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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기술철학에 대해 익숙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철학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철학이란 아주 오래된 분야이며, 개인적으로 공부한 바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과 수학, 과학, 천문학이 모두 하나의 영역으로 다루어졌다고 기억합니다. 기술철학의 시작은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왜 기술과 철학이 서로 연관되어야 하며 기술도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첫 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굳이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두 번의 원자폭탄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기술발전이 철학과 윤리, 사상과 연관되어야 함은 다들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 기술철학은 철학이라는 분야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에 비해서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책의 2장에서는 기술철학이 최근까지 어떻게 발전해왔고 구체적인 철학자들의 이론이 정립되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 자크 엘륄, 한스 요나스, 칼 미첨, 랭던 위너, 앤드루 핀버그, 빌렘 반더버그의 이론들을 통해서 기술철학의 시작부터 경험으로의 전환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기술철학은 경제학과 생태학을 넘어 트랜스 휴머니즘과 포스트 휴머니즘의 분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술을 만드는지, 기술이 사람을 만드는지 근원적인 질문에 관심이 있다면 2장의 내용을 심도있게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기술철학을 논의하면서 최신 기술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이론적인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제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주요 최신 기술들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으며 단순히 기술적인 관점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이며 사상적인 측면에 대한 언급을 놓치지 않습니다. 원자력발전, 생명공학, 나노기술, 빅데이터 기술을 대표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각각의 기술이 현재 어떤 수준까지 올라와 있으며 철학적으로 우려되는 이슈가 무엇이 있는지 설명합니다. 책의 종장에서는 바르고 좋은 미래를 위해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인간이 기술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도구로서 인간이 활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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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책 부제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기술철학의 제안들'이 이 책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문장 같다. 그리고, 그 취지와 영역이 참 마음에 든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다'는 것, 그리고 그 영역이 일반인이 잘 모르는 '기술철학과 관련한 제안'이라는 것. 아직 읽기 이전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인정'되어 그 궁금증에 바로 손에서 펼쳐질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 뒷면에 '사람이 기술을 만드는가 / 기술이 사람을 만드는가' 라는 질문이 콕 박혀 있다. 당연히 사람이 기술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그 기술발전의 속도도 빠르고 그 기술발전에 의한 영향력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런 기술에 의해 마치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러니까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기술발전의 정도에 따라 거의 지배되듯이 좌우되는 정도에 이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바야흐로 '기술이 사람은 만드는 시대'라고 표현할 정도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기술자들이 스스로 기술철학을 습득하고 고민하고 그 철학에 맞게 기술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듯하다. 바로 기술자들 스스로의 자기통제, 사명선언 비슷한 것일 테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최정점을 지나고 있는 현대 기술사회에서 모든 기술의 발전은 대부분 거대자본에 의해 추진되어지고 있지 않을까? 연구자, 과학자, 엔지니어, 공학자 이들이 다 대부분 거대테크기업의 연구소에 소속된 '직원'의 신분이지 않을까. 그런 지점에서 과학자, 공학자들의 기술철학은 나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이다.
난, 정치에 의해 통제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과거에 비해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에 비해 점점 열세의 방향으로 위치지워지고 있지만, 시민의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의 전횡과 일방적인 질주를 견제하고 통제하지 못한다면, 거칠게 말해 지금처럼 어찌보면 공생하거나 방임하는 수준으로 놔둔다면, 결국은 정치도 시민도 자유도 행복도 거대 테크기업의 경영진에게 다 지배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울한 전망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정치에 의한 법과 제도를 통한 강력한 통제. 난 이걸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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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I, 빅데이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으며, 관련된 학과가 신설되는 추세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학생들은 2학기에 AI와 관련된 과목을 진로 선택 과목으로서 수강할 수도 있다. 이미 원자력공학, 생명공학, 나노과학을 학과 단위로 다루는 대학교들도 많다. 현재 교육체계가 이렇듯, 4차 산업혁명은 그저 막연히 바라보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될 정도로 우리의 삶 가까이에 조용히 자리잡았다. 그래서 앞서 말한 주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먼 듯, 멀지 않은 듯한 미래를 맞이해보고자 책을 읽게 되었다.
우선, 필자는 신약 개발 연구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얘기하려 한다.
