되면서부터 한층 성숙된, 새로운 근심이 찾아오는 변화도 흥미로웠다.
데미안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가 싶을 때 찾아온 에바 부인과의 만남은 불안하면서도 묘했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모자의 관계이면서 마치 둘로 나뉘어진 한 사람인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싱클레어가 그 둘에게 함께 끌리면서 '부르는 방법'을 썼다는 부분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갑자기 들려온 전쟁 소식과 함께 마무리 지어진 내용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뒷이야기가 더 있어야만 할 것 같은데 끝나버린 이야기의 아쉬움을 덧붙여진 옮긴이의 후기와 100편의 시로 달랬다. 스타북스의 데미안이 특별한 이유도 100선의 시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이 컸다. 100편의 시가 데미안의 내용으로 고양된 감성을 증폭시켜주는 감상이 되었다.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지드의 '좁은문'을 떠올리는 순간이 많았다. 성장의 시기를 다루는, 영향이 깊은 누군가가 인생에 새겨지게 되면서 그에 빗대어 자신도 완성해나가는 화자의 시점이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글의 맨 초반 '인간의 생애란 각자가 자기 자신이 지향한 바에 도달하기 위한 길,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길인 것이다.(13)'고 하는 부분에서부터 '좁은문'을 떠올렸었다. 데미안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은 독자라면 지드의 좁은문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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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고전답다 아마 고전이라는 단어때문에 쉽게 책을 펼치기 힘든 그런 단어이기도하다 100년전에 나온 이야기이지만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라는 문구를 읽고 블로그의 이름을 만들었을정도로 방송을 볼때도 지금 스페셜 에디션을 읽을때도 다시한번 궁금하게 된다
코로나, 직업, 삶, 나의 무언가가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들때 물론 쉽게 손이 가지않지만 한번 손에 잡으면 쉬이 읽혀지는 여러생각으로 차근차근 밟아야 할 책이지만 그리고 스페셜 에디션 영혼의 시 100선 . 지금 학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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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데미안 많은 출판사에서 나오고 청소년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 중 하나인 책인데 이번에 스타북스에서 스페셜 에디션으로 영혼의 시100선을 포함해서 출간했다 헤세의 시집도 따로 있는데 이렇게 데미안과 함께 헤세의 유명 시를 함께 읽을 수 있으니 좋다. 번역이라 그런거겠지만 문장의 아름다움은 모르겠지만 헤세의 세계관을 볼 수 있는 시들이라서 좋다. 약간은 설교같은 느낌이 드는 시들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워낙 방송에 많이 나오는 책이라 제목은 많이 들어봤고 유명한 문구는 알고있지만 정작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었다 자전적 소설로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이라서 청소년의 필독서로 많이 권하지만 과연 청소년이 이책을 읽고 이해할까는 의문이다 그냥 단편적인 면으로만 봐도 카인과 아벨 같은 종교적인 내용도 나오고 전쟁과 같은 주제도 닮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지금 읽는 나조차도 처음엔 오~ 쉬운데 라고 했다가 카인과 아벨부터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문구 - 161 -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 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라삭스라 한다.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세계에 살던 싱클레어가 시끄럽고 음산하며 폭력이 난무하고 잔한한 것이 존재하는 세계로 발을 들어놓으면서 시작한다. 싱클레어는 깨긋한 자신의 세계에서 살다가 프란츠 크리머를 만나면서 어둠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데 깨끗한 곳에 살며 순수한 아이가 자신도 바깥 세계를 알고 더러움을 안다면서 뽐내다 진짜 어두운 바깥 세계에 살던 크리머에게 발목이 잡히면서 도둑질과 거짓말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처음부터 자신이 협박을 당할때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부모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면 그랬으면 부모에게 꾸지람은 들었겠지만 크리머에게 발목은 안 잡혔을텐데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내가 만약 아이라면 나 역시도 자신이 한 것이 거짓말이다. 자신이 나약하지 않다고 뽐내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했을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처음부터 부모님은 그런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주의를 줬고 자신이 거짓말을 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왜 거짓말을 해서 일을 크게 만드냐고 할테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고 비밀이 생기는 일이 발생한 것이니 쉽지 않을것이다. 더 큰 일이 발생할걸 알지만 눈 앞에 닥친 이 현실을 먼저 숨기고 싶어지는 법이니 말이다. 남의 이야기니 왜 거짓말을 해서 일을 키우냐고 하겠지만 어른이여도 눈앞의 일만 어떻게 모면할려고 거짓말을 하지 그것을 바로 잡을려고는 하지 않으니깐 말이다. 그것이 더 큰 화를 불러 올걸 알면서도 말이다.
