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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2010년도 발간된 반딧불이.. 이 책은 재미있는 사실들이 몇가지 존재한다. 알면알수록 흥미롭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반딧불이'는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소설 반딧불이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스무살의 날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소설속 주인공들은 메뉴얼대로 어쩌면, 길잃고 방황한듯한 모습들로 비춰지는 문장들이 우선 머릿속에 남는다. 사람들이 종종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초조해지는 단계처럼 성인이 되기전 우리의 모습들은 그저 초라하거나 어쩌면 흔하디 흔한 모습이다. 그래서 어쩌면 성인이 되기전 우리의 모습 반딧불이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반딧불이는 주위가 아직 밝아서 그저 물가의 검은 벌레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어두울수록 그 가치는 더욱 더 빛난다. 우선 소설 '반딧불이'는 우리가 알고있는 하루키의 대표소설 '노르웨이숲'의 기초가 되었던 소설이다. 반딧불이를 쓰고 하루키는 '노르웨이 숲'이라는 형태로 이야기가 점점뻗어나가 대장편의 소설인 '노르웨이 숲'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번째 '헛간을 태우다' 헛간을 태우다는 2018년 5월에 개봉예정인 '버닝'의 원작이다. 감독은 한국의 거장 이창동 감독님이다. 우선 필자는 이창동감독님의 엄청난 펜이다. 티저 영상을 보고 역시 이창동감독님이구나 하고 티저를 보고 매료가 되었다. 예고편만 봐도 원작을 얼마나 디테일하게 살렸는지 '헛간을 태우다'라는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 알것이다. 헛간을 태우다는 헛간을 태운다는 의미를 생각하고 읽는다면 이 작품은 조금 더 광범히 하게 볼 수 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남자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인다. 결핍과 충족의 소재를 하루키식소설에서는 간혹 볼수 있는데 '헛간을 태운다'는 좀 더 섬뜩하다. 흥미롭게도 하루키는 현실,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장치를 설치함으로써 결말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헛간=여자로 필자는 생각했는데 그이유는 헛간을 설명할때, 마치 감정을 가진 인간을 설명하듯 보여서였다. 무엇보다 헛간은 주인공과 아주 근처에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헛간을 태운다에서도, 소외된인물 즉 사라져가는 인물들을 설명한다. 그녀가 그렇고, 그녀가 없어진다해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을테니 말이다. 마치 필요없는 헛간과 같이 말이다. 이 소설은 어찌 설명하기보다는 영화로도 개봉되기에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또한 이창동 감독님 또한 원래 직업이 소설가 출신이다. 그래서 문장을 그림으로 옴길때 문장의 힘이 영화에서 다소 아쉽게 느껴지지만, 이창동감독님의 영화들은 대부분이 소설처럼 영상에서도 그 힘이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배가된다 할 수 있겠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비오는날의 여자#241 #242는 마치 회상을 하듯 소설이 이루어진다.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에서는 주인공의 기억을 특정 어떤 사건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지금의 장소와 비슷한 기시감을 통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을 다시 만남으로써 과거를 회상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4분이 지났을가하고 시계를 보았지만 실제로는 2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속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속에 우리의 왜곡이 존재한다 그 왜곡을 기억과 점목시켜 소설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좋았다. 이소설의 장면은 '노르웨이 숲'에서도 회상장면으로도 사용되었다. 이소설 또한 '노르웨이 숲'의 초석이 되는 셈이다. 춤추는 난쟁이 이 소설은 문득 읽으면서 파우스트가 생각났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음과 동시에 하나를 잃는... 그러나 그 하나를 잃는것은 나의 재능이 아닌 난쟁이로 오힌받게 되면서 결국엔 도망다니는 신세가 된다. 파우스트의 내용은 이와 다르지만, 어쩌면 하루키식 파우스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점점 내가 다른 인물로 오인받으면서 또한 점점 나로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내가 난쟁이처럼 주변인물에게 보이는것처럼 말이다. 세가지의 독일 환상 솔직히 이소설은 잘 모르겠다. 그치만 한가지 잔상이 있다면, 독일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무엇인가 짙으면서도 흐릿한 무엇인가? 말로 설명하긴 힘들다. 비오는날의 여자#241 #242 이 소설 또한 나에겐 어찌 설명하긴 어렵다. 그치만 위에 언급했듯이 장님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와 비슷한 구조를 취한다. 어느날 내게 찾아온 여인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또 현재로 돌아온다. 그는 어쩌면 지금 사라진 여인을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러 나간다. 어쩌면 과거의 죄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일 수 있지만 상실되지 않길 바라는 남자의 시점이 묻어난다. 