책 속의 적정기술에 대한 내용이다. 고등학교 1학년 미술 시간에 적정기술을 배우고, 이를 활용한 물건을 디자인해봤던 수업이 생각난다. 이 때부터 신약 개발 목표에 대한 고민이 생겼던 것 같다. 신약이 난치병에 대항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제제라는 것 때문에 매료됐으나, 치료제의 가격과 개발에 투자되는 자원을 보고, 내가 과연 신약 개발을 통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매번 의문이 들었다. 적어도 현재의 신약은 인용 문구에 나와있는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 10%'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이 제시한 '기술철학'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기술철학을 다른 말로 치환하면 책의 표현처럼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맞겠다. 그렇지만, 기술 개발의 목표에 차질이 생겨 다시 마음을 다잡고자 할 때는 긁어 부스럼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티끌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철학적으로 접근하면, 신약이 난치병을 치료할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나는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전 인류를 통틀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했어야 했다. 더 나아가 신약 개발에 쓰이는 수많은 생명공학 기술이 갖는 의의에 대해 생각해봐야 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진로삼은 분야에 대해 기술철학으로 접근하니, 지금보다도 더 책임감을 가지고 올바른 생명윤리 관점을 지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기술철학이 개발에 있어서 좋은 평은 듣지 못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해 혼란한 시대에 가만히 멈춰 방향성을 찾게 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공학자들, 더 나아가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필자를 비롯해 공학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부디 이 책을 통해 기술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느낀 주관적인 견해를 정리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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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기차가 이슈다. 특히 자율주행, 빅데이터, 인공지능에 관해 이목을 끌고 있다. 아직 완벽한 자율주행차가 나오진 않았지만 앞으로 무인 자율주행차가 돌아다니는 시대가 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충분히 다가올 세상이다. 수많은 분야 그리고 기존의 관련 업종들의 이해타산의 충돌이 혼란스럽게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운송수단에 대한 개념 내지 관념도 많이 바뀔 듯하다. 이 책은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생각해보는 책이다. 과거에 비하면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현재지만, 미래에는 또 현재와 어떻게 바뀔지 알수 없을 것이다. 이 변화 속도에 인간의 의식수준이나 문화, 사회, 경제, 정치, 법이 따라가지 못하면 혼란과 갈등을 야기시킬 것이다. "기술철학은 현대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나 기술 사회에서 인간과 기술의 관계, 그리고 기술로 인해 생기는 변화에 관해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야다. ... 미래를 향한 철학적 탐구라는 점도 기술철학의 중요한 특징이다."(p7) 운송수단의 역사를 보면, 오래전부터 이용했던 말의 개체수와 자동차 댓수를 비교해보면 1910년 경 자동차가 등장하고 10여 년 만에 말보다 자동차가 더 많아졌다. 그리고 말에서 자동차로 완전히 바뀌는 데는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급격한 변화가 자율주행차의 등장에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다시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말과 자동차가 뒤섞인 도로에서 원활한 흐름을 기대할 수 없듯이, 사람이 모는 자동차와 자율주행차가 함께 다니는 것은 전혀 효율적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말을 타고 싶으면 승마장에 가서 말을 타듯이, 곧 다가올 미래에는 운전하고 싶은 이들은 자동차 체험장이나 자동차 경주장 같은 곳에 가야 될지도 모른다. "기술은 환경을 바꾼다."(p170) 말에서 자동차로 바뀔때 많은 분야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자율주행차의 출현으로 도로 환경이나 운송수단의 문화가 많이 변할 것이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고대 역사를 구분하는 것처럼 이런 급격한 기술 변화가 우리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전면적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변화 이후' 상태를 예측하는 데에만 몰두하는데, 기술적 '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자동차 등장 후 말과 섞여서 다니던 시절의 혼란을 감안하여 자가운전차와 자율주행차의 혼란에 대한 대비에 지속적으로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이 책의 구성은 1장에서는 기술과 철학의 만남, 기술철학에 대해 다룬다. 2장에서는 여러 철학자들의 기술철학 이론들을, 3장에서는 대표적인 현대 기술들을 살펴본다. 원자력, 생명공학, 나노기술,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최첨단 기술들의 철학적 함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4장은 대안기술과 적정기술을 모색하는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제안이다. 철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기술철학이 왠지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지만, 기술 하나를 정해놓고 다방면으로 물음을 가지고 통찰과 이해를 하면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 하나를 가지고 고려해야 할 문제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미래 사회에 대한 예측보다는 이러한 기술들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인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철학과 거리가 먼 이공계 전공자도 이렇게 기술철학을 접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톱픽, (마지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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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술과 철학에 관하여 설명해 놓은 담론입니다. 기술이 철학보다는 더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철학자들이 기술철학을 연구하지 않았던 것은 기술이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철학자들이 기술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생각한 것은 최근 급격하게 발전한 제4차 산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그런 점에서 ‘현대 기술철학’ 이나 ‘공학기술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4차 산업의 상징적인 사건이 2016년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의 대국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인간이 기술을 통제하거나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특히 ‘알파고가 보여 주는 인공지능의 특징은 개발자조차 그 판단 근거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161p)’라고 말합니다. 결국, 제4차 산업의 상징인 인공지능의 기술은 철학적인 문제를 촉발시킨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철학적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 가능했던 것인데, 정작 그 산물에 대해서는 신화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22p)’고 우려스러운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기술발전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생긴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기술의 발전으로 끝없이 편리해지거나 좋아질 것이라는 점에 의문이 생겼음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서, 기술의 발전이 정말 좋은 것인지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지에 대한 확신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공학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기술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야만 되겠지만, 결국, 기술의 발전과 진보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게 추구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에 철학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의 그늘이 있음과 어떻게 통제하고 해결해 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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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는 늦어도 2025년까지 하늘을 나는 택시 운송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했다. 도서관 책장보다 키가 작은 7살짜리 꼬마가 즐겨보던 책에는 20년 후에 알아서 운전하는 차에 탑승하여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20년이 훌쩍 지났고 이제 곧 완전 자율 주행차와 하늘 택시가 우리 주변을 누비고 다닐 것이다. 실로 놀라운 기술의 발전이다.
