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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들
이 책은
이 책 『기록자들』은 소설집이다. 단편소설 7편이 실려 있다.
저자는 임성용, <201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2020년 현진건문학상에 「지하 생활자」가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에는 표제작인 「기록자들」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장편적 서사를 담고 있는 단편들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는 소재다. 길게 이야기를 엮어내면 장편이 될 만한 줄거리다. 그걸 압축하여 단편으로 썼기에 이야기가 주는 힘은 강렬하다. 이야기 전체가 한꺼번에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그게 무엇이든」과 「맹순이 바당」에서 그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게 무엇이든」에서 주인공 근수는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청부살인자다. 이 짧은 단편 속에 근수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가 담겨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지저분한 놈들 이야기도 담겨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소설의 말미에 근수는 동네 양아치들을 없애버린다. 공적인 복수를 할 수 없으니 사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단편에 담겨 있으니, 당연히 장편으로 읽히는 것이다.
「맹순이 바당」도 긴 이야기를 짧게 한다. 단편에 장편 이야기를 압축하여 담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평화롭게 살던 몽돌과 끝분 부부는 하루아침에 죽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사지에서 부산으로 도망친 끝분에게 태기가 보이고, 딸을 낳게 된다.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는 「맹순이 바당」, 그 안에 기구한 인생이 담겨, 끝분과 딸 선녀 2대에 걸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해서 단편이지만 장편적 서사가 담겨있는 것이다.
서투르지만 한 걸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다른 작품을 살펴보자. 먼저 무기력한 주인공들이 나타난다. 이 세상의 길에 합류하지 못하고 뒤처져 있는 사람들이다.
「지하 생활자」의 ‘나’, 「원주민 초록」의 ‘나’가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하 생활자」의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지는 지하 3층의 기계실이다. 그저 평온한 나날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는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2005호의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원주민 초록」의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간다. 주거지는 대학 동아리 방의 한 켠 아무도 모르는 ‘먼지 방’이다. 거기에서 남의 텃밭의 채소를 훔쳐다 먹으며 사는 것 같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상추와 고추를 훔치다가 그 밭의 주인과 조우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나’는 혼자서만 무기력한 삶 가운데 살아가다, ‘진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게 계기가 되어 세상 속으로 행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그들은 서툰 걸음이나마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떼놓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현실을 보여주는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맹순이 바당」에는 냉혹한 현실이 ‘실제 상황’인 것을 보여준다.
다시, 이 책은
7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들인가 그렇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감정이입이 된다. 그래서 소설 읽을만하다. 그들은 버텨낸다. 이 질곡의 삶 속에서도 그들은 버텨낸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런 소원을 하게 된다. 마치 그들이 실존인물인 것처럼 말이다. 아니, 분명 그들은 어딘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그들은 분명 살아있다. 독자로 하여금 이런 생각하게 하는, 이게 바로 소설의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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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표지가 심플하고, 어두운 남색과 흰 스케치 그림, 제목의 조합이 내 마음에 드는 소장하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나가며 책의 디자인이 소설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대체로 기괴하며 어둡고 그로데스크한 분위기가 풍기지만 독특한 소재들과 그것을 풀어내는 작가의 묘사에는 흥미롭고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이 담겨있다. 독특하지만 특별하다. 책의 제목과 어울리게 실린 소설들은 기록의 형식을 주로 차용한다. 