이처럼 반딧불이의 공통점들은, 사라진자들에 대한 이야기,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상 사라지는 자신의모습등, 사라지고 남아있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4년후 '노르웨의 숲'이 발간된것 처럼 '상실'에 대해서 당시 하루키는 중요한 포커스로 바라보았던것 같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노르웨이 숲'의 원제는 '상실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라짐과 기억속에서 우리의 존재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현재를 살아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반딧불이에서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현재가 지금 초라한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고잇는 '지구'는 모두가 알지만, 빛을 뿜어낸다고 대부분 생각하진 않을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밤하늘을 본다면 별들 또한 지구와 같은 행성이다. 우리는 빛을 발산하는것을 모르고 있지만, 저멀리 수억광년 떨어진 곳에 외계생명체가 있다면 그들은 알것이다. '지구'는 빛나는 별이라는 것을 말이다. 위 처럼 반딧불이처럼 우리 청춘도 같다. 우리는 현재 벌레처럼, 번데기처럼 웅축되고 있지만, 희미해도 밝아도 우리는 언제나 빛나고 있다. 어두운 밤, 고난이 닥쳐와도 우리는 빛을 발휘할 것이다. 어둠속에서도 말이다. 희미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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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은 후이고, 대부분 각각의 감동을 깊게 받고 기억에 남겨둔 터라 미처 못 읽었던 초기 작품을 이렇게 읽게 되면 예상하지 못했던 기분이 든다. 나 혼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 또는 이미 익숙해져 있는 소설 속 분위기라든가 작가의 표현 방식에서 난데없이 오래 전에 책을 읽고 있는 나와 마주친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도 나도 젊어진 듯한, 그래서 더 싱숭생숭하면서 설레는 듯한 느낌? 유아인과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라는 영화를 볼 생각은 없다. 이 소설로 어떻게 그 영화를 만들어 냈는지 약간 궁금하기는 하지만 굳이 보고 비교를 하고 싶지는 않다. 19세 이하 관람불가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는 것도 큰 이유이고. 그냥 책을 읽으면서 짐작만 해 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은 각각 짧았지만 다 좋았다. 이제는 산문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이 작가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미 읽은 이 작가의 소설들을, 예전에 별로였다고 했던 소설들을 다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청춘이지만 기억하는 청춘이다. 아련한 느낌이 서글픈 느낌보다 더 강한 것도 맞지만 그래도 모든 게 아쉬웠던 시절이다. 온통 모자라는 것 투성이였던 시절. 가진 것도 없고,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만한 것도 없고, 만남은 쓰라리고 헤어짐은 더 아팠던 시절. 작가처럼 어떤 젊은이는 글을 썼을 것이고, 나 같은 젊은이들은 취직을 하고 돈을 벌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무수한 상실로 길을 잃기도 했겠지. 너나 할 것없이. 한 편 한 편 그런 기억을 살려 놓고 소설은 내 마음을 넘어갔다. 반딧불이만큼도 빛을 내지 못했던 날들이었으리라. 하루키 소설에 한발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라 혼자서 기분 좋아하고 있다. 어찌 이리도 애틋해지는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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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무라카미하루키 #반딧불이
- 반딧불이의 빛은 실제로는 그리 선명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저 그렇게 믿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때 나를 둘러싸고 있던 어둠이 너무나 깊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나는 잘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반딧불이를 본 게 언제였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반딧불이>
- 내 몸의 존재 자체를 하나의 관념으로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동시 존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하는 내가 있고, 그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는 내가 있다. 시간은 매우 정밀하게 폴리리듬을 새기고 있다. <헛간을 태우다>
- 넌 몇번이고 이길 수가 있어. 그러나 지는건 단 한 번 이야. 네가 한 번 지면 모든 것은 끝난다. 그리고 넌 언젠가 반드시 진다. 그걸로 끝이야. 알겠어? 나는 그걸 계속 기다릴 거야. <춤추는 난쟁이>
