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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사람들]이란 책의 제목을 보고서 일전에 읽었던 한겨레신문 이문영 기자가 쓴 [노랑의 미로]란 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노랑의 미로]에서 다루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나니, 새삼스럽게 그 책을 읽었던 당시의 기억에 가슴이 저려왔다. [노랑의 미로]에서 이문영은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어떤 가난은 확산되지만 어떤 가난은 집중된다. 가난이 보이지 않는 것은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 가난의 이야기가 노란 집에 있었다’며, 동자동 9-20번지 쪽방 건물에 살았던 45명의 가난의 경로 5년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건물을 리모델링하고자 건물주가 퇴거를 통보하는 노란딱지를 붙이면서 살 곳을 잃은 쪽방촌 사람들은 건물주에 맞섰다. 결국 서울시가 임대하여 ‘저렴쪽방’으로 운영하면서 일단락된 과정을 통해 이문영은 가난이 어떻게 우리 눈에 가려지는지를 파헤쳤다. 반면에 저자가 2019년 5월부터 2020년 2월까지 9개월간 동자동에서 이루어진 현장연구를 바탕으로 쓴 <쪽방촌의 사회적 삶>이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재구성한 이 책은, 쪽방촌을 위한 사회의 여러 개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의 풍경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펴보고 있다. 즉 [노랑의 미로]가 가난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확산되는지에 시선을 두었다면, 이 책은 쪽방촌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 속의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역 건너편에 위치한 동자동은 서울역 때문에 만들어진 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빈민이 몰려들면서 인근의 양동과 함께 대규모 윤락시설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 들어 양동과 도동(현 동자동) 일대의 윤락가와 판자촌이 집중적인 단속과 철거로 인해 사라지자, 도시의 다양한 하층 노동자들이 모여들어 현재의 쪽방과 비슷한 형태의 주거지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산업화시대 우리사회에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자동에 장기간 거주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쪽방촌에 대규모로 인구가 유입되어 규모와 성격이 변하게 된 계기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면서부터이다. 과거 동자동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면, 지금의 동자동은 일 할 수 없는 인구집단의 공간이자 임금노동시장 바깥에서 생존주의적 임기웅변조차 할 수 없는 잉여 인간들의 공간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동자동 주민을 돕기 위한 각종 시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이 시기부터라고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제도와 무연고자 공영 장례제도, 여러 단체에서 지급하는 무료 생필품, 그리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저렴쪽방 사업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형성된 다양한 모습의 제도적, 비제도적 개입이 주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 되었고, 쪽방촌 주민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개입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적 돌봄에도 불구하고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주민들이 겪는 가난과 고통의 풍경을 통해 돌봄이 왜 실패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동자동 쪽방촌은 70동의 건물에 1,328개의 쪽방이 있고, 여기에 1,16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2019년 현재 이들 주민의 70퍼센트 가까이가 기초생활수급에 의거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쪽방촌 주민들의 생애과정의 시작과 끝에는 수급과 무연고 장례라는 제도적 개입이 자리하고 있다. 즉, 쪽방촌에 거주한다는 것은 열악한 환경에 거주한다는 의미를 넘어 각종 지원과 혜택을 정당하게 획득하여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저자는 동자동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러한 제도적, 비제도적 사회적 개입과 그들의 삶의 풍경을 그려낸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상정하는 최저생활 혹은 사람다운 삶은 일상적 돌봄을 포함하지 않는 경제적 차원에서의 삶이라고 한다. 저자는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지위가 일상적 돌봄의 부재와는 관계없이, 빈민이 수급급여라는 경제적 돌봄을 통해 최저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의 기초생활급여 수준은 빈민이 삶의 온전함을 지키기에는 부족하고, 이것은 생계급여에 의존해야 하는 수급자는 생존을 위해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고 고립된 생활을 선택하거나, 기초생활수급 이외에 또 다른 경제적 수입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빈민들은 명의도용 범죄나 향정신성 의약품 불법거래 유혹에 빠진다. 이들 대부분이 고령에다 아픈 사람이 많아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설에 들어가거나 가족의 돌봄을 외면한다. 