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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화유산으로 분류되는 적산가옥은 대부분 일본식 건물이다. 전국의 많은 근대문화유산 중에서 서양식 건물인 목포근대역사관 건물이 기억난다.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근대역사관 1관은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아픈 역사가 사진 자료로 고스란히 드러난 그 장소는 치욕의 역사와 함께 아름다운 건물이 묘하게 대비(對比)를 이룬다. 프랑스식 건물로 지어진, 어딘가의 성처럼 보인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인왕산 자락에서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 찌를 것처럼 높이 탑이 있는 곳. 자신의 부와 위세를 증명하려 했던 건물이다. 일본이 패망한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었다가 유엔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벽수산장의 건물은 그 위용이 만만찮다.
작가의 어릴 적 사진 뒤편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벽수산장이다. 그 사진을 발견하고 8년이 지나서야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역사를 알고 그 건물을 바라보게 되면 남다른 감정이 느껴질 것 같다. 더군다나 일제 치하에 친일로 악명을 떨쳤던 윤덕영의 건물이라니 책을 읽기 전부터 울분이 솟았다.
이 소설은 역사 속에 건재했던 윤덕영의 집인 벽수산장과 실제 유엔 산하 언커크 즉 UNCURK를 소리 내어 부른 이름으로 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사무실로 썼던 장소와 그 장소에 나타나 새로운 힘을 얻으려고 했던 가공의 인물 윤원섭과 이해동을 통해 말하는 사라진 것들 혹은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해동은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다. 그는 외국인 선교사에게서 영어를 배워 언커크의 호주 대표 애커넌 씨의 개인 통역 비서다.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애커넌 씨는 사기죄로 2년여를 복역한 윤원섭을 출소한 날에 맞춰 데려오도록 했다. 윤원섭은 친일파 윤덕영의 막내딸로 벽수산장의 종탑에 비밀의 다락방을 알려주겠다는 편지를 썼다. 윤원섭은 과거 친일파였던 아버지를 미화하며 과거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인물로 화려한 복장과 수려한 외모를 가졌다.
언커크의 호주 대표인 애커넌 씨는 오십일 세인 윤원섭보다 몇 살 어리지만 윤원섭이 가진 외적 조건에 호감을 표시하는 인물로 나온다. 과거 친일파였다며 윤원섭이 하는 일이 마땅찮은 해동에게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 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제삼자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다. 물론 애커넌은 국제정치에서 점점 쇠락해가는 유엔 산하 언커크의 입지를 어떻게든 회복해보려 윤원섭을 이용하고자 하였다.
해동은 원섭을 도와 탑 속의 다락방과 벽수산장이 가진 유래를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애커넌 씨의 통역 비서로 일하는 게 더 좋지만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 남다른 사교술로 사람들을 휘어잡은 원섭이 싫으면서도 그녀를 도와 일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세상천지에 부모 대신이었던 고모마저 세상을 떠나자 고모가 소개해준 동네 처녀 손진형이 없었다면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금으로 윤덕영은 벽수산장을 지었다. 윤덕영의 썩은 정신이 싫다. 그럼에도 벽수산장이라는 저택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지난 석 달 동안 그것의 질긴 생명력을 경험하면서 해동은 그것이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입장에서는 분하고 고까울지언정 그것이 아예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249페이지)
역사 속 인물이 지어놓은 건물과 가상의 인물을 통해 전달해오는 것들이 마음에 무겁게 와 닿았다. 일본인 혹은 친일했던 이들이 남긴 건물들은 그들이 나라를 팔았던 자금으로 지은 건물이라 싫어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적산가옥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 시대가 남긴 치욕과 슬픔을 되새기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잊혀진 것들, 혹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던 역사 속 인물들은 싫지만 그들의 재산이었던 건물들은 이처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거부해도 아름다운 건축물은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티끌보다도 가벼운 존재로 취급받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역사를 지탱해 가는 것은 이러한 보통의 존재들이라는 진실이 아프도록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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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떡하지?’ 정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영화 보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계속하던 것이, 영화 관람은 오랜 세월 나의 취미이자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영화 보기를 잠시나마 고민했던 적이 있다. 언제였던가, 기다리던 영화의 개봉 날짜를 기다리며 보러 가려고 계획했던 순간. 주연 배우의 스캔들이 터졌다. 그 배우의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 개인의 사생활이려니 하면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던 게 여러 번이었으니 뭐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도저히 못 들은 척하기가 어려운 스케일의 이야기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그 영화를 볼까, 말까? 영화를 보면서 자꾸 그 스캔들이 배우의 얼굴에 겹쳐 보일 것 같아서 망설이다가, 결국은 보고야 말았다. 영화가 다 끝나고 상영관을 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에이, 더럽게 연기 잘하네.’ 어쩔 수 없는 미움 앞에서도 배우의 연기를 훌륭했고, 캐릭터와 한 몸인 것처럼 보였으며, 영화도 재밌었다. 무엇 하나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그 배우를 떠올리면 지나간 시간의 모든 이야기가 생각날 것이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또 한 번 과거의 스캔들을 소환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믿고 보는 배우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그를 미워하면서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지 않는다. 미워할 때 미워하고, 영화는 영화로 본다. 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서 당황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궁금하다. 이 마음이 뭐란 말인가.