내 죄는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것인가. 악마, 악마하고 악수를 한 것이 내가 저지른 죄의 근원이다. 나는 왜 그 애들을 따라갔을까. 나는 왜 아버지에게서 그처럼 주의를 받았는데도 크로머의 말을 들었을까. 나는 왜 하지도 않으느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말을 꾸며 했을까. 마치 그것이 영웅적인 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왜 자랑삼아 말을 했을까. 그것도 일부러 거짓말을 꾸며서까지 말이다. 그때 악마는 내 손을 붙잡은 것이다. 그때부터 나를 평생토록 괴롭힐 원수가 내 뒤를 쫓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38 - 거짓말을 함으로써 악마하고 손을 잡고 깨긋한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과 동시에 어쩌면 조금은 성장은 한 것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프란츠 크리머를 벗어나게 해준것이 나의 성장의 첫번째 귀인이자 마지막 귀인인 데미안이다. 데미안을 만남으로서 나는 괴롭힘과 고통에서 벗어나지만 데미안은 내가 살던 깨끗한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에 살던 인물이라 나는 그와도 거리를 둔다. 그렇지만 다시 성장한 나는 술과같은 세계에 빠지면서 다시금 고통과 고독을 느끼고 어두운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두번째 귀인인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짝사랑 하는 여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있는 내적자아나 마찬가지다
단편적인 면으로는 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면서 나쁜 세계도 접하고 담배 술 성적인 문제로 인해서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건데
어른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종교나 세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신이 어떤걸 원하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보는건데 자신을 바로 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어렵다
싱클레어는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이렇게 자신을 성장시켜주는 사람을 만난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만든 가공의 인물이지만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게 하고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인물이니깐..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에바부인까지. 어쩌면 자신의 성장을 위한 귀인을 이렇게 만난 싱클레어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이 고민하고 성찰하긴 하지만 그럴때 아무도 없는것보다 자신의 고민에대한 답을 주지는 못해도 그 답을 향해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 곁에 있으니깐 말이다 삐둘여져도 자신이 그것을 향해 고민하고 벗어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일이다. 이건 아이가 어른이 되는것뿐만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서도 이런 인물들을 만난다는건 어렵기때문이다. 에바부인을 사랑하는 부분은... 에바부인은 데미안의 어머니인데... 물론 여성으로서의 사랑도 있겠지만 이건 상징적인 의미고 자신의 또다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는 귀인이겠지만 ... 어쨌든 친구의 엄마를 사랑하는 싱클레어는 상징적인 여성이라고 해도 조금은 아리송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성에 대한 사랑 고민과 성적인 고민이지만 왜 그 대상이 친구의 엄마일까? 어릴때부터 계속 생각하고 따라가고 싶었던 인물인 데미안의 여성적인 모습으로 생각해서일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그리고 에바부인이 사랑을 간절히 원하면 응답해준다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아들 친구에게? 