저자는 정신지체 장애자인 정영희의 삶을 통해 그녀가 진짜 필요로 하는 돌봄과 국가와 가족이라는 정상적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돌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보여준다. 즉, 일반수급자라는 의미는 돌봄의 불가능성을 내포함과 동시에 자활의 불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그녀가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지원사업에 당첨되어 공공임대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가도 동자동 쪽방촌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무연고 공영 장례는 무연고자로 판명된 경우 국가에서 장례를 치러주는 제도이다. 무연고자의 장례가 끝나면 유골은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에 위치한 무연고추모의집에 10년간 봉안되거나, 서울 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산골 된다고 한다. 저자는 현장연구기간에 경험한 동자동 주민들의 무연고 공영 장례를 통해 주민들의 의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추모와 애도의 대상이 아니라 처리되어야 할 짐짝에 가깝다. 그래서 주민들은 공영 장례가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가 아니라 기계적이고 관료적인 절차로 환원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주민들은 과거의 기억을 함부로 묻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그들 사이의 암묵적 규범이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장례에 참석함으로써 산자와 망자 사이의 연결을 드러낸다. 양자의 연결은 무연고 사망자로 규정된 이에게 연고 있는 무연고자라는 역설적 위상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혈연가족을 중심으로 무연고자와 정상적 죽음을 규정하는 제도상의 빈틈을 드러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제도적 지원 이외에도 쪽방촌에는 여러 단체의 생필품 지원이 많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쪽방촌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무료 물품지원 활동은 주민의 삶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따라서 그만큼 주민의 일상전반에 더 광범위하게 개입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서사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단체의 활동가와 관계자들이 공유하는 서사는 ‘무언가를 나눠주는 활동 때문에 주민들이 마비되고 길들여진다고 생각한다. 고마움에 대한 감각은 사라지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은 어두워진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은 점차 사라진다’며, 의존을 쪽방촌과 쪽방촌 주민을 설명하는 핵심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즉, 각종 단체의 지원 사업은 주민들이 의존에서 독립으로 나아가는데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함과 동시에 줄 세우기를 통한 통제와 대상화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서사는 다르다고 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호혜적 실천, 다시 말해 상호의존과 연대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인격과 자존감을 유지하고 마비와 길들여짐의 낙인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돌려줌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줌과 받음은 증여의 내부에서 인격과 자존감의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라는 모욕과 자존감 박탈의 언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물품의 질을 문제 삼고 단체를 끊임없이 비난하는 이유는, 물건을 나누어주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과 호의를 드러내어 쪽방촌 주민들을 타자화하고 단순한 수혜자의 위치로 전락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과 헐뜯기는 생색내지 못하게 하는 무언의 압력으로 작동하는가 하면, 공짜라는 것이 인격 박탈의 감정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완충장치인 동시에, 물건을 제공하는 이들과의 위계적 관계를 거부하는 억제의 원리로 작동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계속되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러한 주민들의 서사는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고, 우리가 아니라고 판명된 대상은 바깥으로 축출하는 구분 짓기와 배제의 과정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동자동 주민들이 서울역 주변의 노숙자들을 구별하려 하고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노랑의 미로]에서 다루었던 동자동 9-20번지 건물은 동자동 쪽방촌의 상징적인 건물이라고 한다. 