작가가 소설에 담아낸 벽수산장이 그랬다.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적산이라 불리며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게 하는 존재.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기억하게 하면서 아픔도 동시에 소환하는 그곳을 어떻게 해야 옳은 건지 언제나 고민하게 될 터였다. 한때 한양 아방궁이라 불렸던 벽수산장은 친일파 윤덕영이 3년여에 걸쳐 지었다. 친일파 중에서도 악명이 높았다고 하니, 그가 나라를 팔아서 번 돈으로 지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면적이 옥인동 일대의 거의 절반이라고 한다. 위치 또한 기가 막히고, 인왕산 중턱에 자리하며 경성을 내려다보는 프랑스식으로 호화로움까지 갖췄단다. 소설 속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상상해보는 순간에도 그려지는, 뻣뻣하게 목을 세우고 세상의 주인이고 중심인 것처럼 내려다보는 시선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해동이 윤원섭을 만나는 순간부터 솟아나던 그 갈증과 답답함을 문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1966년, 해방 후 20여 년이 지난 현재, 이십 대 청년 이해동은 언커크(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에서 호주 대표 애커넌의 통역 비서로 일한다. 현재 벽수산장은 언커크의 사무실로 쓰인다. 어느 날 해동 앞에 나타난 윤원섭은 친일파 윤덕영의 막내딸로, 이제 막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했다. 그런 그녀가 애커넌을 만나러 벽수산장으로 돌아왔고, 그녀만 알던 벽수산장 비밀의 방을 보여주며 그곳의 신비로움을 피력한다. 마치 오래된 고성의 비밀의 방을 여는 것처럼, 누구도 몰랐지만 누구나 들어가 보고 싶은 공간으로 포장한다. 옛 주인은 자기만이 그 방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듯, 벽수산장이 그냥 평범한 건물이 아니고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다고 말하며 그녀의 위치를 각인시킨다. 만약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었다면, 나는 이미 윤원섭의 모든 것을 알아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가 그곳에 발을 들인 순간, 벽수산장은 더는 언커크 사무실로 쓰이지 않을 것이며, 그녀가 돌아온 이유가 한 번에 보일 만큼 적나라했다. 그건 언커크 사무실로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무언의 연대 같은 느낌일 것이다. 해동은 윤원섭의 말을 통역하면서도 구역질이 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쩜 저렇게 뻔뻔하고 염치가 없을까. 밥벌이를 이어가자니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이것도 못 참고 뛰쳐나가자니 일상이 위태로워지는 순간이다. 해동의 갈등은 윤원섭과 함께하면서 계속된다.