(단편집이라 이야기의 긴박감은 덜 했지만, 읽다 눈이 한번 더 가는 문장들을 다시 한번 더 보는 여유로움과 즐거움이 있었다. 반딧불이로 헛간을 태우는 춤추는 난쟁이 이야기(?)는 아니지만 세이야기가 여운이 많이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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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어렵다 그러나 집중해서 작품을 이해하면 너무나 미치도록 재미있다. 어려움을 깨우쳤을때 가장 재미있는 작가가 윌리엄 포크너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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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때문에 구입했어요 정작 영화는 이상하게 보기가 싫어져서 안 봤어요 일단 소설이 너무 좋아서 그 분위기를 깰 거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아인을 싫어하기도 하는 터라 ㅎㅎ 아무튼 단편소설인데 여운이 강합니다. 강렬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자꾸 머릿속에 떠돌게 되는 문장들이랄까 뭐 이런 캐릭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래, 현실에도 좀 이상한 사람들이 있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그 여자 주인공은 하루키가 잘 아는 지인일 거 같아요 실제 존재하는 실존 인물 |
|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거장의 이름값은 참 허무했다. 영화 <버닝>의 원작이라하여 구입했는데...손에 잡히는 건 없고 뭔가 실체없는 이미지들만 공중을 떠다니는듯 했다. 그냥 나의 지적공간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싶다. 그래도 나같은 사람도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하루키의 작품이 아닌가. 요근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구입했는데 다실패했다. 나랑 안맞는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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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반딧불이입니다. 엄청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어쩐지 책이 나올 때마다 자꾸만 사고 있는 저는 뭘까요..ㅎㅎ 무라카미의 팬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집에 그의 책은 계속 쌓여가네요. 유아인 주연의 버닝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들어는 봤는데요. 그 소설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 인건 처음 알았어요. 표제작 반딧불이 외에도 5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어요. 모두들 잔잔하고 차분한 이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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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내용이 스포일러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덕분에 무라카미의 단편소설집 "반딧불이"를 알게 되었다. 보라색의 예쁜 표지는 책 읽기 전부터 기분 좋았다. 가장 먼저 "헛간을 태우다"부터 펼쳤다. 이창동 감독의 예술성은 말 안해도 전세계가 알아주고 있으니 설명 안해도 되겠지만, 그런 감독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작품이라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처음엔 편안하게 읽어 내려갔다. 팬터마임을 배운다는 여자, 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소설가 "나" 그리고 그 여자의 남자친구. 무엇보다 이해가 안되는 건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가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여자. 더 이해가 안되는 건 그 관계를 용인하고 심지어 차로 여자를 소설가 집에 데려다줄뿐 아니라 둘이 함께 소설가 집에 놀러 가기도 하는 그의 개방된 자세.
갑자기 소설가 집에 둘이 놀러와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여자가 잠든 동안 뜬금없이 헛간 애기를 하고, 그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겨 헛간을 찾으러 다니는 소설가. 그리고 그 후 연락도 없이 사라진 여자의 존재. 뭐야 이거. 스토리가 별거 없잖아라고 생각했지만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소설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의 헛간을 태운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왜 꼭 소설가 혹은 여자를 죽이겠다는 말처럼 들리지? 성급히 맨 뒷장을 넘겨보니 여자가 증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심증을 굳히게 하네. 그래서 나는 철저히 "싸이코패스적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오로지 나만의 시선으로. 헛간을 태운다는 건 은유적인 표현 같다. 남들 눈에 띄지 않아 태워도 상관없는 헛간을 찾아다닌다는 말이 꼭 내면이 공허하고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없어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을 죽인다는 말 같다. 실제로 소설가가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함" 때문이라고 했다. 게으름 때문에 벌이도 신통치 않고 깊은 생각없이 하루를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는 여자에게서 소설가는 오히려 위안과 편안함을 얻고 있었다. 실제 세계에 존재할까 싶은 세상살이의 고단함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여자. 게다가 그 여자가 배우는 건 마임이다. 없는 세계를 있는 것처럼 그려보이는 것이 마임이라는 면에서,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살아가는 여자의 삶을 역설적으로 말하는 듯 하다. 그러고보니 친구가 없다. 유일한 친구는 소설가. 남자친구는 여자의 그런 공허한 면을 탐색한 듯 하다. 