그 기록들, 임성용의 세계는 무섭기도 하지만 흥미롭고,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이 책은 단편 일곱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살인자의 기록을 담은 <그게 무엇이든>, 고단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비극이 찾아온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의 이야기 <지하 생활자>, 특별한 책장수 조물주의 다소 환타지스러운 <공원 조 씨>, 미스테리한 아버지의 기록들을 담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기록자들>, 대한민국의 원주민이 등장하는 <원주민 초록>, 그의 등단작 <맹순이 바당>과 국밥을 좋아했던 아내의 자살을 기억하는 남편의 기록 <아내가 죽었다>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임성용의 단편들, 그의 폭넓은 세계관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기록자들>에서는 아버지의 기록에서 <공원 조 씨>에서 등장한 이야기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지하 생활자>에서 ‘나’가 일한 곳이었던 아파트로 보이는 장소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 또한 소설집을 읽어나가며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임성용은 플롯 구성을 다양하게 배치하는데, 등단작 <맹순이 바당>부터 그것은 이야기의 결말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들고, 끝까지 소설에 몰입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맹순이 바당>이나 <아내가 죽었다>, <그게 무엇이든>등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소설에서는 주로 죽음이나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많이 등장한다. 슬픔과 아픔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의 어둠에서도 분명히 희망과 빛을 찾을 수 있다. 마치 “거대한 빌딩들 틈에 낀 초록의 밭”처럼 말이다.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지만, 자세히 보면 따뜻하고 그래서 신비로운 것처럼. 인간의 어두운 면을 고찰한 그의 시선과 기록들이 심리적인 몰입을 주는 <기록자들>의 경험은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흥미로운 여행으로 다가올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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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작가가 쓴 '기록자들'은 총 7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단편들은 한 사람의 시점으로 쭉 이어져 쓰여있다. 거기다 대화문은 문장부호 없이 독백과 쭉 이어지기에 담담해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죽음, 살인, 폭력, 차별 등 다소 날 선 소재들이 쓰였다. '기록자들' 특유의 서술방식 덕에 자극적이라기보다 잔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되기에 오직 한 사람의 생각, 시각, 행동으로밖에 책 속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마치 책 속 서술자의 모습으로 빙의한 듯한 착각도 들곤한다. 한 사람의 세계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보고 느끼며 다루고있는 세계는 무척 다채롭다. 길을 지나며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은밀한 비밀과 저마다의 고민을 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스레 신기하다. 또 각각 이야기들이 연관없어 보이지만, 때로 다른 단편의 이야기가 눈에 띄곤 한다. 그럴 때면 반갑기도 하고, 사람들의 삶이란 게 각자 달라 보여도 어찌보면 공통점도 갖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수록된 단편소설들 중, '공원의 조 씨'라는 이야기가 있다. 무더운 여름날, 일찌감치 책장사를 접고 쉬고 있던 조 씨는 우연히 장 씨를 만나게 된다. 장 씨와 장기도 두고 때론 내기도 하며 친밀함을 쌓고 있었다. 어느덧, 변함없이 내기를 이어가다 장 씨가 조 씨를 대접하게 되었는데 장 씨는 자신이 조물주를 만났다고 터놓는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조 씨는 그것이 자신의 동업자, 알파임을 깨닫게 되고 장 씨가 자신의 정체도 이미 알고 있구나 짐작하게 된다. 조 씨는 조물주로서 장 씨의 기억을 없애려 한다. 이 이야기는 현실적인 다른 이야기와 다르게 SF판타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쪽을 읽게 되면 조물주나 다른 지구, 생명체라는 큰 소재는 모두 사라진다. 조물주라는 너무나 큰 존재에 비해 한낱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 작고 초라하기에 더더욱 조 씨의 일생이 무겁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각 소설 속에선 가부장제, 폭력에 무너진 피해자, 좌절스러운 현실을 타파하려 노력하는 이 등 다양한 군상을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 인물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 인지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나에겐 다소 어려운 이야기도 있어 뒤쪽 '해설' 부분을 참고 했다. 미처 놓친 부분도 잘 설명되어 있으니 7개의 단편을 모두 읽은 후, 해설을 보면 더 깊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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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단편집입니다. 맨 처음에 나온 <그게 무엇이든>은 충격적이고 무서운 살인자 이야기였어요. (스포x) 그리고 또 재밌게 본 건 <지하 생활자> 와 <아내가 죽었다> <공원 조 씨>입니다.
공원 조씨는 책을 파는 남자인데요, 이름이 조물주라죠 ㅎㅎ 평범하게 장씨라는 남자와 장기를 두는듯싶더니 sf(?)로 급변합니다. 웃기기도 하고 은근 몰입하게 만들었어요. 조씨와 장씨의 대화가 이어지며 밝혀지는 진실은...
지하 생활자는 조금 씁쓸하면서도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일부러 경보기를 울려서 스프링클러를 작동하는 탓에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주인공 박 기사. 그는 오늘도 투덜거리며 올라가 정리를 합니다. 미안해하는 할머니에게 거실 스프링클러를 차라리 잠그자고 설득을 하죠. 그리고 사건은 벌어집니다. 화재가....!
아내가 죽었다는 한 가정의 우울한 단면을 보여주었어요. 환영받지 못했던 아내의 직업과 그러한 며느리를 구박하던 어머니 사이에 있던 남편은 결국 이혼을 결심합니다.
딸은 아내가 키우기로 하지만 친권은 남편에게 주는 조건으로요. 그런데, 뜻밖에도 아내는 차 사고로 사망합니다. 수면제가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국밥. 마지막으로 남긴 그녀의 말을 전하는 딸의 말....
인간의 심리를 묘하게 드러내는 이야기에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아련하게 떠오르는 말.
"밥 먹자."
"그래, 국밥먹자."
'먹어 둬, 골병든 데는 내장이 좋아.'
"식었다. 어서 먹어."
"아빠, 국밥 먹으러 가."