아무리 상징적이라 하더라도 이건 좀 싶은...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표시가 나오는데 이 표시라는것이 내적 성찰을 위해 끊이 없이 고민하는 사람에게 생기는걸 말하는건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나 아브라삭스가 신과 악마에 대한 세계관은 종교적인거라... 좀더 고민할 필요가 있지만 난 사실... 헤세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아서 이렇게까지 생각하다니 싶어진다. 끝에 전쟁이 나서 전장으로 나가고 거기서 다쳐 다시 데미안을 만나고 데미안으로부터 너가 내면의 자신에 귀 기울이면 그 안에 내가 있을거라고 한다. 내가 바로 너이자 나다라는 얘기다. 계속 닮아가고 싶어했던 인물이자 친구였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얘기다. 자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더 넓혀나가는 것은 어렵다.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벗어나 또 다른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악마와 신이 함께 하는 두 세계를 다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원래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필요한 사물이 뜻하지 않던 방향에서 부여되면 그것을 '우연의' 탓으로 돌리지만, 실으느 우연도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열의를 다해서 구하는 사람의 당연한 노력의 대가로 부여되는 것이다. 즉 '우연'이 그것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하고 있는 사람 자신이 부여하는 것이닫. 그 사람 자신의 욕구와 필연이 그 사람을 거기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 171-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갖지 않으면 안 돼요. 꿈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편하게 자기 본연의 길을 걸을 수 있어요. 하지만 꿈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꿈이 좋다고 해서 그것을 영원히 자기에게 머물러 있도록 붙잡아 두려고 하면 안 돼요. 꿈은 새로운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아주 사라져 버리기도 하니까요. - 2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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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시작과 함께 거룩하게 외친 새해 다짐들이 많은데 벌써 2월의 달력 끝이다. 목표하고자 하는 것을 실천하는 의지가 약해지는 이 때 이 책 ‘데미안’을 만난 건 정말 너무나도 큰 행운인 것 같다.
데미안은 처음 읽는 책은 아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어느 20대 때 읽었었다. 그 때 정말 좋았었다 라는 기억만 간직한 채, 줄거리는 새까맣게 잊고서 다시 만난 데미안! 내가 읽은 헤르멘 헤세의 책들은 청소년기와 관련한 책이 많았다는 느낌만 남아있었다.
다시 만난 데미안은 나에게 너무나도 새롭고 강렬했다. 평화롭던 어린 시절에 주인공(싱클레어)를 완전히 장악한 학교의 폭력친구. 그 친구로부터의 해방을 도와준 친구 ‘데미안’과의 만남 그리고…
이 책의 처음부터 끝 장을 덮을 때 까지 생각한, 말한 주인공과 데미안 그리고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의 말들은 하나 하나가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은 것 같았는데 데미안 이야기는 279페이지에 끝나버려서 마지막 장을 읽으며 조그만 경악의 소리를 질렀다. 그 허전함을 번역자의 이야기와 헤르만 헤세의 시 100선으로 위로 받는 듯 했다.
역자의 말(옮긴이 후기)은 사실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어서 슬렁 읽고 지나갔지만…100개의 시가 너무 소중했다. 수많은 데미안 번역서가 한국에 있지만 이 책의 특별함은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번역자님의 경력사항이 너무 멋져서 좋은 번역가분을 통해 태어난 좋은 데미안 번역서!
