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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궤도를 떠난다 - <궤도를 떠나는 너에게>를 읽고
요즘 SF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읽을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상상력과 사고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만에 청소년 SF를 읽었다. SF이지만 현실을 곱씹어 보고 돌아보게 한다. 그게 임어진 작가의 매력인 것 같다. <니르 순환선>은 한반도 전역을 두 시간 남짓 순환하는 열차이다. 각종 광고가 승객들을 유혹하며 말을 걷는 와중에도 선유는 쌩하다. 진화역에서 곧장 연결된 판타섬이 어떤 사고로 인해 한순간 폭파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체험 여행을 간 중 1동생 은유가 있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눈물을 쏟았다. 유독 우리나라에만 많이 있는 대형참사가 마음 아프다. 우리는 2015년 4월 16일 이후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 전국민이 지켜보았던 침몰하는 배는 전국민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무 것도 못한, 아무 일도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유의 부모님은 기억 제거 시술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우리는 누구도 타인의 고통의 온도를 가늠할 수 없다. 선유는? 사고날 아침에도 동생을 놀리고, 장난을 쳤는데. 선유를 휘감은 죄책감과 허탈감은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우연히 니르순환선에서 만난 투이. 난민과 다문화를 상징하는 그 아이는 혐오의 사신인 ‘흼의 사도들’ 의 먹잇감이다.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피부색, 언어, 옷차림, 사고방식 등등 일 것이다. 다른 것을 배척하다 못해 보이는 것조차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선유가 투이의 손을 잡고 더 추운 밖으로 나간 부분이 울컥했다.(요새 툭하면 울게 된다. 늙은 탓이리라.ㅜㅜ) 그리고 기억 제거 시술을 거부한 선유를 응원하고 싶다. 좋은 기억이든 안좋은 기억이든 기억한다는 것 자체가 영원이 볼 수 없게 된 은유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은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뭐든 먼저 경험한 언니의 존재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나나와 하나>, 평범하지 않은 존재이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랑스런 존재인 <로봇단테2>도 잊혀지지 않는다. 각각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사람들과 존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읽었다. 참 따뜻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궤도를 떠날 것이다. 니르바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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