<아내가 죽었다>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다시 보니 먹먹하네요ㅠ
<기록자들>, <원주민 초록>, <맹순이 바당>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어서 재밌게 봤어요. 마지막에 나오는 해설까지 꼭 보세요:)
![]() ![]() ![]() ![]() #도서협찬 으로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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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임성용 작가는 2020년 현진건문학상에 지하 생활자가 추천작으로 선정 되었다고 해요. 나의 시선과 선택은 늘 지하를 향했다. 눅눅한 지하에서 환상을 이야기하고, 지상의 세상을 헐뜯었다. 산등성이보다 골짜기를 좋아하고 그늘이 없는 사람은 사귈수 없었다. 쇼윈도 속의 동물보다 버려진 짐승들에게, 온화한 스승보다는 괴팍한 스승에게 마음이 더 갔다는 저자의 말 그 마음이 고스란히 기록자들의 작품에도 느껴볼 수 있어요. 단편집 기록자들 7편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작품에 대한 해설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작가의 말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요. 임성용 작가가 들려주는 희미한 존재들의 작은 모소리들에 가만히 귀기울여 볼 수 있었어요. 그게 무엇이든 근수는 해결사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서 어둡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근수의 어린시절 주정과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존재는 근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아버지의 죽음으로 과부가 된 지실댁과 근수를 마을사람들은 멀리하는데 과부가된 지실댁의 담장을 누군가 넘어오기도 하고 자신들을 지켜주었던 개 메리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요. 지실댁을 살리기로 자신이 이일을 맡기로 한 근수 무언가를 살리려면 언제나 무언가를 죽여야 했다.(p22) 가족 구성원에 대한 지배 권력을 지녔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부장제가 붕괴되면서 지배적인 남성성이 해체되었지만 또 다른 새로운 남성성의 등장 종도와 만수로 인해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 어린 근수의 이야기 지하생활자 아파트 기계실에서 일하는 박기혁은 지하 설비실 생활을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2005호의 소방 경보로 인해 예민할 대로 예민해졌는데 치매 노인이 신문지에 불을 붙여 화재경보기가 작동되어 스프링클러까지 터지고 이를 말리지 못한 아내는 미암함을 느끼는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스프링클러를 잠가버리게 되고 이로인해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외에도 우리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만나볼 수 있는 이야기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이 공감되어 자연스럽게 빠져서 볼 수 있었어요. 과거와 역사 그리고 현재 지하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기에 어둡고 우울할 수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또 살아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깊이있게 다가오네요.
"걷는사람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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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없는 책을 파는 조물주 「공원 조 씨」 : 기록자들 - 임성용
*본 도서는 출판사로 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오래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단편 모음집이었다. 아무래도 책 이야기를 하다보면 각 단편의 결말이나 스포일러가 포함될테니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피하시면 좋겠다. 다른 이들의 즐거움을 뺏고 싶진 않기에.
이번 연구는 실패했어. 너도 그만 인정해. 인간은 달라지지 않아. 더 이상 신화도 종교도 그들에게 통하지 않아. 오히려 자기 식대로 이용만 해 먹고 있잖아. 먹고 싸고 차지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 실패한 생물이야. 이대로라면 지구는 백 년도 버티지 못해. 솔직히, 이 행성에서 가장 해로운 생명체가 인간이야. 투자한 물과 햇볕이 아까울 지경이라고. 빨리 할당량이나 채우고 이 쓰레기 같은 행성을 뜨자고. 어차피 멸망할 행성 따위야 회사에서 뽑아먹을 만큼 뽑아먹은 다음에 알아서 처리하겠지. 우리는 연구실에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 그게 우리가 살길이야.
─「공원 조 씨」, 기록자들 - 임성용 p.76
제목에 쓴 것처럼 제목이 없는 책을 파는 조물주 공원 조씨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비평가는 조씨가 삼풍백화점 사고로 인해 아내와 딸을 잃고 나서 자신이 존재를 잊고 조물주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이야기라고 보고 있더라. 사람이 보통 큰 충격을 받으면 그 충격을 받은 자신과 멀쩡한 자신( 충격을 받기전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아)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이 단편을 읽은 소감의 나는 조씨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안하고, 큰 유니버스 세계관으로 진짜 이런 일들이 이렇게 랜덤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 정보를 엿본 책값 <오만원> 대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인간처럼 필연적으로 악운이 온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외계 생명체라고 여기며 다른 사람들에게 ‘미래를 선물하러’ 왔다고 말하지만 그의 세계밖의 사람이 보기에 그는 한낮 미친 사람이다. 뒤를 돌아가는 그를 궁금해 하던 사람에게 이러이러 해서 미쳤대 라고 말해주는 부분은 창조주 세계관을 세워서 믿어버린 나같은 독자에게는 깜찍한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덧붙여, 여러 다른 세계에 빠져버리신 분들도 이러이러한 간택의 과정을 거친거 아냐? 하는 상상력도 발휘해 보게 되었다. 지금 인간이 하는 행태를 보면 알파와 오메가가 지구를 포기하고 리셋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유를 알 것 도 같다.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던 두 번째 단편은 <아내가 죽었다> 이다.