“윤 자작의 일족이 일본 지배 시절의 행적으로 비난받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때의 조선은 다른 세상이 아닌가? 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97페이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의 결정이나 판단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인공 이해동의 갈등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친일파의 후손 윤원섭과 국제사회의 시선을 담은 애커넌의 말에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해동은 상사에게 윤원섭이 어떤 인물이고 그 가문이 대한민국에 저지른 죄를 말하지만, 애커넌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지금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음을 시사한다. 윤원섭은 마치 그 시선을 이용하는 것처럼 당당하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은 과거 따위 무시하고 현재 벽수산장의 아름다움을 호소하며 문화적 가치를 앞세운다. 정말 그럴까? 지나간 시간의 일은 과거와 같이 묻어두고 현재의 것만 다루면 그만인 것일까? 해동의 혼란이 커질수록 독자의 마음도 같이 흔들린다. 무엇을 따라야 옳은 것인지 계속 고민해봐도 답을 알 수가 없다. 특히 해동의 마음은 더 복잡했으리라.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했지만,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발각되어 목숨을 잃은 아버지였다. 해동에게 고아라는 이름을 물려주게 했던 그 시절의 아픔은 친일파의 후손인 윤원섭에게도 책임이 있다. 단지 가해자의 후손이니까? 아니다. 피해자의 피와 눈물로 착취한 재산으로 배를 불리고 대대손손 그 부유함을 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게 문제가 되는 거 아닐까? 해동이 윤원섭에게 느끼는 감정도 비슷할 거다. ‘당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일들이 나를 고아로 만들었고, 성장하는 동안 힘들지 않은 순간이 없었는데, 당신은 왜 지금 이곳으로 돌아와 주인 행세를 하며 차지하려 드는가?’
해동의 혼란은 사무실로만 쓰던 벽수산장이 아니라, 알지 못했던 그곳의 곳곳을 들여다보면서 커진다. 섬세하고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의 면면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 순간, 그는 적산이라 부르며 혐오하던 그곳에 마음을 빼앗긴다. 동시에 적산이니까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마음도 커진다. 상처와 고통을 주면서도 바라보고 싶은 아름다움에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 아름다움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부끄럽고 죄스러웠으며, 저택이 그곳에 뿌리내리듯 존재하는 이상 그가 느낀 아름다움 역시 사라지지 않을 거로 여겼다. 누군가에게는 적산이고 누군가에게는 유산이 되는 그곳의 존재는 곧 사라진다. 벽수산장에 불길이 치솟고, 몇 년 후 철거된다.
작가는, 윤덕영의 옛 별장 벽수산장이 한때 언커크에서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화재로 소실되어 몇 년 후 철거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소설의 내용 대부분은 허구라고 말했다. 많은 부분을 자료 조사가 바탕이 된 상상이라고. 그런데도 상상으로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 그 시대의 아픔과 고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과거이지만 지워지지 않고, 지워서도 안 되는 그 시간의 흔적이라고 말이다. 거기에 적산과 유산의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일도 끝나지 않았다. 친일파의 적산가옥으로 생활 좀 편해지고 싶어 하는 소시민의 마음과 친일파의 흔적이니 사라져야 한다는 마음의 갈등은 계속된다. 독립운동에 가담해서 일찍 죽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고아 인생을 이해하면서도, 그 아버지의 장한 행동으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는 일. 해동이 윤원섭을 보고 느끼며 변화하는 과정이 그가 원망하듯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불타는 벽수산장을 뒤로 하고 그 언덕을 걸어 내려가는 그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적산이 사라지는 것을 기뻐할 수도 없고,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도 없는 마음을 안고 돌아가는 그 길에서 이제 그는 무엇을 향해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쩌면 해동의 마음은 이 소설을 읽는, 우리의 과거 속에서 마주하는 비슷한 상황들에서 공감하는 마음이고 질문이겠지.