천천히 꼭꼭 눌러 읽은 데미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또 어느 시일에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내 자아가 더 깊어지고, 강해지고 넓어지는 책, 너무 좋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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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소설 <데미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화자가 데미안인 줄로만 생각했었다가 어느 순간 등장한 데미안으로 인하여 마음속의 흔들림을 느낀 싱클레어처럼 독자인 나도 크게 흐름을 선회하는 순간을 맞이하였다.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아벨의 세계에서 카인의 세계를 넘나드는 마음의 혼란을 가졌다. 아벨과 카인은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아들들인데,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면서 카인은 최초의 살인자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데미안은 아벨로 대변되는 종교적이고 순수하고 밝은 평화로운 세계와 어두운 심연의 유혹으로 둘러싸인 카인의 세계 사이에서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세계에 대해 스스로의 자아를 찾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나는 <데미안>을 읽고 스스로의 본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먼저 인정해야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통렬하게 저항감을 느끼는 것은 ‘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을 걸으려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자기의 영혼이 바라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금지된 일이라고 주저하면 안 돼." 이것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마음을 부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내 욕망의 발현이 설사 아브락사스라는 신성과 악마의 결합인 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면, 내 안 어딘 가에 존재하는 그 욕망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려 하기만 해서는 내 자아를 찾지 못한다. 그것이 발현되는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뿐이니, 어디서 왜 그런 것들이 아니 아브락사스가 왜 나에게 그런 것들을 원하게 했는지에 대해서 관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린 모두 인간이야. 우린 신을 창조하고 그 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해야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어.” 자아에 대한 탐구와 인정 그 이후에는 그 욕망, 본성과의 싸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은 성장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의 초입을 읽다가 느낀 점인데, 물론 화자로 나온 싱클레어가 어른이 되어서 회상하는 것이겠지만 10살 남짓한 아이의 사고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깊은 성찰의 단면에 감탄했다. 나이로만 본다면 확연히 어른의 모습인 내가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사고를 한다고 느껴졌다. 어린 시절 그가 겪은 것과 같은 고민과 충동에 휩싸이기도 하였지만, 나는 단지 고민하였을 뿐 그것을 관조하고 내 자아를 찾겠다는 성찰의 과정으로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현재의 삶에서도 나는 살아갈 뿐 내가 삶을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문득 고민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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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이라고 불리는 데미안을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처음 읽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부푼 기대를 안고서 책을 읽어나갔는데, 생각보다도 종교적이고 사상적인, 다소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와 책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읽다 멈추고 읽다 멈추고를 반복하며 문장을 곱씹어보고 곰곰이 생각해보며 읽느라 끝까지 완주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려운 책인 만큼 그만큼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어서 내 나름대로 정말 뜻깊었던 책이다.
1. 줄거리 데미안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의 목소리(자아)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들' 주인공 싱클레어는 부유하고 올바른 집안에서 자란 전형적인 '도련님'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열 살 무렵에 이 세계가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데, 이후 이 선과 악의 기로에 서서 자신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지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간을 가지며 친구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결국은 내면의 성장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항상 부잣집에서 반듯한 부모님의 가르침 아래 평온한 선의 세계에서 살아왔던 싱클레어지만, 악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 싱클레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남몰래 솟아오르게 되는데, 선을 추구하면서도 악에 끌리는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 중대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지 간에 말이다. 어쨌든 선과 악, 올바른 일과 금지된 일이라는 대주제 아래서, 싱클레어는 악에 빠져 타락을 경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에서 벗어나 선을 갈망하기도 하며 이러한 방황의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된다.
2. 해석 - 사회의 요구 vs 내 안의 목소리 하지만 어째 보면 이 책에서의 선과 악은 단순히 '선'과 '악'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품 내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이 선과 악을 한편으로는 약간은 다르게 해석해 읽어보기도 하였는데, 개인적으로 선을 '사회의 요구와 기대, 성공이 보장된 길', 악을 '사회의 요구에는 반대되지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내 마음이 외치고 있는 운명'으로 해석해 대입해 읽어보는 것이 자아를 찾는다는 작품 주제에 더 부합하면서도 더욱더 와닿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따지면 데미안의 내용을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부유하고 온화한 가정 속에서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자라왔지만, 그의 내면은 계속해서 다른 운명을 외치고 있다. 싱클레어는 사회의 요구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숙명적인 일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계속해서 방황하게 되고, 확립되지 않은 자아 속에서 혼란스러운 과정을 겪는 싱클레어에게 친구 데미안은 계속해서 싱클레어의 관점을 비틀어주는 역할을 한다. 데미안이 하는 말은 모두 이제껏 어른들이 해왔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해석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기존의 고정관념들을 비틀어버리는 이야기들), 데미안의 이야기를 들은 싱클레어는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특히나 '신성한 존재인 신이 창조한 세상이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성시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지 간에.'