서울시와 건물주간의 임대계약이 2020년 1월부로 만료되었으나 아직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시는 건물 노후를 건물주가 먼저 보수하기를 요구했으나, 건물주는 보수할 생각은 없이 그냥 저렴쪽방으로 유지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5년 전 주거권을 내세워 저항을 했던 주민들도 건물의 노후가 문제가 되자 적대가 향한 과녁이 희미해지면서 힘을 잃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버려짐의 모습을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여러 개입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동자동 쪽방촌이라는 환경에서 주민들이 보여주는 ‘지금 여기의’ 모습에 충실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타인의 고통과 가난을 그럴싸한 수사를 내세워 지적 유희의 재료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마주한 시민으로써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지 그 답을 찾는 일은 오로지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저자의 말이 아니래도 우리사회에서 확산되고 집중되는 가난의 모습들을 숨어있는 곳에서 끌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과 [노랑의 미로] 같은 책들이 우리사회의 빈민들에 대한 관심을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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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변모한 익선동 골목길을 걸은 적이 한 차례 있다. 골목 안쪽으로 진입할수록 아기자기한 소품이 놓인 음식점, 카페 들이 줄지어 등장하는 게 가히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했다. 그러나 방향을 살짝 틀자 이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됐다. 왠지 들어가면 아니 될 듯했다. 어딘가 적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게 상당히 실례라는 걸 쪽방촌이 즐비한 골목길을 재빠르게 통과하면서 난 배웠다. 무엇보다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열악함이 당황스러웠다. 이런 표현은 오만에 가깝겠지만, 내가 그 세상에 속하지 않았단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동자동. 서울역에서 매우 가까운, 역시나 서울 한복판이었다. 서울역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과 동자동에 터를 잡은 사람들 사이에는 실상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집단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고, 특히 동자동 사람들은 이 두 세계의 경계를 철썩같이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흔히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동네와 마찬가지로 동자동에도 수많은 단체들이 오갔으며 구호의 손길을 펼쳤다. 인구 태반이 수급자인 이 동네에선 무료로 제공되는 생필품이 분명 크게 유용했다. 사람들은 긴 줄을 형성해 가면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고, 그와 같은 풍경은 수시로 각종 언론을 장식했다. 질이 나쁘다, 양이 적다 등의 볼멘 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나 선의를 베푸는 이들을 탓하는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단 듯 여겨지기 일쑤였다. 저자는 구호의 과정에서 동자동 사람들이 겪는 자존감의 붕괴를 언급했지만, 이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점이었다. 역으로 받는 걸 당연시 여기고, 어차피 받을 수 있으므로 굳이 일하려 들지 않는 이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숱하게 들어서인지 이해가 쉬웠다. 이미 어느 한 편으로 굽은 마음을 되돌릴 길은 없는 건지. 2000년대 초반 가열차게 논의됐던 ‘생산적 복지’라는 단어를 뒤늦게 꺼내어 든 채 난 입맛을 다셨다. 결국 모든 건 제도를 잘못 설계한 이의 잘못일지도. 개개인의 노고에 어떠한 인센티브도 부여치 아니하는 공공근로나 조건부 수급 제도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동시에, 수혜에 전적으로 기대어 생활하는 이들의 무기력함 또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가능성이 전무했던 건 아니다. 처지가 비슷한 이들이 오랜 기간 동일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빚어진 연대는 기대 이상으로 단단했다. 강약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무너뜨리는 많은 제도에 그대로 굴복치 않았다. 쪽방촌에서는 이따금씩 사람이 죽어 나갔고, 아예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관계를 부인하는 경우가 잦았다. 무연고자의 이름을 부여받은 이들은 죽어서도 편히 죽지 못했다. 앞서 죽은 이들과 한데 섞여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하는 현실은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몇몇 이들은 이웃의 장례식장을 찾고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지만 끝끝내 일반 장례를 고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미 죽어 말없는 이들에게 예우를 다함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고자 애쓰고 있었다. 다시 현실로. 건물주에게도 쪽방촌은 숨이 막힌다. 자신의 건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건 건물주의 권리가 맞거늘, 하필이면 가난한 이들이 몰려들어 상업적인 행위는커녕 적당한 수준의 세를 거둬들이는 일조차도 요원하다. 50년도 더 된 건물은 안전이 의심받지만, 건물주가 시설 개보수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쪽방촌을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에 가깝다. 하루 아침에 삶의 공간을 잃는 것과 일방적인 자비를, 그것도 기약 없이 베풀어야만 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옳은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게 쪽방촌 문제의 해소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형태가 됐던 삶은 지속된다. 그 형태가 모두가 부정하는 형태일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