나는 가르치는 재능도 인내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반년을 채우지 못하고 학원을 나왔다. 아내는 가장으로서의 무능력을 탓하지도, 아비의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아내의 그런 태도가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불안하게 생각되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내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사람 같았다. 내가 열 살 때 휴화산이었던 갈라파고스 제도의 화산이 서른이 넘은 지금도 휴화산인 것처럼, 폭발 따위는 내 대에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아내도 견디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어차피 남녀가 같이 산다는 건 주어진 상황을 함께 견디는 연습 같은 것이었다.
─「아내가 죽었다」, 기록자들 - 임성용 p.199
지금까지 조금 어두운, 미친(?) 사람들만 등장하다가, 그래도 조금은 과보호에 휩싸인 남자사람이지만 정상적인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아내가 갑자기 자살로 죽고, 그로 인해 부인을 만나게 된 과정, 자신의 가정이 해체되게 된 이유. 그 중간에서 자기가 온실속의 화초로 자라나 중간자적 입장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가장으로서 무능력했던 현실을 담담히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이혼하게 되었고, 그런데도 화자는 부인이 왜 죽음까지 갔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보통 이혼하러 오는 사람들은 그 중간에 지리멸렬한 개싸움을 하느라 법원에 와서는 그나마 선뜻 젠체 하는데, 이 지옥같은 생활을 놓자니 서글프고, 벗어나려니 두려운 그 마음으로 아내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죽어서야 그 잔소리를 멈추고 남편의 어머니로만 돌아가다니. 화자는 장례식장에서도 딸과 서먹한 관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마 억지로 어머니의 부재를 통해 딸과의 화해를 그렸다면 내심 실망했을텐데, 요새의 가족을 개개인으로 잘 그려낸 것 같아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오래간만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편을 만나서 좋았고, <맹순이 바당>등의 아픈 역사를 그려낸 단편도 추천할 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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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혼자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은 알고 있다. 적당히 남에게 보여 주고 싶은 혼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스팔트 위의 중앙선처럼, 될 수 있는 대로 중앙으로, 할 수 있는 만큼 가지런하게, 끝없이 이어지며 내버려 둘 수 있는 혼자. 말 그대로 그대로의 혼자. (pg 105)
설 연휴에도 집, 삼일절 연휴에도 집에만 있다보니 좋은 책과의 만남도 잦아지는 것 같다. 이번에도 생소한 작가의 단편집을 만났다. 책 소개를 보고 선택하는 것이니 당연히 내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겠으나, 종종 실패도 하는 걸 보면 책과의 인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처럼 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책은 내 취향에 너무도 잘 맞아 읽은 소감을 쓰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230여 페이지에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최근에 읽은 단편집들이 대체로 너무 짧은 호흡이어서 아쉬움을 주었던 것에 반해 이번 단편집은 일단 길이면에서도 마음에 들었다. 단편집이니 각각의 이야기들마다 주제가 있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들이 비슷해서 마치 한 편의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일단 이야기들이 매우 어둡다. 그러면서도 또 무겁다. 단편이지만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을 장면들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나 살인이 스토리 진행에 큰 영향을 주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예 화자의 직업이 살인청부업자여서 일거리를 처리하듯 진행되는 살인부터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살인, 이념 대립으로 인한 맹목적인 살인 등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와 역사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공원 조 씨'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기록자들'은 내용 일부가 겹쳐지며 같은 세계관 속 다른 이야기라는 느낌도 전해준다. '공원 조 씨'만 읽은 뒤에는 인재(人災)로 가족을 잃은 한 정신병자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 같지만 '기록자들'까지 읽고 나면 뭔가 '공원 조 씨'에도 더 큰 이야기가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위 두 작품도 재미있었지만 총 7개의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맹순이 바당'일 것이다. 제주 4.3 항쟁으로 남편을 잃고 낯선 곳으로 도망쳐 자신을 지우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서사가 여느 장편소설 못지 않게 탄탄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준다. 본 작품이 2018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 하니 제목으로 검색하면 원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끝분은 이름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들러붙은 빨갱이 여편네 냄새가 가려져야 했다. 누가 들어도 우스운 이름이어야 한다. 끝분은 점례 동생 순이를 떠올렸다. 이름은 순이였지만 맹한 구석이 있어 동네사람들이 맹순이로 불렀다. 