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도킨스의 책이 나올 때마다 왜 이리 욕을 먹을까 하면서 책을 사본다. 여든에 이른 노학자는 여전히 같은 얘기를 하고 있고, 그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은 댓글에 비난을 쏟아낸다. 물론 책을 읽지 않고 써대는 근거 없는 비난일 테지만. 21세기를 사는 인간에게 종교와 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도킨스의 의견은 아직도 타당하다. 모순과 고집, 사람에 대한 미움(과 사랑)이 가득한 여러 종교의 성서들은 재미로만 읽는게 인류의 행복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과학적 방법론으로 종교에 성서에 접근하는 도킨스의 방식은 이제 좀 지루하긴 하다. 어차피 팬덤의 세계에 살고 있는 종교인들에게 그의 방식은 의미가 없을 텐데 말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욕 말고 뭘 더 하겠는가. 이 점을 도킨스 자신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오히려 도킨스는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을 보면서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이게 그가 비슷한 주제로 책을 여러 권 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공생관계다. 그래도 이 책은 아주 유익하고 유용한 책이다. 도킨스의 시니컬한 유머와 위트 덕분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또, 수많은 인문학적, 과학적 상식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써먹을 교양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에게, 교회에 다니면 연애를 할 수 있으니 한번 나오라고 하는(대신 헌금은 두둑이 가져오라고 하는) 친구에게, 점심 먹을 때마다 믿음의 기쁨을 전도하는 직장 상사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를 위해. 이 책의 구절구절을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
종교가 특히 문제가 되는 요즘, 아주 시기적절하게 출간된 책.
집단 전체 또는 국가 전체가 종교 때문에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은 종교 자체가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두 나라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나라는 야훼나 알라, 또는 바이킹의 호전적인 신들처럼 전쟁을 좋아하는 신을 섬긴다. 이런 신을 섬기는 성직자들은 전장에서 용기 있게 싸우는 것이 미덕이라고 설교한다. 아마 순교한 전사는 순교자들을 위한 특별한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가르칠 것이다. (…) 또 다른 나라는 평화를 사랑하는 신 또는 신들을 섬긴다. 그 신을 섬기는 성직자들은 전쟁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사한 사람은 천국에 가서 행복을 누린다고 설교하지 않는다. 어쩌면 어떤 종류의 천국도 가르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조건이 같다면 어느 나라가 더 용감한 전사들을 거느리게 될까? 어느 나라가 상대 나라를 정복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 결과, 두 종교 중 어느 것이 더 널리 퍼질까? 답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_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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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무릎을 쳤다. 종교를 내세워 나는 바란 적도 요구한 적도 없는 구원을 들이미는 사람들. 그 불유쾌함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몰랐는데 리처드 도킨스가 간단하고 명쾌하게 제시해주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같은 책도 유명한 건 알았지만 읽을 동력이 나지 않았는데, 사회가 이러다하 보니 '신 만들어진 위험'이 눈에 띄자마자 사게 되었다. 하아.. 내가 책을 읽을 건 교회 덕인 셈이다. 만들어진 신보다 훨씬 분량이 적다. 초반에 익숙한 성경 내용을 오류라고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어렵지 않게 읽겠다 싶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니 너무 놀랐다. 예수를 베들레헴 태생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동정녀 마리아는 젊은 여인과 동정녀의 의미가 같이 있는 단어가 번역을 거치다 보니 동정녀가 남게 되었다는 것 등이 흥미로웠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것들을 신화라고 하면서, 신화와 사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종교의 이야기가 가진 상징성 등을 제쳐놓고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로서 매우 타당한 말씀이다. 책의 2부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특기 진화론을 앞세운다. 가젤과 치타 등의 동물이 등장하면서 이 신비롭고 복잡하고 독특한 진화 동물의 세계를 '신이 만들었다'는 단순한 한 문장으로 뭉갤 수 없고 뭉개서도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아직 과학의 모든 것이 다 밝혀지지 않았고, 때론 오류를 수정해가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과학을 진지하게 믿고 탐구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전 인류가 신을 단념하기엔 불가능하겠지만, 우선 나는 그 일환으로 과학책을 진지하게 읽으며 과학적 안목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종교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을 호도할 수 있는 유사과학, 가짜뉴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과학지식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다음 책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을 정독해야지. |
리처드 도킨스의 신 , 만들어진 위험 리뷰입니다. 다른 리뷰에 다들 원제 이야기가 있던데, 진짜 제목 번역 너무 별로입니다. 원제 그대로 가져왔어도 됐었을텐데, 이전 '만들어진 신'과 비슷하게 가려고 원제를 이렇게 번역한건가 싶습니다. outgrowing god이라는 단어에서 대체 어디서 '위험'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는 지 모를... 무신론자들에겐 바이블 같은 책 '만들어진 신'을 외우다시피 읽고다녔었는데, 리처드 도킨스가 또 다시 정중하게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책을 내줘서 너무 좋네요. 만들어진 신에서는 그리스도교인들이나 그리스도교가 믿는 성경을 전반적으로 반박하고 모순적인 행동을 비판하는 책이었다면, Outgrowing god에서는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반박하거든요. 좀 더 자세하게 뜯어보는 느낌이라 만들어진 신을 읽고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어렸을 적에 집안 어른 손에 억지로 이끌려 교회에가서 찬송가를 불렀던 기억이 있으시면, 이 책을 꼭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스도교를 향한 맹목적인 비난이 담긴 책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말해주고 복음서가 왜 거짓이고 소설에 불과한지 매우 논리적으로 비판합니다. 반쯤 돌아버린 *독들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걸까? 나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악행이라는 건가?" 나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의문은 항상 내 머릿속에 있었다.