적어도 10년 안에는 사람의 조작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 자율 주행차가 등장할 것이다. 모든 차는 인공지능에 의해 제어되고 사람은 탑승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어보자. 자율주행차가 인명사고를 낸다면 그것은 탑승하고 있는 사람의 책임일까, 자동차의 책임일까? 갑작스레 튀어나온 보행자를 피하면 탑승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자율주행차는 누구를 구할 것인가? 5년 전만 해도 고민할 필요 없던 심오한 주제들은 어느덧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우리의 앞가림을 하는 것도 모자라 기계의 앞가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실로 놀라운 기술 발전의 아이러니일까.
<미래와 만날 준비>는 인간의 문화 발전 속도, 철학적 사유의 고도화 속도,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인간의 수용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에 대한 담론을 모은 책이다. 둘을 한데 모으면 다소 어색한 '기술'과 '철학'을 융합하여 기술철학이라는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다. 10년 전이었다면 이토록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레이 커즈와일과 같은 인물이 '특이점'과 같은 이야기를 꺼내며 인류가 비로소 영생을 맞이한다는 심각한 이야기는 이미 존재했었다. 적어도 인공지능이 신에 맞닿는 위치에 오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논하지는 않았었다. 자율주행차가 기대수명이 30년은 더 긴 어린아이를 받느냐 80세 노인을 받느냐 하는 논쟁은 없었다. 문명의 이기를 극치의 경지에 이르게 만든 기술 발전은 그만큼의 논쟁거리를 무수히 쏟아냈다. 우리는 이제 기술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기술이 만드는 다양한 문제와도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책은 어느덧 맹목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며 기술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를 권한다. 이제 기술은 마냥 우리에게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도구'가 아니다. 독자적인 생명력을 지닌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기술과 철학. 같은 프레임에 담기에는 참으로 생경한 단어들이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모조리 빼앗아버린, 지금으로서는 조악한 톱니바퀴 장치에 불과한 기계를 불태우고 파괴했던 이들이 있다. 러다이트 운동이라 불리는 기계 파괴 운동은 기술과 철학이 만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류 역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우직한 노예가 진짜 인간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산업 혁명기 이후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이에 많은 인간들이 부품으로 전락했다. 기계 장치는 자본가들이 더욱더 많은 공산품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인간들 또한 기계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치 기계처럼 취급받게 되었다. 인류의 대량 부품화.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술을 무척이나 혐오하고 경계했다.
그럼에도 기술의 발전이 없었다면 인류는 현대와 같은 고도화된 문명사회를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계 장치의 발전뿐만 아니라, 건물을 800m 높이로 쌓을 수 있는 공학, 수십 톤의 쇳덩어리를 뜨거운 화염으로 밀어올려 마침내 달에 닿게 만든 공학, 작게는 달걀을 더 이상 깨지지 않게 도와주는 우둘투둘한 종이 케이스 속 기술까지 기술에 미친 사람들이 만든 세상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이롭다. 어떠한 필요가 있을 때 사람들은 움직였다.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켰고, 완성된 하나하나의 작은 기술들은 짝을 맞춰 보다 큰 발전으로 이어졌다. 많은 것이 그러하듯 지수함수의 꼴을 한 기술발전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몸집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이제 기술이 어떠한 목적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위한 기술이 아닌 기술을 위한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인공지능은 과연 인류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알파고와 같은 초고속의 연산 체계가 인류에게 선사하는 '유희'는 무엇일까? 딥마인드의 수많은 공학자들은 이세돌을 이기기 위해 알파고를 만든 것뿐일까? 목적성을 잃은 행위는 공중에 둥둥 표류한다. 문제는 현재의 기술이 이미 너무나 고도화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기술을 만드는 것은 윤리적, 도의적 책임을 동반하기도 한다. 유례없던 세상에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들의 담론이 필요하다. 기술 발전 자체에 대한 의문, 아시모프의 3원칙을 지키지 않는 인공지능의 위협, 매트릭스와 같은 기계 문명의 도래 등 목적 없는 기술 발전의 아주 작은 행선지는 인류에게 아찔한 위기를 상상하게끔 만들곤 한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공학자와 과학자들은 나름의 아름다운 철학을 지닌 채 기술을 대한다. 도시를 설계할 때 사람이 먼저가 되는 공간을 설계도 속에 담고, 뛰어난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심각히 고민한다. 그리고 그들의 놀라운 지성으로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 철학적 고민이 기반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은 기술 발전은 어쩌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 자체가 될지도 모른다. 기술과 철학이라는 생경한 단어를 반드시 결합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지닌 기술철학적 담론, <미래와 만날 준비>였습니다.
* 본 리뷰는 책숲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