끝분은 맹순이가 되기로 했다. (pg 172)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도 후회없는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 4.3 항쟁이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피해자들, 88올림픽 당시 소외된 계층 등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만한 역사적 장면들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어서 작품 속 이야기들의 현실감도 높이고 등장인물에 공감하기도 쉽다. 책의 후반부에 작가의 말이 실려 있는데 작가가 이런 느낌의 작품을 쓰게 된 심리적 배경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시선과 선택은 늘 지하를 향했다. 눅눅한 지하에서 환상을 이야기하고, 지상의 세상을 헐뜯었다. 산등성이보다 골짜기를 좋아하고 그늘이 없는 사람은 사귈 수 없었다. 쇼윈도 속의 동물보다 버려진 짐승들에게, 온화한 스승보다는 괴팍한 스승에게 마음이 더 갔다. (pg 231)
뭔가 내 성향과 비슷한 작가를 한 명 더 알게된 것 같아 기쁘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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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란 뭘까. 기록이란 개인과 공동체가 살아온 삶의 발자국을 순수하게 보관하는 일일텐데, 저자가 발화하고 싶은 ‘기록’이란 대체 어떤 행위일까? 더 나아가 기록은 사회 시스템과 체계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게 된다. 가령 조지오웰의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는 대사는 전체주의를 대변하는 내용으로 비유되듯 권력에 의해 기록이 조작될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하고, 이에 대하여 개인, 혹은 속한 공동체의 시선에서 기록에 대한 반발로 투쟁의 역사를 그려내기도 한다. 임성용작가도 역시 창작가로써 ‘기록’이란 인간의 나이테를 풍자하면서 각 인물들의 갖고 있는 삶의 끈들을 정밀하게 직조해나간다. 저자가 집중하는 하나의 시선은 ‘남자’가 갖고 있는 과부장적 사고의 해체라고도 보여지며, 또는 이데올로기와 직업, 사랑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사회현상을 소수자의 입장에서 대변해나가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을 담당하는 ‘남자’들은 가족으로부터 해체되는 아픔을 갖고 있으며 그것은 선명하게 인간의 실존과도 결부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지하생활자와 아내가 죽었다의 단편들이었는데, 지하라는 어쩌면 지상과 분리된 어쩌면 ‘소수자’를 상징하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찝찝하지만 우리네의 삶이 닮아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고, 아내가 죽었다는 이혼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담담하게 풀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국밥’에 담긴 이미지가 그렇게 애처로울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지하생활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에서 쓴 수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생은 어떠한 사건과 계속적으로 충돌하는 무한한 슈뢰딩거의 우주와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록자들’의 단편을 예를 들어 보면 ‘왜’ 아버지가 그러한 기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밝혀지지 않는다. 작가는 ‘조물주’를 상징하는 완전한 ‘시작’과 ‘끝’인 <알파>와 <오메가>가 왜 세계를 창조했고, 인간사회에 개입하려 하는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의 세계는 조물주의 개입보다 자신이 처한 ‘실존’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하생활자’의 단편에서 그런 결정적인 힌트로 이 대목을 인용할 수 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인용하면 ‘세계-내-존재’에 있는 우리 각각의 ‘현존재’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우리의 실존을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망치라는 사물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사물을 수리할 때 보통 사용된다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살인자에겐 그 망치는 살인을 도모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언어가 그렇다. 언어는 ‘기록’되어졌고, ‘기록’되고, 앞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현재의 삶의 현현 앞에서 우리가 기록해야 할 삶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책을 통해 경험하기를 소원해본다. 늘 그렇듯 좋은삶을 기록하기 위해 살아보기로 결단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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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신파' 소설은 '사회파'... 어쩌면 이제 대한민국의 개성이라할 수 있는 작품의 성격 가운데서, 분명 이 책 역시 그러한 틀 속에서 표현된 하나의 글일 것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해방과 전쟁, 그리고 독재와 성장이라는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휘둘러진 인간 개인의 감정은 비록 부족하겠지만 '한'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을지 모른다. 때문에 이 무수한 단편소설에 표현된 감정은 작게는 등장인물들의 환경과 사건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나름 (크게) 그 의미를 생각해보면, 결국 그러한 감정이 표출되고 또 인정할 수 밖게 없게 만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서, 즉 그 독특한 감정에 공감하는 시대적 인식(또는 지식)이 나에게도 있다고 인정하게 만든다.
