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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삶과 죽음의 생애 주기를 경험하듯 기업도 길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보통은 속해 있는 산업군의 흥망성쇠나 경쟁사의 급부상, 내/외부 요인에 의한 경영 악화 등으로 정점에서 서서히 내려와 다양한 형태로 소멸된다. 한창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사업의 정점을 이어가던 기업이 급작스럽게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주가가 급락하고 뉴스에 자주 나오게 된다. 회사 고위 간부의 횡령이나 배임, 노동 착취, 임금 체불, 가짜 원자재 사용 등 그 이유는 많다. 이러한 '이슈'가 발생하면 기업은 바짝 긴장한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언론의 기능이 강화되고 시민 의식이 높아진 오늘날 순식간에 가치를 잃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기업이라는 유기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보다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위기의 시대, 글로벌 기업의 리스크 관리>는 우리나라 GDP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비롯, 삼성가의 기업에서 30년 넘게 일하며 경영 일선에서 기업을 이끌었던 저자가 리스크 관리와 기업 경영의 절대적인 상관관계에 대해 논하는 책이다. 삼성 그룹은 예로부터 '관리'의 삼성이 불렸다. 각종 경영 지표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상 발생하는 수많은 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고 추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자는 그러한 관리 시스템을 30년 넘게 지켜봐 왔다. 덕분에 저자가 '리스크'에 대해 지니고 있는 철학은 대단히 확고하다. CEO 리스크, 인수합병 리스크, 원자재 리스크, 노무 리스크 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는 수많은 리스크를 기본적으로 '예방'하고, 발생한 리스크에 대해 '대응'하여 기업이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의 기본은 예방이다.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하인리히 법칙처럼 뉴스에 보도될 만한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30번의 중형 사고가 발생하고 300번의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 아주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을 때 실무 일선에 있는 직원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사고를 무시하고, 30번의 중형 사고가 발생하도록 중간급 관리자들이 보고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10조 원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다준 도요타 리콜 사태가 발생했고, 나이키의 파키스탄 아동 노동 착취가 발생했다. 경영진은 조직 전체에 걸쳐, 아주 작은 이슈라도 망설임 없이 보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결국 회사에서의 일은 인간이 하는 일이다. 인간은 무척이나 비이성적인 존재이다. 분명 혼자서 풀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주 잠깐의 질책이 두려워 '작은 사고'를 보고하지 않는다. 조직의 문화와 시스템은 사고 예방에 무척이나 큰 영향을 주는 대상이다.
모든 리스크를 예방할 수는 없다. 하물며 삼성전자에서도 무수히 많은 리스크가 발생했다. 좋은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리스크를 통해 성장하느냐로 구분할 수 있다. 삼성 그룹은 발생한 리스크를 즉각적으로 공개하고 선제적으로 해결하려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해당 리스크가 발생한 원인을 세부적인 수준까지 분석하여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층 더 성장한 것이다. 이는 기업이 생존하는 동안 영원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기업은 늘 새로운 리스크를 맞이할 것이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찬 것도 있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숨기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면 결국 탄로 나기 마련이다. 리스크를 성장의 기회를 삼는 것, 리스크 관리의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책에는 저자가 오랜 재직 기간 동안 겪었던 수많은 종류의 리스크가 상당히 세세한 수준으로 적혀 있다. 거대 기업답게 거의 모든 종류의 리스크를 경험했다. CEO와 관련된 이슈도 있었고, 국제 정세에 따른 리스크, 원자재 수급, 법적인 리스크까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우들이 많았다. 저자는 동시에 감당할 수 없을 듯한 리스크에 그대로 휩쓸려버린 사례를 함께 소개한다. 늑장 대응으로 10조 원이 넘는 손해를 감수해야 했던 도요타,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폭스바겐 디젤 검사 결과 조작 등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은 거대 기업을 휘청이게 만든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 다시는 없도록 적절한 시스템 구축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수만 명이 함께 일하는 기업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감이고 사회에 대한 도의이다. 해당 관점에서 리스크 관리는 어쩌면 인간 사회의 원칙과도 같은지 모르겠다. 인간도 기업도 결국 깨지고 넘어지며 성장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리스크에 '진심'인 사람이 온 힘을 기울여 써낸 책이다. 리스크의 종류부터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 적절한 리스크 관리, 리스크 관리의 성공/실패 사례 등 리스크라는 주제만으로 이토록 폭넓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며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못하는 것은 생사를 위협하는 일이 되었다. 실제로 리스크가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업이 마주하는 경영 환경의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에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 관리에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할 때이다. 단 한 번의 실책이 100년 기업을 무너뜨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리스크의 A to Z, <위기의 시대, 글로벌 기업의 리스크 관리>였습니다.
* 본 리뷰는 바른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