그래서 태울 헛간(죽일 대상)으로 지정한다. 그런데 자꾸 소설가를 찾아간다. 심지어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소설가가 마중을 나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친구 같은데 깊은 사이인지 알아봐야겠다. 여자가 사라졌을 경우 경찰에 신고하는 등의 귀찮은 일이 발생하면 안되니까. 사실 남자친구는 소설가에게 사라져도 괜찮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헛간을 태운다고 말했다. 즉, 소설가에게 여자는 어떻게 되도 좋을 아무렇지 않은 존재인지 알아야겠다. 남자친구는 소설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의 헛간을 태운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태워진 헛간은 없었다. ( 끝까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소설가는 인기없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지? 아니면 우리 모두가 주변에 살인마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살아가는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인 걸까. 하긴, 그걸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 만남 이후 우연히 마주친 남자친구와 소설가. 그리고 남자친구로부터 듣게 되는 이야기들. 여자에게는 친구가 전혀 없으며, 한 달 넘게 여행할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조차 없는데 사라져서 연락이 안된다. 그 때서야 여자의 부존을 생각하고 찾는 소설가. 그러나 여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이것이 남자친구가 소설가에게 주는 강력한 힌트라고 생각했다. 남자친구는 자신이 헛간을 태웠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소설가를 보며 안도를 하거나 속으로 승리의 쾌재를 불렀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걸 확인하고 싶어 여자의 실종을 이야기한 걸 수도 있다. 드디어 모든 이야기의 퍼즐을 맞추는 지점이 나왔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 실종을 신고할 이 없고. 경제적으로 빈약할 만큼 사회에서의 존재도 미비한 여자. 사는데 의미가 없으니 죽음을 기다리는 여자. 그래서 내가 죽여도 되는 여자. 태워도 되는 헛간. 넌지시 이런 사실들을 여자의 실종을 통해 알리지만 못 알아듣는 소설가. 그리고 집 주변 헛간들을 의미없이 탐색하는 소설가. 왜 여자는 마임을 배우고 남자는 소설가이며 여자의 남자친구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걸까. 다들 현실 도피적이다. 마임은 없는 현실을 몸으로 있는 듯 그려내며 소설가도 있을 순 있지만 실제로는 없는 현실을 글로 그려낸다. 남자친구는 마리화나를 피우며 상상의 세계를 실제처럼 본다. 다들 현실 너머를 탐닉한다. 여자는 왜 아프리카를 다녀왔을까. 우리가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타는 태양이다. 그리고 헛간을 태울 때도 불이 떠오른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태양 속에서 하루살이처럼 의미없이 산화하는 존재들. 이 모든 것이 이미지가 되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 소설들을 강렬하게 읽었지만 읽고나서 실망감과 허무함을 더했었는데, 이번 단편 소설은 다양한 의미들을 멋진 분위기로 한데 엮어 보여줘서 정말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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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의 만물은 메타포'다. 물론 <헛간을 태우다> 역시 탁월하다. 하루키가 이 작품을 쓴 시기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발표 전 3년간의 공백기라는 점에 포커스를 두고 접근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고,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사유들, 의식과 무의식이 내린 선택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선택의 시간과 선택의 뒤를 따라 조여오는 숙명의 무게를 발견할 수 있다. 15페이지 남짓 되는 짧은 이 작품으로 여러 형태로 변주될만한 이야기를 해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가의 팬이라는 사실이 스스로 자랑스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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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을 태우다 리뷰
이 책의 제목은 반딧불이이다 반딧불이가 맞다
그러나 나는 "반딧불이" 다음 챕터인 "헛간을 태우다" 라는 단편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유아인 전종서 주연의 버닝이라는 영화를 본 이후 그 영화의 원작이 이 책라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영화의 특유의 시각적 이미지는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책은 그러한 현실성을 가로막는 특유의 성질을 가진다
"점점 내 주변에서 현실감이 흡수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묘한 기분이다. 옛날에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밀실에 가두어 조금씩 공기를 빼는 형별을 누군가가 제안했다고 한다 결국 어떤 형벌이 처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주변의 현실감이 흡수되는 작중 주인공이 느꼈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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