이처럼 위의 '공원 조 씨' 가운데서 가족이 오지 않은 이유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난 탓이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들이닥친 사고와 죽음 가운데서, 그 등장인물과 연관된 비극(사고와의)의 접점은 그 어디에도 없다. '평소에 무언가 잘못을 했나?' '전생에 천벌받을 짓을 한걸까?' 근데 왜 나였지? 혹 이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을 수 있겠는가. 때문에 이 소설에서도 그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부조리의 모습을 통해서, 이에 국가와 사회의 측면에서의 해결책 뿐 만이 아닌 인간으로서 바꿀 수 있는 부분과 그 한계에 대한 질문을 어쩌먼 저자 나름대로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그러한 감상을 받는다. 이른바 과거 흔히 안정과 질서와 번영을 쫒는 와중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사회는 위법과 부실이라는 당시 압축성장의 그림자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비평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그 과거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의 주제로서 이 소설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활용 너머에 많은 독자들과 그 세대들간의 (기억과) 문제의식이 줄어들거나 단절되는 순간. 결국 이 시대의 비극은 이후 또 다른 이름표를 달고, 이후 먼 미래에서도 반복되는 악순환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데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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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게 무엇이든 '근수는 다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부스럭거리는 낙엽 냄새가 열어지고 공기가 무거워졌다. 계절이 겨울로 가고 있다. 계속 걸어 큰길에 도착했다.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원장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성 메모로 넘어가기를 기다렸다가 버튼 음울 3초간 눌러 녹음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 부스를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안은 찌든 담배 냄새를 눌러 놓은 싸구려 항수 냄새가 가득했다. 거기에 북소리와 함성이 섞인 소리가 요란하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아랍에미리트와의 축구 평가전이 한창이다. 기사가 볼륨을 낮추며 말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혈전을 치르고 귀가하듯 말끔한 정리 후 자리를 떠나는 근수. 그는 사건 현장 뒤처리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쳇바퀴로 돌아가고, 택시에 몸을 실은 후 쓰레기 같은 라디오 중계방송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과거를 소환한다. 그것은 1988년 보통 사람이란 허울을 쓰고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이가 등장한 가을 <서울 올림픽> 무렵이다.
근수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머니 지실 댁과 단둘이 남고 만다.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와 아들 내외는 이제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근수는 그럴수록 더욱 강해졌다. 작은 곤충부터, 뱀, 노루에 이르기까지 살생의 폭은 높아가고 짙어졌다. 어미만을 둔 야생의 들짐승 새끼처럼 거칠어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음은 무시한 채 근수의 몸까지 커 가고 있었다. 모자의 집을 서슴없이 찾아와 치근덕 거리는 삼청교육대 동기이자 동창 종도와 만수라는 놈이 있었다. 근수는 어린 마음에 울분을 토해내지만 아직 그들에겐 힘이 부치는 십 대였다. 조금씩 자신을 강화해가는 이유도 주변의 불필요한 간섭과 장애가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이후 마을엔 흉흉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 진실은 과연 누구의 손에 의한 것인지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인지에 대한 이유는 독자들만이 알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이유와 결과는 존재한다. 근수에게도 그리고 이러한 부도덕한 일을 벌인 장본인에게도......
2. 지하 생활자 연극의 한 장면처럼 묘사된 <지하 생활자>는 알게 모르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생계를 위해 '극단'을 나와 아파트 기계실 지하 3층에서 근무하는 남자 기혁과 그를 짜증스럽게 일 시키는 관리소장. 거의 전담이 돼버린 2005호 노부부 내외는 이미 연극의 <리어 왕>, <한여름 밤의 꿈>을 적절히 묘사하는 것처럼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샤워를 하려는 의도인지, 치매가 심어지는 상태인지 2005호의 노인은 연기를 피운 채 스프링클러의 물을 받아 목욕을 한다. 각 방의 스프링클러 잠금장치에 이어 이마저 잠금장치를 해야 할지에 고민하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마저 닫아버리게 되는데...... 이러한 혹시가 단초가 되어 이야기의 흐름을 어디로 튈지 모르게 한다. 현재의 이야기 중심에 과거 극단에서 생활하던 남자 주인공의 이야기가 가미되 다소 지루하고 무거울 수 있을 소설의 흐름에 감초(?) 역할을 한다. 아마 지하 연습실에서 연습했던 '극단' 출신의 주인공 기혁이지만 지하 3층에서의 생활은 왠지 모르게 더 처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23층으로 오르내리며 자잘한 것까지 책임져야 했던 상황은 그 이상의 고통스러움이 아니었을지 주인공의 입장에 감정이입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3. 공원 조 씨 조 씨는 공원에서 책을 판다. 그러던 중 우연히 50대 장 씨가 그에게 나타난다. 내기 장기를 두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지만 공원 조 씨에겐 감춰진 비밀이 있다. 어느 날 불쑥 '알파'라는 제로 행성의 외계인이라 불리는 인물이 나타난다. 공원 조 씨도 그와 같이 외계 행성에서 파견 된 동료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후 조 씨의 동료인 '알파'는 조 씨의 성미를 건드리며 계획에 따른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던져준 채 사라진다. 