우리에겐 모두 선택권이 있다. 믿는 것도 자유, 믿지 않는 것도 자유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강요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녀들의 손을 잡고 종교적인 세습을 강요하는 건 종교를 떠나 과연 타당한 일일까?
그런 의미에서 도킨스의 성경에 대한 해부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특히 십계명을 하나씩 분석해나가는 부분이 대단히 압권이었다. 우주 전체를 주관한다던 그 대단한 신이 너무나도 편협해보였다. 왜 신은 항상 무언가 대가를 원하는 걸까? 그 대가가 실은 신이 아닌, 인간이 원하는 걸 신의 이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도킨스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통찰을 통해 생각의 영혁이 확장됨을 느꼈다. |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을 접하게 되었다. 제목만 들어도 필이 임펙트 있게 다가왔다. 평소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주제가 아니던가. 그것도 이기적 유전자라는 걸작을 집필한 리처드 도킨스의 시선으로 바라본 신과 관련된 내용이라니. 어느 정도 내용이 예상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고 바로 구입하여 인간이 만들어낸 신을 접하게 되었다. 성경과 꾸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놀랍게도 작가는 10대까지만 해도 모태신앙으로서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교육을 받은 사람이 그 굴레를 탈피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데 저자는 그것을 넘어서서 본인이 받은 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 결과 훨씬 디테일하고 신랄한 비판이 가능하게 되었다. 성경의 문구는 물론, 배경 역사와 다른 문명의 기록까지 대조하여 잘잘못을 따지니 그 신뢰성이 몇 갑절 올라가는 듯 하다. 상대적으로 꾸란과 불경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데 전문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분하여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현시대 종교를 비판하고 저자의 전문 분야인 생물의 진화 과정과 유전자의 발전과정을 소개하면서 완전히 다른 풍경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네셔널 지오그래피나 디스커버리 채널의 한 장면을 글로 묘사한 것처럼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는 설명이 합리적인지 대자연 자체가 스스로의 선택과 여러가지 사건의 연속으로 이렇게 발전했을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실제 설계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상상의 산물은 아닐 것이라는 뜨끔한 충고도 곁들여서 말이다. 전반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 책이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성경을 좀 더 디테일하게 비판하고 다른 종교들도 모순점과 역사적으로 그렇게 발전하고 연명할 수 밖에 없었던 과정과 그 당시 사정들, 그리고 역사이전과 고대, 중세, 근대 사회에서 종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등. 좀 더 전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구성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불필요한 종교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인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의 관점에서 종교가 가지는 위험과 진실 일찍이 종교를 잘 모를때 아니 아직도 모르지만 창작된 신화가 어떻게 종교가 되었는가 믿음과 잘 만들어진 이야기 그리고 추종자들... 성경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여러 종파간 이해를 달리 하고 신자들의 생각을 지배하면서 갈등과 반목 그리고 전쟁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수 천년을 이어온 종교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의 요약본이라고 할수 있을 것 같다. 유신론자 vs 무신론자의 대립이 아니라 원래 신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는 그것이 필요한 인간들이 만들었고 신화는 신화일뿐 역사가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다들 동의하지 않지만 건드릴 수 없는 불문율 같은 것들이 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종교이고 리처드 도킨스는 그것을 과학의 힘으로 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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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을 믿는 이유, (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김명주 옮김)
너무나 비과학적인 종교인들에게 질색하며 진화론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책 중 또 하나의 책이다. 그의 책을 국내 출간이 되면 다 읽었다. 인류사에 수많은 신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악착같이 설명하는 글을 읽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에도 반발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것은 저자의 논리가 탄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수많은 종교인의 허황한 주장에 아연실색한 나만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세상에는 과학은 만능이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과학적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적어도 만들어진 신을 세상 모든 일의 중심에 두고 허황한 주장을 하는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다. 