라는 그의 해석은 읽는 나조차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른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 데미안을 보며 싱클레어는 그가 '불결하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데미안은 그런 관점을 비트는 이야기들을 통해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너 자신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판단하며 살아가라는 뜻을 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찌 되었든, 처음에는 데미안을 잘 이해 못 하던 싱클레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싱클레어는 데미안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친구들도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주변의 이야기보다는 내 내면의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한 것임을 드디어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아무리 가능성을 갖고 있어도 내가 내 안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건 소용없는 일이다), 진짜 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내가 내 안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 의지와 열망만 있다면 그 어떤 불투명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든 우리는 그걸 대처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결국 이 책 데미안은 내 안의 진정한 목소리에 집중하고 자아를 찾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해낸 소설이다. 싱클레어는 그 과정을 겪으며 많은 방황을 하지만, 방황의 시간이 있었기에 비로소 진정한 나 자신을 마주 보게 될 수 있었다. (중간에 싱클레어는 방황기를 겪으며 무기력과 우울증, 세상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는 자신의 내부세계가 혼란하니 외부세계에 대한 감흥조차 잃어버리게 된 것임을 뜻한다.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티비에서 재미있는 프로를 봐도 전혀 웃기지 않았던 것과도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앞으로 어떠한 방향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들과 고민들. 삶은 무엇인가. 내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임무는 무엇인가. 나는 사회의 요구대로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믿고 따라갈 것인가. 이런 고민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던 경험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를 앞두고 이러한 생각들로 엄청난 고독과 방황의 시기를 겪었었는데, 이 때문인지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과정이 더욱더 공감되면서도 그때의 내 모습이 겹쳐 보여 과거를 회상하며 읽기도 하였다. 데미안은 한창 삶의 방향과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시기에 방향성을 알려주는 안내서와도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은 매우 험난하고 외로운 길이다. (데미안이 말했듯이) 그러한 과정이 두려워 자아를 찾기보다는 그저 사회 속에 동화되어 사회의 뜻대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의 운명도 아닌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를 항상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를 가진 '표지'가 싱클레어와 데미안, 그리고 에바 부인에게도 있었듯이, 내 이마에도 새겨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3. 선과 악을 아우르는 신 '아브락사스' 더불어 데미안을 얘기하는 데 있어 선과 악을 아우르는 신 '아브락사스'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나의 신인 아브락사스는 선도 악도 모두 받아들여 준다'라는 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앞서 나는 선을 '나에 대한 주위의 시선과 사회의 요구', 악을 '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라고 해석해 읽었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의 신인 아브락사스는 선도 악도 모두 받아들여 준다라는 의미가, 나에게는 내가 어떤 길을 걷게 되든 모두 응원한다는 의미로 들려 무언가 찡하였다. 더불어 한편으로는 내 안의 선한 면이든 악한 면이든 다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안의 악한 면을 그저 계속해서 거부하고 외면하고 덮어두고 증오하고 혐오하기만 하다 보면, 그건 언제든 어떠한 형태로든 폭발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오히려 그걸 똑바로 마주 보고 인정해 줌으로써 그걸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나는 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데미안은 그러한 것들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데미안은 계속해서 싱클레어에게 선과 악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생각의 오류를 지적해준다. 금지된 일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어느 곳에서는 금지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준다. 이 구절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이 정답일 수도 있고,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옛날에는 대학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돌이켜보면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대학을 간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안 간다고 무조건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차피 정답도 모르는 일, 사회의 요구보다는 그저 내 안에 새겨진 운명, 내 안의 목소리에 철저히 나 자신을 맡기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데미안은 마치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쨌든 항상 '선'만을 외치는 신의 개념에서 벗어나, 선과 악을 모두 포용한다는 신 '아브락사스'의 개념은 내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4. 마무리하며.. 데미안은 굉장히 비유적인 표현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하는 방식도, 또 느끼는 바도 매우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 그 책을 읽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데미안을 읽고 이러한 것을 느꼈는데, 다른 사람은 또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하였는지도 궁금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그 참맛을 느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가 달라지고, 해석이 달라지고, 전에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계속해서 찾아지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명작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사회의 기대와 내 안의 목소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서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많이 어려운 책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학창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의 시기를 겪었던 작가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데미안이 더욱더 잘 이해될 것이다. 게다가 스타북스의 데미안 버전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작가 헤르만 헤세가 그의 고뇌에 대해 적어나간 영혼의 시 100선도 함께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삶에 대한 고찰을 더욱 도와준다. 더불어 데미안과 굉장히 비슷한 내용인 작가의 전작 '수레바퀴 아래서'도 함께 읽어볼 것을 강추한다.