어느 날 이후 장 씨는 공원 조 씨를 불러 자신의 과거사 이야기를 펼치며 왜 자신이 조 씨에게 장기를 두며 접근했는지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 장 씨 또한 제로 행성에서 파견된 비밀 연구원 동료일지, '알파'에서 장 씨로 변신한 인간일지 모를 일이다. 장 씨가 궁금했던 건 삼십 년 전 남부럽지 않게 살아오던 때에 '알파'라 불리는 작은 키의 사내가 자신에게 팔았던 책이 조 씨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제약 회사 연구원으로 가족과 단란한 생활을 해왔던 장 씨는 '알파'라 불리는 외판원이 전한 책을 구입 후 사랑하던 아내와 딸마저 잃게 된 후 홀아비 생활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그냥 책이 원인이 되어 사라진 것으로 오인하는 장 씨에게 또 다른 아픔이 존재했다. 인간을 설계하러 지구에 온 '알파'와 조 씨. 실은 조 씨의 실제 이름은 '오메가'임이 밝혀진다. 그들이 완성한 지구는 점점 그들의 지향점과는 다르게 인간의 파멸과 억압,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며 평화 대신 서로 간의 불신과 전쟁이라는 어두운 미래를 불러일으킬 것인가? '알파'가 '오메가'인 조 씨에게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그 마지막 의미 또한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그리고 장 씨의 딸과 아내는 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사라졌다는 공원 4호 매점 여주인 밀양댁의 말이 의미 깊게 다가온다. 조 씨와 장 씨, 그들은 과연 다른 듯 같을 수밖에 없는 하나의 존재인 것인지...... 한 사람의 아픔은 수많은 인격체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안감 가득한 현실을 우린 지금 살아가고 있다.
4. 기록자들 주인공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티며 20대를 보냈다. 방랑 생활을 전전하며 원양 어선 어부, 산장지기 일을 해오던 아버지는 산에서 실족사한다. 어머니는 그 다운 죽음이라 말하며 맡고 있던 가게를 처분하고 돈을 절반 나누어 아들인 주인공에 주고 아파트까지 맡게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기록한 노트 한 권의 유품을 건네주고 젊은 시절 못한 세계 여행을 떠난다. 어느 날 주인공은 한가하다 못해 지루한 틈을 타 아버지가 남기고 간 기록지 노트에 빠져든다. 70, 78, 79 그저 숫자들로 명명되는 이들의 전 세계 각지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득한 기록물이었다. 아버지는 그가 모르던 세계에 살던 사람일까? 의구심이 들만한 내용들이 글에 드러났다. 아버지는 세계를 돌며 그곳에 있던 산들을 정복한다. 그리고 그는 96을 지중해란 바에서 만나 책을 팔기 위해 인류의 위기를 조장하는 '알파' , 즉 자신을 조물주라고 말하는 외계 행성인과 한 남자의 이야길 전한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 남자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통장의 잔고마저 줄어든다. 그의 선택은 아파트 시설관리 직원으로의 취직이었고 밤 시간을 그곳 아파트 지하 3층 파이프라인에서 보내며 일상을 소비한다. 세월은 흐르고 어머니의 여행 소식마저 뜸해질 즈음 그의 어머니가 행방불명됨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손에서 전해진 아버지의 기록지. 이제 남은 건 외톨이 남자와 커피 얼룩 가득한 노트 한 권이다. 모든 기록은 남아 있지만 유일한 존재는 남자 한 명이다. 그는 96에서 이어 97, 98이 될지 모를 또 다른 기록물을 이어가려고 컴퓨터를 켜고 99의 기록을 시작한다. 앞에서 언급된 단편 소설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처럼 약간은 난해하지만 작가의 손에서 기록된 창작물, 그 기록들이 앞에서 전개된 <지하 생활자>, <공원 조 씨>와 같은 연장 선상에서 이어지는 연작 소설의 느낌을 전한다.
5. 원주민 초록 건조한 내용 같으나 판타지가 가미된 듯한 전개의 젊은 청년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현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청년. 초등학교 시절 집을 떠나버린 아버지로 인해 큰집, 작은 집이라는 의미를 이해하며 자랐으며 어머니인 김 여사와 함께 생활한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매달 50만 원의 용돈을 보내는 무심한 우리 시대 예전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청년의 엄마 김 여사는 재봉틀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이 되자 쪽방에서 열아홉 평 아파트로 아들과 함께 이사한다. 이후 십 대 청소년이 된 아들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과 병수발로 인해 집과 병원을 오간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지만 어머니의 병 앞에 모든 것이 의미 없다. 결국 혼자가 된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과 병원비와 학자금 대출 등으로 아파트를 처분하고 대학 건물 한구석 먼지방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무가치한 삶을 이어간다. 이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대한민국 원주민>이란 만화책을 읽으며 실제인 듯 상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어머니 김 여사가 아파트 베란다에 텃밭을 꾸미듯 청년은 학교 주변 어딘가에 7개의 텃밭을 확보하고, 그곳에서 대한민국 원주민을 만나 소통한다.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쓴 원주민의 낯섦과 어색함,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원주민의 하얀 두건은 마치 어머니가 재봉틀로 만든 글자가 새겨진 모양의 수건과 너무나 흡사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추억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모습이 지금 이 엄혹한 시대를 갈팡질팡 살아가는 2030 세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청년은 다짐한다. 매달 50만 원씩 들어오던 아버지의 천금같던 돈을 포기하고 스스로가 갈 길을 정하겠다고...... 잠시 같은 생활을 반복하던 무료함을 던져버리기 위해 컴퓨터의 전원을 키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한다. 원주민 초록을 만나며 자기 나름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은 것일까? 녹록지 않은 인생에 자신을 위한 새로운 도전에 용기를 내는 주인공의 또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롭게 상상되는 작품이다.