해동이 가진 것은 온통 미미한 것들뿐이었다. 아버지가 돼지막에 숨겼던 인쇄기, 생전에 고모가 쌓은 덕과 인정, 애커넌 씨와 개인 간 고용으로 만들어진 언커크의 일자리. 그런 미미한 것들은 길가의 거미줄처럼 금세 더럽혀지고 아무 발길에나 찢어지고 제일 먼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런 것이 존재했다고 증언해줄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그것이 실제 있었다고 말할 근거조차 희박해지는 것들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윤덕영은, 벽수산장은, 언커크는 얼마나 확실하고 단단하고 부인할 수 없이 존재하는가. (중략)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지난 석 달 동안 그것의 질긴 생명력을 경험하면서 해동은 그것이 ‘힘’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에는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힘들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입장에서는 분하고 고까울지언정 그것이 아예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248~249페이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들로 기억될 갈등은 이분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분하고 화가 나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감정을 알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모든 상황과 인물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겪어온 상황과 혼란, 여러 가지 마음을 안다고 말하고 싶다. 씻은 듯이 모든 감정을 없앨 수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 우리 역사 속에서 이런 순간과 공간이 또 얼마나 많을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이념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정직과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이야기지만, 자기의 가치관과 삶을 지키려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선택을 함께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사라짐과 지킴의 묘한 겨루기를 주관하는 힘을 고민하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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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철거되기 전까지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실제로 존재했던 '벽수산장'이라는 건물이 소재인 소설이다. 도대체 어떤 건물이길래 '아방궁'이라는 별명이 붙었나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과연 아방궁이라고 불릴 만하다. 면적이 무려 200평에 달하고 정원에 연못도 있었다고. (참고 : '큰거문고' 님 블로그 "벽수산장을 아시나요" https://blog.naver.com/graz2000/222599526739)
이야기는 1966년 이해동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하는 윤원섭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언커크(UNCURK, UN한국통일부흥위원회)'의 호주 대표 애커넌의 개인 비서인 해동은 현재 언커크 건물로 쓰이고 있는 벽수산장의 옛 주인이자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의 막내딸 원섭을 애커넌에게 데려간다. 비록 천애고아로 고모 손에 컸지만,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게 나름의 자랑이었던 해동은 친일파의 딸인 데다가 사기죄로 복역까지 한 원섭이 애커넌의 마음에 들어 자신의 윗사람 노릇을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후에도 원섭이 계속 눈엣가시 같은 행동을 하지만, 해동은 좀처럼 벽수산장을 떠날 마음을 먹지 못한다. 지방 출신에 무학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받아주고 과분한 월급까지 주는(그것도 달러로!) 직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아름답다"라는 탄성이 나올 만큼, 건물 자체가 매혹적이고 세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좋은 것만이 전부일까.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해동은 자신이 벽수산장에 매혹된 '진짜 이유'는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이 건물이 상징하는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에는 두 가지 유산이 나온다. 하나는 벽수산장을 비롯한 '물질적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나 애국심 같은 '정신적 유산'이다. 벽수산장은 결국 전소되고 철거되었고, 해동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고모네 식구들은 고모의 죽음을 계기로 해동과 등졌다.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 정신만큼은 계속해서 이어질 줄 알았지만, 이마저도 1965년 한일수교 이래 빛바랜 가치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제목 <영원한 유산>이 뜻하는 '영원한' 유산은 무엇일까. 어떤 유산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제목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환난과 고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해동과 그의 새로운 가족들을 보면서, 결국 사람이 유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을 길러내고 있을까. 벽수산장처럼 종국에는 파괴되어 잊힐 것들만 만들어내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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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친일파와 왕가, 국제기구와 대저택 같은 거창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을 이리저리 밀어대는 이념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정직과 존엄을 지키려 애썼던 평범한 사람이다. (...)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의 제단에 목숨이나 밥벌이할 직장 같은 것을 올렸는데, 그것은 실상 그딜이 가진 전부였다. 노랫말처럼 사랑도 몡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역사에 파뭇고 잊혀져간 수많은 그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우리 역사의 주인공들이며, 우리는 각자 그렇게 우주의 중심에 살고 있다." -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해동은 이 세상에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흔들리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강력한 "힘". "힘"을 가지지 못한 입장에선 "힘"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노라 알려진 윤덕영의 집인 벽수산장과 그의 딸 윤원섭.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청년 이해동. 벽수산장이라는 공간이 갖는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허구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져 해방과 전쟁 후 60년대 후반의 어지러운 정치상황과 친일파에 대한 국민정서 등이 얽히고 섥혀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도 우리 정서의 밑바닦에 남아있는 일본 점령기의 수 많은 잔재가 이 소설처럼 현실이고, 과제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기에... 끝나지 않은 과거를....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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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만약에’는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생각한다. 만약 친일파 청산이 잘 되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이해동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 아들이다. 그는 한국통일부흥위원회(언커크UNCURK)에서 통역 비서로 일하고 있다. 언커크의 사무실로 쓰고 있는 벽수 산장은 친일파였던 윤덕영이 지은 별장이다. 이곳에서 달러로 월급을 받으며 자신 정도면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해동 앞에 윤덕영의 딸 윤원섭이 나타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윤원섭은 벽수 산장으로 돌아와 비밀의 방을 찾아내 언커크에 온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게 자신이 저택의 옛 주인을 각인시킨다. 친일파의 딸 윤원섭의 뻔뻔한 말을 통역하면서 이해동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친일파의 자손과 독립운동가의 자손. 그들의 상반된 정신이 묘한 씁쓸함을 자아 내는데...