*본 서평은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제공받은 독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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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고뇌와 방황을 어루만진 영혼 성장의 기록 10대에 읽은 <데미안>은 '데미안'이라는 인물 한 사람과 '새는 알에서~ '로 시작되는 문장의 기억 정도만 남겼을 뿐이었다. 40대의 두아이의 엄마가되어 읽어본 <데미안>에서 '싱클레어'의 존재를 떠올리며 그의 성장과정을 뒤따라갔다.
흥미롭게 소년시절의 싱클레어의 삶을 따라가다 중반부 <야곱의 싸움>을 넘어서면서부터 난해해졌다. 이야기가 막을 내린 후 묵직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싱클레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의 소년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고뇌와 방황을 음미해보았다. 싱클레어는 빈부의 차이가 교육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시대에 부유층 자녀로서 안정적인 교육을 받고 자라지만, 한 순간 실언으로 평민층 아이에게 고삐가 묶여 노예가 된 기분으로 암울하게 소년시절을 보낸다. 밝고 안정적인 세계와 어둡고 불안정한 세계의 공존을 한 시기에 경험하며 가족에게도 말 못한 채 침울하게 살아가던 그 시기, 데미안을 만나면서 구속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를 얻는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표정과 행동에서 동급생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신적 위엄을 느끼고,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해 들려 주는 데미안을 통해 단편적이고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면을 보는 능력에 감화된다. 데미안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면서도 한편 열패감 같은 게 작용해 한동안 데미안을 잊은 채 살아가기도 하지만 끝내 그를 다시 찾게 될만큼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이상적 자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자신이 가진 양면성 중 불온한 욕구 욕망을 실천에 옮겨보기도 하고, 충족되지 않는 허무함으로 다시 신성한 세계를 지향하며 정신적 방황을 거듭한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다가온 의미있는 편지!
상당히 추상적이고 시적인 이 문장들! 자신을 둘러싼 단단한 껍질 속에서 안락함을 보장받지만 그 안에 갇혀서는 새로운 세계를 볼 수가 없다. 그 껍질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 신'이 의미하는 선악이 공존하는 세상과 부딪치며 성장해 가야 함을 넌지시 암시해주고 있다. 이렇듯 성장은 부딪치고 부수어지며 겹겹의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싱클레어는 성적으로도 고뇌하며 성숙한다. 꿈속에서 늘 자신을 고양시키던 여인을 현실속에서 만나 뜨거운 연정을 품지만, 이룰 수 없는 그 사랑을 닿지 못하는 거리에 있는 별에 비유하며 안타깝고 숭고하게 승화시킨다. 정신적 고뇌와 방황 속에서 '데미안'이라는 인도자를 만나 성숙해진 싱클레어! 삶의 여정에서 영혼 성장을 도울 수 있는 그런 '큰 사람'을 만나는 건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스페셜 에디션답게 헤세의 영혼의 시 100선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에서 누리는 또 하나의 멋진 행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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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부끄러웠고 무식하게 생각할까봐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 적이 꽤 있었습니다. 이 책도 그 책 중에 하나인데 40세가 되어서야 이 책에 강한 끌림을 느끼어서 이 책을 꼭 읽어 보고 싶었고 BTS 앨범에 영향을 준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정말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싱클레어와 프란츠 크로머, 막스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저도 어렸을 때 그런 비슷한 경험들을 해 보아서 그 때의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책을 통해 저도 그 때의 경험이 제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오늘의 제가 있기에 어렸을 때가 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어렸을 때를 회상하게 되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실존적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어떠한 인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가르침을 주고 때로는 인간이 무엇이고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고 쉽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그 답을 찾아가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합니다. 데미안 스페셜 에디션으로 '영혼의 시 100선'도 실어 시를 읽으며 그 의미를 음미하고 헤르만 헤세의 영혼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고 우리가 우리 삶을 다시 돌아보고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자신을 자각하고 노력하는 삶에 대한 태도와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합니다. 