6. 맹순이 바당 맹순이의 바다를 의미한다. 맹순을 중심으로 제주 4.3사건의 하루, 그리고 그 이후 끝분에서 맹순으로 살아가는 해녀의 여정을 담고 있다. 빨갱이란 말이 금기시될 정도로 엄혹했다고 밖에 없던 1940년대 후반. 끝분이었던 맹순이도 빨갱이로 오인받아 죽음의 사선을 넘나든다. 그와 정사를 나누던 몽돌은 수많은 주검 중 하나로 발견되고 끝분은 해녀 할망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해 끝분이 아닌 이제 말도 어눌하고 어리숙한 맹순이가 되어 살아간다. 그때 태어난 아이가 선녀였다. 남편 몽돌이 남기고 간 생명체일지 그 누구의 딸 이상도 아닌 아이는 소리 없이 성장해 엄마인 맹순의 보탬이 된다. 미제 할매의 소시지를 훔친 덕수에게 능청스럽게 다가가 소시지를 뺐어 먹는 대담함. 제주 4.3사건 이후 낯선 동네, 일본인이 파놓고 간 지코촌이란 곳에서 숨죽이며 살아간 맹순이와 대조적 삶을 살아가려는 딸의 모습이 상상된다.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와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제주 4.3 사건. 구체적인 내용의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그날의 분위기와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숨죽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당시, 조금씩 깨어나는 진실 앞에 울분이 치밀어 오르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소설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빨갱이라는 거짓된 오명을 감추고 씻어내기 위해 맹순은 오늘도 맹순이 바당(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있을 것 같다.
7. 아내가 죽었다. 아내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갑작스런 죽음이 낯설기도 했다. 이미 이혼한 사이였지만 그는 장례식장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을 딸을 만나러 간다. 딸은 아버지를 만나기 싫어했다. 죽은 엄마의 당부가 있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아빠와 국밥을 함께 먹으라는 것. 아내와 남자는 우연히 미술 전시장에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이 만남으로 새 생명을 갖게 되고 결혼 생활을 이어진다. 커플 중심엔 위에서 딸이 아빠에게 언급한 '국밥'이란 매개체가 있다. 이혼 당일과 결혼 기간에도 커플은 종종 국밥을 먹으며 서로를 위한 위로 아닌 위로를 나눴다.
'골병든 데는 내장이 좋아'
남자가 국밥을 먹으며 머릿속에서 되뇌며 뱉어낸 영화 속 대사이다. 작가는 아내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들의 심리 상태, 남겨진 딸의 마음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평론가였던 남자와 화가였던 아내와의 만남과 죽음 사이에 남자의 가족, 아내의 딸이 존재한다. 어쩌면 그것도 이혼의 원인, 장애물이었을 수도 있다. 딸의 탄생으로 그들은 결혼했지만 확실한 준비가 덜 된 상황 속에서 풍기는 부부간의 그늘이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작품에 묻어난다. 모든 상황이 그녀의 죽음을 암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힘을 빼고 왠지 덤덤히 써 내려간 글이 긴 여운을 전하듯 이 작품 또한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여성을 향한 페미니즘과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상반 돠 모습을 통해 변화해가는 사회적 현실을 투영하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다수 담겨 있다. 또한 가족의 해체, 폭력성으로 인해 분열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을 작가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깊이 있고 사실적 문체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더불어 우리 인간이 지닌 구조적인 모순을 되돌아보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편리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의해 오히려 부당하고 추하게 변해가는 사회. 서로를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소설의 상황이 허구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식이 강해 보이나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리 없이 천천히 독자들의 뇌리에 스칠 문장들이 단순히 기억이 아닌 기록물로 깊이감 있게 내재될 작품을 읽는 묘미를 《기록자들》에서 만나볼 수 있다. 평등이라는 기준과 힘의 논리가 아니라 모두가 정당하고 자연스럽게 누릴 사실적 정황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음미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리딩투데이 신간살롱 지원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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