백신을 맞지 말라는 목사의 설교와 거기에 환호하는 신도들의 모습은 개신교인들이 미신이고 우상이라며 질색을 하는 무속인의 굿을 보는 것과 진배없다. 무속인들의 굿을 우리들은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하기도 하지만 미국의 목사와 그 추종자들을 미국의 문화라고 옹호하기에는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다. 합리적인 세상을 좀 먹는 종교인들에 대한 비판은 그대로 수용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냐는 논란이 있다. 과학이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도덕률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과학기술은 그 자체가 가치중립적이라고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기술이 무슨 도덕이 있느냐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의해 세상이 망가지는 구체적인 예로 우리는 무기 개발을 든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사력을 다해 협조를 하고는 폭탄 제조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주장은 위협적이다. 과학이 발전하며 사람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육체적으로 부담을 줄이는 많은 편익을 보기도 하지만 가치중립의 태도로 일관하여 비극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일에 눈을 감는 것은 옳지 않다.
세상을 사는 것에는 규칙이 필요하다. 규칙은 가치를 담고 있다. 중세 암흑시대의 가치는 신이 중심이었다. 신을 모시는 것은 성직이고 권력이었다. 신의 가치체계를 인간세상에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이상이었다. 규칙은 신을 모신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운영되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중세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신의 명령이 재현되는 사회에서 신의 사제들은 부패한 권력으로 대중을 억압하고 호도하고 사익을 추구했다. 그때 옳다고 생각한 가치체계가 오늘은 억압된 암흑시대라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관이 바뀐 때문이다. 절대자인 신의 명령이 시대를 따라 가치가 바뀐 것이다. 왜 그럴까?
신이 내린 명령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신을 만든(또는 인식한) 사람들에 의해서다. 말씀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만든 자(인식한 자)가 판단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불경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모습은 믿는 우리들의 거울에 비친 상을 보는 것이다. 불신지옥에 빠뜨리는 하나님의 상, 면죄부 판매를 정당화하는 하나님의 상, 가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상, 목사의 부패를 방치하시는 하나님의 상 등등 이 상은 하나님의 진상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허상의 하나님이다.
과학이 아무리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고 해도, 과학을 믿으면 상식과 합리가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든다고 해도 인간의 한계는 주어진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비극을 조장한다. 그런 비극을 해결하는 일은 인간들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더욱 끔찍해지고 인간은 더욱 잔인해지는 양상이다. 서로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간극이 인간들 사이를 벌린다. 인간이 만든 위험은 만든 사람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만든 위험을 우리가 해결할 수 없으니 생존에 유리한 이기적인 모든 행위가 합리화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받은 도전은 그가 준 결론이 전체 사회의 이익을 위한 희생이 존재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희생이 전체 사회의 생존에 필요했다는 설명은 구차하다. 내가 죽고 없는데, 사회의 생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다.
이제 내가 신을 믿는 이유를 고백하여야 하겠다. 위험을 만들고 위험을 해결하지도 못하는 인간을 믿는 것은 쪽팔려서 못하겠다. 만들어진 신이건 존재했던 신을 인식한 것이건 나는 인간의 선함을 장려하는 신을 믿겠다. 복수와 질투로 잔인함을 드러내지 마시라고 대들겠다. 그러면서도 과학이 설명하는 미신을 경청하겠다. 창조주가 과학의 발전을 허락해서 과학이 발전했다. 발전한 과학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도 신이 허락한 일이다. 세상이 끝나는 그날 신의 뜻은 알게 되겠지만 그날까지는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선해지고 우리가 서로 속을 트고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을 신에게 요청할 생각이다. 나의 기도문 마지막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
인류가 지구에 나타나고 문명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각종 재해와 역병, 맹수의 존재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의지할곳을 찾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신이라는 존재이다. 보이지 않는 신이란 존재, 그보다는 그런 신을 믿는 특정인간집단으로 인해 인류는 신의 보살핌보다 고통을 더 받은것이 역사로 남아있고, 지금역시 진행중이다. 우리는 신으로 만들어진 위험속에 살아가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