친일파 자손들의 생각이 정말 윤원섭 같을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이런 말을 한 만화가가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은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유산조차 남기지 못했고 그만큼 조국을 위해 모든 걸 바쳤는데 이게 열심히 살지 않아서 가난하다고 말했던 만화가. 그가 친일파 후손인지는 모르겠지만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했다면 이런 막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지. 역사가 왜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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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등장했다. 아직 독재에 대해 사람들은 생각 않고 있다. 불명예스럽게 하야한 이승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대강 시대 상황이 그려졌다. 전쟁통에 부모 잃은 고아가 상당수다. 그 시절의 가난은 오늘날로서는 상상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지독했을 거다. 가진 거 하나 없는 데다 홀로 성장했다면 고초가 말이 아니었을 거다. 그럼에도 해동은 영어를 잘했다. 예나 지금이나 언어 능력은 중하다. 비록 외롭기는 하나 적어도 굶주린 나머지 손가락을 빠는 불운은 피했다. 왠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를 우러러보는 듯도 했다. 윤씨 성을 가진 여인이 등장하지만 않았어도 그의 삶은 고요한 호수와도 같았을 거다. 소설이라 하였다. 등장 인물의 상당수가 허구다. 저자 스스로 밝혔음에도 이제껏 속고만 산 거 마냥 키보드를 두드렸다. 윤원섭. 역시나 검색되는 내용 중 내가 원하는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입안 가득 씁쓸함이 맴돈다. 아마 희대의 친일파 윤덕영의 탓일 게다. 사람이 죽으면 남기는 건 이름만이 아니다. 윤원섭의 아버지 윤덕영은 모두가 우러러 볼 법한 건물을 세상에 남겼고, 지은 죄 많아 수감됐던 윤원섭은 창살 밖으로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건물로 향했다. 벽수산장. 1973년 철거로 더는 볼 수 없는 건물이 바로 저자가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멍석으로 활용됐다. 비밀스러운 통로를 지나면 신비로움을 풍겨내는 공간이 나타난다. 이미 국가에 귀속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한 구석을 차지한 윤원섭은 특유의 뻔뻔함을 무기 삼아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역시 친일파의 자손답다. 타고난 낯짝이 두꺼운 건지, 분명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적잖았을 텐데,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무대에 선다. 마치 잃어버린 아버지의 대국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머금은 것처럼, 벽수산장을 소위 친일파 박물관으로 꾸리는 일에 착수한다. 악이 있다면 선도 존재한다. 더구나 친일파는 아무리 노력해도 긍정이 불가능한 최악에 해당한다. 절대선을 등장시키면 단순한 구도로 이야기를 이끌 수 있다. 작가로서 택할 수 있는 손쉬운 길을 놔두고 저자는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다툼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삶, 부유함 등을 꺼리는 인물은 별로 없다. 윤원섭과 함께라면 해동의 앞날은 창창할 수도 있다. 눈 질끈 감고 제 영혼을 배신하는 행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왠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닌 거 같다. 해동이 이제껏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었던 까닭을 저자는 집요하게 공략한다. 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증거를 도통 제시할 수 없다. 마치 모래 위에 쌓은 성 마냥 무너지기 십상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 뼈아프다. 왠지 나만 그릇된 상황인 거 같아 의심이란 걸 품어본다. 내 안의 장벽만 사라진다면 윤원섭의 몸종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과연 내가 아는 내용이 맞는가. 나의 높은 도덕성은 근거 없는 허구에 불과한 것일까. 차라리 벽수산장처럼 오랜 일이 흘러도 모두가 볼 수 있는 가시적 유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해동의 마음은 어지럽다. 이는 벽수산장이 품은 아름다움과 또렷이 대비된다. 윤원섭에게 자만감을 양껏 불어넣는 벽수산장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원한 유산이 아닐지. 상반되는 가치가 끊임없이 뒤섞인다. 철두철미하게 무너져야만 하는 존재가 스스로를 빛내기 바쁜데 반해 진정 소중한 것들은 끊임없이 무시당한다. 그래도 추함이 더 추함을 만나 어떠한 역겨움을 빚어낼 수 있는지, 아전투구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저자가 있어 통쾌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선 안 될 통역사가 거침없이 내면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이고, 타인의 응징이 필요한 순간에 악함을 타고난 자들은 저들끼리 싸우다가 무너져버린다. 장면 하나하나에 불과한 것들이 모이고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진정 영원해야 하는 것들만이 이 세상에 남지는 않을까.