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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회고록이다. 물론 그가 서술한 것은 아니고 그가 구술한 것을 전문 필자가 정리한 것이기는 하지만.
YS는 자신의 회고록 부제를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이라고 붙였다.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의 느낌으로는 책의 제목 자체는 잘 붙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대부분이 5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민주화 투쟁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민주화'라는 단어가 그의 일생의 화두였고, 그의 모든 것이었으며, 바로 그것이 그의 한계였으니까.
YS는 민주화 담론이 지배하던 시기의 인물이다. 그의 정치생활의 기본적 문제의식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확립이었으며, 그는 그 것에 충실하려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이상을 추구할 비전도 능력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그의 회고록속에서도 단편적으로 나타나지만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시 보여주었던 여러 행동과 그 결과로서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은 그의 파란만장했던 정치역정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자신의 회고록이 우리 현대정치사의 중요한 현장기록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점은 이 책이지닌 간과할 수 없는 장점이라 할 것이다.
그는 수십년간 그간 발표했던 많은 국회연설문 및 성명서, 개인적인 일기 등의 자료를 적절히 활용하여 책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간략한 메모만을 가지고 했다는 그의 장문의 국회연설문을 읽어보면 연설못하는 정치인으로 인식되던 YS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YS의 정치입문이 대학생 연설대회에서 수상을 한 계기로 장택상의 개인비서가 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는 것도 흥미있는 대목이었다. 또한 그가 흔히 말하듯 그렇게 무식한 정치인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이 책을 보며 알 수 있던 YS의 또 다른 측면이다. 젊은 시절 나름대로 공부했고, 독서했으며, 고민했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그것보다 더 큰 이 책의 장점은 일반인들에게 김영삼이라는 개인에 대해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그처럼 열광에서 분노로 급전직하한 인물은 없었다. 이 회고록에서 보이는 그의 독재정권시절 투쟁모습과 여러 차례의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왔는가를 보다 보면 역시 김영삼이란 인물은 대단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찬탄을 하게 된다. 분명 그 또한 우리의 현대사가 기억하게될 중요 인물중의 한명이라는 것을 그의 회고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YS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나와 같은 젊은세대에게는 그의 중요한 면목을 볼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회고록의 한계도 만만치 않다. 어쩌면 김영삼 개인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70,80년대 민주화투쟁의 전모를 알고자 해서는 안된다. 이 책은 철저히 김영삼 개인의 활동위주로 그 시대를 조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칭 '의회주의자'인 것처럼 회고록에 나와있는 그 시대의 중요 정치적 사건들은 국회내에서 여야간, 야당의 각 정파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당시 재야, 학생 세력들은 어떠한 역할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했었는가는 이 책을 통해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회고록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곳곳에 내비치는 그의 지나친 자부심이다. 그는 회고록 속에서도 자신이 '유신을 끝장낸 장본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는 철저히 자신만이 정통이며 자신이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의 최전선에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고 자부한다. 그는 80년 '서울의 봄'이나 87년 6.29이후 자신을 중심으로 야권이 단결만 했다면 불행했던 역사의 반복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 시대를 좌우했던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 민중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런 그의 자기중심주의는 그와 대비되는 인물들, 특히 DJ에 대한 그의 평가에서도 쉽게 알 수있다. 회고록내내 보는 이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DJ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는 DJ에게 의원이나 씨라는 호칭을 거의 붙이지 앟고 있다. 그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DJ는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한 일이 거의 없고, 전혀 믿지 못할 정치꾼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인 '지역주의'의 책임을 모두 DJ에게 전가하고 있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인색할까? 상대편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 걸까? 오직 자기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음을 그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는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순수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다른 면에서 본다면 그는 순수한 만큼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의 정치현상을 재단하는 잣대는 회고록 내내 반복되듯이 '정의'와 '불의', '민주'와 '독재'등의 이분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이 독재정권시절에는 대단한 미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분법은 명확하지만 위험한 논리이다.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안타까운 점은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였으며 따라서 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달성된 이후에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 진단할 잣대를 그가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현재 그가 현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세계관은 '이것' 아니면 '저것'인데, 그가 생각하는 이것에는 항상 그가 판단하는 '민주'와 '정의'라는 것밖에 없으며, 더 큰 문제는 항상 그가 서 있는 자리가 민주의 자리이자 정의의 자리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전반을 담담하게, 솔직하게 기술했지만 끝내 솔직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아직까지 '평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온 나는, 쿠테타정권의 재등장을 막고 이 땅에 영원한 문민정부를 세우기 위해, 제3의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고 자신의 3당 합당 결심을 여전히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미화하고 있다. 당시 합당을 반대했던 이기택, 최형우 등의 목소리는 그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그가 민자당 대표로 있을 때 행했던 수많은 법안의 날치기통과, 공안정국, 1991년 강경대사망사건 등 일련의 고조된 정치적 긴장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그가 할애하고 있는 지면은 오직 내각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노태우와 자신간의 갈등뿐이다. 그는 자신이 솔직하게 살아왔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그는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옆으로 비켜서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나는 우리 국민에게 참다운 [인상깊은구절] 평소에 잘 아는 이들로부터 받은 신뢰가 가장 값진 것이며 진실된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