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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이 바라본 가이사랴, 안디옥의 세상을 보았다. 건강한 교회는 함께 모여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을 경험한다. 그리고 다이너마이트 같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이사랴, 안디옥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이다.
상황화를 위한 질문은 지역마다 답이 달라야 한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상황은 시대와 지역마다 다르다. 갈라디아서, 로마서, 고린도전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립보서 모두 저자
복음은 내가 속한 삶의 현장으로 적용이 되어야 한다. 빈틈으로 복음이 스며들어가면 세상은 교회를 향해 묻기 시작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라면 우리도 사마리아를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야 한다. 사마리아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가 필요하다.
복음을 들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자유함으로 신앙 생활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디아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다른 복음이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지금도 교회의 위기는 외적인 핍박이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온 다른 복음이다. -왜 교회일까? 중 발췌
이 도서의 저자인 김기승 목사는 교회는 성령을 통해 세상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공동체임을 일깨워주면서,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하나님과 무너졌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함에 주안점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회복된 주님의 사랑을 다시 세상에 흘려보내는 공동체로 끊임없이 길과 세상을 연결해야 하는, 세상과 길이 연결되는 거룩한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명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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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이자 변화의 시기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교회라는 언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우리는 교회라는 단어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있는 걸까?
초대교회 심각한 이단 중 하나는 영지주의였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했다 ‘영’은 선하고 ‘육’은 부정하게 여겼다 교회 안은 거룩하고 교회 밖은 부정하게 여겼다
우리는 복음이 필요한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는가? 사랑한다면 받는 사람의 위치, 시간, 관계,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무례한 전도자를 세상은 싫어한다
아내는 양을 잃어버린 곳에서 찾고 있었고, 나는 양이 없는 곳에서 열심히만 찾고 있었다 둘다 움직였지만 다른 열매가 찾아왔다 이 땅에 교회는 많다. 열심히만 움직이는 교회가 있고, 잃어버린 양을 향해 움직이는 교회가 있다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는 초대교회에 커다란 핍박이 다가왔다 이 일로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도들은 흩어지게 되었고, 흩어짐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 -왜 교회일까? 중 발췌
중세가톨릭교회보다 더 타락했다고 현재의 한국교회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들만에 세계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갱신되고 변혁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부분은 소위 개혁을 말하는 부류들 안에서 자기 자신의 선행적인 개혁과 역할 제고를 도모하기 보다는 제도와 타인을 향한 개혁을 말하는 것에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교회됨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됨을 어떻게 구현해가야 하는지 등등의 여러 가지를 다시금 제고케 해주는 좋은 도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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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라는 건물 안으로 가야만 채울 수 있었던 필요들이 이제는 교회에 가지 않아도 채울 수 있는 플랫폼들이 즐비하다. 헬라어로 교회는 ‘에클레시아’다. 본질적으로 ‘모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튜브가 있는데 우리는 왜 모여야 하는가?
‘고슴도치 딜레마’는 지그문트 프로이드에 의해 심리학의 영역으로 인정된 용어이다. 차가운 날씨에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서로의 온도를 높여 주고 싶지만 서로의 바늘 때문에 접근할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우화이다. 사람들에게 교회는 고슴도치처럼 느껴진다.
교회도 온도가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 그곳은 진동하였고, 뜨거웠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해 교회가 뜨겁기도 하지만 다른 온도를 가진 교회들도 있었다. 차가워진 사데교회를 향해서는 성경은 죽었다고 했다.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라면 더욱 돈을 고민해야 한다. 돈을 고민하는 목사가 타락했다고 쉽게 단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돈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목회자가 후에 더 타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교회 개척을 꿈꾸고 있는 목회자들이 교회의 온도를 재보지도 않고 가슴만 뛰어서 움직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도 말씀을 가르치시고 4,000명의 무리가 먹을 것이 없어서 기진하며 돌아갈 것을 불쌍히 여기셨다. -왜 교회일까? 중 발췌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일반인들까지 교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매우 부정적이며 혐오 수준이지만 말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이 현재처럼 교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바라볼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교회됨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있게 제고케 도와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