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이와 같은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이번 독서의 가장 큰 결실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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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리뷰 책 제목이 영원한 유산 대부호가 무언가 값을 매기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는 듯한 제목이지만 내용은 그게 아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를 팔아먹었던 윤덕영 자손 윤원섭이 해방 후 돌아와서 뻔뻔하게 자신들은 나랄 팔아먹은 게 아니고 더 좋게 윤덕영이 집안이 아닌 백성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그리했단다 하면서 여론전을 펼쳐 오히려 유공자 비스무리하게 자릴잡고 큰소리 치며 뭐 그렇게 되어가는 씁슬한 이야기다 물론 주인공은 윤원섭이 아니다 주인공은 해동 언커크라고 유엔 한국통일 부흥위원단에서 일하는 젋은 남자이다 아무튼 잘못한 자가 용서를 빌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네놈들이 잘못했다고 따지는 격이니 어째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 해방되고 6.25 전쟁 후 어수선한 시기 적산 가옥 벽수산장 실제 존재했던 건물이긴하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다 가공의 인물이지만 그 시대 왠지 있었을 법한 아니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그런 사람들이다 소설의 끝에 가서 벽수산장은 친일 기념관처럼 되는데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과거를 바로 잡지 못하면 미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연말리뷰 #심윤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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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님의 리뷰입니다. 작가님의 마지막 글까지 모두 읽어야 완성되는 이야기 입니다. 실제 있었던 건물에 존재와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영원히 사라질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그냥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우리의 근현대사와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만들어 진 이야기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살아간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잔잔한 듯 하고, 중간에 속터지는 구절도 있었습니다만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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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심윤경 작가님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나와서 기쁜 마음에 당연히 구입하였다. 영원한 유산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지금은 사라진 건물로, 악명 높은 친일파로 유명한 윤덕영이 궁의 자금을 빼돌려 지은 벽수산장을 소재로 삼은 책이다. 벽수산장은 해방 후에 국제기구 언커크의 건물로 쓰고 있었는데 갖은 고생 끝에 언커크에서 달러 월급을 받으며 통역으로 일하던 청년 해동 앞에 어느날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이 나타난다. 그녀의 등장으로 해동의 삶은 크게 흔들리는데.. 사기죄로 형무소에서 형을 살다온 여자였지만 언커크로 쓰고 있는 건물은 자신의 위대한 아버지가 나라의 위상을 위해 지은 건물이라며 주인 행세에 온갖 잘난척을 하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완용은 지방에서 온 미천한 놈이라 욕하고 독립운동가들은 비꼬면서 자신의 아버지는 아주 위대한 인물로 칭송하기에 바쁘다. 책 읽다보면 혈압상승. 사실 윤원섭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매국노 후손들이 한 말들을 그대로 갖다 쓴 거 맞을 듯? 외국인들은 그녀가 친일파의 자식이든 뭐든 신경을 쓰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의 외모를 보고 추앙한다. 독립운동가 후손이었던 해동은 윤원섭을 위해 일하는 게 너무 힘들기만 하는데.. 뒤에 약간 사이다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매국노 후손들이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니..씁쓸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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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통역 비서로 일하는 이해동이라는 인물, 친일파의 딸인 윤원섭, 이해동의 고용주이자 언커크 호주 대표인 애커넌 씨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작가님이 참 이런저런 묘사를 잘하면서도 역시 친일파 때문에 화가 나서 읽다가 자꾸 쉬게 된다 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조용히 희생당한 사람들은 잊히고 친일파나 그 후손들은 뻔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쉬운 현실이다 . 작가님의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로 이러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영광이었다. 영화화가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 그리고 작품후기까지 읽어보게 되었는데, 사진 한 장에서 그렇게 아이디어를 얻어 오랜 시간동안 자료 조사를 하고 연구하고 구상하고 글을 쓴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