책에 대한 문외한으로서 이 책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고 한번 읽고 저자가 어떠한 것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분출하게 되었고 여러번 읽어 저자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BTS가 느꼈던 것처럼 무언가 성장할 수 있는 것을 이 책에서 얻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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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란 책은 몇 년동안 보려고 마음먹었고, 읽기를 시작했던 책이다. 데미안이 정말 유명한 책이란 걸 알고 있었고, 많은 친구들이 꼭 읽어보길 추천했지만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데미안과 더불어 헤르만 헤세의 시까지 읽어보며 독서의 맛을 제대로 즐겨보고자 했습니다. 사실 내가 살아보려고 시도한 노력은 나라는 인간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려는 결심에 의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이 질문에 올바른 해답을 내릴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있으며, 생각하는 동안에 올바른 해답을 얻지 못하는 덕분으로 편안하게 죽음의 길을 떠난다.
인간의 생애란 각자가 자기 자신이 지향한 바에 도달하기 위한 길,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길인 것이다. 이 길은 넓고 평탄하여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의외로 쉽게 찾아오는 수도 있겠고, 또 그와는 반대로 좁고 험악하여 가도 가도 암시를 얻는 데서 그치게 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고도 먼 길 저쪽에 있는 자기 자신에 도달하여 완결무결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의 경우에도 불가능하며 그것이 실현된 예도 없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필생의 노력으로 분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력은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뚜렷한 자각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한 신경소모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고, 또 다른 경우에는 보다 자각적인 노력이 되는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각자의 열의와 노력하는 방법에 따라 좌우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인간에게나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모체로부터 독립했다는 증거로 탯줄을 끊은 자국, 즉 배꼽이 있다. 이 배꼽은 평생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인류가 발생한 태고시대의 점액이나 점질은 마지막까지 인간이 되려고 '인간'에게 붙어 다닌다. 그러나 끝내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나 개미나 도마뱀으로 생애를 마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머리는 인간이지만 몸은 물고기로 되어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도 인간 본연의 삶을 목적으로 하며 태어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인간상을 갖춘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다.
실험물로 빠져나온 우리 인간은 자기의 생성과정을 돌이켜 보기 전에 앞으로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며, 다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는 있겠지만, 가장 정확하게 '자기'를 설명하는 사람은 오직 그 자신뿐인 것이다.
-이 책이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작성되었음을 알게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매세지가 무엇인지 느끼고자 노력했다.
데미안이란 상당히 읽기에는 어려운 책인 것 같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여러번 읽기를 중단한 몇 안되는 책이다. 데미안은 1차 세계 대전전에 유럽 사회에 팽배한 퇴폐적이며 타성적인 문명과, 기성세대의 모순된 윤리관과 종교관 등에 대해 비판을 가한 책이다. 그래서 에밀 싱클레어라는 익명으로 발표했고 싱클레어는 작품에서 인간 내면세계의 양극성에 고뇌하며 방황하는 주인공으로 설정되었다.
데미안은 사랑과 죽음, 탄생 그리고 변형이 반복되면서 마치 몽환과도 같은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것이라고 옮긴이는 이야기한다. 작품에 깔려있는 전쟁 후의 암울한 색채는 새로운 탄생의 가능성을 암시해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알려준다.
개인적인 한줄 평 데미안은 말이 필요없는 책 죽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읽어야 될 책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궁금소년이었습니다. ※ 이 글은 문화충전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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